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중보건의 자원의 감소로 인해 각 도단위 소방본부 119 상황실에 근무할 공중보건의가 없어 의료공백이 초래되고 있다고 언론이 들썩인다.
1980년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이 시행된 이래 30년 이상을 그저 병역의 의무를 다한다는 명분으로 공중보건의를 부려 지탱해온 한국 공공의료가 이제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농촌의 인구 감소, 도시화, 교통발달, 민간의료기관의 투입 등으로 실제 지역 보건지소의 필요성은 줄어드는데도 정치적인 이유로 지역의 보건지소, 또는 보건진료소의 숫자는 크게 줄지도 않았다.
그런데 119 상황실로부터 지역의 공공의료원까지 오로지 ‘거의 공짜로’부릴 수 있는 인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중보건의사들이 투입되어 왔다.
그러나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의과대학 학생 중 여학생 비율의 증가, 그리고 이제 18개월까지 군 복무 기간이 줄어든다는데 훈련 기간 포함 37개월을 해야 한다는 이 의무복무의 불균형으로 인해 공중보건의사 자원은 갈수록 줄어든다.
한국의 공공의료서비스는 거의 공중보건의사가 담당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 의료 역시 일부 장기복무 군의관을 제외하면 역시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의사들이 떠맡아 왔다.
만약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지 않고, 병역이 의무가 아니었다면 대체 우리나라의 공공의료와 군 의료는 어떻게 감당해 내었을까?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공공의료가 공중보건의사의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면, 민간의료, 특히 3차 의료기관의 의료서비스는 전공의의 희생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싼 값에 거의 무한정 부릴 수 있는 전공의 인력이 있으니 현재의 보험수가 하에서도 병원들이 파산하지 않고 근근이 버틸 수 있는 것이다.
4년간의 이 중노동을 과연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병원이 몇이나 될까? 선배 의사들이 “나 역시 겪었으니 너희들도 겪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부과하는 과중한 노동 중 얼마만한 부분이 과연 교육이고, 수련일까?
교수의 이름을 달고 있는 선배 의사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위나 아래나 할 것 없이 참으로 딱한데 사회와 제도의 불합리함으로 인해 생기는 모든 문제들을 오로지 자신들의 희생으로, 즉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더 많은 환자를 보아서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어떻든 ‘의사는 환자만 열심히 보면 그만’이라는 이 이데올로기는 많은 의사들로 하여금 정작 사회의 문제에 둔감하게 만들고, 더 좋은 의료환경의 창출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방해가 된다.
상상의 ‘허준’은 국민들 마음 속만큼이나 다수 의사들의 마음 속에도 있다. 장기려 박사와 이태석 신부가 모델이라지만, 장기려 박사가 활동하던 때에는 어떻게 해도 파산하는 병원이 없었고, 이태석 신부는 자신이 의료서비스를 통해 돈을 벌어 의료기관을 유지한 사람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책임지겠다면-나는 그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필요한 인프라를 깔고, 필요한 인력을 제 값을 주고 고용해야 한다. 의사 임금도 이제는 많이 떨어져서 경력을 따져보면 대기업이나 공사의 평균 임금과 거기서 거기다.
그래야 의사들이 다른 생각 없이 오로지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다. 1만 2,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건강보험공단이 평균 연봉 5,800만원씩을 주면서 그저 국민에게 돈을 걷어 건네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돈이면 필요한 의사를 모두 고용해 우리나라 공공의료 기본 인프라를 다 깔 수도 있을 것이다.
대체 언제까지 공중보건의사와 전공의에게 우리나라 의료의 척추를 떠맡길 것인가? 대체 국가는 언제까지 국민의 노동력을 공짜로 징발할 생각인가? 병역조차 지원병 제도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나오는 판에 그렇다면 공공의료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국민의 노동력을 공짜로 징발하는 이 제도, 즉 조용조(租庸調)는 당나라 때 완성됐는데,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당나라 수준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