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리움의 한국화 한 폭
남진원
예부터 우리 민족은 산악 신앙이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산을 믿는 풍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이 있는 곳에서 생활하였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바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산악 중심의 생활이었다. 산은 여러 가지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특히 위험한 일이 있으면 눈에 띄지 않는 산에 가서 피신하고 먹을 것이 없으면 산에 있는 열매나 식물의 뿌리를 캐 먹으면 생활이 이루어질 수 잇었다. 그렇기에 산에 사는 사람들은 산에 신이 있다고 믿었고 그 이름이 산신이었다.
오랜 기간 산에서 살다 보니 자연히 생활의 안전을 위하여 산신에게 정성을 드리는 일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산제 또는 산신제라고 하는 제사의 형태이다. .
나도 어릴 때 몸이 아파 매우 심하게 앓았다. 할머니는 나를 집 뒤의 뒷산에 데리고 가서 산제를 지냈다. 산신에게 드리는 밥을 지어 산에 놓고 절을 하였다. 그리고 나쁜 귀신은 썩 물러 가라고 말을 하면서 칼을 던지기도 하셨다.
내가 사는 마을의 산에는 제사를 지내는 골이 있었다. 이름하여 산제골이다. 사람들은 말을 할 때에 산제골이라 하지 않고 산지꼴이라고 하였다. 부르기 편하기 때문이었다. 산제골은 내가 아이들과 함게 물놀이를 하는 깊은 沼가 있는 문래산 계곡이었다. 우리는 그곳을 ‘산제골소’ 라 불렀다. 그 소 위의 계곡은 가팔라서 사람들이 평소에는 오르내리지를 않는 곳이다.
아이들도 나도 여름이 되면 산골 계곡엔 올라가지 않고 그 맡에 물이 있는 산제골소에서 물놀이를 즐기며 놀았다. 그것이 여름날 최고의 바캉스였다.
고향의 여름은 늘 새벽을 여는 싱싱한 매미 울음소리로부터 시자되었다. 서늘한 오전에는 방학 공부 책을 펴놓고 공부를 했다. 그러나 한낮이 되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산제골 소로 모두들 몰려들었다.
내가 먼저 산제골 소에 가는 날이면 좀 무서웠다. 시퍼런 물굽이를 헤치며 물속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들이 나타나면 구원병을 만난 것처럼 기뻤다.
논둑 밭둑 길을 지나 강으로 가는 길에 내려서서 한참을 걸어가면 산제골 소가 가가워졌다. 먼저 귀를 기울여 보았다. 아이들 소리가 나면 잰걸음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므소리가 물방울처럼 떠다녔다. 나도 옷을 벗어 제치고 물속에 텀벙 텀벙 뛰어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보면 하나 둘 또 몰려드는 아이들로 산제골 소는 시장판처럼 북새통을 이루었다.
실컷 물놀이를 하다가 해가 문래산 위에서 넘어길 채비를 하면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그때의 산뜻한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가 준비해 놓은 맛있는 저녁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란 볏짚을 이은 초가집 지붕 밑에서 살아도 늘 행복이 넘쳐났다.
밤하늘엔 무수한 여름밤 별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마을 아이들의 꿈속에서도 별빛으로 빛나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도 산제골 소와 고향의 여름밤 별빛은 내 아름다운 그리움의 한국화 한 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