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나시아
"안녕" 웃으며 인사
내가 디자인한 삶
거짓말 아닌 거짓말 pseudo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했다면 소통해야 하고 적어도 내 의견의 일부는 수렴해 주었어야 했다. 신이 있다면 내가 이 세상의 신산함을 뼛속까지 씹고 있진 않았어야 했다. 이렇게 힘든 배역을 네가 맡아라라고 명하거나 강요하지 말았어야 했다. 고통의 끝에 서서 이젠 부러운 이도 갖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다. 무로다. 정녕 영원히 없음에서 없음으로다!
영단어 "유타나시아, euthanasia"는 그리스어로 직역하면 "아름다운 죽음"이란 뜻이다. 기기는 진화하고 인간의 정신은 퇴화하는데 수명은 점점 늘어간다. 현대인의 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삶을 살다 보면 웰빙의 순간보다 웰다잉(존엄사, 尊嚴死)의 순간이 더 빨리 찾아온다.
존엄하게 죽는 방법, 고통 없이 안락하게 죽는 것에 난 100% 공감한다. 반자발적 안락사(Involuntary euthanasia)도 난 적극 지지한다. "창틀에 끼인 여자"로 살고 싶지 않다. 차라리 "창밖의 여자"를 택할 것이다. 아직 대한민국에서는 윤리적인 살인으로 간주되고 불법이다. 조력 자살을 도운 사람은 촉탁 승낙살인죄가 된다. 언젠가는 꼭!!
남편이 늙어감이 화가 난다. 사실은 내가 늙어가는 것을 남편에게 대신 화풀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은 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불룩하고 벗어진 머리는 왜 존경의 대상이고 남편의 배는 게으름의 상징이어야 하는가? 입구가 두 곳인 빵집에 가면 우린 언제나 같이 들어가서 반대 방향으로 나간다. 도대체 맞는 게 하나도 없다. 40년 넘는 시간을 같이 했지만 아직도 모르겠다.
재벌가 사모님 같은 얼굴에 키도 크고 날씬한 몸매, 명문대 약대를 나온 이과 여자인 어머님께서는 단 한 번도 아들에게 잔소리를 해 본 적이 없다고 자랑스러워하셨다. 시어머니께는 자랑스러운 수재이다.
왜 나에겐 끝도 없이 가르쳐야 하는 바보 온달 같은 남자일까?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진심으로 반품처리하고 싶다. 착한 어머님의 아들이 나에겐 독이었다. 차라리 망나니에 많이 혼나고 구박받은 자식이었으면 지금의 나에겐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소소한 이야기도 잔소리로 생각한다. 표정만 봐도 안다. 내 위선으로 얼룩진 심장은 변절의 상징이었던가? 크산티페의 남편인 남의 남자인 테스 오빠에게는 관용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인가? 내가 미친 것인가?
남편 눈에도 내 늙음이 보이겠지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내면에서 돌기 달린 가시로 바뀌었다. 까칠함이 복어를 능가한다. 장미는 예쁘고 향이 좋아서 가시가 용서되지만 내 나이의 가시는 가식이다. 거대 생명체의 실체보다 그림자가 훨씬 더 두렵게 느껴지듯이 존재를 가늠할 길이 없는 공포가 성큼 다가온다.
어느 순간, 하룻밤 새에도 눈에 두드러지게 늙어감이 느껴졌다. 노화가 눈에 분명히 보이고 온몸이 서걱거린다. 고장 난 곳이 너무 많아서 이제는 고치기도 버겁다. 그냥 폐기처분하는 게 맞다. 나이를 먹어감은 불편함을 넘어선 분명 추함이다.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한다면 당신도 모르게 늙어감의 비극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삶이 극도로 불안한 사람은 길가에 놓인 종이컵도 짓밟고 지나가야 직성이 풀린다.
저녁식사를 거르기로 했다. 일단 모임부터 줄여야겠다. 모이면 과식한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분위기가 나를 들뜨게 속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곡기를 조금씩 줄여가면 삶도 가벼워진다. 고통도 사라지고 근심 걱정도 줄어든다. 광기! 를 없애기 위해서 난 신의 묘안을 떠올린 것이다. 구체적인 삶의 맛을 음미해 보고 네덜란드행 비행기를 타고 가는 날을 생각한다.
나의 일용할 양식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신병도 안락사를 허용하는 열린 풍차의 나라이다. 선택받은 자들 중 30대도 있고 50대로 여러 명 있었다. 물론 자폐인 경우만 해당되었다. 조만간 우울증도 전 세계가 인정해 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차별 없는 이별을 맛보고 싶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이 거짓말 아닌 거짓말( pseudo)로 취급되는 현실이 우울하게 느껴진다. 하루빨리 공평한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평온한 죽음을 상상하는 즐거움!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이다. 잘 살아가는 척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메서드 연기하는 이 순간이 혐오스럽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 아깝다. 입안을 피날 정도로 물어뜯으며 내가 삶을 견뎌야 하는 의무는 무엇인가?
니체는 신을 죽였지만 나는 신의 탄생 또한 거부한다. 요즘 들어 온갖 종교가 난무하고 과연 무엇이 정통이고 무엇이 사이비인지? 어떤 종교든 돈 얘기 안 하고 봉사만 한다면 난 "청렴교"라 이름 붙이고 그 종교로 개종할 것이다. 신이 더 이상 신이 아닐 뿐이다. 신이 있다면 내가 무릎 꿇고 빌었던 그 고통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인정, 아니 인지라도 해 주어야 했다.
정신과 의사도 모르는 "망상"이라는 진단을 정신과에서 받았다. 정신과 병원도 이제는 사이비인가? 의사 선생님께 다른 정신병원을 소개해 드려야 하는 것인지? 이십 대에 읽었던 미국 작가 에릭 시걸 Erich Segal (1937-2010)의 "닥터스 doctors"라는 책이 생각난다. 정신병자 역할을 의사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한다면 진짜 정신병자라는 구절이 있었다.
정상인인 내가 정신병자 역할을 정확하게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신병자인 내가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모르는 내 안의 이드와 에고가 끝없이 충돌 중이었던가! 정신병에 관한 진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두려움의 거대한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린다.
살아있는 한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내 재능은 딱 하나이다. 머리가 나빠서 지독하게 읽어야 했고, 어느 순간 남보다 수배 속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읽고 있음을 우연히 알았다. 완행열차를 타고 가다가 기차가 달릴 때도 간판을 간파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
네가 말했지! 우리가 누군가의 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한계를 부여하지 말라고 공자나 맹자나 그리스의 철학자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허락하지 말라고 말했지! 외롭다는 말,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적용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외로울 땐 그냥 용감하게 외롭다고 말해, 전화기를 잡고 울고 싶으면 울고 그렇게 정직하게 견디라고! 친구 뒀다 뭐 하냐고!!!
술김에 약 먹고 전화해서 수요일에 만나기로 한 것은 없던 일로 해주길! 금치산자의 말을 설마 네가 진심으로 알아듣지 않았기를 기대해 본다.
1번 맹세하지 않기
2번 언제나 씩씩하기
3번 그냥 잊기
4번 후회하지 않기
5번 그냥 지금 그대로! 웃고 있는 밀랍인형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은 삶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