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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진원 시 전집
가 -
가도
남진원
시 두 구절 얻는 데도 3년이나 걸렸는데
알아주는 사람 없어 눈물도 흘렸다니
작품은 쓰는 재미인 줄 몰랐다디, 아쉽구나
( 남진원 산문집,『달빛에 싼 청산 한 채』‘구름 깊어 계신 곳 모른다 하네’ 중에서. 2026. 7. 26. 수정)
가도와 한유
남진원
관중이 포숙아를 친구로 두었기에
얼마나 큰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가
가도는 한유를 만나 시명 높이 전했구나.
( 남진원 산문집,『달빛에 싼 청산 한 채』‘구름 깊어 계신 곳 모른다 하네’ 중에서)
가랑비
남진원
가랑비 사르르르
저걸 어쩌나
나무들 옷이
흠뻑 젖겠다.
가랑비 사르르르
저걸 어쩌나
풀잎들 머리가
흠뻑 젖겠다.
가랑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니 걱정이 되어요. 나무와 풀들의 옷이 젖기 때문이죠. 그러면 감기 들겠죠? 우리 엄마도 비를 맞고 나의 모습을 보고 감기 들까봐 걱정하셨어요.
가래침
남진원
티비를 보려 하니 볼만한 게 하나 없다
그러한 모양세가 정치판과 꼭 닮았다
말장난, 고소질과 싸움 가래침을 뉘 뱉었나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가리왕산
남진원
계곡에는 소리가 있었다.
발자국을 남기며
서로 대물림하는 물방울
그래서 계곡에 들어서면
귀가 부드러워지는가 보다.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여기저기
손을 놓아둔 채
명상에 잠긴 바위와
바위를 붙들고 살아가는 뿌리들
저들은 지금
물림의 법을 익히고 있다.
살아 푸르던 천년의 나무
피와 살을 벗어두고
다시 천년,
침묵으로 말하는 枯死木
가리왕산 정상에선
아름다운 뼈들아
확연히
물림의 법 하나를 들고
오늘
내려오게 하는구나.
( 시집, 『어초(語草)』, 붓다가야, 2002. 8. 1.)
가리왕산 古死木
남진원
가리왕산 정상에는
천년은 더 살았음직한 고사목들이
또 천년을 살아갈 뼈를 다듬고 있었다.
누가
죽음이라 이름했던가
피와 살과 체온을
벗어 던진 후에야
온전히 살아 있는
삶의 自由
이름 지을 수 없는 넉넉함 속에
침묵으로 가득한
네 언어의 푸른 사리들
어둠이 등천하는 안개 밭에서
태초의 소금을 뿌리며
바람이 날고
하늘 문을 열고 쏟아진 별들이
나무의 가슴에 돋아나고 있었다.
( 1987. 10. 1. 제3시집『넘치는 목숨으로 와서』)
가마솥 누룽지
남진원
벼 타작 하는 날은 가마솥도 들뜨는 날
와릉 와릉 탈곡기 소리, 단잠은 날아가도
가마솥 누룽지 생각, 발걸음이 날 듯 했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가목리 음식점에서
남진원
감자 적 수수부꿈 주문하며 멀 건넸지
눈 오면 잊지 말고 연락을 꼭 달라고
내리는 눈을 보면서 맘껏 취해 보겠다고.
가물다가 비가 오면
남진원
가물다가 비가 오면
시냇물도 기분이 좋은지
씽씽 골짜기를 달리며
노래를 하고
가물다가 비가 오면
나무들도 기분이 좋은가 보다
말끔이 먼지를 씻으며
푸른 알몸뚱이로 손짓을 한다.
가물다가 비가 오면
꽃들도 기분이 좋은가 보다
봉긋이 고개 내민 꽃망울들이
웃음을 마악 떠뜨리려 하고
가물다가 비가 오면
그래도 제일 기뻐하시는 분은
햇곡식이 쑥쑥 자라는 것을 보시고
좋아하시는 우리 아버지다.
