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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무오성과 축자영감설/사본학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성경의 무오성에 대하여 많은 목사들과 성도들이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성경의 무오성을 비판하는 그릇된 반기독교적인 사상이 난무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선 신학교에서 다루는 영감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Ⅰ. 성경 영감(靈感)의 성질
1. 유기적 영감설(有機的 靈感說, Organical lnspiration)
이 견해는 우리 개혁파(개혁주의)가 수용하는 사상이다. 그러나 이 견해를 기계적인 영감설을 비판하는 역동적 영감설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기적 영감설이란 하나님께서 계시 하셔서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들에게 내적인 인간성과 외적인 행위에 의하여 문자와 언어 등을 사용하여 조화롭게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벌코프의 조직신학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는 저자들에게 성령으로 감동하게 하시고, 그들의 심령을 조명하시고, 죄의 영향력을 억제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여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하나님의 계시 진리를 표현하게 하는 동시에 그들의 개성, 성격, 재능, 경험, 교양(교육 및 수양), 용어, 문체, 어법 등의 인격적인, 인간의 요소들을 사용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성경은 창세기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까지 약 1,600년 간에 걸쳐 모두 40여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책이다. 성경 기록자들은 제사장, 선지자, 사도, 왕, 정치가, 군인, 음악가, 어부, 노동자, 군인, 농부, 시인, 사업가 등 각계 각층의 다양한 종류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시되 단순하게 기계적으로 받아쓰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특성과 자질에 따라 각각 특색 있게 기록하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기록했던 사람들은 시대와 연대와 사는 지역이 전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똑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의 통일성이라고 말한다.
구약시대의 대선지자인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9장 6절에서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이를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초자연적)라, 모사(충고자)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사야 7장 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더라”고 예언했다.
장래에 처녀가 아들은 낳게 되는데 그 아들이 하나님이라는 놀라운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들은 이사야와 같은 동일한 내용의 예언의 말씀을 남기고 있다.
2. 기계적 영감설(機械的 靈感說, Mechanical lnspiration)
이 견해는 구수론(口授論, Dactation Theory)이라고도 한다. 이 기계적 영감설은 성경의 저자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 하나님께서 불러주시는 대로 기계처럼 받아쓰기만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기계적 영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록 당시 저자들의 정신 활동이 정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고나 지식이나 언어가 성경을 기록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심지어 성경은 성령의 문체요, 성령의 문법이라고까지 말한다. 이 견해의 대표적인 인물은 영국의 신학자 후커(HooKer,1554~1600)를 들 수 있는데, 그는 말하기를 "성경 저자들은 자기 자신들의 말을 아무것도 말하거나 기록하지 않았고 성령이 그들의 입에 넣어주시는 대로 한 음절 한 음절 발음하였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기계적 영감설은 성경 저자들을 아무런 개성없는 로보트로 만들고 만다. 그러나 성경 속에는 분명히 성경 저자들의 각기 다른 독특한 개성, 문체, 경험 등이 나타나고 있다.
3. 동력적 영감설(動力的 靈感說, Dynamic lnspiration)
이 영감설은 또 다른 표현으로 조명적(照明的) 영감설이라고도 한다. 이 견해는 기계적 영감성 반대하여 생긴 학설로 자유주의의 우두머리로 통하는 슐라이허마허(Schleiermacher)가 제창한 학설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성경의 저자들은 그들 위에 역사한 성령님의 일반적인 감화를 받았을 뿐, 저자 자신의 마음대로 성경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성경의 저자들이 로보트와 같이 기계적인 방식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고, 그들이 기록하려는 단어들이 귀에 들려온 것도 아니며, 오직 그들의 내면적인 성결, 재능, 교육, 용어, 문체, 인격에 조화되도록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성령님께서는 성경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기록에 작용한 것이 아니라, 다만 저자들의 성격과 사상과 언어와 삶에 영향을 주어 그들이 영적 통찰력을 가지도록 변화시키는 힘(동력)으로만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님께서 글이나 내용에 영감을 주신 것이 아니라, 저자에게 영감을 주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자신의 문학 작품이지 계시는 될 수 없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저자의 능력이나 의사를 자유롭게 내버려 두시지 않으면서도 그의 모든 인격을 최대한 사용하시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음을 믿는다. 이 사상은 사탄을 숭배하는 사상에서 나온 사상이다.
4. 직관적 영감설(直觀的 靈感說, Intuitional Inspiration)
이 견해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도로 발달한 진리에 대한 통찰력이라고 본다. 즉 인간의 뛰어난 이성적인 통찰력을 영감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영감 없이도 진리를 이해하고 기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은 철학이나 예술은 세속적인 진리가 낳은 산물이며, 성경은 도덕과 종교적인 사건에서 생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견해를 취하는 대표적인 학자들은, 고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 서론에 따르면, “영국의 모렐(Morell)과 뉴만(F.W. Newman), 미국의 데오돌 파커(Theodore Parker)” 등이라고 지적했다.
Ⅱ. 성경 영감(靈感)의 범위
1. 부분적 영감설(Partial lnspiration)
이 견해는 18세기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견해이다. 부분적 영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의 어느 부분만 영감된 하나님 말씀이고, 어떤 부분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고 한다. 이들은 성경을 '교리적인 부분'과 '역사적인 부분'으로 나누어 교리적인 부분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역사적인 부분은 이방 문학 작품이나 신화, 전설 등을 편집한 것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성경 전체가 영감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영감되었다면 어떻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신구약 성경(66권)은 모두 하나님의 초자연적 영적 감화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
2. 사상적 영감설(Conceptual lnspiration)
사상적 영감설을 주장하는 자들에 의하면 성경의 전체적인 사상은 영감 되었으나, 그 사상을 표현하는 문자나 용어들은 성령님의 지도나 감독없이 저자 자신이 선택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저자에게 사상만 주시고 언어선택은 저자 자신이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순된 주장이다.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하며, 사상과 언어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주자에 따르면 성경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이 견해는 비성경적인 것이다. 오르(Orr)라는 학자는 말하기를, “계시와 영감은 사상과 개념들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이것들이 기자의 말을 통하여 독자적으로 표현된다.”고 주장했다.
3. 완전 축자 영감설(Plenary verbally lnspiration)
성경은 어느 특정한 부분만 영감된 것이 아니라 모든 구절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영감되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一點 一劃)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5 :18)고 하셨으며, 또한 성경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라고 기록하고 있다.
계시 진리인 성경은 분명하게 성경 자체의 영감의 성질과 한도를 가르친다. 즉 영감의 성질에 있어서는 유기적 영감론이 개혁파 신학의 입장이며, 영감의 범위에 있어서는 한 부분이 아니라 성경 66권 전체가 완전하게 영감이 되었다는 완전축자 영감설이 개혁파의 입장이다.
