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변기 뚫기
익사, 화재, 추락, 식중독 등 9시뉴스에 나오는 메이저급의 안전사고는 아니지만 체험시설에서 체험객들에게 욕을 얻어먹는 난감한 사고로는 겨울철의 보일러 고장, 여름철의 단수, 그리고 계절에 상관없는 변기 막힘이다.
체험캠프가 끝나고 체험객 수십여명이 빠져나가면 그 사람들의 수준을 알 수 있는 흔적을 남기고 가는데 그 흔적은 쓰레기이다.
분리수거가 잘된 쓰레기를 만나면 시민의식이 뛰어난 단체로 기록이 되지만 온갖 쓰레기들을 비빔밥처럼 한 곳에 담은 쓰레기를 만나면 점잖다고 소문 난 나의 입에서도 쌍욕이 튀어나오고 시민의식을 삼겹살과 함께 상추쌈을 싸먹은 단체로 기록을 하게 된다.
천성이 게을러 일이 하기 싫은 이유도 있지만 단체생활에서 너무나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일들이 지켜지지 않을 때 체험학교 일을 맡고 있는 사무국장으로서 회의감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썩은 물이 질 질 흐르는 쓰레기를 분리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진 나의 양반이미지는 쌍놈으로 떨어져버리고 나의 입에서는 일을 마칠 때까지 쌍욕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이렇게 쌍욕이 튀어 나오는 쓰레기를 재분리하는 일보다 더 하기 싫은 일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막힌 변기를 뚫는 일이었다.
변기 옆에 휴지통이 있는데도 변기 안에 사용한 휴지를 집어넣는 사람들의 뇌구조는 어떻게 생겼을까! 자신의 행동하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한번쯤 생각하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인데, 참 이해 할 수 없었다.
‘총알을 피하려다 대포에 맞아 죽은 사람’, ‘아파트에서 자살하는 사람 밑에 깔려 죽은 사람’, ‘쓰레기차를 피하려다 똥차에 치여 죽은 사람’이라는 가장 재수 없게 죽은 세 사람 유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똥을 만지는 일은 썩은 쓰레기를 만지는 일보다 더 혐오도가 높은 일이라 욕이 나오기 보다는 ‘설사병이나 나버려라’라며 저주를 퍼 붓게 된다.
통계학적으로 접근을 해보니 어른들은 쓰레기 문제의 원인을 어린이와 청소년은 변기 막힘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었다.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다른 체험객들에 주는 피해보다 막힌 변기를 뚫기 위해 똥을 만져야 하는 혐오스러운 일을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첫 만남인 캠프 입촌식 생활안내 시간
“화장실 휴지는 사용 후 휴지통에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광고를 해도 효과가 없이
“화장실 휴지를 사용 후 변기통에 넣어 변기가 막히면 단체 기합을 줍니다.”
로 수위를 높여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너무나 우연히 변기가 막히지 않게 하는 실마리를 찾아냈다.
2004년 여름방학, 내가 간사로 일했던 대구YMCA에서 어린이 여름캠프가 들어왔다. 캠프입촌식 생활안내 시간에
“화장실 변기가 막히면 직접 뚫어야 한다.”는 생각지도 않은 규칙이 나의 입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캠프 2일차 오후, 캠프지도자로 따라온 대학생 한명이 어두운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저 송국장님 남자 화장실이 막혔는데 어떻게 해야 되죠?”
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입촌식 때 분명히 말했제, 뚫어!”
나는 농담반으로 말했지만 대구YMCA근무할 때 나에게 캠프지도자 교육을 받은 대학생지도자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으로 들렸던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 캠프지도자 미팅 시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대학생지도자는 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식당에서 사용하지 않는 고무장갑을 빌려서 5,6학년 남학생들과 함께 휴지로 막힌 변기를 뚫었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쉬는 시간에 6학년 대장이 남학생 전부를 화장실로 집합을 시키길래 대학생지도자는 혹시나 폭력이 발생하지 않을까 몰래 뒤 따라가 화장실 안을 몰래 엿듣기 시작했다.
