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인도 불교사
1. 불교의 발생
1) 베다-우파니샤드 시대
인도는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이다. 대략 B.C. 3,000 년에서 2,000년경, 주로 드라비다Dravida 인들이 인더스 강가에 정착 잘 설계된 도시를 건설하고 화려한 청동기 문명을 꽃피운다. 그들은 대부분 인도 각지에 흩어져 작은 촌락을 이루었고, 모계적 성격의 사회를 형성하며 살았다.
기원전 2,000년경에는 이란과 인도 북부지역에 살던 아리아인Aryan들이 인도 북서부 펀자브punjab 지방으로 유입된다. 원래 목축을 하던 이들은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농경을 발전시키며 점차 동쪽으로 번져나간다. B.C. 6~5 세기경에 이르면 갠지스 강 중류의 여러 지역에 점령하고, 그 세력은 하류지역인 남인도에 까지 미친다. 이들은 경제적 안정을 누리며 “베다Veda-우파니샤드Upanishad” 시대를 연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인 베다Veda는 고대 인도 브라만교의 근본 경전으로 신의 계시를 시적詩的으로 저술한 것이다. 우파니샤드Upanisad는 가장 오래된 힌두 경전인 베다를 운문과 산문으로 설명한 철학적 문헌들로 인도 철학과 종교 사상의 원천源泉이 되었다.
베다-우파니샤드 시대는 통상 리그베다, 아타르바 · 브라흐마나, 그리고 우파니샤드 시대로 나눈다. B.C. 1,500에서 B.C. 1,000년에 이르는 리그베다 시대는 자연현상을 신으로 숭배하는 다신교 시대였다. 가장 오래된 문헌인『리그베다』는 인드라 등 천지자연의 신들을 찬미하는 시들을 모은 경전이다. 아타르바 · 브라흐마나 시대는 이들이 갠지스 강 상류로 진출한 시기로, 종교 의례나 카스트 제도 등이 확립된 시대이다[B.C. 1,000 - B.C. 800]. 베다의 하나인『아타르바베다』는 주술을 본질로 하는 민간 신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우파니샤드 시대는 우주의 근본원리인 범아일여梵我一如, 카르마[업業], 윤회輪廻, 해탈 등의 사상들이 등장하는 시대이다. 이들은 태양, 불, 나무 등 자연을 신격화하고 찬미하는 베다 문헌을 낳았을 뿐 아니라, 이를 문헌들을 바탕으로 브라만교를 탄생시킨다[B.C. 800 - B.C. 500]. 이 시대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업과 윤회輪廻의 등장인데, 이후 인도 사조思潮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사상은 태어나면서부터 신선한 존재라고 믿었던 브라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상이었다. 하지만 불교나 자이나교 등 이후 생겨난 종교는 대부분 이 윤회사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
2) 싯다르타의 방황
기원전 7 ~ 6세기 무렵, 인도는 농촌의 성장과 함께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군소국가 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1 이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는 왕족과 경제적인 실권을 가진 장자長者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급격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전통적 종교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사상을 가진 반 베다적 인물들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당시 자이나교에 따르면 363가지 다른 견해들을 가진 사상가들이 존재하였다고 하고, 불교 문헌에는 62가지 다른 견해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중 그 시대를 대표하는 여섯 사람을 육사외도六師外道2 라고 부른다.
이들 신흥 종교사상가들은 대부분 기존의 브라만교의 권위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자유로운 사상가들이었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 또한 그들 신흥 사상가들 중 하나였다. 그는 35세에 깨달음을 얻은 뒤, 80세에 입멸入滅할 때까지 45년 동안 인도 북부 갠지스 강 일대를 다니면서 가르침을 폈다. 불교는 혁명가인 싯다르타Siddhartha가 처절한 수행修行을 거쳐 정각正覺을 이룬 체험을 바탕으로 성립하였다.
1. 당시는 코사라, 마가다, 아반티, 반사라고 하는 4개의 나라가 가장 유력하였다. 오래지 않아 100년 후에는 마가다가 다른 모든 나라를 정복해서 드디어 아소카 왕이 출현하게 된다. (중략) 석존 입적 당시의 대도시로서는 쟌파, 라자가하(王舍城), 사바티(舍衛城), 사케타, 코산비, 바르나시(베나레스) 라고 하는 6대 고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中村元 著 楊貞奎 譯,『佛敎의 本質』 pp. 16~17).