개혁파의 완전축자영감설(무오성)에 대하여 한국의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김재준(한국신학대학 교수) 씨는 성경의 오류성을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하나님이 최대한 활동하고 사람은 최소한으로 활동하는 경우에 영감은 더 커진다고 믿는 것이 보통 민속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온전한 영감이란 것은 그 영감을 받는 사람이 아주 기계처럼 되어서 자기 의식까지 잃어버리고 접신하였다는 무당같이 되는 것을 말함이다. 이런 생각에서 소위 축자영감설이 생겨난 것이니”라고 하였다(장공 김재준 전집 제1권, 한신대학교 출판부, 1971, p.93).
그러나 한국의 자유주의 대표자인 고 김재준 교수는, 개혁파가 말하는 유기적 영감설과 영감의 범위에 있어서 축자 영감설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억측이다. 우리 개혁파가 말하는, 영감의 성질에 있어서는 유기적 영감론은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계시 진리를 기록하기 위해 그들의 개성, 성격, 재능, 경험, 교양(교육 및 수양), 용어, 문체, 어법 등의 인격적인, 인간의 요소들을 모두 사용하여 성경을 기록했다는 견해이다
Ⅲ. 성경에 대한 논란
기독교의 역사가 2천년의 세월이 흐른 것처럼 성경도 매우 다양하다.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 시리아어, 이집트어, 라틴어, 영어, 독일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최초의 성경은 원문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으로서 모음이 없는 자음으로 기록되어진 성경으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성경을 기록할 때 양의 가죽(양피지)이나, 파피루스(나일강 등에 많은 갈대 속으로 만든 종이)와 또는 토서판(진흙으로 만든 판) 등에 기록되었다. 이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파피루스였다. 파피루스는 가볍고 많은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문제는 갈대의 속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면 낡아져 파피루스의 부분들이 떨어져 나갔다.
이것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 원문 성경의 내용을 다른 파피루스 사본에 고스란히 옮겨 기록했다. 이것이 사본이다. 즉 사본이 곧 원본이다. 구약 히브리어 원문성경(자음)은 주로 양피지(가죽)에 기록했다. 성경이 기록되기 시갖한 최초의 연대는 주전(B.C.) 1500년이다.
히브리어 자음 성경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회당용 성경이다. 이 성경은 구약의 일부와 핵심 율법이 포함되어 있었다. 둘째는 개인용 히브리어 성경이다. 이 성경은 구약 전체, 또는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히브리어 자음 성경은 매우 철저하게 관리 되었으며, 원문에서 사본으로 옮기는 과정도 엄격했다. 우선 낡은 양피지나 파피루스에서 원문을 그대로 옮길 때 검은 잉크로 기록한 후에 30일 이후에 서기가 철저하게 한 글자 한 글자를 세워 가면서 검사했다. 만약 검사 도중에 오자(誤字)가 4개만 발견되어도 그 사본은 성경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현재 히브리어 성경의 사본 중에는 주후 5세기에서 8세기 경에 활동했던 맛소라 학자들이 히브리어 자음 성경에 모음을 붙어 기록한 히브리어 맛소라 원문(사본)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맛소라 사본들을 철저하게 연구한 학자는 두 사람이 있다. 영국의 신학자인 벤자민 케니캇트(Benjamin Kennicott, 1776~1780)와 이탈리아의 학자인 조반니 띠 로시(Giovanni De Rossi, 1784~1788)이다. 벤자민 케니캇트(Benjamin Kennicott)는, 무려 615개의 사본과 52개의 출판되어 있는 성경사본들을 검사했다. 조반니 띠 로시(Giovanni De Rossi)는, 731개의 사본과 300개의 출판되어 있는 사본들을 조사했다. 철저하게 조사를 마친 두 학자는 모든 성경의 사본들은 하나의 원본에서 나왔다는 결론을 내렸다.
Ⅳ. 구약성경 사본들과 70인 역(Lxx)
구약의 성경 사본에 대하여 한국교계의 신학자들은 보편적인 상식으로, 첫째는,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이 있다. 이것은 주후 300-1000년 사이에 맛소라의 학자들이 과거에 자음만 사용하던 고대 히브리어에 모음을 붙어 누구나 읽기 편하도록 만든 성경이다.
둘째는, 사마리아역이다. 이 성경 사본은 앗수르 왕이 티글랏 빌레세 3세가 치세하던 주전(B. C.) 747-727년 시기에 형성이 되기 시작하여, 현존하는 것으로는, 주후 1232년경에 만들어진 성경사본이다. 이 성경도 그 권위를 무시 할 수 없는 성경사본이기는 하지만, 히브리어 맛소라의 권위에 비교 할 수 없다.
셋째는, 칠십인역(Lxx)이다. 현재 한국교계의 신학자들과 교계에서 출판하고 있는 많은 종류의 성경주석과 사전 종류 등에 반드시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칠십인역(Lxx)으로 알려진 이 문서는, 사실 성경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문서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착각하고 자주 인용하면서 강조하는 것은 커다란 실수이다.
1. 70인 역(Lxx)의 역사적 허구성
우리나라의 많은 신학자들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가 서기(A. D.) 212~213년경에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 본문과 네 가지의 헬라어 역과 주석을 대조시켜 번역한 헥사플라(Hexapla=6란 성경)를, 70인역(LXX=주전 275년)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70인역은 역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70인 역(LXX: Septuagint, 셉투아긴트)은 헬라제국에서 분리된 프톨레마이오스(헬라어; Ptolemaios, 영어; 톨레미, Ptolemy) 제국의 두 번째 2왕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퍼스(Philadelpus B. C. 285-247)의 치세에 왕의 신하인 아리스테우스(Aristeus)가 청원하여 유대 지파에서 각 6인씩의 장로들을 뽑아 70명의 장로들이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가 저술한 유대 고대사 12권 제 2장에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말씀보존학회의 이송호 목사 측에서는 그 시대에 번역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부인해 버린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당시의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모두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이기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과연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전, 신구약의 중간시대에 히브리어 구약성경이 이집트에서 헬라어로 번역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신구약 시대의 중간기에는 역사적으로 12지파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당시의 유대 최고 율법 지도자들도 12지파를 찾지 못했다. 유대에서 발생한 다양한 전쟁으로 백성들은 대부분 포로로 잡혀 가고,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현재까지도 유대인의 12지파는 하나님만 아실뿐, 인간은 그 행방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신구약 중간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닥 왕의 도움으로 자신의 모국으로 돌아올 때에도 12지파가 모두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에게는 12지파 외에도 다윗 왕 때 만들어진 24반열이 있는데, 다윗 왕은 대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이었던 엘리아살과 이다말의 자손들은 24반열로 나누어 1년에 2회씩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봉사하도록 했다(역대상 24:1-7).
