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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죽기전, 사람이 죽는다
【 ‘물박사’의 물재앙론 】
《이제 물은 공짜가 아닌 응분의 대가를 지급해야 하는 공산품이다. 물을 「물쓰듯」 할 게 아니라 「돈쓰듯」 절약해야 할 때다. 우리는 물의 오염에 관한 한 모두가 가해자임에도 피해자로 착각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한물갔다」고 했을 때 그것은 정상에서 밀려났다는 뜻이며, 생선이 한물갔다는 말은 신선도가 없어졌다는 의미와 오염상태에 돌입했다는 뜻이다.
물은 이처럼 힘의 원천이요,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통치제도 법률 교육 철학 등도 모두가 물의 특성과 신비성에 유래했음을 알아야 한다. 물은 유용성, 융통성, 다양성, 용해 성, 순리성(겸허성), 재해성을 지니고 있어 인간의 위대한 스승이자 철학과 사유의 대상이 되어 왔다. 물을 떠난 인간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다.
지난 3월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모로코 마리케시에서 열린 「세계 물 포럼」은 앞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세계적인 물 기근 사태가 야기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1984년 말에는 아프리카의 21개 국가가 가뭄이 야기한 심각한 식량 부족으로 고생했다. 기근이란 죽음의 마수가 아프리카 전역을 덮쳤다. 기근 전선은 에티오피아, 수단을 지나 보츠와나, 모잠비크, 레소토에 이르렀다. 당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태는 식량 부족과 더불어 물이 모자라는 데서 비롯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이스라엘과 중동국가간의 분쟁은 영토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영토분쟁처럼 비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막에서의 생명수인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물꼬싸움」이다.
이스라엘은 물수급의 대부분을 시리아로부터 빼앗은 골란고원과 팔레스타인 자치예정지인 요르단강 서안의 수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요르단강과 야르무크강이 합류하는 갈릴리해를 주요 수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요르단과는 요르단강 수자원 공동사용 및 개발을 협의해야 하는 한편 PLO 및 시리아와는 영토반환을 통한 평화확 보와 함께 수자원을 보장받아야 할 입장이다. 이 물꼬싸움이 해결되지 않으면 영토반환도 평화협상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물은 이제 한 국가의 존립을 결정하는 필수적인 자원이 되었다. 더구나 최근 물이 심각하게 오염됨으로써 물은 안보와 직결되는 전략적 자원으로 등장했다. 전쟁으로 수돗물이 단수되면 지하수 오염으로 식수를 구하지 못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유사시에 대비해서 군수물자보다 먼저 생존을 위해 식수를 확보하는 대책이 시급해졌다.
물 부족에서 물 기근으로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에 수자원관계자들은 앞으로의 산업경쟁력은 물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비하지 않으면 구조적인 물위기에 당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전문기관도 한국이 현재의 「물 부족국가」에서 2050년에는 「물 기근국가」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 기근국가는 인구 1인당 물 자원량이 1천t 이 하로 떨어진 나라를 말한다.
1인당 연간 강수량이 3천t인 우리나라가 물 기근국가로 전락한다는 것은 물의 보존과 이용이 잘못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같이 우리나라는 물의 양과 질 두 가지 면에서 이미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우선 물의 양적인 면에서 인구증가와 생활수준의 향상, 도시화, 산업화로 물의 수요가 급증해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의 물 예비율은 7.6%(공급량 3백25억t, 수요량 3백2억t, 여유분 23억t)이다. 그러나 2001년에는 수요와 공급이 3백36억t, 3백43억t으로 물 예비율이 1.5%로 줄고 확정된 댐의 추가건설이 없어 2003년부터 물이 부족한 수요초과현상이 빚어질 전망이다. 더욱이 2011년에는 33억t이 부족, 물공황이 예상된다고 한다.
현재 삼남지방이 4년째 겨울·봄철 가뭄으로 물 기근에 시달리고 있으며 울산 포항 전주 등지는 공업용수 부족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올 들어서도 강우량은 예년의 77% 수준에 불과하다.
주요댐들의 저수율을 보면 소양29.9 %, 충주26.7 %, 대청42.1 %, 안동37%, 임하24.4 %, 섬진강45.9%, 주암36.6% 등으로 심각한 상태이다. 수도권의 용인 등 일부 지역의 경우 건설업체들이 땅을 사놓고도 물을 확보하지 못해 주택건설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 없는 도시─중동지역에서나 있음직한 일이 벌써 우리나라에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물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데 필수적인 댐 개발 여건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댐 건설에 필요한 보상비가 개발비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여기에 최근에는 지역이기주의까지 겹쳐 나라의 경제가 어떻게 되든 지역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자기 고장에는 댐을 만들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을 확보 하는 데 기초인 댐을 건설하지 못하면 물을 확보할 방법이 없다. 또 물의 확보는 수질 개선에 직결된다. 물이 부족하면 오염된 물을 희석시켜 수질을 개선할 대책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물 부족은 그대로 수질오염을 가속시키는 결과가 된다.
