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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부끄러워하던 일곱 살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피부색이 자신과 다른 것도 싫었고, 영어를 못하는 어머니가 숙제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30세가 된 이 청년은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 게 모두 어머니 덕분입니다” 2월 6일 미프로풋볼리그(NFL) 챔피언결정전인 수퍼볼에서 우승 트로피와 함께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쥔 하인스 워드(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이야기입니다.
워드의 어머니는 한국인 김영희씨(55)입니다. 김씨는 나이트클럽 종업원으로 일하다 동두천 미2사단에서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던 흑인 병사 워드 시니어와 결혼했습니다. 1976년 서울에서 워드를 낳았고 다음해 미국으로 같이 건너갔습니다. 하지만 워드는 곧 어머니와 헤어졌습니다.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김씨는 영어를 못하고 경제능력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법원으로부터 양육권마저 박탈당했다가 약육하기 위하여 아들을 찾아 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피부색이 검은 사람들과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조그만 동양 여자가 와서 자기가 어머니라더군요.” 워드가 일곱 살 때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작은 사건이 어린 워드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워드는 평상시처럼 어머니가 태워주는 차로 등교하면서 친구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깊숙이 몸을 숨겼지만 급히 차문을 열고 나가면서 고개를 돌리다 어머니의 눈물을 보게 됐습니다. 워드는 그때 “나를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다니…그래 아무리 놀려도 나는 한국인의 피가 섞인 혼혈이다. 그게 내 인생이다” 하는 생각이 스쳤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그는 자신의 피부색과 환경의 굴레를 보기 좋게 깨부수고 나와 버렸습니다. 그가 만약 자신의 피부색과 환경에 끝까지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다면 오늘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 섭섭한 마음을 가질 만한 데도 그는 거침없는 사랑을 표현한다. 오른팔에 자신의 한국어 이름을 새기고 다니는 것도 그 긍정적 마인드의 일면이다. 워드는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 자신의 말대로 ‘철이 들면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숨기고 싶고 부정하고 싶던 자신의 피부색을 ‘긍정’한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180도 달라져버린 것입니다. 이 하인스 워드로 인해 한국인은 2월 내내 즐거웠습니다. 차별과 냉대를 이겨내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그의 드라마는 환호와 박수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국민일보에 보면 하인즈 워드의 모자는 기도로 승리했고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2/24일 일면에 보도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곁길로 가지 않고 바르게 자라도록 키워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또 이렇게 뛰어난 선수가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위험한 경기 속에서 아들을 무사히 지켜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미국 프로 풋볼리그 슈퍼볼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하인스 워드의 뒤에는 어머니의 뜨거운 신앙이 있었습니다. “김씨가 무엇보다 아들 워드가 믿음이 좋고 주일성수를 잘해 감사하고 있었고 워드가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를 늘 기억할 뿐 아니라 경기에 나가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어머니의 기도를 몸으로 느끼기도 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 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성공 스토리를 접하면서 대비되는 글이 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인기 기독서적 조엘 오스틴 목사와 그의 베스트셀러 ‘긍정의 힘’이란 책의 내용입니다 . 미국 차세대 리더로 급부상하고 있는 목사입니다. 하도 잘 웃어서 '웃는 목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조엘 오스틴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이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젊고 활기차고 열정적인 그는 기독교계의 새로운 얼굴이다.
그는 죄인더러 회개하라고 닦달하거나 소리치지 않고 정치와 주요 정책 이슈보다 철저히 성경중심으로 돌아가, 희망과 자기계발에 관한 참신하고도 설득력 있는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레이크우드 교회는 조엘의 아버지 존 오스틴 목사에 의해 1959년 휴스턴의 한 버려진 사료 가게에서 탄생했습니다. 이후 레이크우드교회는 꾸준히 성장했으며, 존 오스틴 목사가 세상을 떠날 때는 성도가 약 6.000명으로 늘었습니다. 다섯 형제 중 넷째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방송 사역에 만족하며 살던 조엘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강단에 서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아버지 존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엘에게 주일 설교를 부탁했고 그 직후 조엘은 아버지의 이으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조엘은 레이크우드 교회를 네 배로 성장시키고, 한 리서치 기고에 따르면 현재 매주 30000명 이상이 찾는다고 합니다. 레이크우드 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교회가 되었고 미국 전역에서방송을 타는 조엘 목사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미국 안방의 95%와 전 세계 150개국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닐슨 미디어 리서치는 지역별 평균 시청률에 근거, 조엘 오스틴의 프로그램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방송'으로 선정했습니다. 또한 레이크우드 교회는 갈수록 늘어나는 성도들로 인해 2005년 7월 휴스턴 로케츠 프로야구팀 홈구장이었던 16000좌석의 휴스턴 컴팩센터로 이사를 했습니다.