( 동시집 『선생님의 구멍 난 양말 』, 계몽사. 1992. )
가 뭄
남진원
출렁대던 푸른 물빛 바닥을 드러낸 채
진흙 뻘 같은 얼굴 하늘만 쳐다본다
날마다 폭염 속에서 너도 목이 탔구나
( 2024. 8. 27.)
가뭄 끝 비오다
남진원
고구마는 풀 사이서 거개 다 말라죽고
기세 좋던 바랭이도 잎이 바짝 오그라들 즈음
흐린 끝 비오는 모습 봐라, 커피 맛이 더 좋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가설극장
남진원
참 까마득한 옛날이구마
오줌이 잘금잘금 나오는 고놈 노랫가락이 어두컴컴한 마을을 휩쓸고 다녔쟤 그러면 밭에서 내려온 마을 사람들 몸이 가려워서 가설극장 안으로 모여 들었지라 마을도 사람도 잔칫날처럼 들 뜬 채 짚더미나 가마니때기에 올라앉아 홀라당 영화 속으로 빠져 들었구마 매일 저녁 귀경했으면 배부르것다 동네 아줌마들 욕심도 많으셨지 뭐시더라 그 영화가 그렇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커다란 생나무를 터억 어깨에 메고 산에서 내려오던 온달 공주는 봤던 기라 산의 거대한 힘이 그 몸에서 푸릇푸릇 솟아나는 것을 그래서 눈이 참시로 예쁜 평강공주 아닌가베
그 다음 날부터 우리도 평강공주 하나 쯤 찾아올 날 꿈꾸기 시작했쟤
참 까마득한 옛날이구나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지
가시연꽃 사랑
남진원
아름다운 경포 호수, 사랑이 핀다
멀어서 멀어서
아련하더니
자색으로 피워냈다 가시연꽃 사랑
우리
우리 사랑은 꿈결 같은 사랑
천년을 손잡고 가는 가시연꽃 사랑
아름다운 경포 호수, 애정이 핀다
아파서 아파서
아득하더니
별빛으로 피워냈다 가시연꽃 사랑
우리
우리 사랑은 미소 같은 사랑
영원을 손잡고 가는 가시연꽃 사랑
(2018. 3. 26)
2018년의 초가을
남진원
세상 끝날 것 같은 폭염이 엊그제 같았는데
아침 저녁 서늘한 바람이 분다.
뜰에나서면
그렇게 대들던 모기떼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고요한 들판에는 잠자리들이 헤엄치듯 날아다닌다.
그저 평화롭고 한가로운 날이다.
방울벌레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따뜻한 차 한 모금에 행복해지는 날이다.
가을
남진원
하늘 나는 고추잠자리, 가을은 참 예뻐라
은물결 평화로움 누가 이리 선물 했나
풀벌레 노래를 섞은 저 미소를 좀 보아.
가을
남진원
‘가을’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뛰는 가슴
잠자리 높이 날 때 그냥 마구 행복해서
내 삶의 그늘진 날도 미소되어 돌아온다
( 2022. 7. 20 )
가을
남진원
풀벌레 소리는 전설 같은 음색이다
하늘은 멋대로 높고 풍덩풍덩 잠자리 떼
가을도 마음 있다면 좋아죽겠다 호호호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가 을
남진원
파아란 하늘 속
방울방울
새들의 고운 노래
노래 따라
훨훨
나래펴는
마음은
마냥
높아만 가고
아,
나뭇잎
활활
불꽃 피우는 햇살
꽃내음 포옥 배어오는
들판을 달리다
바람은 꽃잎이 되어 뒹굴고
가을은
아가의 얼굴 만큼이나
맑고 탐스런 열매들을
익혀놓았구나.
(1975. 9)
어느 가을
남진원
헤어져 쓸쓸한
풀숲에
남은 꽃그늘
몹쓸
꽃대궁을 쓰다듬는
바람의 서운함만 쌓여
섭섭함이 비고
또 섭섭함이 비면
그때
우물 곁에 두고 싶은
귀뚜라미
귀뚜라미 울음
* 재3시집 『넘치는 목숨으로 와서』(1987. 10. 1.)
* 익장회 회보 (1994. 3. 26.)
