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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1)
정창현 tongil@tongilnews.com
들어가며
올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여전히 한반도는 전쟁상태다. 아직까지 평화협정은 체결되지 않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국제적 논의는 본궤도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다. 오히려 올해 들어 한반도는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서 있다. 3~4월 최고조에 달했던 한반도의 긴장국면은 4월 중순을 기점으로 일부 완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 미국, 북한이 대화의 전제조건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북핵문제를 성찰해 볼 때 대북제재와 선 비핵화 요구로는 북한의 핵보유를 막을 수 없고, 반복되는 전쟁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한반도의 위기는 일시적 국면이 아니라 북미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 때까지 지속되는 구조가 됐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4월 15일 첫 공개연설에서강성국가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총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에 있어서 평화는 더없이 귀중하다라며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평화가 아닌 전쟁을 걱정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일부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북한의 김정은체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것인가? 필자는 현재 조성된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동북아 및 대북정책,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뿐만 아니라 김정은시대 북한의 변화된 정세인식과 노선, 그에 따른 내부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정확한 인식이 올바른 대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에서 본 연재는 2009년 김정은 제1위원장 등장이후 변화된, 변화하고 있는 북한의 실상을 가감 없이 소개하려고 한다. 보수 또는 진보의 색깔로 주관적으로 투영된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알아 가는 과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필자 주
1. 연재를 시작하며 - 김정은시대는 김정일시대와 다르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2009년 12월 17일 김정일 위원장이 준공식을 앞둔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에 보낸 친필명제의 한 구절이다. 북한은 이 말에 대해 “제 정신을 가지고 제 힘으로 일떠서면서도 배울 것은 배우고 받아들일 것은 실정에 맞게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세계최첨단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구호는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으로 제시됐지만 사실상 김정은시대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는 김일성.김정일시대의 계승을, ‘눈은 세계를 보라’는 김정은시대의 지향성을 드러낸다.
계승과 변화 천명
지난해 4월 15일 첫 공개대중연설에서도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일성시대의 ‘자주’와 김정일시대의 ‘선군’을 계승하겠다고 하면서 새롭게 ‘새 세기 산업혁명’을 언급했다. “일심단결과 불패의 군력에 새 세기 산업혁명”을 더하면 그것이 곧 ‘사회주의 강성국가’라는 것이다. 세계와의 교류 확대를 통해 첨단과학기술을 자체 개발 또는 도입하고, 지식경제시대에 맞는 경제구조를 완비하겠다는 구상이다.
▲ 김일성종합대학 정문 건너편에 세워진 구호판. 2009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에 보낸 친필명제의 한 구절이다. [사진 - 최재영]
김정은 제1위원장의 등장이후 그의 행보와 북한사회의 변화양상은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구호에 집약돼 있다. ‘눈은 세계를 보라’는 구호는 단순히 세계적인 것을 받아들인다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모든 분야의 변화를 이끄는 기준점이 되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해 평양의 거리에는 이 구절을 새긴 구호판이 세워졌다. 김정일시대에 평양 거리에 나붙은 구호는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였다. 북한의 지향점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지난 3월 30일 ‘정부.정당.단체 특별성명’을 통해서도 북한은 “김정은 시대에는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김정은시대 북한 변화의 출발점
변화의 출발점은 2009년이었다. 새로운 후계자의 등장과 2차 핵실험의 성공은 북한의 정세인식과 노선, 대내외 정책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우선 김정은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결정돼 후계체제를 수립하고, 이어 최고지도자로 등장하는 과정은 내부적으로 ‘격렬한 토론’을 거쳐 새로운 국가목표(아젠다)를 확정해 가는 과정이었고, 김일성 주석 사망이후 지속돼 온 ‘비상운영체제’를 마감하고 당과 군의 운영을 정상화 해 가는 과정이었다. 또한 새로운 지도자의 리더십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1970년대에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로 등장한 후에도 북한사회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미 한 차례 후계체제로의 이행을 경험했고, 최고지도자의 사망을 예상한 ‘유고(有故) 대응계획’이 수립돼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 내부에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권력분산을 통해 ‘특정인’이 섭정을 하거나 후견인으로 부상할 것’, ‘지도력이 약해 집단지도체제로 갈 것’이라는 외부의 예상을 불식시키고 유일영도체제를 확립해 강력한 리더십을 형성했다.
