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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달산 흥왕사 서울,경기도 사찰 |
흥왕사를 향해 떠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고려 초 소달(蘇達)이 창건했다고도 하고, 고려 말 혜근(惠勤:1351∼1374)이 세웠다고도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옛날에 고달(高達)과 소달이라는 형제가 살았는데, 형인 고달이 고달사를 짓고 아우 소달은 흥왕사를 지었다고 한다.
창건 후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전하는 바가 없고 단지 1893년(고종 30)까지 상왕사(霜旺寺)라 불렸다는 말이 전할 뿐이다. 1905년 폐사에 가까웠던 것을 돈묵(頓默)이 중건한 뒤 1922년 성묵(性默)이 법당을 중수하고, 1932년 윤익(潤益)이 대방(大房:현 서래암)을 중수하였다. 이후 1933년과 1938년에 각각 동서 요사를 지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극락전과 칠성각·서래암·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여러 점의 탱화가 전한다. 탱화 중 아미타후불탱화와 아미타탱화·신중탱화(2점)·독성탱화는 1892년에 제작된 것이며, 현왕탱화·산신탱화·칠성탱화는 1905년에 돈묵이 중건하면서 모신 것이다.
흥왕사는 신륵사 하구로 흘러 내리는 금당천과 중암리를 가로 질러 흐르는 완장천 사이에 자리한 고려시대 사찰로 나지막한 야산에 그 터를 잡고 있다.
여주시내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흥왕사를 찾아 가는 길은 풍요로운 시골마을의 전경과 전원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정겹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흥왕사는 여주의 명찰 고달사와는 형제와 같은 절로 그 옛날 소달과 고달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고달과 소달은 형제지간으로 각기 뜻을 품어 부처님 전에 그 몸을 귀의하여 승려가 되었다.
하지만 각기 뜻을 품은 바가 달라 고달은 국가에 도움을 주는 절을 세웠으며, 소달은 사찰을 진리의 도량으로 생각하며 오래도록 중생을 교화하는 절을 세웠다.
한때 고달이 세운 고달사는 고려의 명문사찰로 명성을 떨쳤지만 일찍히 폐사되었고, 소달이 세운 상왕사는 조용히 은둔하며 그 법을 이어나가 아직도 법등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소달산 흥왕사는 자그마한 암자의 모습으로 중생을 교화하고자하는 진리의 도량 모습을 품고 있다.
극락전과 삼성각이 사찰 가람의 전부인 흥왕사지만 따뜻하게 가람을 품은 소달산의 지세와 사찰의 수호신장처럼 사찰을 수호하는 보호수의 모습은 현재 폐허가 된 고달사의 쓸쓸함 보다 우리에게 정겨운 모습은 아닐까 생각한다.
동시대 같은 형제들에 의해 창건되었지만 부귀를 위한 사찰과 부처님의 법을 잇기 위한 사찰의 또 다른 운명을 그들 형제는 알고 있었을까
극락전
삼성각
범종
요사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