초가을
남진원
밤에 잠들기 전
한 쪽 문을 열어둔다
내 잠속에서도‘ 풀벌레들이
놀러 오게 말이다
요즘, 맛있는 꿈을 꾸는 것도
풀벌레들 덕분이다
어디 그 뿐이랴
열린 문밖에서
별들이 들여다보며
정겨운 눈짓을 한다
참, 요즘은
별과 풀벌레로 행복한 밤이다.
( 2024. 9. 9 )
가을 강
남진원
차가운 물소리
구부러진 채
나무 사이로
스며들고
사랑하는 이,
실낱같은 그리움의 머리칼을 세다가
너무 맑아서
눈을 뜨면
산도
강도
나무도
어깨가 허전해 보인다
가을 강가에
아무렇게
몇 송이 꽃이 피어 웃는 날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가을 강가에 서면
남진원
이가 아파도
기댈 곳이 없어
강가에 서면
차가운 물소리
구부러진 채
나무 사이로 스며들고
사랑하는 이,
실낱 같은 그리움의 머리칼을 세다가
너무 맑아서 눈을 뜨면
산도
강도
나무도
어깨가 허전해 보인다.
아무렇게 몇 송이 꽃이 피어
웃는 날
(「대관령 시인들」, 붓다가야, 1996.3.)
가을 강물
남진원
가을 하루가
풀잎에 떠내려왔구나
산도 깊게
꿈속에 빠진 것 같이 맑은 날
새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도
강물 속에서 번져나올 것 같아
나는 하늘 내려다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찾았다
( 2012. 톨스토이 태교동시집 . 처음쥬니어)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가을 개울가에서
남진원
풀잎이
떠내려 온다
단풍 든 가을 하루가 내 곁을 지나간다
가을 경영
남진원
이 저녁 풍성한 침묵
풍경도 눈을 뜬다
치솟은 산봉마다
핏빛으로 타는 단풍
달빛도 넉넉한 높이
살이 쪄서 살이 쪄서
미딛이 열어놓고
명상속에 먹을 갈면
마을이 한 장 동양화
갈바람에 흔들리고
방안은 잔잔한 禪景
산이 앉은 화선지
밤 깊어 난을 치다
문득 생각에 잠기면
귀뚜라미 푸른 귓밥
가슴 층층 고여오고
비워둔 적막한 뜰에
풀씨처럼 크는 서정
있는 듯 없는 듯
저 깊은 경영 속을
無常으로 저어오는
목이 하얀 바람 떼
그 속을 내 幼年 하나
목숨처럼 떠 간다.
( 1982. 10. 20. 강원문학 9집 )
( 1991. 9. 1. 제6시집. 시조집 『내 인생 밭을 매면 』)
가을 국화
남진원
그래 그래
슬픔 없는 삶이 있었더냐
고통도 고뇌도
사랑이구나
가을 국화, 네 맑은 웃음이
깨우쳐주는구나.
( 2022. 3. 12.)
가을 길
남진원
햇살의 입김 묻어 따사로운 길
낙엽 쌓인 길을 걸어가자
떠오르는 생각도 친구를 삼아
고향 같은 길을 걸어 보자.
짐 벗은 나무들이 반겨주는 길
낙엽 쌓인 길을 걸어가자
떠오르는 얼굴도 친구를 삼아
가을 덮인 길을 걸어가자.
( 솔바람 2집. 1990.3.1.)
가을 길목에서 바라본 코스모스
남진원
살면서
눈물 없는 인생이 있었더냐
배고픔 배신 번뇌 탐욕 부끄러움 사랑과 증오에 매달려 온 길이
아니더냐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백발을 날리는 석양 앞이네
삶은 꿈인냥 허망했지만
아니, 한갓 꿈이었지만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 있었더냐
고개 돌리니
고와라
서리 맞아 싱그러운 코스모스
바람에 나부끼고
그래 그래
슬픔 없는 인생이 있었더냐
고통도 고뇌도
사랑이구나
코스모스, 네 맑은 웃음이
깨우쳐주는구나.
