■(욥 11: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제 세 사람 중에 그래도 나이가 어린 소발이라는
사람이 이야기를 한다.
이들은 나이가 같은 또래 친구들이 아니다.
■(욥 11:2)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너 참 벌 받고 있는 주제에 말이 많구나,
그렇게 아픈 주제에 말이 참 많구나.
잘못했으니까 그렇게 매를 맞는 것이지.
잘못했다고 하면 잘못 했는지를 알지.
끝까지 네가 잘했다고 말이 많구나.
(욥 11:3)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욥이 힘들여서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자꾸
이야기한다. 자기는 잘 못한 것이 없는데 왜 신께서
자기를 이렇게 괴롭게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는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이치를 아는 세 사람은 어이가 없다.
욥도 그런 사실은 안다. 하지만 자기 잘못을
못찾는 상황이라서 그렇다.
세사람이 볼 때 그래도 지금 현재 욥은 신께 벌을
받고 있는데 저 정도면 상당히 잘못했다는 것인데
욥은 계속 잘했다고 자랑을 하니.
■(욥 11:4) "네 말에 의하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네가 너를 참 깨끗하고 바르다고 정직하다고
주장하는구나, 그런 너를 신까지도 옳게 보는 줄
아는 구나.
■(욥 11:5)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신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너에게 잘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다.
나도 과거에 목사들에게도 신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욥 11:6) "지혜의 오묘함으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신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
신의 지혜의 오묘함을 너에게 보여주시기를 원하지만
신께서 너의 죄를 아직 깨닫게 하지 않으심을 알라.
신께서 형벌 내리실 때는 어느 기간이 있다.
이 땅에서도 몇 년 형이라는 판결이 있듯이.
보석이든 집행유예든 가석방이든 유치장행이든
사형이든.
그리고 그 형 기간이 끝날 때가 되어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깨닫게 해주신다.
사람이 생각하는 죄와 신께서 생각하시는 죄가
같을 수도 있고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신은 더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곳의 죄를 찾으신다.
일단은 내가 이 땅에서 말하고 있는 바르게 사는 삶,
사람 답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신은 사람의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양심' '느낌' '눈짓'
'발짓'까지 계산하시는 신이시다.
■(욥 11:7)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신의 오묘함을 모른다. 측량도 못한다.
전지전능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다.
1점도 모른다. 보여주셔도 모른다.
이제라도 깨닫는 것은 창조주신의 광대하심은
정말 기가 막히다.
절대적으로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으며,
느낄 수도 없으며, 파악할 수도 없으며,
그 정도일 수도 있겠지 할 수도 없으며,
계산할 수도 없다.
절대로 사람으로서는 신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하지 말라.
유대인일지라도 기독교인일지라도 큰 코 다친다.
■(욥 11: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 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 바다, 땅, 지구, 사람, 죽음,
그런 것조차도 신의 창조에 비하면 점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커다란 지구라는 곳에서 이 것이 다 같다.
태양계 정도가 다 같다. 더 나아가서는 한 은하계가
다 같다.
하지만 그 은하계가 수 억 개, 아니 수를 셀 수가
없다 하니, 그 큰 창조의 세계에 비하면 지구는
그냥 먼지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면 그 먼지 하나에 불과 하는 지구라는 곳에
살고 있는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저 안개다. 그림자다.
'스올'이란 영의세계에 존재하는 '죽음'의 공간이다.
영의세계의 내가 '스올'로 들어가면
육의세계의 나는 '죽음'을 맞는다.
스올의 깊이와 넓이는 무한으로 무한을 만드신
신의 전능하심은 이루말할 수 없이 깊고 크시다.
■(욥 11:9)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끝없는 우주가 펼쳐져 있다는 것은 지금 과학이
발달된 상태에서 아는 것이지 과거에는 육지가
네모난 줄 알았다.
그래도 바다 끝으로 가면 낭떨어지가 있는 줄 알았다.
그런 인간이 신의 크심을 비교할 데가 땅과 하늘과
바다밖에 없다. 하늘 보다 높고, 바다 보다 깊고,
육지 보다 길고. 헤아릴수 없이 크실 것 같다.
■(욥 11:10)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재판을 여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
사탄이 “두루 돌아다녀 여기 저기 다녀 왔습니다”
하니 사람이 미워서 어쩔 줄 모르는 사탄이 그러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다.
아니다.
신께서 두루 다니시는 것인데, 그 때마다 그 상황마다
쓰임 받는 존재들이 있을 뿐이고 그 무서움의 형상일
뿐이다.
왕이 "저 놈을 국문한다" 할 때 어떤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라도 당장의 그 무서움의 느낌의 형상이
영의세계에서 볼 때는 '마귀'로 보인다.
그러니 마귀가 나를 때리는 것 같다.
그리고 악한 사람을 가두시고 재판을
여시는데 아무리 이 세상의 강한 왕이라도
신을 막을 수는 없다.
■(욥 11: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악을 행하는 자들이 참 잘되는 것 같다.
신께서 상관도 안하시나? 그들은 오히려 내버려 두시는
것 같고, 나 같은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올가미에 가두시는 것 같다.