2. 육사외도 六師外道: 6세기경 인도에서는 전통적인 브라만교에 대항하는 다양한 혁신 사상가들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떠돌아다니면서 숲속에서 수행하였는데 그들을 사문(沙門, 遊行者)라 불렀다. 부처님 당시의 대표적인 사상들을 흔히 六師外道라고 부른다. 한자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섯의 다른 스승들이 가르치는 불교 밖의 가르침들을 뜻한다.
㉠ 푸라나 카삿파(Purana Kassapa)는 도덕 부정론자이다. 그는 아무리 몹쓸 행동을 해도 그것이 악이 아니며, 그 행동의 결과 죄의 과보를 받는 일도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 아지타 케사캄발라(Ajita Kesakambala)는 유물론자로 유명하다. 그는 사람도 지, 수, 화, 풍 사대가 일시적으로 모여 있을 뿐이므로 죽으면 지수화풍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고 주장했다. 인간에게는 선악업에 따르는 과보도 없고, 현세와 내세도 없으며, 심지어는 부모도 없고, 태어나서 죽는 존재도 없다. 오직 사대라는 물질적 요소의 이합집산만 있을 뿐이다.
㉢ 파쿠다 캇차야나(Pakudha Kaccayana)는 기계적 불멸론을 주장했다. 아지타의 사대설에 의하면 고락의 감정이나 인간의 생명현상은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그렇다면 고락의 감정이나 생명현상을 이루는 요소는 없다는 것이 된다. 파쿠다는 없는 것은 생길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苦, 樂, 生命을 사대와 마찬가지로 요소로 보고 7요소설을 세웠다. 이 세상은 불멸하는 7요소가 기계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 세계를 요소들의 우연한 결합으로 우연론(무인무연론)은 허무주의적이고 윤리관을 상실한 채 쾌락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막칼리 고살라는 이런 윤리관 상실과 쾌락추구적인 요소를 해결하려고 했다.
㉣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는 결정론적 숙명론자이다. 그에 의하면 이 세상은 요소가 우연히 이합집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법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이합집산하므로 인간의 삶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일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래서 막칼리는 7요소에 물질이 이합집산할 수 있는 공간과, 이들이 모이는 법칙과 得과 이들이 흩어지는 법칙인 失, 그리고 사람이 태어나는 법칙인 生과 죽는 법칙인 死의 다섯 가지를 추가하여 12요소설을 세웠다. 인간의 운명이나 사물의 생멸은 자연법칙에 의해 이들 요소가 결합된 것이기 때문에 생기고 없어지는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우주의 생성과 소멸을 자연법칙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막칼리 고살라가 바로 그와 같은 사상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 산자야 벨라티풋타(Sanjaya Belatthiputta)는 회의론자이다. 그는 철저하게 감각적인 경험만으로 판단했다. 당시의 사문들은 감각적이고 현실적인 경험에 의지하여 업보와 내세를 부정하고 있었는데, 산자야는 그런 문제들에 대하여 논의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내세를 경험할 수 없는데 어떻게 내세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철저하게 감각적이고 현실적인 경험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진리 그 자체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회의론에 빠져 있었다. 그는 그런 문제는 알 수 없으므로 어떤 주장을 하든지 관심이 없었다. 누가 이런 문제를 물으면, 그는 상대가 알아들을 수 없는 괴변으로 문제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는 알 수 없는 이런 문제로 고민하기 보다는 현실에서 어떻게든 쾌락을 얻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 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ataputta)는 고행주의자이다. 그는 자이나교의 창시자로서 세존과 같은 왕족 출신이다. 그는 세존처럼 혼란한 사회를 구원할 생각으로 출가하여 스스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전생의 업에 의해 현생에 받을 괴로움이 결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생에서 받을 괴로움을 미리 받아버리고, 새로운 업을 짓지 않으면 생사의 윤회에서 저절로 해탈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그는 고행을 통해 해탈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중표 지음,『근본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