바벨론에서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제 2차로 귀환했으나, 백성들은 대부분 뿔뿔이 흩어지고, 겨우 4반열만 돌아왔다. 그 반열은, 여다야, 임멜, 바수홀, 하림이었다(느헤미야 7:39). 이 네 반열을 24반열로 나눠 성전에서 봉사하도록 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흩어진 12두 지파를 모두 찾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도 12지파라고 언급하지는 않고,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유대인의 대제사장에게 서신을 보내 각 지파에서 율법에 정통한 장로들을 각각 6명씩 보내 달라고 요청해 주십시오.”라고 언급했다(고대사 12권 2장 4절).
더 나아가 요세푸스는 “이것이 엘르아살 대제사장이 왕에게 보낸 답신이었다. 이 서신 밑에는 엘르아살이 율법서와 함께 보낸 칠십(이) 명의 장로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나, 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생략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유대 고대사 12권 2장 7절).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70인의 장로들은, 톨레미 왕의 초대를 받고, 이집트에 도착하여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는데 불과 72일 만에 완성했다고 밝히고 있다(유대 고대사 12권 2장 13절). 이제 70인역의 의문들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첫째, 70인역은 반드시 열두 지파를 언급하는데 당시에 12지파가 있었는가?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12지파에서 6인씩을 이집트로 초청하여 72인의 장로들이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다는 말은 어디에서 나온 말인가? 또한 70인 역인가? 72인 역인가?
프톨레마이오스 2세인 필라델푸스(Philadelpus B. C. 285-247)의 신하로 알려진 아리스테우스가 쓴, ‘아리스테아스의 서신’(The Letter of Aristeas)에는 72인 역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왜 ‘70인 역’(Septuaglnt, Lxx: L=50, X=10, X=10)으로 말할까? 2명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둘째, 과연 72명의 장로들이 히브리어로 되어 있는 구약성경 전체를 72일만(2개월 10일)에 번역할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인다. 오늘날처럼 고도로 발전한 시대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한국성경공회 번역 상황).
셋째, 역사의 날조라고 알려진 교회 사가인 유세비우스(Eusebius, 274~340)는, 아리스토벨루스(Aristobelus)의 글을 인용하면서, 필라델푸스(Ptolemy Philadelpus) 왕 때 번역했던 성경은, 모세오경에 국한되어 있었다고 한번 언급하고 있으나, 믿을 만한 기록이 되지 못한다. 또한 모세 오경의 번역을 언급하면서 그 번역자들이 하나님은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철저하게 거부했던 영지주의자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 Judeaus, B. C. 20~50)가 참여했다는 것도 믿을 수 없는 기록이다.
넷째,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 12권 2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아리스테스우(Aristeas)는 정확하게 어떤 사람이었는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기록하기를 “한편 왕의 가장 친한 친구 가운데는 겸손하기 때문에 특별히 왕이 가깝게 여기는 아리스테스우(Aristeas)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언급했다(고대사 12권 2장 2절). 그는 구약 시대의 여호와 하나님을 이방인의 신인 주피터(Jupitre)와 동일하게 보면서 히브리어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이집트의 노예로 잡혀 있는 100,000명 가량의 유대인들을 석방해 주어야 한다고 왕에서 선처를 호소했다(고대사 12권 2장 2절).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처럼, 아리스테아스의 서신’(The Letter of Aristeas)을 남긴 아리스테스우(Aristeas)는, 한국교계에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처럼 왕이 신하가 아니라 왕의 친구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아리스테우스는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유대인으로 헬라철학을 신봉했다는 사실이다.
다섯째, 사본학에 밝은 바울 칼레(Paul Kahle, 1875~1964) 교수는, 예수님 이전에는 ‘70인 역’과 같은 그 어떤 번역본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여섯째, 주후(A. D.) 300년 이전에는 헬라어 번역본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주전(B. C.) 250년경에 70인역이 존재했다는 역사적인 증거를 찾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주후(A. D.) 300년 이전에 존재했던 헬라역 성경은 이단자였던 오리게네스가 저술한 헥사플라(Hexapla: 6란 성경) 밖에는 없었다.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Hexapla)는 구약성경을 6개 역본(Version)으로 구성한 것으로 세로로 기록되어 있다. 모두 6개의 란(Column; 역본)으로 구성되어 있는 헥사플라(Hexapla)는 저자를 알 수 없는 것도 3개 정도가 포함되어 있다. 헥사플라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란=히브리어 구약 성경으로 맛소라 본문과 같은 것이다.
제2란=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음역한 것이다.
제3란=아퀼라(Aquillar, A. D. 59~135)가 번역한 것으로 헬라어로 되어 있다.
제4란=심마쿠스(Symmachus, A. D. 160~211)가 번역한 것으로 헬라어로 되어 있다.
제5란=오리게네스 자신이 번역한 것으로 70인역으로 알려진 것이다.
제6란=데오도티안(Theodtian, A. D. 140~190)이 쓴 것으로 헬라어로 되어있다.
이런 근거에 따라 ‘70인 역’(Septuagint)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으며, 오리게너스가 저술한 헥사플라(Hexapla: 6란 성경)가 바로 70인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로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 제 5란을, 70인 역의 개정본이라고 학자들은 인용했던 것이다. 사실 제 5란은 주후(A. D.) 220~254년 사이에 기록한 것으로, 오리게너스의 번역본이 아니라 벨과 용(Bernard Dragon), 토빗(Tobit), 유디스(Judith) 등의 가경(외경)이 포함되어 있는 바티칸 사본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영어의 개역본(RV)과 미국표준역본(ASV), 개역표준역본(RSV) 등의 성경이 나왔으며, 한글 개역 성경도 이런 성경들의 영향을 받았다.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의 제5란에 대하여 미국표준역본(ASV)의 구약성경 개정 위원장직을 역임했던 프리메이슨이었던 필립 샤프(Phillip Schaff)는, 자신이 교회사(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2, p.794)에서 헥사플라의 아퀼라(Aquillar), 심마쿠스(Symmachus), 데오도티안(Theodtian) 등을 언급하면서 제 5란이 70인 역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제자로, 자신의 스승과 같이, 성경의 진리를 철저하게 왜곡시킨 이단자들이었다. 더욱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곧 사탄을 숭배하고 있는 프리메이슨 조직의 하나인 로마카톨릭의 교황의 명칭이 여기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헥사플라(Hexapla: 6란 성경)의 제3란 아퀼라(Aquillar)의 내용을 보면, 구약의 여호와(Johovah) 하나님을 번역하기를, ‘아버지’(Pipa PaPa)로 번역했다.