하지만 정밀하게 보시고 정밀하게 재판하시고
정밀하게 축복하시고 징계하시는 신이 맞다면
그들은 그들대로 살게 하시고, 나는 나대로
살게 하시는 것이 다 옳은 것이다.
그들이 악하게 사는 것 같은 것은 내 생각이다.
그들은 악한데 잘 사는 것 같은 것은 내 생각이다.
그들을 욕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신께서 악이라고 판단하셨으면 그 사람이나 나나
결국은 혼난다.
■(욥 11:12)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의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악을 행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저 짐승 같다.
■(욥 11:13)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가 어떤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고 뉘우칠 때에"
■(욥 11:14)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행동까지 옮겨서 죄악을 버려버려라. 아주 끊어버려라.
죄라는 것은 모양만 있어도 버려 버려라.
우리는 함부로 악한 일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새벽기도 가다가 함부로 인신매매단에 걸려가고,
칼에 맞아 죽고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악해졌는데 옛날에는 그래도 악한 사람이
벌을 받고 선한 사람을 복을 받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선한 사람도 공격받고 착한 사람도 공격 받고
누구든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밤 길도
무섭고 혼자 가는 길도 무섭고, 어쩔 때는 여러 명이
가는 길도 무섭다고 한다.
집에 혼자 있어도 무섭다.
언제 도둑이나 강도가 들이닥칠지 모르겠다.
신께서는 네 죄가 너를 치겠고 네 허물이 너를 친다고
하셨는데, 왜 자기가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를 뿐이지
다 신의 계산에 의해 그런 일도 당하고 산다는 것이다.
그냥 막무가내로 묻지마식으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 손에 무슨 죄악이 있는지 살피라고 하신다.
이 손으로 무슨 쓸데없는 짓을 했으며, 무슨 잘못을 했으며,
안 해야 하는데 했는지, 내가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이 정도면 괜찮게 번 것 같은데, 이 정도는 잘못도 아닌데,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하는 것인지. 정말 당당한 것인지.
네 장막에도 불의가 있나 살피라고 하신다.
가족이 잘 못한 것은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나는 나를 알지만 아내도 남편에 대해 잘 모르고,
남편도 아내에 대해 잘 모르고, 부모도 자녀에 대해
잘 모르고, 자녀도 부모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낮에 무슨 일을 하고 다니다가 저녁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들어와서 같이 잠을 자는 것인지
서로 모른다.
밝혀야 할 것만 밝히고 밝히기 싫은 것은 서로 비밀에
부쳐두고 살고 있다. 그러니 어떤 형벌에 의해 가족이
그런 징계를 받는 것인지는 서로 잘 모른다.
억울한 나의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한 것이라고
원통하다고 외친다.
우리만 모를 뿐이지 신은 다 보시고 아셨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외형적인 것은 그래도 본인도
눈치 챌 수 있고, 가족도 눈치 챌 수 있고,
타인도 눈치 챌 수 있지만
나의 성격이나 성품이나 속 마음이나 동기 과정 목적
느낌 눈짓 발짓 ~척 속과 겉이 다른 것, 말과 행동이
다른 것 등 수도 없는 조건과 이유로 걸리는 것들은
알아챌 수가 없다.
험담 이간질 등 쓸데 없는 말로 빈곤이 오고 죽음까지
올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은 알아챌 수가 없다.
■(욥 11:15)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그렇게 바르게 살았다면, 양심에 거리끼는 것도 없이
당당하게 살았다면, 신께도 말씀 드릴 수 있을 만큼
진실하게 살았다면 그런 어두움이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고 혼자 밤길을 가도 당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부로 악한이 아무나 공격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의세계에서는 모든 영들이 다 보고 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다.
■(욥 11:16)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기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그렇게 바르게 살면 환난이 사라질 것이다.
이제 추억하고 기억하려고 해도 세월이 지나감으로
물이 흘러감 같이 잊게 될 것이다.
■(욥 11:17)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너는 즐겁게 오래 살 것이며 슬픈 일이 온다 해도
빨리 해결 될 것이다.
■(욥 11:18) "네가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며
두루 살펴보고 평안히 쉬리라"
네 삶은 안전할 것이며 사방을 둘려 봐도 평안이 있을 것이다.
■(욥 11:19)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은혜를 구하리라"
네가 안전망을 치고 보호망을 치고 할 필요도 없고 내가 어떤
악한 일을 당할까? 누가 나를 해할까? 누구를 두려워 할 것도
없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욥 11:20) "그러나 악한 자들은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들의 희망은 숨을 거두는 것이니라"
하지만 나쁜 사람들은 아무리 숨어도 숨을 길이 없다.
정말 악하다고 신께 재판 받은 자는 도망쳐도 소용이 없다.
꿈에서 누가 쫓아와서 계속 도망가지만 결국엔 잡히더라.
'평안'은 신께서 주시는 복이다.
우리가 볼 때 죄가 없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악함을 당하고 사고 나고 질병에 걸리고 고생하고
일찍 숨을 거두는 것은 무슨 죄가 많아서 인지
모를 뿐이다.
일찍 죽는 것이 화인지, 오래 사는 것이 화인지 잘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