200만부가 넘게 팔린 긍정의 힘은 출간되자마자 초대형 베스트 셀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조엘과 빅토리아 부부는 여러 방면의 다양한 사역으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끝없는 희망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오스틴 목사는 이 책에서 “우리는 단점까지도 포함하여 현재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외모나 말하는 태도, 행동,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고 만족하며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인스 워드야말로 이의 산 표본이 아닌가 싶습니다. 워드의 모습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웃는 모습이다. 팀에서 ‘살인 미소’라 불릴 정도로 그의 웃음은 정평이 나 있습니다 . 신문에 실린 그의 사진들도 하나 같이 모두 웃는 모습입니다. 웃음은 밝고 호쾌하며 그의 인생 어디에 그늘이 있었으랴 싶을 정도로 멋진 웃음을 짖는 것입니다. 미국 언론들은 항상 웃는 얼굴과 소탈한 성격을 워드의 최대 매력 포인트로 꼽았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이 책의 표지 웃는 목사 조엘 오스틴 목사와 같습니다.
워드의 힘은 바로 오스틴 목사가 말씀한 ‘긍정의 힘’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의 내적 문제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 환경 외모 재능 직위 등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남을 쳐다보느라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장점을 발견하지 못함니다. 이런 삶이 만족스럽고 즐거울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제각기 다른 외모와 환경, 재능을 주신 것은 각각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삶을 살려면 먼저 자신을 긍정하는 태도부터 가져야 합니다. 오스틴 목사는 “하나님이 지으신 그대로 만족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할 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놀라운 복을 받고 성공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하인스 워드는 그것을 멋들어지게 실증해보였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이 책의 제목과 같이 “긍정의 힘“ 믿는 대로 된다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5,000명을 먹이신 기적은 사복음서에 모두 다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받아야 하는 중요한 교훈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과 함께 먹고 함께 생활하면서도 확신 없는 믿음과 믿음 없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실패하는 빌립과 또한 대조적으로 문제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생각 속에 살아가는 안드레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생각에 의해서 행동하게 되고 생각에 의해서 말을 하게 되고, 생각에 의해서 판단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생각에 지배를 받는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신 십자가 사랑으로 영원히 살게 됐으니 구원받은 기쁨 때문에 신앙생활하는 것이 즐겁고 생각도 긍정적이 되고 진취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 대한 기쁨과 감격 속에서 살아야 할 성도들이 항상 부정적인 생각과 현실만 바라보는 생각과 소극적인 생각 속에 서 살아간다면 그것만큼이나 어리석은 모습이 없다. 이는 영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감옥에 있는 죄인에게 그 죄를 탕감해 주고 감옥을 나가라고 했는데 나가지 않고 계속 감옥에 앉아 있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고, 모인 무리들은 영적인 필요를 채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필요만 채워 주시고 무리들을 돌려보내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모두 육체적으로 굶주린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5,000명의 배고픈 필요를 채워 주시기 위해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빌립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5절 -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 게 하겠느냐?" 예수님은 여기서 예수님 자신도 사람들을 먹여야 하는 문제 속에 같이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우리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과 제자들에게만 문제를 맡겨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 곁에 있음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 이유가 6절에 나옵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6절). 때로 주님은 우리에게도 문제를 주시고 어떻게 말하는지 그 대답을 듣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떠한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부정적인 신앙의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제자들 중에서 왜 유독 빌립에게 질문을 던지신 것일까요? 빌립은 매사에 믿음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계산적으로 행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 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7절). 빌립의 계산은 정확했습니다. 지금 모인 무리들은 남자만 5,000명이었으니까 부녀자와 아이까지 다 합친다면 그곳에 만 명 이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에게 떡을 사서 먹이려면 200 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했습니다. 1 데나리온은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요즘 계산으로 하루 5만원을 품삯으로 계산하면 200데나리온은 약 1억원인데 빌립의 계산은 정확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어떤 문제를 만나게 될 때 그 문제를 빌립처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빌립에게는 결정적인 문제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빌립은 문제점을 정확하게 진단할 줄은 알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예수님을 향한 올바른 믿음은 갖고 있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빌립은 문제를 예수님 손위에 갖고 오면 해결된다는 생각을 갖지 못했습니다. 빌립은 자기의 능력으로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주님 앞으로 갖고 나와야 합니다.