이 말에서 양부(養父)를 뜻하는, ‘팝스’(PaPs:아버지)라는 단어가 생기게 되었고, 이것이 다시 ‘폽’(Pope: 교황)이라는 말로 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교황을 구약의 하나님과 동일 선상에 놓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로마 카톨릭의 건축물이나 역사적인 문서에서 어렵지 않게 로마 교황을 가리켜 ‘거룩한 아버지’라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곧 교황이 신(神)이라는 주장이다. 제2의 바티칸 공회에서 교황의 무오설을 발표 한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신학자들이 70인역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헥사플라의 제 3란에서 아퀼라가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세기 인쇄업자이며, 학자인 스테파누스의 구약성경의 이사야 7장 14절에 나오는 처녀(히브리어 알마, ה???)를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의 아퀼라에서는 젊은 여자를 뜻하는 ‘네아니스’(νεανις)로 번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처녀(동정녀)를 젊은 여자로 둔갑시켜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왜곡시키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구약성경 이사야 7장 17절에 나오는 히브리어 알마(처녀)를, 헬라어 스테파누스의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1장 23절에 나오는 처녀를 팔데노스(παρθἐνος, 처녀)로 번역했다. 오리네게스도 신약성경을 읽었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신약성경 마태복음 1장 17절에 기록되어 있는 처녀(팔데노스)를 첫 눈에 확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헥사플라를 기록하면서 젊은 여자로 둔갑시켰다. 이처럼 사탄의 역사는 매우 교활하다.
Ⅴ. 신약성경의 사본들
이제는 신약성경의 사본을 고찰하기로 하겠다. 신약 사본은 5.336본이나 존재한다. 이것을 다시 세 계열로 나눈다. 첫째 전통표준원문(시리아, 안디옥 사본)계열 사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계열 사본(왜곡), 서방계열(로마 가톨릭 중심 사본) 등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분류는, 독일의 콘라드 카스파(Konrad Kaspar, 1705-1777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성경 원문 비평가로 활동했던 독일의 요한 야곱 그리스바흐(Johann Jakob Griesbach, 1745년 1월 4일-1812년 3월 24일)가 분류하면서 부터이다.
그는 요한 잘로모 젬러(Johann Salomo Semler, 1725-1791)의 제자이기도 했다. 그의 스승인 젬러(제르로, 제믈로)는,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로 성경 본문 비평가로 할레대학교의 신학 교수로 재직했었다(1753~91). 성경의 본문 비평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는 합리주의자였던 지그문트 야코프 바움가르텐의 제자이기도 하였으며, 최초로 ‘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아무튼 요한 야곱 그리스바흐(Johann Jakob Griesbach, 1745-1812)는, 헬라어 신약 본문에 대한 모든 작업의 근거를 만든 인물로, 분문 비평에 관한 15개의 케논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짧은 이문은 비록 그것이 증거의 권위에 의해 다른 것보다 열등하게 여겨질지라도 더 나은 것이다.”라는 기준을 제시기도 하였다.
그리스바흐(Johann Jakob Griesbach)는, 신약성경은 3개의 중요한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그것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n) 그룹, '웨스턴 그룹(Western), 비잔틴 그룹(Byzantine)으로 분류하여 연구했다. 그가 자유주의 학자의 제자로 본문비평이라는 반기독교적인 학문을 적용시키기는 했으나, 신학의 사본들을 분류하여 연구했던 것은, 편리함을 제공함과 동시에 옳은 분류이기도 했다.
1. 하나님의 전통원문(The Traditiona: Text)
하나님의 거룩하신 섭리(경륜)에 따라 잘 보존되어 온 성경 사본을 가리켜 전통원문이라고 한다. 이 성경은, 초대교회의 사도들에 의한 순교적 신앙으로 전승되어 온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전통원문(The Traditiona: Text)이라고 칭한다.
이것은 인간의 전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원문의 맥이 하나님의 전통(Divine Tradition)에 의하여 보존되어 본 것을 말하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섭리(경륜)에 의하여 잘 보존되어 온 원문을, 다수필사본(Majority Text), 인정받은 원문(Received Text), 표준원문(Textus Receptus), 또는
비잔틴 원문(Byzantine), 공인 본문(Textus Receptus) 등으로 불리는 것으로 300여 년간 역사적인 정통 기독교와 유럽의 교회들이 사용했던 성경들이다.
여기에서 비잔틴 원문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리스의 교회들이 비잔틴 제국의 시대에 사용했던 원문을 사용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 사도시대에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일어나자 사도들과 성도들이 세계 각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복음을 전하면서 시리아의 안디옥에 제 2의 본부라고 할 수 있는 교회를 세워 활동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이곳을 무대로 사도 바울은 선교 활동을 하게 된다. 우리의 보편적인 상식으로, 신약 27권 중 바울 서신은, 교리서신(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 3권, 정치서신(고린도전서와 후서) 2권, 옥중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4권, 전도서신(데살로니가 전, 후서) 2권, 목회서신(디모데 전, 후서와 디도서) 3권 등을 포함하여 모두 13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은 대부분 이스라엘과 시리아를 중심으로 헬라어 또는 시리아어 등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은 잘 보존이 되어 왔으나,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100% 완벽한 사본은 매우 희귀하게 되었다. 그러나 몇 곳에 문제가 있는 부분들은 다른 사본과 대조한 결과 100% 원문과 일치하다는 결론을 었었다. 아래의 성경 사본들은, 과거의 교회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해 오던 권위 있는 성경 사본들이다.
2.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잘 보존되어 온 성경 사본들
1)페쉬타 성경(Peshitta Bible, 150), 시리아에서 시리아어로 기록되었다.
2)이테리 성경(Ltala Bible, 157)
3)위클리프 성경(Wycliffe's Bible, 1382), 위클리프의 성경은 14세기 영국에서 라틴어로 번역되었으며, 후에는 영어로 번역이 되었는데, 영어 번역으로는 최초의 성경이다. 이 성경은 위클리프가 22년의 노력 끝에 1382년에 완성한 성경이다.
4)에라스무스 성경(Erasmus Bible, 1522), 에라스무스(Erasmus)가 편집하여 출판한 최초의 헬라어 신약 성경이다. 이 헬라어 역본을 TR(Textus Receptus)이라고 한다. 당시 에라스무스가 수집한 헬라어 사본은 모두 5권이었다. 그 중에 요한계시록을 포함하고 있는 사본은, 단 1권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것도 마지막 6절이 빠져 있는 것이었다. 에라스무스는 어쩔 수 없어서 라탄어로 되어 있는 제롬의 벌게이트 성경 내용을 가져와 헬라어로 번역하여 넣었던 것이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에라스무스의 성경 등을 대본으로 삼아 영어로 번역이 되었다.
5)틴데일 성경(Tyndale's Bible, 1525), 윌리암 틴테일(William Tydale)은 로마 카톨릭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신약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 그가 번역한 성경책들은 런던에서 공공연히 불태워 졌고, 마침내 그도 성경을 보급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화형을 당하고 말았다.