▲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당 고위간부들, 당대표자회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때부터 김정은 제1위원장은 활발한 공개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자료사진 - 민족21]
실제로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후 100일간의 추모기간을 거친 뒤 북한은 신속하게 김정은체제로의 권력승계를 마무리했다. 12월 29일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다음해 4월 11일 4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당 제1비서 겸 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군사위원장에 추대됐고, 이틀 뒤 최고인민회의 12기 5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된 데 이어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됐다. 이로써 북한에는 2인(김일성.김정일)의 ‘영원한 국가수반’이 존재하고, 당과 국가의 실질적인 수반은 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맡는 당.국가의 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1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태양절)을 맞아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군 열병식에서 첫 공개연설을 함으로써 ‘김정은 시대’의 공식 개막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당대표자회에서 열병식까지 일련의 정치행사는 북한 2세대의 지원 아래 3~4세대가 권력의 핵심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것은 단순히 세대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대내외노선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는 점을 시사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파격 행보
김일성 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의 권력승계과정을 통해 볼 때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리더십은 ‘제도적 리더십’과 ‘인격적 리더십’의 결합으로 완성된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4월 당.정.군의 최고직책을 모두 승계함으로써 .제도적 리더십.을 확립했고, 이후 .인격적 리더십‘ 형성단계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 2012년 9월 초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부인 이설주와 함께 평양 창전거리에서 개업을 앞둔 해맞이식당을 돌아보다 팝콘을 나눠 먹고 있다. 지난해 4월 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취임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후 부인을 대동하고 현지지도에 나서는 등 파격행보를 보였으며, 평양에 새로 건설된 대형 슈퍼마켓과 전문상점 등 상업망과 편의봉사시설을 집중적으로 둘러봤다. [자료사진 - 민족21]
김 제1위원장은 사회 각 분야의 ‘근본적 전환’을 위해 ‘민생 행보’를 강화하면서 노동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강화하고, 간부들의 관료화, 귀족화를 질타하며 세계적 추세에 맞는 사회 변화를 추진해 나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김정일시대와는 전혀 다른 리더십을 하나씩 선보이고 있다. 내부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문건을 발표하고, 간부들의 타성을 질타한 내용을 언론매체에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6일 김정은 제1비서가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에서는 “민심을 떠난 일심단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라며 “민심을 소홀히 하거나 외면하는 현상들과 강한 투쟁을 벌려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과거 김일성 주석의 리더십을 연상시킨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3년 반만에 200만대가 보급된 휴대폰을 기반으로 하는 ‘통신혁명’, 기존의 국영상점망, 종합시장과 별도로 대형 슈퍼마켓 및 전문상점 건설을 통한 ‘유통혁명’ 등은 김정일시대와 전혀 다른 김정은시대에 가능한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핵으로 위협받던 시대는 끝났다”
둘째로 북한은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통해 사실상 ‘핵보유국’의 지위를 획득함으로써 외부의 핵위협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미국, 일본, 한국의 군사비가 북한에 비해서 수백, 수십배에 달하지만 핵무기를 가졌기 때문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는 게 북한의 인식이다. 특히 북한은 1990년대에 들어와 모든 인적, 물적, 지적 자원을 사회주의를 고수하는데 투자했는데, 핵을 보유함으로써 모든 역량을 경제발전, 인민생활 발전에 돌릴 수 있게 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은 지난 3월 31일 열린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미국이 조선(북)을 핵으로 위협하던 시대는 영원히 끝났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제는 우리에게 강력한 핵억제력이 있고 그 어떤 강적도 타승할 수 있는 군사적 힘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투쟁도 마음먹은 대로 다그쳐 나갈 수 있게 됐다. 미제가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며 경제건설에 제동을 걸던 시대는 지나갔다.”(〈노동신문〉4월 1일자 사설)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은 200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선군시대의 경제건설노선’을 제시한 지 10년 만에 북한이 공식적으로 내놓은 김정은시대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다.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화하기 위해 핵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를 계속 추진하면서 국방비 부담을 줄여 경제건설에 주력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과 한국의 ‘급변사태론’
국내외의 대다수 북한전문가들은 북한의 여전한 경제적 어려움을 근거로 김정은체제의 안정성에 유보적 태도를 취하거나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서는 북한의 당면과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12월 위성 발사이후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대외강경정책도 김정은리더십의 불안정성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북한붕괴론’, ‘북한체제 급변사태론’, ‘북한변화 불가피론’에 빠져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정책담당자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북한정권이 3년 안에 붕괴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대북정책을 폈다. 당연히 대화보다는 대북압박에 우선순위를 뒀다.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발목을 잡고 북한에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올 것을 요구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1년부터 ‘키 리졸브 한미 군사연습’을 통해 북한의 ‘급변사태’를 상정한 미군 주도 훈련을 강화했다.
그러나 ‘북한 붕괴론’, ‘급변사태론’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이후 거의 20년 동안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허상에 불과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시절에도 심심찮게 ‘북한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정보보고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허황된 것으로 판단됐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급변사태론’의 근거로 시도 때도 없이 북한의 경제위기를 언급했다. ‘급변 사태’라는 색안경을 끼고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모습, 과거부터 존재했던 현상들을 견강부회했다. 그러나 남북경협이 중단된 이명박 정부 동안에 북한의 경제가 침체됐다는 명확한 근거는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북한의 식량가격이 시장의 수급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는 식량가격이 오른 상황만 주목했다. 지난해에는 황해도에서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근거 없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담당자, 국내외의 보수인사들이 신념처럼 이야기한 ‘급변사태’는 한마디로 ‘이단종교의 시한부 종말론’과도 같은 것이었다. 잘못된 대북인식과 판단, 정확히 말하면 ‘급변 사태’라는 색안경을 낀 ‘주관적 기대감’에 기초한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제재와 압박, 무시정책이 초래한 부정적 결과는 엄청났다.
