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선거와 후보의 선영 비교
사람들은 누군가 용상을 차지하면 집이나 묘가 명당이기 때문에 용상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생가와 선영을 답사하며 좋은 기운을 받겠다는 행렬이 꼬리를 물게 된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 선영을 보면 풍수적으로 합당한 곳은 거의 없다. 만약 묘지가 좋아 대권을 차지했다면 지금쯤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이 수 만 명 될 정도로 대부분 기대 이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제왕은 땅의 소관이 아니라 하늘의 뜻인지 모른다고 말한바 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지난 몇 차례 대선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데, 유력한 후보 2명으로 압축했을 때 상대적으로 선영이 좋은 곳의 후보가 용상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선영 한 곳만 따지는 단순비교일 뿐이기에 얼마든지 예외가 있을 수 있다. 본 장에서는 해방 이후 정상적인 조건에서 치러진 대통령선거만 살펴보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선대 묘를 확인할 수 없고 5, 6대 대통령 선거는 5.16 군사혁명 직후에 치러진 선거이기 때문에 배제하였다. 8대 대선부터 12대(전두환) 까지는 직선제가 아닌 간선제였기 때문에 역시 배제하였다.
7대 대선, 1971년 4월 27일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와 신민당 김대중 후보 2명이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박정희 후보는 5.16혁명 이후 두 차례 대통령을 하고 세 번째 도전이고 김대중 후보는 당시 3선 국회의원으로 45세였다. ● 구미 상모동 선영에는 박정희 대통령 조부모 묘가 자리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박정희, 박근혜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이곳 묘를 제왕지지라고 극찬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귀납적 판단일 뿐 명당이라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 이유는 묘소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특별한 역량을 품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이러한 정도가 제왕을 배출하는 터라면 지금쯤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이 수천 명 넘을 것이다. 구미 선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풍수의 여러 조건을 갖춘 곳으로 평균 이상의 터는 된다. 특히 멀리 바라보이는 천생산은 풍수에서 귀하게 여기는 모습이다.
● 김대중 후보 선고 묘는 하의도에 있었다. 바다 가까운 산기슭에 쓰여 진 묘는 시골 산기슭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촌부의 묘 수준을 넘지 못하는 곳이다. 7대 대선 포스터 두 곳을 비교하면 박정희 후보 구미 선영이 월등하게 나은 곳이다. 박정희(53.2%) 〉 김대중(45.3%)
13대 대선, 1987년 12월 16일 오랜 군사정권이 끝나고 16년 만에 국민의 주권에 의해 직선제로 치러진 선거다. 집권당 노태우 후보에 대항해 야권에서는 3김씨가 모두 출마하는데, 후보 단일화가 실패한 것이다. ● 노태우 후보 선고 묘(대구시 동구 송정동 산28)는 공동묘지 끝자락에 자리하였다. 산줄기 앞에는 빼어난 봉우리가 있으니 그것을 보고 공동묘지가 형성된 것일 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곳이다. 풍수의 여러 조건이 부실한 탓에 인근에는 수많은 묘소가 버려진 체 방치되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도 노태우 후보 부친 묘는 우뚝한 봉우리를 바라보며 동남향으로 자리했다 노태우 후보 선고 묘 ● 김영삼 후보 모친 묘는 거제도 생가 인근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묘소까지 오는 산줄기가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조건은 갖춘 곳이다. 김영삼 후보 모친 묘 ● 김대중 후보 선고 묘는 아직 하의도에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산기슭 옆구리에 쓰여 져 최소한의 기운도 없는 곳이다. ● 김종필 후보 선영은 부여에 있었는데, 산의 경사가 매우 급한 곳으로 불안한 곳이었다. 그 후 JP는 이곳 묘를 2001년 예산군 신양면으로 야심차게 옮기지만, 하필이면 물이 곧게 빠지는 최악의 터를 선택하면서 급전직하 추락하게 된다. JP 이장 전 부여선영 4후보의 선영을 비교하면 김영삼 후보 모친 묘가 가장 나은 곳이다. 노태우 선영은 김영삼 선영에 비해 크게 불리했지만, 야권 후보들의 분열로 어부지리를 얻으면서 당선되니 이 또한 하늘의 뜻일 것이다. 노태우38.6% 〉 김영삼28% 〉 김대중27% 〉 김종필8%
14대 대선, 1992년 12월 18일 군인출신 후보가 사라지고 순수 민간인 출신이 맞붙은 선거로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후보가 각축을 벌인다. 정주영 후보는 현대그룹의 재력을 바탕으로 경제대통령, 통일대통령을 내세워 출마한다. ●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김영삼 후보 모친 묘는 거제도 바닷가 생가가 바라보이는 곳이다. 비록 맵시 있는 산줄기는 아니지만 산줄기 끝에 자리했다는 것은 땅의 기운을 어느 정도 받는 곳이고 전면의 봉우리들 또한 빼어난 모습이다. 산줄기가 곧은 것을 보면 좌고우면하지 않는 김영삼 후보의 강직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 다만 묘소 우측으로 바다물이 빠져나가는 것은 후일 큰 부담이 된다. YS 거제도 선영 ●김대중 후보 선영은 아직 그대로 하의도에 있다. 두 곳을 비교하면 고집 센 거제도 선영이 옹색한 하의도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다. 김영삼42% 〉 김대중33.8% 〉 정주영16.3%