5)루터 성경(Luther's Bible, 1534), 마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했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사탄을 숭배하는 장미십자가 일원이었으며, 칼빈파를 박해하고 탄압하는데 앞장섰다.
6)카버데일 성경(Coverdale Bible, 1535), 영어 성경을 기독교 최초로 인쇄했던 사람은 마일스 카버데일(Miles Coverdale, 1488-1568)이다.
7)매튜 성경(Matthew's Bible, 1537), 토마스 매튜(Thomas Matthew, 마태)에 의하여 1537년에 영어로 번역이 되었다.
8)그레이트 성경(The Great Bible, 1539), 영어 성경으로, 영국의 국교에서도 사용했다.
9)스테판 성경(Stephen's Bible, 1550), 인쇄업자인 스테파누스가 출판한 헬라어 성경으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성경이다.
10)제네바 성경(Geneva Bible, 1560), 영어 성경으로 제네바의 개혁파들이 주로 사용했던 성경이다.
11)비숍 성경(Bishop's Bible, 1568), 영어 번역 성경으로, 영국의 국교회에서도 사용되었다.
12)베자 성경(Beza's Bible, 1604), 칼뱅의 제자인 베자가 출판한 헬라어 성경이다.
13)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 1611), 영어 성경이다.
킹 제임스 왕은 로마카톨릭을 배격하고, 주후 1604년 47명의 신학자들을 선정하여 성경의 이전 판에 대한 개정 작업을 했는데, 이 성경이 바로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이다. 이 성경은 칼빈의 제자 베자 성경, 인쇄업자인 스테파누스 성경 등을 대본으로 번역한 성경이다.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은, 영국의 제임스 왕이 성경의 권위를 인정했다.
만약 킹 제임스 왕이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성경은 언제나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보존하시고, 섭리하신다. 바로 이런 성경들이 종교 개혁 때 전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인가 다수필사본(Majority Text), 인정받은 원문(Received Text), 표준원문(Textus Receptus), 또는 비잔틴 원문(Byzantine), 공인 본문(Textus Receptus), 시리아 안디옥 사본, 또는 전통원문(The Traditiona: Text) 등으로 불리는 성경의 사본들이 서서히 붕괴되었다. 그 원인은 이미 지적했듯이 자유주의의 본문비평(하등비평)의 영향력과 사탄을 숭배하는 프리메이슨들의 조직적인 개입으로, 인간이 변개시킨 성경들이 주류를 이루는 상황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2. 전통표준 원문을 따르지 않는 변개되어진 성경들
1)시내산 사본(Sinaiticus, 350)
2) 바티칸 사본(Vaticanus, 350)
3) 제롬의 벌게이트(Jerome's Vulgate, 382)
4) 알렉산드리아 사본(Aleexandrian, 450)
5) 이프라임(Ephraem, 450)
6) 듀웨이(Douay, 1582)
7) 클레멘틴 벌게이트(Clementine, Vulgate, 382)
8) 그리스박(Griesbach, 1805)
9) 락크만(Lachmann, 1870)
10) 트레겔레스(Tregelles, 1870)
11) 워드워즈(Wordswrth, 1870)
12) 티쉔돌프(Tischendort, 1872)
13) 알포트(Alford, 1872)
14) 웨스트코트와 홀트(Westcott and Hort, 1881)의 헬라어 성경
15) 영어 개역본(English Revised Version, 1881)
16) 헬라어 네슬 원문(Nestie's, 1898)
17) 개역표준 역본(Revised Stanasrd Version, 1952)
18) 미국표준 역본(American Standard Version, 1901)
이런 성경들의 영향력을 받은 성경이 바로 한글개역성경이다.
Ⅵ. 본문비평과 고등비평
우리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특별은총과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성립된다. 그 만큼 우리에게 있어서 성경은 중요하다. 성경이 중요한 만큼, 성경 사본학에 있어서도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사본학에 대하여 한국교계는 거의 황무지나 다름이 없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외국의 사본학에 대한 바른 정보들을 제공하는 전문적인 책들이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책에 영향력을 받은 소수의 신학자들이 바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어 보이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우리는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고는 말씀을 볼 수 있다. 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을, 사탄(마귀)은 다음과 같이 변개시켜 아담과 하와에게 각인시켰다.
창세기 3장 4절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는 사탄의 역사는 단순하게 에덴동산 시대에만 국한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역사를 통해 성경의 사본학을 살펴보면,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본학을 그 얼마나 이용했는지 모른다. 문제는, 성경을 사수해야 할 개혁파(정통파, 보수주의) 신학자들마저도 사탄의 교활한 술책을 깨닫지 못하고, 거기에 동조하는 오류까지 범하고 있다. 그 실상들을 구체적으로 고찰하여 보기로 하겠다.
한국교계의 신학교들은 사본학과 관련이 있는 고등비평(higher criticism)과 하등비평(lower criticism)을 배운다.
우선 고등비평은 독일의 베를린 대학교의 교수(1832∼1833)를 역임했던 아이히호른(Karl Friedrich Eichhorn, 1781~1854)이 최초로 주장했던 학문이다. 고등비평은, 성경의 각 권들의 저자와 연대 등을 역사적, 사상적 배경을 통해 이해하는 학문으로, 성경을 단순하게 문학 서적이나 역사 서적 정도로 취급하는 반 기독교적인 학문으로, 문학비평, 역사비평 또는 고등비평이라고 한다.
개혁파(개혁주의, 정통파, 보수주의) 신학자들은, 고등비평이 마귀(사탄)에게서 나온 곳이라는데, 보편적으로 동의한다. 문제는, 영국과 미국에서 유행하다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하등 비평(lower criticism)’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다는 점이다. 개혁파 신학자들은 ‘하등비평’을 다른 표현으로,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이라고도 하면서 이것이 중립적이며, 공정한 사본학의 정당한 학문이라고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아무런 연구나 조사도 하지 않고, 사본학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메츠거(Bruce M. Metzger)가 쓴 책을 교과서로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며, 신약 원어 성경으로는, 네슬레(Nestle)판을 최고의 성경 사본임을 주저 없이 믿고, 그렇게 가르치고 사용하고 있다.
이 운영자와 한국교계의 개혁파(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존경하는 고 박윤선 박사도 메츠거에 속고 있을 정도이다. 한 마디로 신구약 성경 사본학에 대한 전문지식의 결핍으로 한국교계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고등비평(higher criticism)도 하등비평(lower criticism)도 사탄을 숭배하는 자들에게서 나온 반기독교적인 학문이다.