로마서에 보면 롬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믿음이 없는 사람의 특징은 "육신의 생각 즉 인간적인 생각부터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우리들에게는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이라도 부족합니다” 돈이 부족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삶 속에서 이와 같이 엄청난 문제를 만났을 때에 우리의 힘으로 모두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얼마나 예수님을 신뢰하고, 얼마나 영적인 생각을 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영성을 잃어버리게 해서 분별력을 떨어지게 하는 사망의 생각인 것입니다.
여러분 빌립처럼 문제 앞에서 “나는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신앙을 가진 분은 안계십니가?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신앙은 자기 자신성장만 막을 뿐 아니라 가족과 회사의 발전을 막는 역할을 하는 아주 지혜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너는 안 돼, 공부를 해도 안될 거고, 운동을 해도 안 될거야, 넌 할 수 없어" 매일 같이 그렇게 말 해 보세요. 그 아이가 잘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에디슨이 낙제를 하고 집에 왔을 때에 그의 어머니는 오히려 그에게 “너는 특별한 사람이다 너는 유능한 사람”이라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함으로서 위대한 발명가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믿음 없는 부정적인 말을 할 줄을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사건을 통하여 빌립이 늘 해 왔던 계산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이제는 믿음으로 행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빌립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해 물으신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기적을 곁에서 보고 체험했습니다.
오늘 믿음이 있는 빌립이라면 예수님의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에게는 200 데나리온의 돈도 없고, 떡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말씀 한마디만 하신다면 5,000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라는 말을 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예수님께서 기적 행함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능력 많으신 예수님을 자신의 삶 속에 포함시키지 않으면서 살았습니다. 빌립은 현실적인 계산과 자기 판단만을 믿고 살았던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5,000명을 우리는 절대로 먹일 수 없다"고 단언하여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문제점을 바라보는 사람은 매사에 안 되는 이유만을 찾아내고 지적하면서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성도들의 부정적인 모습만 보고 이야기 합니다. 더 나아가 부정적인 모습을 확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오염시키고 자기 자신도 부정적인 사고 속에 같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을 할 때 해결책을 바라보는 사람은 가능성을 찾아내면서 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함으로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1990년대 말 전성기를 구가하는 “호세 리마”라는 휴스턴 아스트로스 투수가 있었는데 그는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고 온몸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투수였다. 그런데 홈구장을 새로 지우면서 좌측펜스가 짧은 것을 발견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 “젠장 이런데서 제대로 던지기는 글렀어”라고 볼멘소리를 내 밷었다. 펜스가 짧은 것은 투수에게 불리한 것을 발견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품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새로운 구장에서 말과 같이 20승 투수에서 연속 16연패를 당하는 투수로 전략하고 말았습니다. 호세리마에게 그가 말한 대로 그대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신앙의 눈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의 계산적인 생각을 차단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사단이 성도의 신앙을 흐트러지게 하기위한 수단임을 깨달으시고 돌아서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말을 할 때는 대부분 그 당사자에게 대면해도 할 수 있는 말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 사람에게 전달해서는 않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 사람을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말을 전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칭찬하고 긍정적인 말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말이라면 그것은 또 다른 부정적인 일로 발전하고 확대 재생산되어 관계를 해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말, 칭찬하는 말, 기쁜소식, 복음을 전하는 빠른 발이 되시기 바랍니다. 빌립과 같은 부정적인 태도를 버리고 긍정적인 믿음을 긍정적인 말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의 위대한 일은 긍정적인 믿음의 말부터 시작됩니다.
신앙 안에서 긍정적인 믿음의 말은 더욱 중요합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말이 믿음의 열매들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가장 위대한 사건들은 항상 긍정적이고 확신에 찬 믿음의 말들로부터 시작합니다.