“캠프 들어와서 이 변기에 똥 눈 사람 손들어 봐?”
대장이 변기를 막히게 한 범인을 찾아내는 취조의 목소리가 화장실 문틈으로 새어져 나왔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대장은 일일이 한명씩을 지명하기 시작했다.
“니가 여기에 똥 쌌나?”
“아니!”
“그럼 니가?”
“아니!”
자신이 손을 들거나 대답하는 순간, 모든 것을 다 뒤집어써야 하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자수 할 사람은 한명도 없는 것이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대장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동생들의 군기를 잡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화장실 안으로 뛰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대장이 기발한 방법으로 상황을 정리하더라는 것이었다.
“캠프 끝날 때까지 이 변기에 절대 똥 누지 마!”
나는 그 말을 듣고 완전 뒤집어 졌다.
그리고 엄청난 것을 하나 배우게 되었다.
‘아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하니 자신들이 예방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구나!’
‘책임을 지게하면 예방프로그램을 가동한다.’라는 배움이 나와 체험학교에 준 반응은 엄청났다.
이제는 농담이 아니라 제대로 된 규칙으로
“남자 화장실 변기가 막히면 남학생이 직접 뚫고 여자 화장실 변기가 막히면 여학생이 직접 뚫습니다. 그런 험악한 일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똥은 똥통에 휴지는 휴지통에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남자화장실의 막힌 변기를 초등학생들이 직접 뚫었다는 이야기를 하니 약발이 먹혀 들었다. 변기의 막힘이 없는 기적 같은 무사고가 1년 동안 지속되었다.
대구YMCA 어린이캠프가 계기가 되어 1년간의 지속된 기적 같은 무사고 행진은 대구YMCA 청소년 캠프에 의해 깨어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여자화장실의 변기가 막혀버렸다.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시간
“입촌식 때 규칙을 분명히 말했는데 여자 화장실 변기가 막히면 어떻게 한다고 말했지?”
“여학생들이 뚫어야한다고 했습니다.”
사전에 규칙을 말하지 않고 막힌 변기를 뚫어라고 했으면 난리가 났을텐데 사전에 들은 규칙이 있으니 아무도 거부를 하지 못했다.
캠프에 참가한 50여명의 여학생들을 변기 뚫기에 다 동원할 수 없어 최고학년인 중3 여학생을 확인하니 5명이 손을 들었다.
“밤 12시 까지 해결해라!”
다른 단체나 학교 같으면 감히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내가 근무한 단체이고 캠프 담당자가 다 후배들이라 가능했다.
사무실에 있으니 화장실 변기를 뚫기 위한 여학생들의 작업소리가 들려왔다.
잠심 후, 와! 하는 함성과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변기가 뚫린 모양 이었다.
이윽고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얼굴이 활짝 펴진 후배가 들어왔다.
“형님, 뚫었습니다.”
“그래 여학생들에게 수고했다고 전해라”
이 얼마나 간단한 원리인가!
책임을 지게하면 스스로 예방프로그램을 가동하게 된다.
‘청소년 캠프에 갔더니 똥 치우라고 하더라’라며 인터넷에 올릴 정도의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여학생들은 그 일을 받아들였고 결국 변기를 뚫는 일을 해냈다.
나 개인이 똥을 치우기 싫은 것도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외부에 의존하여 외부의존증이 심해가는 요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만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게하는 최소한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나의 고민과 생각에 어느 정도의 진정성이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만약 나 자신의 편함만을 위한 얄팍한 수였다면 아마도 똥 벼락을 맞아도 여러 번 맞았을 것이다.
첫댓글 저두 외부 의존증이 심해가는 요즘 어른입니다.....ㅎㅎ
홍** 이사님이 나의 흑기사~~~^^
여자 화장실은 여자가 치워야하는데 홍장로님이 큰일하셨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