현대 사본학에 결정적인 영향력은 미친 사람들은, 본문비평(하등비평)가였던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 교수였던 웨스트코트(B. F. Westcott, 1825-1901)와 같은 동료였던 홀트(F. J. A. Hort, 1828-1992)가 두 권의「헬라어 신약성경」을 출판하면서 부터이다.
이 성경이 바로 헬라어 신약성경(The New Testament in Original Greek, 1881)이다. 이 성경은 바티칸 사본과 시내산 사본에 근거하여 만든 것이다. 바티칸 사본은, 1481년 로마 카톨릭의 바티칸(교황청)에서 발견되었으며, 시내산 사본(1844년 1차 발견, 1853년 2차 발견, 1859년 3차 발견)은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어서 땔감으로 버린 신약 사본들이었다.
역사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로마카톨릭은 주후 1229년에 개인이 성경을 구독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켰으며, 주후 1546년에는 인간의 유전을 성경과 같은 권위로 결정하였으며, 주후 1546년에는 가경(외경)을 정경으로 공인하기도 했다.
이처럼 본문비평(textuak criticism), 또는 하등비평(lower criticism)가였던, 웨스트코트(B. F. Westcott, 1825-1901)와 홀트(F. J. A. Hort, 1828-1992)가 출판한 헬라어 신약성경(The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은, 두 사람의 공동 작품으로 세상에 내어 놓기는 했지만, 사실은 젊어서부터 프리메이슨 조직에 하나인 로마 카톨릭의 제수이트(예수회)의 정회원으로 활동했던 홀트(Fenton John Anthony Hort, 1828─92)가 주로 작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로마 카톨릭의 제수이트(예수회)가 이 헬라어 성경을 내 놓을 때는 이미 사탄을 숭배하는 프리메이슨의 핵심 조직이었던 일루미나티(Illuminati)의 창설자인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가 로마 교황청을 모두 접수한 상태였으며, 최초로 제수이트(예수회)를 만든 이그나티우스(로욜라 출신)도 기독교(위그노, 칼빈파, 개혁파)를 파괴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인물이었다. 이미 살펴 본 것처럼 본문비평(textuak criticism), 또는 하등비평(lower criticism)이 성경을 공정하게 연구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아니라 성경은 파괴시키기 위해 도입한 학문이다.
이 학문을 그대로 계승한 사람이 바로 메츠거(Bruce M. Metzger, 1917년 2월 9일-2007년 2월 13일)이다. 개혁파(정통, 보수, 개혁주의)를 지향한다는 신학자들이 소위 메츠거 등을 사본학의 대가로 착각하고, 본문비평(textuak criticism), 또는 하등비평(lower criticism)의 학문이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학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며, 바티칸 사본이나, 시내산 사본 같은 사이비 사본들을 권위 있는 사본으로 가르치고 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나온 헬라어 넷슬판(알란드) 등을 강조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사탄을 숭배하는 자들이 이러한 성경을 내 놓은 목적은 오직 하나이다. 그것은, 전통표준원문(안디옥, 시리아 사본), 또는 비잔틴 성경 사본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아래는 전통표준원문을 따르지 않거나 후대에 프리메이슨들이 변개시킨 성경들이다.
Ⅷ. 말씀보존학회(이송호 목사)의 문제들
말씀보존학회 이송호 목사는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1611년판)과 이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성경 외에는 사탄이 변개한 성경이라고 강조할 뿐만 아니라,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과 자신이 번역한 한글 킹제임스 성경만이 오류가 없는 완벽한 성경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신앙의 양심을 저버린 소리이다. 전 세계의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 출판된 성경들은 번역상의 많은 오류들이 있다. 어떤 언어이든지 100% 번역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또한 말씀보존학회는, 돌트회의(The Synod of Dort, 1618년 11월 소집-1619년 5월 폐회)에서 결정한 장로교의 5대 교리 중 적어도 3가지는 성경에서 빗나간 이론이라고, 열을 올리면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알미니우스의 자유의지 사상이 이단이었던 펠라기우스의 사상을 그대로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의 논란거리가 될 수 없으며, 사탄을 숭배하는 프리메이슨들이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파괴하기 위해 도입한 사상이다. 이제 말씀보존학회가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 고찰하기로 하겠다.
1. 말씀보존학회의 이송호 목사의 약력과 기관들
1)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중퇴
2) 대한항공 조종사
3) (미국) 태평양 연안 침례교 성경대학(Pacific Coast Baptist Bible College), 신학사
4) (미국) 리버티 대학교(Liberty University) 대학원, 상담심리학 석사 과정
5)(미국)캘리포니아 신학교 졸업(Califonia Graduate School of Theology) 신학 석사, 신학 박사.
6)(미국) 캘리포니아 포모나 센트럴 침례교회(Central Baptist Church, Pomona, CA.) 교육목사
7) (미국) 캘리포니아(Califonia) 주립, 치노(Chino) 형무소 목사
8) 선교침례교회(경기도 송탄시) 목사
9 (현) 말씀보전학회 대표
10) (현) 펜사콜라 성경신학원 원장
11) (현) 성경침례교회 담임목사(교단이 없는 독립교회 형태로 운영)
서울 강서구 방화동 829-4(금강 프라자 빌딩 7층)
12) 주요기관들: 말씀보존학회, 펜사콜라 성경신학원, 서울 크리스챤 중고등학교(대안학교), 킹제임스 사이버 신학원,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국내에 있는 지교회가 약 15개 정도 있고, 미국에 1곳이 있다. 교세는 대략 천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말씀보존학회가 주장하는 내용들
말씀보존학회(이송호 씨(목사)는 장로교회의 5대 교리 중 3개의 교리들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있으며, 자신들은 이단으로 정죄가 되었던 알미니우스 입장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그들은 미국의 피터 럭크만(Peter S. Ruckman)이라는 인물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피터 럭크만은 1965년 9월에 미국 플로리다(Florida)주 펜사콜라 시에 성경신학원을 설립했으며, 성경침례학교회의 담임 목사이다. 그런데 피터 럭크만은, 클라렌스 라킨(Clarence Larkin) 쓴 “세계적 진리”(Dispentional Truth)라 책에 의존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적 진리”라는 책에서 세대주의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세대주의의 사상은 프리메이슨에게서 나온 사상이다. 역사적으로 세대주의 사상에 맨 처음에 영향을 준 사람들은, 스페인의 제수이트(예수회) 회원이었던 알카자(Alcazar)와 스페인의 제수이트 회원이었던 리베라(Ribera)가 있다. 그런데 리베라는 프리메이슨 장미십자회 비밀결사 요원이었다. 이 두 사람의 영향력은 받은 사람은, 임마누엘 라쿤자(Emanuel Lacunza)이다. 그는 1747년(16세)에 제수이트(예수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의 본명은 랍비 벤 애즈라(Rabbi Ben Ezra)이다.