모세가 애굽 군사들에게 쫓기다 홍해 앞에 다다랐을 때 그는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들 앞에서 확신에 찬 긍정적인 믿음의 선포를 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뒤에는 칼을 든 애굽의 군사들, 그리고 발아래에는 원망하는 백성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모세는 긍정적인 신앙의 선포를 했습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출14:15-16).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사건으로 기억되는 홍해 사건은 모세의 긍정적인 믿음의 말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 기막힌 싸움 직전에 이 사건보다 더 기막힌 다윗의 긍정적인 믿음의 말이 우리를 더욱 감동시킵니다. 큰 형 엘리압은 다윗이 철없이 전쟁구경을 하러 전쟁터에 왔다고 꾸중합니다. 왕은 다윗이 아직 아린 애송이에 불과하다고 그의 사기를 떨어뜨립니다. 블레셋 군대는 다윗을 놀리며 죽여서 새들과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겠다고 겁을 줍니다. 이쯤되면 아무리 신앙이 좋은 다윗이라 해도 의기소침하고 자신감을 상실하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긍정적이며 확고한 믿음의 선포를 합니다.삼상17:45-47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모든 상황이 부정적인 사고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 때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긍정적인 믿음의 말을 외치고 싸움에 나가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각 지파 대표들 중에 10명은 부정적으로 말합니다(출13:32-33절). 그 땅은 삼키는 땅이라고 하고, 자신들이 메뚜기 같이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말을 듣고 백성들이 어떠했겠습니까? 밤새도록 곡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부정적인 말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원망하게 만들고 자신 없게 만듭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말은 자신들 뿐만이 아니라 백성들 모두에게 하나님이 계획하신 비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긍정적인 믿음의 보고를 했습니다(출14:7-8).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을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부정적으로 말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심히 아름다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긍정적으로 말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스스로를 ‘메뚜기 같은’ 존재라고 부정적으로 말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군사들을 ‘우리의 밥’이라고 긍정적으로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긍정적인 말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말한 10명의 정탐꾼과 그들의 말을 듣고 부정적으로 통곡한 백성들은 그들의 부정적인 말대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빌립이 예수님의 질문에 부정적인 답변을 하고 있을 바로 그 때에 예수님의 또 다른 제자였던 안드레는 5,000명 사이를 헤치며 돌아다니면서 무언가 가능성이 있는 것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안드레가 찾아낸 것이 바로 한 소년이 싸 가지고 온 점심 도시락이었습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8,9절). 안드레는 빌립과 같지 않았습니다. 안드레는 머리 속으로 계산만 하면서 안 된다고 부정적인 말을 늘어놓는 빌립이 아니었습니다. 안드레는 두루 다니면서 무언가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것을 찾아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안드레처럼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무언가 가능성을 찾아보면서 그것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오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안드레는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한 소년이 가지고 있던 점심 도시락을 예수님께 가지고 왔지만 '자기가 행한 일은 너무나 작고 미미한 일'이라는 것을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9절). 겸손히 예수님께 의논을 드리는 모습입니다. 우리들도 안드레처럼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면서도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봉사와 헌신과 드림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면서 겸손해야 하지만 겸손이 지나쳐서 위축되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드레가 작고 미미하게 여겼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5,000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작고 미미하게 여기고 있는 우리의 희생과 섬김과 드린 것을 가지고 크고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먼저 예수님께 드려야 합니다(9,11절)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실 때 무엇을 가지고 그 기적을 베푸셨는지 아십니까? 바로 한 아이가 먹으려고 싸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바치자 주님께서는 그것을 취하시어 5,000명이 먹고도 남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고 큰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크던 작던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온전히 드렸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축복하시고 놀랍게 사용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도 있으시며, 주님 혼자의 힘으로도 5,000명을 먹이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드린 헌신을 통하여 기적을 일으키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기적에 우리가 쓰임 받고, 그 기적을 몸소 체험하기를 원하십니다. 만일 한 아이가 자기가 먹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바치지 않았다면 그곳에는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들을 통하여서도 주님께서는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고 살아야 합니다. 너무나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우리 주님의 손위에 온전히 드려지게 되고 주님께서 축복하시게면 우리는 바로 거기에서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긍정의 힘은 믿는대로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습관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고 또 하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입니다(잠 17:22)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긍정적인 생각은 삶의 태도와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줍니다. 기독교신앙은 지극히 긍정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인데 대속하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미래 지향적이며 희망적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웬만해서는 비관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입니다.(빌 4:11-13)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민들레 영토의 빈 사랑” 이런 책입니다. 저 신촌에서 10평 되는 작은 문화다방을 시작했던 “지승용”씨의 이야기 입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아주 당당한 문화 까페, 아주 격조 높은 그런 젊은이들과 또 생각 있는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어떤 하나의 모델처럼 아주 화려하게 등장한, 아주 감동 있게 등장한 이 지승용 씨의 삶의 이야기 입니다.
