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수부티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큰 강인 강가강의 모래알 수만큼의 강가강이 있다고 하자. 그 많은 강들에 있는 모래알은 많다고 하겠느냐?”
수부티가 말씀드렸다.
“부처님, 그 강가강들만 하더라도 많습니다. 하물며 그 많은 강가강에 있는 모래알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수부티야, 내가 너에게 일러 잘 알게 하겠노라.
여인 또는 남자가 누구든지 그 많은 강가강에 있는 모래알 수만큼의 세계를, 일곱 가지 보물로 가득 채워,
여래 응공 정등각자들에게 보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수부티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여인 또는 남자가 그것을 인연으로 많은 복덕을 쌓게 되는가?”
수부티가 말씀드렸다.
“부처님, 많습니다. 선서시여, 많습니다.
여인 또는 남자가 그것을 인연으로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복덕을 쌓게 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수부티야, 어떤 여인 또는 남자가 그렇게 많은 세계를 일곱 가지 보물로 가득 채워,
이것을 여래 응공 정등각자들에게 보시한다고 하더라도,
이 법문 가운데 네 구절로 된 게송 한 수만이라도 받들어
이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드러낸다면, 그것이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복덕을 쌓게 될 것이다.”
※ 재시도 중요하지만 수지독송하고 위인해설 한다면 그것도 큰 복덕을 쌓게 될 것이다.
한국 불자들은 재시가 중요하지 않다는 착오를 일으켜 재보시를 잘 하지 않는다.
위의 경전을 읽어볼 때 재시도 중요하다고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