15대 대선, 1997년 12월 18일 여당인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선출된다. 그러나 경선에서 패한 이인제후보가 독자출마하면서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3파전으로 치러진 선거다. ● 김대중 후보는 이전의 3차례 도전에서 번번이 실패하자 마지막 선택으로 하의도 선영을 용인으로 이장하면서 풍수의 도움을 얻고자 한다. 그때가 1995년으로 김대중 후보는 이미 72세의 고령이었지만,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 30년간 이루지 못한 것을 가장 원초적인 방법에 의지하고자한 셈이다. 새로 이장한 용인 선영은 중후한 산줄기 끝에 과일처럼 맺힌 곳으로 정치인들 선영 중에서 근자에 보기 드물게 좋은 땅이다. (용인시 이동면 묘봉리 산156) 용인 묘봉리 선영 ● 이회창 후보 선영은 예산읍 산성리에 조부 묘를 비롯해 선대 묘가 여럿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야트막한 산기슭에 평범하지만 편안한 곳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후보가 이장한 용인 선영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예산 선영(현재는 도시로 변했다)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는데, 풍수를 활용해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김대중40.3% 〉 이회창38.7%
16대 대선, 2002년 12월 19일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바람을 일으켜 선출된다.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압도적으로 선출되는데, 이때만 해도 이회창 후보 대세론이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 노무현 후보 선영은 김해 봉하마을 생가 인근의 과수원 뒷산에 자리하였다. 묘소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곳으로 누구나 한번쯤 쉬어가고 싶은 곳이다. 지극히 평범해서 오히려 친근감 드는 곳이다. 봉하마을 입구 선영 ● 예산에 자리한 이회창 후보 선영 또한 편안한 곳이었다. 이 상태라면 김해 선영과 예산 선영의 우열을 비교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무렵 예산 선영 뒤편이 아파트 조성공사로 산의 절반이 통째로 잘려나가고 있었는데, 그 거리가 불과 50m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대선을 불과 50일 앞둔 2002년 10월 이회창 후보의 부친 이홍규옹(98세)이 작고하자 그곳에 장사를 치른다. 당시 전국의 많은 풍수인들이 참관했는데, 모두가 산의 훼손을 크게 우려했었다. 예산 옛 선영 두 선영을 비교하면 풍수에 문외한이라도 노무현 후보 선영이 나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근소한 차이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노무현48.9% 〉 이회창46.6%
17대 대선, 2007년 12월 19일 여당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최종 선출되고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이명박과 박근혜 후보가 치열한 경선 끝에 이명박 후보가 선출된다. 그리고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한 이회창은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 정동영 후보 순창 선영에는 그의 선대 묘와 부친 묘가 함께 자리하였다. 그 중에서도 후보의 조부모 묘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훌륭한 명당이다. 그러나 후보의 부친과 모친 묘는 골짜기 속 커다란 바위에 갇힌 모습인데, 바위가 지나치게 커서 부친 묘를 꼼짝 못하게 가둔 형국이다. 두 곳의 길흉이 극과 극이다. 조부모 묘 후보 부모님 묘 ● 이명박 후보 선대 묘는 포항 신광면에 있으나 부모 묘는 경기도 이천 호법에 따로 떨어져 있다. 호법 선영은 이명박 대통령 큰형이 소유한 농장 내에 자리했는데, 선대 묘와 멀리 떨어진 것으로 보아 아마도 풍수적 의미가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의 용세는 마치 럭비공 같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구난방 형태였다. 이천 호법 선영 묘소 앞 연못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 선영 앞에는 연못이 있는 등 커다란 바위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정동영 후보 선영보다는 나은 곳이다. 이명박48.7% 〉 정동영26.1% 〉 이회창15.1%
18대 대선, 2012년 12월 19일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압도적으로 선출되면서 야당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격돌한다. ● 박근혜 후보 선영은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는 박정희·육영수 묘다. 전체적인 지형은 한강을 바라보는 배산임수 지형으로 화려한 곳이다. 옛 말에 시골 면장이라도 하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묘지는 그 무엇보다 산줄기 흐름을 타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 묘는 야트막한 주산에서 이어진 산줄기 끝에 자리하면서 그러한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 |
그러나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묘 앞의 현충천이 길게 빠지고 거대한 한강물은 크게 등 돌려 흐르는 불리한 형태다.