그의 저서인 “영광과 위엄의 구세주 오심”(1812년)이라는 책에서 최초로 환란전 휴거를 주장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라쿤자가 쓴 이 책은 영국의 에드워드 어빙(Irving, Edward(1792-1834)이 스페인어의 라쿤자의 책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영향을 받았다.
어빙은 예수님의 인성에 죄가 있다고 주장을 하다가 1830년 론돈장로교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다. 그는 원래 스코틀랜드의 목사로 에든버러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1815년 스크틀랜드 장로교의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단으로 정죄를 받은 후에 1835년에 ‘카톨릭 사도교회’를 창설하고 동방교회와 유사한 성례를 행하기도 했다. 이 어빙의 교회에 출석을 했던 15세 소녀인 마가렛(Margaret Donald)이 1830년에 상상적인 직통계시를 받았는데, 그것은 교회가 대 환란을 겪지 않고 휴거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모두가 어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이 사상을 플리머스 형제회의 창시자인 존 다비(John Darby)가 수용하여 미국의 싸이러스 잉걸스 스코필드(Cyrus Ingerson Scofield)에게 영향을 주었다. 존 다비(John Darby)가 프리메이슨이라는 역사적인 근거는 발견하지 못했으나, 그가 프리메이슨들의 집회에서 많은 강의를 다녔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존 다비의 영향을 받은 스코필드(C. I. Schofield)는 프리메이슨으로 발혀졌다. 프리메이슨이었던 스코필드는 스코필드 관주성경을 만들어 세대주의 이 사상을 널리 확산시켰다.
스코필드는 1843년 8월 19일 미국 미시간 주에서 태어나 1921년 7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에 남군의 사병으로 종군하여 공을 세워 훈장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군대를 제대한 후에는 법률 공부를 시작하여, 정계에 진출하여 ‘그랜트 대통령(President Grant)'에 의하여 캔자스 주 변호사로 임명되었다.
이렇게 명성을 얻는 그는 1879년에 회심했으며, 3년 후에는 회중교회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그 후에 많은 책들을 집필했으며, 필라델피아 성서대학(Philadelphia College of the Bible)을 설립하였고, 1909년에는 그 유명한 스코필드 관주 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성경에 세대주의를 반영시켰다. 이 성경은 스코필드가 존 다비의 영향과 감화를 받은 후에 세대주의 견해를 고수하기 위해 만든 성경책이었다.
이 성경은 1909년 출판되어 무려 200만부 이상 판매가 되었다. 스코필드는 체계적인 신학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해서 성경을 제대로 해석할 줄도 몰랐다. 그런 자가 영국의 킹제임스 성경에다가 자신의 각주를 붙어서 성경을 읽는 독자들도 하여금 세대주의를 답습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부인과 어린 자녀들을 버렸으며, 종교 사기꾼으로도 미국 사회에 잘 알려졌으며, 프리메이슨이었다. 이런 스코필드를 말씀보존학회의 이송호 목사는 자신이 번역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의 곁 표지와 5쪽 “한글 킹제임스 스코필드 주석 성경 간행사”라는 제목의 글에서, “D. L. 무디는 대서양을 오가며 구원의 복음을 전하여 수백만 명을 그리스도께 인도했고, C. I. 스코필드는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해석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라고 칭송을 아까지 않고 있다.
사실 이송호 목사가 언급한 무디와 스코필드는 성경의 바른 교훈을 전하는데 많은 장애를 안겨 준 인물들이다. 스코필드에 대해서는 이미 논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무디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리나라 교계의 대부분의 목사들과 기독교인들이 보편적으로 신앙이 좋았다고 말하는 미국의 무디(Dwight L.Moody)가 이단으로 알려진 영국의 플리머스 형제단을 영접하고, 그 영향을 받았다. 무디는 표면적으로는 프리메이슨 운동을 반대하였으나, 프리메이슨 조직에 하나였던 시카고 YMCA 회장을 지내면서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
무디는 보스톤 YMCA에 입회하여 시카고 YMCA 회장을 역임하면서 그들과 결속을 다지고 사탄 운동에 하나인 에큐메니칼 운동에 크게 기여한 사람으로, 그는 영국의 이단이었던 플리머스 형제단을 영접하고, 그 사상을 받아 미국 사회에 유포시켰던 핵심 인물 중에 한 사람이다.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1899)의 영향력은, 불링거(Bullinger), 그레이(Gray), 왈부르드(John F. Walvoord), 린세이(Hal Lindsay) 등과 달라스(Dallas) 신학교, 탈봇(Talbot) 신학교, 그레이스(Grace) 신학교와 웨스턴 보수 침례회(West Conservative Baptist) 신학교 등에 영향력을 미쳤다. 이런 신앙의 이중성을 뭐라고 평가를 해야 할까?
이런 인물들은 한글 킹제임스 성경의 곁 표지와 서론에서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칭송하는 것이 신앙적으로 바른 것인가? 한글킹제임스 성경에 사탄 운동에 참여했던 자들의 이름들을 기록하고, 칭송하고 있는 형태를 뭐라고 평가해야 할까? 그들은 성경을 마치 개인의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3. 한글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것은 거짓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은, 기본적인 신앙 양심과 학자의 본분을 모두 저버린 척박스러운 주장이다.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이 다양한 영어 성경 중에 좋은 성경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상의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헬라어 편수 과정을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계에서 이단으로 정한 말씀보존학회(이송호 씨)나 그 밑에서 함께 일하다가 따로 분리되어 나온 박만수 씨 등이 신학교에서 사본학의 교과서 활용하는 메쯔거의 책들과 웨스트코트와 홀트, 그리고 시내산 사본(1844)과 바티칸 사본(1418)등 근거하여 만든 소위 네슬판(26판), 헬라어 성경이 가짜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옳은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교계에서 킹제임스 성경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신학 사상이 바르지 않으며, 지나칠 정도로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은 한결같이 영어의 킹제임스의 경우 1611년판을 절대시하고 있다.
당시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은, 칼빈의 제자인 베자(Theodore Baza) 편집한 헬라어 신약성경(1598년의 제 5판)과 인쇄업자인 스테파누스가 편수한 헬라어 성경(1550년 3판), 헬라어 에라스무스 성경(1522)을 대본하여 번역한 성경이 바로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1611년)이다.
그런데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1611년 초판)의 번역자들은 아주 커다란 실수를 하게 된다. 그것은 가경(외경)도 함께 번역하여 영어의 킹제임스 초판에 넣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외경은 1629년에 가서 제거가 되었다. 또한 영어의 킹 제임스 성경은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이름이 무려 6823군데나 기록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명사인 주(LORD)로 번역하는 큰 실수를 범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삼위일체론의 이단자인 오리게네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KJV)의 번역자들은 헬라어의 시상(詩想, aspect)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은 사도행전 19장 2절과 에베소서 1장 13절 등에서 ‘아오리스트 분사(aorist participle)’를 한 시제 앞선 것으로 잘못 번역했던 것이다.