이 책에 보시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어요. 망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압류가 들어와서 살던 집에 빨간 딱지가 다 붙어졌어요. 그날 밤 괴로워하다가 자기가 잠에 들었다가 새벽에 깨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갈려고 그러니까 아버지 방에 불이 켜져 있어요. “아버지가 아마 온 밤을 새우신 모양이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혹시 새벽에 일어나서 괴로워 하신 것은 아닌지?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그래서 아버지 방에 가서 살짝 방문을 열다가 깜짝 놀란 것이 아버지는 단정한 모습으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일어나서 앞에 책을 읽고 있어요. 성경인지 무슨 책인지 쓰여있지 않지만 책을 읽고 있어요. 그 모습을 탁 보면서 자기 마음에 평안이 들어오면서 그가 이런 얘기를 기록했습니다.
이 책의 81페이지에 나옵니다. “빨간 딱지” 차압 들어 온, 가압류 들어 온 빨간 딱지는 어두운 거실에서 여전히 뚜렸하게 보였다. 그렇지만 조금 전에 그 딱지를 보았을 때처럼 마음이 언짢거나 발걸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방금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평소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저토록 튼튼한 아버지가 제 자리를 지키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집안이 망한다고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 있었다. 모든 일이 힘들게 여겨지고 머리 속에는 집이 망하면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 뿐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날 오래간만에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평소보다도 더 침착하게 더 부지런하게 독서와 함께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아버지가 미더웠기 때문이다.
다시 며칠이 지난 뒤 였다. 그날따라 일찌감치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나는 아버지가 집안일에 대하여 말씀하시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나는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아버지 앞에 앉아있었다. “요즘 네 마음이 많이 상했지?”, “아닙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한 말과는 달리 정말 나는 마음이 많이 닫혀 있었다. 그 무렵 우리 집에는 매일같이 빚쟁이들이 몰려왔다. 그 빚쟁이들은 아버지가 보증을 서 준 사람에게 가지 않고 우리 집에만 몰려왔다. 보증을 서 준 사람은 부채를 갚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버지라면 갚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마음이 상한 것은 그들이 우리집을 점령한 사실 때문이 아니였다. 빚을 받기 위해 우리 집을 점령한 그들은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에게 돈을 융통하기 위해 혹은 사업상 필요에 의해 선물 꾸러미를 들고 드나들었던 사람들 이였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다녀오던 그날 새벽 평소와 다름없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약삭빠른 세상인심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못 견디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내가 너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어서 불렀다. 사람들은 내가 이제는 다 망했다고 말하더구나. 망했으니 불행하겠지?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란다. 지금까지 아버지는 돈을 벌어 재산을 모으는 것을 즐거움으로 알고 그것을 행복으로 알고 살아왔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나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빚을 갚는 일을 즐거움으로 알고 살 작정이다. 물론 너희들이 고생이 되겠지만 이것을 알아야 한다. 기쁨이란 즐거울 때만 오는 것은 아니란다. 망할 때에도 즐거울 수 있단다. 빚을 갚는 것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즐거울 수 있단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겠니?” 그 말을 듣는 순간 자기인생은 변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날 정말 자유한 삶을 사는 분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긍정의 힘입니다. 긍정의 힘은 우리의 삶을 아주 특별하게 합니다.
긍정의 힘은 삶을 밝고 따뜻하게 합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밖에 있는 사람들을 염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긍정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안 된다는 말은 참 무서운 말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저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부정적인 환경에서도 살았었고 긍정적인 환경에서도 살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어느 환경이든 내게 능력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가는 길에는 막힘이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밝게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긍정의 힘은 오늘의 삶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줍니다.
믿음의 역사는 긍정적 신앙에서 옵니다. 바울도 사람인데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때로는 의문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어떤 계획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리하고 소망을 버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긍정의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안드레와 같이 자신의 문제를 그대로 주님께 가지고 나아오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문제 때문에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시는 것이다. 진짜 은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주님께 드리고 사랑을 베풀 때 주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발전하고 넓혀지기 원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헌신할 때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우리의 삶을 어둡게 만들고 하나님 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무능력한 신앙인을 만듭니다.
