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이야기
<10> 홍어축제가 시작된다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길은 가볍고 들뜬다. 20분 안팎이다. 점심 때를 이용하면 쉽다. 사무실이 광주상무지구여서 곧장 송정을 거쳐 나주로 빠진다. 10분만 달리면 남녘 황토지대의 바람을 느낄 수 있으니, 좋은 곳은 좋은 곳 아닌가.

▶나주 영산포 영산강. 노란색 유채꽃이 봄을 알려주고 있다. 이곳에서 오는 10일부터 12일까지 영산포 홍어축제가 열린다. 사진=김영근 기자
영산포에는 벌써 봄이 가득하다. 가히 만물이 한창 자라나는 만화방창(萬化方暢)이다. 노란색 유채꽃이 한들거리고, 옛 영화를 간직한 영산강 물결이 봄바람에 일렁인다. 유채꽃과 강물이 내려다 보이는 영산교를 지나면 바로 영산포 홍어촌이다. 며칠 전 ‘영산포 홍어’집을 찾아갔다. 영산포 홍어는 삭혀서 먹는 맛으로 이름이 나 있기 때문에, 그 삭히는 장소, 말하자면 ‘숙성고’를 보기 위해서였다.

▶홍어 ‘거시기’ 대화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윤여정씨. 윤씨와 간 곳은 빨간 원안의 영산포홍어집이었다. 사진=권경안
그날도 윤여정씨를 불렀다. 홍어맛도 맛이지만, 그를 만나는 것이 맛이요 즐거움이니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시리즈를 계속 읽은 독자분들은 홍어이야기④ ‘왜 홍어좆은 만만한 것인가’편에서 그 ‘익살스런’ 영산포 선창가에서 나누었던 ‘거시기’ 대화편을 기억하고 계시리라.
기자를 만나는 이들은 요즘 “그 ‘거시기’ 야그했던 윤여정씨가 누구야?”라고 묻는다. 목포대에서 가르치는 김선태 시인은 “나도 뒤집어졌다”며 “아, 대단해요, 그 양반”, 광주대에서 역시 가르치고 있는 김규열 교수도 “참, (그 윤씨가) 궁금하네” 라고 했다.
그와 함께 찾아 간 ‘영산포 홍어집’. 점심때니 우선 홍어맛부터 보는 것이 순서. 미리 윤씨가 전화를 해놓았더니, 젊은 사장 김영수씨가 웃으며 맞았다. 목재로 내부를 장식해놓아 편안한 분위기였다. 점심 때라 벌써 여러 팀들이 와서 “홍어가 어떻고, 저떻고” 하고 있었다.
“지난 번 EBS에 홍어 프로가 나왔는데, 어떻게 나왔는지 아시우?”
윤씨가 김 사장에게 말했다. 실은 그랬다. 지난 3월 EBS ‘요리비전’ 작가로부터 전화가 내게 왔었다. “블로그에 나온 홍어이야기를 잘 보았다. 홍어 전문가신데, 홍어를 소재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현지에서 작업하려고 한다. 4일간 동행하면서 출연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일간지 기자가 평일에 그것도 4일간 자리비우기는 어렵다. 아예 휴가를 내기 전에는.
그래서 윤씨를 소개했다. 윤씨는 나주시에서 지역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책임자여서 ‘본연의 업무 연장’이기 때문. 그래서 그가 프로그램제작에 힘을 보탰다. 취재촬영팀에게 이 ‘영산포홍어’집을 소개했다. 이곳에서 숙성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프로그램은 지난 3월 23일 방영되었다.
“아, 그랬습니까!”
김 사장이 말했다. 그날의 나의 주된 관심사는 홍어를 삭히는 숙성고였다. 상 위에는 홍어의 갖가지 부위들이 올라왔다. 홍어의 모양을 그대로 본 뜬 그릇에 살점들을 올려놓았다.
“아, 이것이 코로구나!”
몰론 나는 코 부위를 많이 먹어왔다. 그런데 홍어를 닮은 그릇 코 부위에 담긴 코를 보면서 자연스레 한 말이었다. 홍어부위중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생긴 부분을 코라 한다. ‘1코, 2날개, 3꼬리’라는 말이 있듯이 그 ‘코’를 말한다. 홍어부위중 첫째가 코, 둘째가 날개, 셋째가 꼬리 순으로 맛이 있다는 말이 있다. 바로 그 코다.
코를 쏠 정도로 삭힌 살코기에 밀가루와 튀김가루를 발라 튀겨낸 것도 올랐다.
“크!”

▶왼쪽이 칠레산, 오른쪽이 흑산도산 홍어. 약간 결의 크기가 다르다. 보통사람들은 구별하기 힘들다. 대개 흑산도 홍어는 찰진 맛으로, 칠레산은 삭혀서 먹는 경우가 일반이다. 사진=권경안
윤씨도 “크~”했다. 이것은 칠레산이었다. 좀 있자 하니 김 사장이 홍어고기 두 점을 내놓았다. “이것은 흑산도 홍업니다.” 애도 있고, 애로 만든 국(애국)도 있고, 무침도 있고, ‘거시기’도 있었다. 삶은 돼지고기도 있고, 묵은 김치도 있었다. 역시 그래도 최후는 막걸리와 함께 하는 것 아닌가. 약간 더위를 느끼는 점심때 목을 시원하게 타고 내려가는 막걸리도 일품이었다.