이런 잘못된 번역에 영향을 받은 오순절주의자들과 은사주의자들, 그리고 영국의 로이드 존슨 목사는 이 오역을 토대로 ‘믿음 후 성령 받음’을 주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1982년에 나온 새로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NKJV)에서는 이런 오류들이 수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앞서 언급했지만, 에라스무스 성경(Erasmus Bible, 1522)이 성경을 편수하여 출판한 최초의 헬라어 신약 성경을 TR(Textus Receptus)이라고 한다. 당시 에라스무스가 수집한 헬라어 사본은 모두 5권이었다. 그 중에 요한계시록을 포함하고 있는 사본은, 단 1권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것도 마지막 6절이 빠져 있었다.
에라스무스는 어쩔 수 없이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의 성경의 내용을 가져와 헬라어로 번역하여 넣었다. 제롬의 라틴어 성경은 말씀보존학회에서 사탄이 변개한 성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에라스무스의 성경 등을 대본으로 삼아 영어로 번역했던 것이다. 소위 비잔틴 성경에도 여러 가지의 오류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본의 수집과 대조 또는 연구를 거듭하면서 오류들을 바로 잡아 나갔던 것이다. 거두절미 하고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전혀 없다는 말을 신앙 양심을 저버린 거짓말이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학문에 있어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 초판(1611년)이 전혀 오류가 없는 완벽한 성경으로 주장을 하는 말씀보존학회 이송호 씨와 그 밑에서 함께 일을 하다가 헤어져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있는 박만수 씨 역시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특히 박만수 씨는 다음과 같은 비성경적인 말을 하고 있다.
박만수 씨는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1611 초판)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면서 “보존과정에 실패한 하나님은 결코 절대 무오류한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주장하였다.
박만수 씨의 주장에 따르면, 영어의 킹제임스 성경(1611년판에)에 오류가 있다면, 보존을 실패한 하나님이며, 절대 무오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매우 그릇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의 글은 박만수 씨가 주장하는 글이다.
“단순히 진리의 성경을 믿고, 또 순수한 성경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을 지체와 한 몸으로 믿는 것이 저희 안티오크의 확고한 입장입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말입니다... 카톨릭 조직에 있든지, 개신교 조직에 있든지, 선교 단체에 있든지, 형제교회 조직에 있든지, 지방교회 조직에 있든지.... 문자 그대로 어디에 있든지 순수한 성경 신앙이기만 하면 내 지체요 한 몸이라고 믿습니다...
저희는 성경 자체가 무오류하다고 믿을 뿐 아니라, 성경을 주신 과정 역시 무오류성을 지키고 보존하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보존과정에 실패한 하나님은 결코 절대 무오류한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지난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눈여겨 살펴보았고, 그분께서 사용하신 성경이 어느 성경인지를 조심스레 확인해 보았으며, 마침내 권위역 킹 제임스 성경이 오늘 그분께서 사용하고 계신 무오류한 성경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었습니다.
저희를 킹 제임스 유일주의라 비난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주장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저 역시 원문비평학에서 답을 찾느라 귀하 못지않게 많은 비평학 서적들과 자료들을 공부해 보았고, 귀하 못지않게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한 온갖 비평과정도 거쳐 보았으며, 마침내 그것이 답이 없는 함정이었음을 깨닫기에 이르렀습니다... 어쩌면 귀하도 제가 밟았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귀하가 진정 성경의 답을 찾기 원한다면 말입니다.” 고 주장을 하였다. 주)박만수 안티오크 사이트에 있는 박만수 씨 글
http://www.antioch.co.kr/Antioch/Qna01/View.aspx?QnaID=1326
이런 사실들을 통해 볼 때 킹제임스 성경에 중독이 되어 있는 목사들과 신자들은 매우 그릇된 사상에 빠져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렇게 속이는 곳에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바른 것은, 바르다고 말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바른 신앙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Ⅸ. 성경의 무오성(무오류성)
우리는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원문 성경이 낡아지가 다른 양피지와 파피루스에 그대로 옮겨 기록했다는 것을 살펴 보았다. 구약의 히브리어 성경의 전문적인 학자들의 연구 결과 정확하게 원문 성경과 일치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고찰하였지만 인쇄 기술에 의하여 최초로 출판한 성경은 에라스무스 성경(Erasmus)가 편집하여 출판했던 헬라어 신약성경인 에라스무스 성경(Erasmus Bible, 1522)이다. 이 헬라어 역본을 TR(Textus Receptus)이라고 한다. 당시 에라스무스가 수집한 헬라어 사본은 모두 5권이었다.
그 중에 요한계시록을 포함하고 있는 사본은, 단 1권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것도 마지막 장의 6절이 빠져 있는 것이었다. 에라스무스는 어쩔 수 없어서 라틴어로 되어 있는 제롬의 벌게이트 성경 내용을 가져와 헬라어로 번역하여 넣었던 것이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에라스무스의 성경과 인쇄업자인 스테파누스가 출판한 헬라어 성경인 스테판 성경(Stephen's Bible, 1550), 칼뱅의 제자인 베자가 출판한 헬라어 성경인 베자 성경(Beza's Bible, 1604), 제네바의 개혁파들이 주로 사용했던 영어 성경인 제네바 성경(Geneva Bible, 1560) 등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한 성경이다.
그런데 에라스무스 성경(Erasmus Bible, 1522) 신약 헬라어 성경 사본은 요한계시록의 전체 중에 한 구절(6절)이 빠져 있는 경우만 제외하고는 모두 완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구약 신약성경의 많은 사본들을 서로 대조 분석함으로서 일부가 빠져 있는 부분들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곧 사본이 원본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문제는 성경 사본들의 종류가 많기 때문에 신학자들과 성도들은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사도들과 성도들이 초대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해 온 전통원문(시리아사본)계열 성경을 다른 왜곡된 사본들과 동일선상에 놓고 이해하고 있다점이다.
구약과 신약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의하여 잘 보존되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을 우리는 성경의 무오성이라고 말한다.
어떤 신학자는 원문만이 무오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사본도 무오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러한 논쟁은 성경의 사본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본과 사본은 그 내용이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들은 번역의 오류가 상당히 많다. 번역상의 오류들은 히브리어나 헬라어 원문 성경과 비교 검토 함으로서 확인할 수 있다. 구약은 맛소라 원문(사본)과 신약은 헬라어 스테파누스 성경이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성경들은 무오한 성경들이다. 성경의 오류성이란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반기독교적인 사고와 사상에서 출발한다. 반면에 성경의 무오성이란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와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출처: 다음까페(한국기독교정보학회)
첫댓글 귀중한 자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