우리의 문제는 예수님 앞으로 갖고 나와야 합니다. 내가 해결하려고 한다면 우리도 빌립과 같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생각, 긍정적 생각, 도전적인 생각으로 할 수 있는 신앙되시길 바랍니다. 늘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승리를 주시는 주님을 믿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빌립이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의심했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으면 확신이 없기 때문에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마14:31 -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였습니다.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처음에는 베드로도 물위를 걸었지만 바람과 파도를 보고 곧 물에 빠져 버렸던 것입니다. 의심은 믿지 못하는 마음이고, 두려운 마음이고, 반대하는 마음이다.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데 하나님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막11:23 에-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주일 시간마다 선포되어 지는 말씀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직접 하시는 살아 있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으시길 바랍니다.
약1:6 에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라고 했습니다. 의심은 믿음의 적입니다. 의심하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이고, 믿음이 있으면 의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주님을 의심 없이 믿으시고 주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문제 앞에서 바로 주님을 의지 할 수 있는 특권과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꿈을 꾸었어요. 꿈을 꾸었는데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마 한창 자라나는 사람이었던 모양이에요. 자라날 때 우리는 떨어지는 꿈을 잘 꾸잖아요. 절벽에서 떨어지다가 나뭇가지를 잡았어요 다행히.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지금 힘이 자꾸 쳐지니까 나뭇가지를 잡고 소리를 칩니다.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누구 없어요?” 그런데 작은 소리가 들리더래요. “나 여기 있다”
“누구세요?” “나 하나님, 네가 믿고있는 하나님” “살려주세요!” “그래? 그럼 염려말고 손을 놓아! 내가 구원하마 손을 놓아!” 그러니까 자기가 한참 있다가 하는 소리가 “누구 다른 분 없어요?” 하하하~, 그러다가 자기도 웃겨 가지고, 웃다가 깨었대요 하하하~
웃자는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인생을 이런 식으로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역사에 조금도 의심 없이 주님께 맡깁시다. 할 수없는 신앙은 늘 의심하는 신앙이요, 믿지 못하는 신앙입니다.
여러분의 문제와 고난의 삶들을 조금도 의심 없이 주님께 맡기시고 "내 문제를 해결 해 주실 분은 예수님 뿐이다"라는 사실을 외치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시험을 당하고 어려운 문제가 있을때 생각만 하지 말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서 '이기고 극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그 문제에 도전하십시오.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은 안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권세와 능력이 있는 창조주 하나님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매어 달리고, 간절히 주님을 찾으면 주님은 만나주시고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보다 현실은 어렵고 상황은 승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해 조금도 의심 없이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은혜를 베푸실 줄 믿습니다. 바울은 감옥 속에서 고백했습니다. 빌4:13 -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러분도 사방이 꽉막힌 환경일지라도 사도바울처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는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 긍정의 힘은 미리 감사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5천 명이나 수많은 사람들은 넓은 잔디밭에 앉게 하시고 한 어린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축사(祝辭)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축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카리스테사스"라고 하는데 감사라는 뜻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기가 막힌 장면입니다. 누가 보아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앉혀놓고 어떻게 감사기도를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주님께서는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감사는 미래적인 감사입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도 중요하지만, 이제 이것을 통해서 5,000명이 먹을 것이다. 그래서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날의 일만 감사하거나 현재 손에 쥐고 있는 것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받을 것도 미리 감사해야 합니다. 아직 주시지 않은 것 까지 미리 먼저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은 큰 믿음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미래의 것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보리떡 다섯 개를 손에 들고 계시지만 벌써 저 멀리 5,000명이 배부르게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은 것을 보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미리 "이 떡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축사하신 것이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기도하는 방법을 설명하시면서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감사기도를 해야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설교를 들은 어느 부인은 자기도 남편 문제로 감사기도를 할 수 있었으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왜냐 하면, 남편은 매일같이 술이 만취되어 늦게 귀가하는 술고래였다. 그 날도 다른 날과 같이 술로써 인사불성이 되어 겨우 집에까지 도착해 문 앞에서 쓰러진 남편을 힘들게 끌어다가 겨우 눕혔더니 세상모르게 잠을 자는 것이다. 그 부인은 잠자리 들기 전에 기도를 하려니 자기 신세가 처량하고 화도 나서 기구한 팔자타령을 하며 "하나님, 나는 왜 이런 남자에게 시집을 와서 고생을 합니까?" 하고 훌쩍훌쩍 울면서 절반은 신세타령하고 절반은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감사 기도하라는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조건을 생각해보니 감사할 일이 생각났다.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을 생각하니 그래도 과부보다는 낫고 앞으로 언젠가는 좋은 남편 될 가능성이 있어서 감사하고 저토록 취했어도 집을 찾아오는 것을 보니 감사하고 토요일은 더욱 술을 많이 먹어 주일날은 집을 봐주어서 교회 가는데 불편하지 않아 좋고…… 계속해서 감사할 일들이 자꾸 생각나서 정말 감사하며 기도했다.