한강
참고로 이곳 현충원에는 선조임금 할머니 창빈안씨 묘가 있는데, 선조는 방계혈통으론 최초로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후일 임진왜란으로 전국토를 폐허로 만든다.
그리고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축출한 인조 또한 창빈안씨 고손자인데, 이번에는 병자호란을 초래하게 된다.
조선의 역사 중 가장 비참하고 굴욕적인 시기의 출발점에 창빈안씨 묘가 있으니 先吉後凶의 대표적 사례다.
창빈안씨 묘
● 문재인 후보 선영은 경남 양산에 자리한 공원묘지이며, 이곳에는 그의 부친 묘가 있다.(경남 양산시 상북면 천주교공원묘지 하늘공원)
묘는 공원묘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곳이다. 그러나 묘에서 가장 중요한 산줄기 흐름을 타지 못해 최소한의 지력도 없는 곳이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 선거 직전 묘 뒤편 산이 골프장 조성으로 크게 훼손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중요한 시기에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이회창 후보의 2002년 사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양산 공원묘지
풍수에서 말하기를 산이 갑자기 훼손되면 반드시 좋지 못한 일이 생긴다고 하였다.
결국 문재인 후보는 양산 선영의 산줄기 훼손이라는 악재를 피하지 못하고 박근혜 후보에게 용상을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후일 동작동 국립묘지 물길의 불리함을 극복하지 못한다.
칼로 무 자르듯 직수로 빠지는 현충천은 갈등과 분열을 불러왔고 한강의 등 돌림은 민심의 이반이라는 사태를 초래하면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게 된다.
박근혜51.6% 〉 문재인48.0%
19대 대선, 2017년 5월 9일
장미꽃 피는 계절에 치러지기 때문에 장미 대선으로 불린다. 박근혜대통령 탄핵 이후에 치러진 선거이며, 최순실게이트 여파로 집권여당인 자유한국당 지지가 폭락한 상태다. 그 와중에 홍준표 후보가 여당후보로 선출된다.
● 경남 양산에 자리한 문재인 후보 선영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공원묘지 내 평범한 곳이다.
그리고 산줄기 훼손이라는 아픔은 5년이 지나면서 치유되었다.
양산 선영 전면
● 홍준표 후보 부친 묘는 고향인 창녕군 남지읍 학계리 공동묘지에 자리했다.(1974년 졸)
그러나 공동묘지라고 얕볼게 못된다. 이곳에 공동묘지가 자리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이 마을 사람들이 이곳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뚝한 주산으로부터 이어진 산줄기에 남향으로 자리했으며, 전면에는 작은 저수지까지 있다.
특별한 명당이라 할 수 없지만, 보통을 넘는 준수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부친 묘
묘소 앞 전경
● 안철수 후보 조부모 묘는 부산 기장군 정관면 모 공원묘지에 동향으로 자리했다.
공원묘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곳이다. 묘를 둘러싼 주변 산들이 출중한 모습으로 공원묘지 입지가 양호한 곳이다.
안철수 후보 조부모 묘
세 곳을 비교하면 홍준표 후보의 공동묘지가 가장 나은 곳이다.
양산과 부산의 공원묘지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중도 보수 진영에서 홍준표 후보와 안철수 후보 두 명이 출마하면서 문재인 후보가 쉽게 당선되었다.
13대 대선에서 선영이 불리했던 노태우 후보가 야권 후보들의 분열로 쉽게 당선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문재인41.1% 〉 홍준표24.0% 〉 안철수21.4%
이상을 보면 여야 두 명의 후보로 압축했을 때 당선자 선영이 상대 후보 선영에 비해 상대적 우위에 있음을 볼 수 있다.
노련한 정치가들조차 예측하기 힘든 혼돈의 카오스 뒤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야 어느 한쪽의 후보가 단일화 되지 못하면 선영이 불리하더라도 대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단일화 문제는 앞으로 초미의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