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개를 지나 적성대교를 건너며
겨울 강변으로 나왔다. 며칠 혹한이 지나가고 바람이 좀 누그러졌기에 얼음 언 강을 보려 왔다. 강은 통째로 얼어있으나 이삼일 볕이 좋았는지 들녘의 눈은 많이 녹았다. 얼음 밑으론 쉼 없이 세월이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거닐다 보니 여기가 바로 그들이 살았던 곳이 아닌가.
70만 년 전 단양 수양개 강변, 아버지는 사슴을 잡으러 숲으로 갔고 어머니는 불을 지폈다. 온기를 찾아 내려온 긴 여정을 여기서 멈추기로 한 것은 물 좋고 볕바른 언덕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다들 모여라, 여기라면 우리가 그리워했던 삶터로 손색이 없다. 강바람이 좀 있겠지만 어디 근처의 굴을 찾아보자. 굴이 없다면 땅을 파서 움집을 짓자. 신이 난 아이들은 물가로 달려갔고 그렇게 정착한 것이 수양개의 역사가 되었다.
7년 전, 아내와 나도 여기서 발길을 멈추었다. 우선 물길이 아름다웠고 남으로 열린 산기슭을 파고든 겨울 빛이 따뜻했다. 그날 따라 금수산 미인봉을 넘어 오는 바람 소리가 정겨웠다. 여보, 우리 여기로 하면 어떨까? 춥기 전에 우선 조립식 단칸방이라도 하나 가져다 놓고 짐을 풀자. 새롭게 시작한 일은 오랜 타성에서 벗어나 자유와 안식, 기쁨으로 채우고 싶었다. 우리의 삶터를 굳이 ‘숲속의 기쁨’이라 이름 지은 까닭이다.
신라 적성비가 있는 산성에 올랐다. 글자가 새겨진 그 시대의 돌덩이 하나를 누각을 지어 모셔두었다. 한 나라의 영역을 말해주는 증거물이다. 비석은 영토 확보의 전쟁과 승리를 상기시킨다. 산성에서 바라보니 남한강 허리의 곡선이 환히 드러나고 소백을 넘어오는 산길은 숨을 데가 없다. 가히 산성 하나를 쌓을 만한 요새다. 돌덩이에 새겨진 글을 해독하면 여긴 고구려와 신라가 만나는 변방이었다. 땅은 그대로 이나 경계는 백제가 되었다가, 고구려가 되었다가, 신라가 되었다. 삼국의 기세에 따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강변과 들녘에서 서로 죽이고 죽고 했을까? 적성비는 고구려로부터 빼앗은 신라의 땅임을 공표한 비석이다. 참전의 용사와 마을에 사는 아무개의 전공을 알리는 글도 있다. 그리하여, 지난 시대의 비석 하나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나라의 땅는 여전히 남북으로 쪼개져 있다. 한 때 삼국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이국시대에 살고있다. 이국시대의 역사 가운데도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있었다. 전쟁엔 타국의 사람들까지 동원되었고 고지 하나, 강 하나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충혼탑이 세워지고, 경계를 따라 철조망이 쳐지고, 지뢰가 매설되고, 밟아서 터지고 .... 역사는 발전이라 하고, 문명은 자유라 하고, 세상은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다 하지만 인류사는 끈질긴 경계의 쌈박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쩌면 그게 본질일까? 땅과 바다로 부족하여 하늘에까지 온통 금을 그어 영역 다툼을 하고 있다. 마침내 별을 두고 시비가 벌어질 것이다. 별마다 깃발을 꼽을 테니.
정치의 계절이 왔다. 깃발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고 달려와 깃발을 펼쳐댄다. 서울 꼽고, 광주 꼽고, 부산 돌아 대구에 꼽고, 대전이 남았나? 작은 마을까지 민주며, 애국이며, 정의라는 이름으로 표몰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따지고보면 패를 지어 권력의 영역을 더 확장하려는 끈질긴 게임의 연속이다. 한 영역이 확보되면 더 큰 영역의 확장을 위해, 그 영토의 나눔 때문에 크고 작은 분쟁이 발생한다. 참전을 하든 관전을 하든 분쟁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은 없다. 영역의 한 자락을 이미 밟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산성 아래로 언제 쓴 무덤들인지 공동묘지처럼 늘려있다. 적성비와 기슭에 잠들어 있는 주검들을 옆에 두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분주하다. 산성을 내려와 적성대교를 건너 내 작은 숲으로 돌아오며 묵상한다. 겨울바람의 끝이 어디쯤 일까? 그래, 언제 또 고구려가 되든, 백제가 되든, 그 누구의 것이 되든 이 산하며 하늘만이라도 맑고 깨끗했으면 좋겠다. 내 안식과 기쁨의 숲을 위해 평화의 기도를 올린다.
(2016.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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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숲속의 기쁨 원문보기 글쓴이: 금수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