▶앞부분 삼각형 모서리 부분에 놓인 것이 홍어의 코. 막걸리를 걸쳐야 홍어맛이 산다. 잔을 든 이는 윤여정씨. 사진=권경안
“이 막걸리는 어디 것이요?”
내가 물었다. 그랬더니 김 사장이 “왕곡막걸리” 라고 했다. 지난 번 설날 전에 마셨던 ‘홍어1번지’의 ‘솔잎막걸리’는 나주 다도면에 있는 주조장 작품이었다. 이번에는 나주 왕곡면에 있는 주조장의 것이었다. “아, 참 좋구만!” 이랬더니 윤씨가 또 말을 이었다.
“이것은 맛이 무겁고, 지난 번 ‘솔잎막걸리'는 좀 가벼운 맛이여.”
역시 ‘남도 풍류’의 한 자락을 걸치는 윤씨의 막걸리 품평. 샛길이지만, 어디 가서 ‘목에서 울림이 있는 막걸리’를 만나면 아버지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날도 그랬다.
김 사장은 홍어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홍어음식을 요즘 식으로 개발하느라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홍어모양을 한 홍어그릇은 이 집의 독특함이었다.
홍어정식을 주문하면, 홍어의 갖가지 부위, 애국(탕)과 삼합을 즐길 수 있으니 그만이다. 외지인들은 ‘정식’을 주문하면 홍어의 궁금증을 거의 풀 수 있다. 아예 주인장에게 “홍어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면, 소상하게 설명해준다. 둘이서 포식하고 나서 계산했더니 3만9000원. 막걸리를 좀 과하게 마셨지 싶다.
그리고 이동한 곳이 바로 옆 숙성고. 지난 4월 3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소개된 ‘홍어숙성’ 사진 장소가 바로 그곳이다.

▶영산포홍어집 할머니 곽정덕(77)씨. 황토로 벽을 두른 숙성실이다. 사진=김영근 기자
황토로 삼면의 벽을 만든 숙성고에 들어섰다. 아주 큰 냉장고라고 하면 맞다. 서늘한 기운이 드는데, 곧바로 코에 느낌이 확 달려왔다. 15초 가량일까, 눈이 시큰했다. 어른 허리에 차는 크기의 항아리(옹기)가 23개. 짚으로 덮혀 있었다. 그 안에 홍어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이 집은 짚 사이에 홍어를 넣는 식이 아니라 홍어를 집적해놓고 있었다. 다른 집들도 대개 그렇다고 했다. 항아리를 짚으로 덮고 있었다. 완전히 막아놓으면 암모니아 가스로 인해 독이 깨질 염려도 있기 때문.
‘칠레산’ ‘흑산도산’ 하는 명찰이 항아리마다 붙여져 있었다.
숙성실 온도는 0도에서 3도 사이. 영산포에서 삭혀서 내는 홍어는 바로 이 상태에서 보름을 지낸 것이다. 김 사장은 “영상 5도에서 25일 이상, 10도에서 15일 이상 놔두면 ‘고리 고리한’ 냄새가 나면서 썩는다”고 말했다. 우리가 먹는 홍어는 삭힌 것이지 썩은 것, 부패한 것이 아니다. 온도유지가 생명이다. 옛날 선조들은 적당하게 ‘느낌으로’ 두엄더미 속에 넣어두거나, 짚으로 덮어서 삭혔다. 지금은 ‘과학적으로’ 온도와 기간을 적정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개선되었다.

▶영산포 홍어집의 '정식' 메뉴. 사진=김영근 기자
삭혀진다는 것과 썩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하나는 먹는 것이요, 하나는 버리는 것이다.
하나는 탄생이요, 하나는 소멸이다.
우리네 인생은 어떤가?
그와 다른 것인가?
슬픔을 삭히면서, 때로는 분노를 삭히면서 우리는 보다 성숙한다. 그러나 마음과 몸이 썩어서는, 부패의 냄새를 풍길 뿐.

▶나주시내 도로변에서 영산포 홍어축제를 알리고 있다. 홍어축제기간 영산포 홍어의 거리에서 홍어를 숙성하기 위해 옹기에 담아두고 있는 모습을 현장에서 볼 수 있다. 일제 식민도시 영산포의 모습을 담는 사진들도 눈여겨 볼 만 하다. 그래도 홍어를 탐미(探味)하는 것이 최고다. 사진=권경안
삭히는 인생, 그 슬픔을 유추할 수 있는 홍어를 맛볼 때가 왔다. 나주 영산포에서 오는 10일부터 12일까지 홍어축제를 연다. ‘남도행’의 진수는 여수의 동백, 광양의 매화, 구례의 산수유뿐 아니라 이 영산강변 홍어축제에서도 접할 수 있다. 그렇지 아니하겠는가!
다음 <11>편은 ‘영산포에 홍어자료관을 세우자’입니다.
첫댓글 우리네 인생과 비유하니 아주 딱이란 생각...
이러다 홍어 박사가 되겠네..
나주 영산포에 작은집이 있어 한번은 지나쳤는데...
언제 한번 영산포 홍어집에 홍어의 진수를 맛보아야 하겠네.
입속에 군침이 도는데...
아! 홍어에 막걸리 한사발이 오늘밤에는 더욱 간절하다....
잘 읽었습니다.
처가집에 가걸랑 작은집에 까지 두루 둘러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