기도하는 중에 남편은 갈증이 나서 잠을 깨었는데, 비스듬히 옆으로 자기 부인을 보니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여 기도하고 있다. 전에도 기도하는 모습을 보기는 보았지만, 그때는 찡그리고 울면서 기도했는데, 오늘은 자기 부인이 웃으면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연발한다. 남편이 그제서야 일어나서 묻는다. "무엇이 그리 좋아서 웃느냐?"고 하니까 부인이 하는 말이 "당신하고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렇다"고 하더니 감사를 구체적으로 나열했더니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나도 예수 믿어 줄께"하면서 선뜻 교회에 나가겠다고 약속을 하더라는 것이다. 부인이 간증하기를 10년 동안 원망 기도했더니 이루어지지 않던 소원이 단 한번의 감사기도로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는 감사기도에 기적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감사에는 기적의 역사가 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받게 될 축복에 대해서까지 믿음으로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감사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불가능하고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손에 맡길 때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이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입니다.
하나님은 장기적인 회복의 역사를 추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상황을 바꾸시고 우리에게 강하고 건전하고 유익한 관계를 주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때 언제나 몇 곱절 더 좋은 복을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우리가 최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크고 새로운 비전을 품고 상황이 우리 쪽으로 변하기를 기대하여야 합니다.
어둠의 권세와 단호히 맞서겠다고 선포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사고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조건 신뢰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기쁘게 누리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비전을 키우라, 건강한 자아심을 키우라,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하라,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라, 역경을 통해 강점을 찾으라, 베푸는 삶을 살라, 행복하기를 선택하라 위의 일곱 단계를 꾸준히 밟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상상도 못할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한 목자가 되심을 인하여 절대 긍정적인 믿음을 가졌습니다. 우리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지십시다. 긍정적인 믿음의 소유자는 자신을 의지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거나 자랑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습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고백을 하며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역동적인 삶의 자세는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아가는 그 사람을 통하여서 일하시고 기적을 베푸시고 축복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절대 긍정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우리의 삶의 자세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어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고난은 잠간이요 기쁨과 행복은 영원하다고 긍정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유태인만큼 고난과 역경으로 얼룩진 역사를 가진 민족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즐겨 하는 말이 있습니다. "Say yes to life, in spite of everything"(삶에 대하여 어떤 경우라도 "네"라고 말하라)라는 말입니다.
삶에 대해 어떤 경우라는 우리는 신앙 안에서 긍정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런 긍정적인 신앙의 말을 통해 우리는 고난과 역경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시편에는 고난과 고통에 빠져 탄식하는 시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시들은 한결같이 신세한탄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시를 마칠 때에는 믿음의 확신의 고백들이 흘러나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만히 생각하면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찬양의 노래들, 긍정과 확신의 말들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정적인 말을 버리고 믿음의 확신으로 가득 찬 긍정적인 말을 생활화 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이,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이 긍정적인 말을 통해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여러분 어떻습니까?”라고 물을 때 비록 당장은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좋습니다”, “행복합니다” “신납니다”라고 긍정적으로 말하면 그 사람의 삶이 정말 좋아지고, 행복해지고 신나집니다.
여러분 제가 뭍습니다. 큰 소리로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성도님들의 앞에는 좋은 일만 일어납니다.
우리의 앞에는 많은 사건들과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긍정의 믿음, 긍정의 신앙으로 무장한다면 우리는 긍정의 힘으로 우리의 일생을 넉넉하게 이기고 승리하게 됩니다. 긍정적인 삶 속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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