북한은 이 기간에 두 차례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실험을 통해 사실상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었고, 미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게 됐다. 제대로 된 남북대화는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정부 때 활발하게 이뤄졌던 남북경협은 북중경협으로 대체됐다. 남북 화해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사업조차도 그 명맥이 경각에 달려 있다. 최근 북한은 “조선반도에서 평화도 전쟁도 아닌 상태는 끝장났다”며 “북남 사이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는 전시에 준하여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면전쟁, 핵전쟁’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60년간 유지돼 온 ‘정전체제’가 사실상 무너진 것이다. 지난 5년간 ‘시한부 종말론’에 모든 것을 걸고 현실을 내팽개쳐 북한의 핵개발을 방치한 업보다.
변화는 북한의 선택에 맡겨야
‘북한 변화불가피론’도 기본 인식에 문제가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동안 우리 정부는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 ‘햇볕정책’(대북 포용정책)을 폈다. 남북의 상호 존중과 화해 협력을 표방했지만 기본적으로 교류와 경협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관계와 대외관계를 개선하는데 적극 나섰지만 시장경제 도입이 아닌 ‘실리 사회주의’를 추구했다. 보수진영에서는 햇볕정책이 북한을 시장경제로의 변화를 유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정책이라고 비판했고, 이명박 정부는 대북압박으로 북한을 변화시키려 했다.
우리의 생각대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 최종적으로 흡수통일한다는 점에서 지난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은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내세우며 ‘햇볕’도 아니고 ‘압박’도 아닌,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난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겠다고 표방했다. 북한의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전 정부와 차이가 없다.
그러나 북한은 젊은 최고지도자의 등장과 함께 ‘눈은 세계를 보라’며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고, ‘핵 보유’를 전제로 대외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을 방문한 국내외인사들은 하나같이 “북한이 2000년 이후 10년 동안의 변화보다 더 큰 폭의 변화가 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북한의 ‘동북아 흔들기’도 이같은 변화에 기초해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사고를 바꿔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중국 북경대 김경일 교수는 이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북한을 변화시키겠다고 나서면, 남북관계는 사실 대등한 관계가 아니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구도가 아니면 압력으로 변화를 촉구하는 구도가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타율이 아닌 자율에 의해 변화가 이루어졌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변화는 북한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한국의 몫은 변화의 환경과 조건을 조성해주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밖에서 변화시키겠다고 하면 할수록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한은 변화할 수 없는 나라일까. 그것도 아니다. 북한은 변화하고 있고, 또 변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떠한 변화를 원하는가’다.”
북한식으로 표현하자면 이제 북한의 선(先)핵폐기, 선개혁개방을 전제로 하는 대화는 영원히 끝났다. 지난 4개월 동안의 ‘한반도 전쟁위기’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북한은 대북압박이 계속될 경우 4, 5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실험으로 맞설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핵공격에 재반격할 수 있는 핵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한 가운데 북한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북정책을 짜야 한다.
우리는 기본목표는 무엇인가? 한반도를 비핵화지역으로 만들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야 한다. 전쟁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을 통해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비핵화 회담은 영원히 끝났다’라고 선언했다. 상호 존중과 신뢰가 없는 대화는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전쟁수단을 배제한다면 남은 해법은 ‘과정으로서의 한반도비핵화’와 ‘과정으로서의 통일’(사실상의 통일)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북한 스스로 추구하고 있는 변화의 폭이 넓어지도록 국제환경과 내부 조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비핵화 회담에 다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평화협정 체결에 적극 나서는 길 외에 다른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김정은시대는 김정일시대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선 무엇이 다른지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출발점이다. 2009년이후 무엇이 변화됐고, 향후 어떻게 변화하려고 하는지를 알아야 적절한 대응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한신대, 방송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했다. 1994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통일문화연구소)에 전문기자로 입사해 10년간 주로 남북 현대사, 남북관계 분야 기획연재를 담당했다.
KBS "현대사 다큐멘터리 극장",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등의 방송프로그램에 자문으로 활동했으며, 통일부.국가기록원 자문위원과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활동하며 『한국현대사』(1~4),『한국역사』,『한국역사입문』등의 집필작업에 참여했다.
저서로 『곁에서 본 김정일』,『인물로 본 북한현대사』,『변화하는 북한 변하지 않는 북한』,『북한사회 깊이 읽기』,『북녁의 사회와 생활』,『CEO of DPRK 김정일』,『KIM JONG IL of NORTH KOREA』,『남북현대사의 쟁점과 시각』 등을 출간했다.
공저로 『발굴자료로 쓴 한국현대사』,『실록 박정희』,『WWW.한국현대사.com』,『남북정상회담600일』,『朝鮮半島のいちばん長い日』, 『박병엽증언록1-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박병엽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등이 있다.
현재 (주)이제이컨설팅 대표, 국민대 교양과정부 겸임교수,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집행위원, 경실련 통일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