(2021. 6. 10. 새벽 2시에)
가을, 길의 노래
남진원
나서면 길이 났다. 그러나 선택하고 싶지 않은 길은 달아났다. 달아나면 찾아오는 새 길
안개를 닮아있다. 작은 호흡은 물방울 입자가 되어 날아가는,
단풍잎을 닮아있기도 했다. 불꽃놀이처럼 켜놓은 마음 속 글자들이 풀벌레의 자음으로 흩어지고,
물 갈대를 닮기도 했다. 뼈 속 까지 물들었던 ‘사랑해!’ 이 銀색의 환한 춤사위…
그 길은 지금도 눈부시고 있다. 千 江으로 출렁이는 금속성 달의 울음, 풋내가 나는 햇볕과 드디어 몸을 섞는….
가을 꽃
남진원
아무렇게나 서서
조그만 꽃잎들
손 흔들어요
막 1학년 들어온
우리 학교 애들처럼
웃는 모습도 삐뚤 빼뚤
그래서 더 정다워요.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가을 꽃
남진원
두근거리며
산꽃이 피었습니다
오래도록
쓸쓸한 모습입니다
가슴이 설레이고만 싶은
나즉한
눈물 하나 흘리고 싶습니다
다시는
불꽃으로 타지 않아도
두근거림 데워가는
작은 나라에 머물러 있습니다
억새꽃 우거진 길 따라
산새 울음이 고운
외로움 몇 송이가 손 흔드는 나라입니다.
( 1989년 9월. 『해안』6집 )
가을 나무들
남진원
손은 안 내보이고
코 코
예쁘게 잠자라고
온 산에
금빛 침구(寢具)
만드는 이불 한 채 두 채 세 채 …
가을날
남진원
자연은 무심해도 지날수록 정드는 곳
잠자리 떼로 날고 노을은 너무 붉어
맘 벌려 안겨 보게나, 웃게 되지 날마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가을날
남진원
이
좋은
가을날 오후,
안 마실 수
있나
커피
한 잔
( 2024. 10. 13 )
가을날
남진원
하늘빛은
일곱 살
마냥
푸른 날
열두 살 해바라기는
한나절
무슨 생각 하나
누님이 봉숭아 꽃물 들이고 있을 때
담 밑에 모여 앉아 소꿉장난하는
다섯 살 채송화 둘러보던
둘러보던
아홉 살 고추잠자리 고추잠자리 떼
노을로 뜹니다
노을로 번집니다
( 2025. 3. 3. ‘고추잠자리’ 개작 )
가을날 아침
남진원
방문을 여니
아침 산이 불쑥 다가온다
안개가 자욱하다
어느 故人의 시 속에
차 닳이는 스님의 묘사가 있었지
물긷는 스님이 산사로 들어간 후
잠시 뒤이어 숲속에서
모락모락 피는 연기
찻물 데우는 모습 속에
차 닳이는
연기가 나고
그 생각, 하는 것만으로도
싱그러운 아침이다
( 2024. 10. 13 )
가을날에
남진원
한세상 구한 부귀 풀잎에 이슬 방울
일찍이 말했던가 권세도 뜬구름이라
고요히 피다지는 꽃, 햇살만이 고옵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가을날의 미소
남진원
가을이 아름다원라 귀뚜라미 덕분이지
그 소리 생각만 해도 온전히 평화로워
염화의 미소보다도 자비로운 미소네
가을 논
남진원
짙은
산그늘
청청한
산빛
벼들이 마구 익어가는
때
와락,
노을이 달려들었다.
가을 달
남진원
이 저녁 풍성한 침묵 풍경이 눈을 뜬다
치솟은 산봉마다 단풍은 숨죽이고
허공은 無量 발걸음, 환희심의 燈 밝히네
( 2020, 전자책 시조집『꽃물 들어 아픈 날』, 한국문학방송)
가을 달밤에
남진원
소곤거리는 풀벌레는‘
우주가 들려주는
연주
그 멋이 좋아, 하늘에
달을 데려와
한 잔의 고요를 찻물처럼 마시네.
가을 바람
남진원
바람은
바람은
집배원 아저씨
풀벌레가
붉게 쓴
단풍잎 편지
이 산 저 산 다니며
전해 줍니다
바람은
바람은
집배원 아저씨
산 열매
노오랗게
익은 열매를
한아름 씩
마을로
가져옵니다.
( 1988. 8. 30. 제4시집<동시집>, 『풀잎과 코스모스에게 』)
( 1989. 4. 15. 제5시집,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남진원
앞산이 발긋발긋 바람이 엷은 물빛으로 술렁거리며 산에서 내려오는 날이면 맑게 씻긴 물소리를 퍼 담아 오는 누나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고 풀꽃의 작은 웃음소리 몇 개도 살결에 와 기댄다.
눈에 닿는 돌 하나도 친근해지지 않고는 서운한 가을바람 가을 속셈
여름이 떠나간 자리마다 잔잔한 햇빛이 닿아 그리움에 반짝이고 그리움은 풀꽃에 닿아 향기로 번져나고 어디에서도 탐스러운 가을 냄새가 난다.
고개 들면 작은 내 손 하나 잡아줄 수 있을 것 같이 파아란 하늘
잠자리 눈망울에 깃든 고요로움을 흔들며 교회 종소리가 번져나면 예쁜 빛깔과 소리가 마을에 동그랗게 내려앉는다.
보렴,
노을이 미끄러지는 하늘 아래 새소리도 귤빛으로 익어갈 때면 산에서 내려온 나무들이 잿빛 그림자를 마을마다 풀어놓고 무엇이라도 나누어 주고 싶은 얼굴을 한 과수원이며 언덕이며 들길을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운 빚을 지우려고 준비하는 환한 서두름을
그럴 즈음이면 나는 예쁜 크레용 하나 씩 들고 풀잎을 찾아가는 꿈을 꾼다.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화술, 1989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가을 바람 불 때
남진원
가을바람 부는
들길에 서면
나는 다 안다
코스모스가 울면
하나도 모습이 안 보이지만 ’
나는 다 안다
네가 얼마나 아름답게 울었는지를
나는 다 안다
나는 다 안다
아름답게 우는 법
내게도 가르쳐주렴
가르쳐주렴
가을바람 부는
풀밭에 가면
나는 다 안다
풀잎이 울 때는
하나도 소리가 안 들리지만
네가 얼마나 맑게 맑게 울었는지를
나는 다 안다
나는 다 안다
맑게 맑게 우는 범
내게도 가르쳐주렴
가르쳐주렴
가을밤
남진원
사르르르
나뭇잎 진다
또르르르
귀뚜라미 운다
귀뚜라미 울음소리
더욱 외로워
창가에 발처럼
달빛 드리우고
달빛 벗삼아
책을 읽는다
가을 밤
혼자 앉아
책을 읽는다
( 1980. 8. 20. 물레방아 제5호)
가을밤
남진원
<1.>
귀뚜라미
우는
사이
사이
바람
술렁
달빛도
입 꼭 다물고
나두 입 꼭 다물고
<2>
눈 감고
있으니
둥근 달, 오늘
뱃속에서
볼록볼록
훤히
보이네.
( 2000년 11월. [대관령 시인들 4집: 산꽃이 피었습니다])
( 제9시집 『어초』, 2002. 8. 1 )
가을밤
남진원
단풍 밴 뜰안에
어슴프레 누운 가을
한 장 고운 바람결도
댓돌 위에 스러지고
뉘 집 창 달빛 어리듯
귀뚜리도 저물어
첫 시집 (동시집), 『싸리울』, 1982. 12. 10. 아동믄에사)
가을 밤
남진원
마당엔 산이 누워
깊숙이 생각이 크고
뉘집 창 불빛 사위듯
저물어가는 풀벌레 울음
이 세상 인연가는 먼 곳으로
자꾸 떠나는 저 삶은
( 1991. 9. 1. 제6시집. 시조집. 『내인생 밭을 매면』 )
가을밤 별은
남진원
가을밤
별은
안개꽃 같은
눈빛
별아,
우리 아기처럼
너랑
친구해도 되지?
너랑
예쁜 꿈 꿔도
되지!
( 2012. 10. 13. 제11시집 『톨스토이태교동시』,처음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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