죽어가는 물
보다 시급한 과제가 바로 수질 문제이다. 물이 죽어가고 있다. 생명의 원천인 물이 중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우리가 마시는 수돗물의 근원인 댐의 수질이 2급수 수준을 넘 은 지 오래다. 한강을 비롯한 국내 주요하천 수질은 최근 들어 더욱 악화되고 있다.
환경부가 조사한 1982~1996년의 수질(COD)변화를 보면 최근 3년간 가장 수질이 나빴던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의 식수원인 팔당호 수질은 1980년대 초 2ppm에서 1990 년대 초 1.7ppm으로 개선됐으나 1994년 이후에는 급격히 악화됐다. 호소수질기준을 적용할 경우 고도정수처리가 필요한 3급수에 육박했다고 한다.
낙동강의 경우 부산의 상수원 취수구인 물금 지점에서는 1982년 4.1ppm에서 1995년 9.5ppm, 1996년 9.2ppm으로 악화되었다. 또한 환경처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 지하수의 17%가 오염돼 인체에 해로운 질산, 중금속 등 발암물질이 쌓여 있다.
농업진흥공사는 지난해 전국 저수지의 반 이상이 심각하게 오염돼 농업용수로도 부적합하다고 발표했다. 특히 일부 저수지의 경우(13%) 구리, 카드뮴 등 중금속이 기준치를 크게 초과, 농업용수로 사용하면 작물의 생육을 저해하기 때문에 사용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물이 오염되면 얼마나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되는가를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다. 정부가 공급하는 수돗물을 불신해서 마시지 않는 국민이 대부분이다. 제주도 남단의 마라도 에서는 이미 생활하수로 오염된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지 못해 육지에서 배로 물을 실어다 식수를 해결하는 실정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지하수 부존량은 1조5천억t으로 이 중 1백30억t이 개발 가능한 최적량이다. 현재의 이용량은 26억t으로 나타나 있으나 실제는 50억t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 지하수가 무분별한 개발과 사후관리 부재, 당국의 무관심 등으로 계속 오염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영국국민들이 오염으로 죽은 템스강을 1백년 동안의 노력으로 살려낸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일본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에 물 오염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메틸 수은의 오염으로 손발이 마비되고 언어장애를 일으킨 미나마타병, 카드뮴이 원인인 이타이이타이 병 등 수많은 물오염사건을 경험한 바 있다.
우리는 다행히 외국과 같은 심각한 수질오염을 겪지는 않았으나 1992년 낙동강 페놀오염사건으로 전국이 온통 들끓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물쓰듯」에서 「돈쓰듯」으로
물의 위기에 관한 한 한마디로 우리 국민들은 위기 불감증에 걸려 있다.
물의 위기는 초기에는 보이지 않게 서서히 시작한다. 중기에는 빠른 속도로 동시다발로 악화된다. 그러나 말기 이후에는 손을 전혀 쓸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치명적 상황이 된다.
근본적으로 물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다. 우리는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 개인적으로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정수기를 달고 생수를 길어오고 먹는 샘물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은 물값이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시비를 걸면서도 질 좋은 물을 요구하고 있다. 외국과 비교할 때 생활비에서 수도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낮음에도 불구하고 수돗물 값을 올리는 데는 모두가 반대한다.
정부도 맑은 물 공급을 위한 계획을 수립, 실천하고 있지만 정부예산배정과 투자의 우선순위에서 매년 주택, 도로 등 가시적인 사업에 밀려 뒷전이다. 최악의 경우 집은 천막 을 치고 살면 되고 길이 없으면 가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물은 하루도 마시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더구나 전국의 지하수가 거의 오염된 이 시점에 정부가 공급해 주지 않으면 물을 구할 방법이 없어졌다.
이제 우리는 물 문제에 있어서 수량과 수질을 동시에 해결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먼저 수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댐을 지속적으로 건설하고 지하수의 개발, 광역용수공급체계 확대, 기존 댐의 효율적인 관리를 도모해야 한다. 원천적으로 수량이 확보되어야 수질을 개선할 방안이 강구되는 것이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물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환경우선 정책을 기조로 나라살림을 꾸려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물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이제 물은 공짜가 아닌 응분의 대가를 지급해야 하는 공산품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물을 「물 쓰듯」 할 것이 아니라 물을 「돈 쓰듯」 절약해야 한다.
우리는 물의 오염에 관한 한 모두가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로 착각하고 있다. 우리는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서부터 화장실 이용과 세수로 오염행위를 시작해서 눈을 감아야 오염행위를 멈춘다. 그러나 모두가 이런 가해자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는 의무는 외면한 채 맑은 물만 요구한다.
三水운동
여기서 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애수(愛水), 절수(節水), 친수(親水)의 삼수운동(三水運動)을 제창하고자 한다.
첫째, 물을 사랑하는 애수운동은 물을 내 몸 같이 사랑하고 보호하는 운동이다. 이는 바로 수량과 수질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물을 귀하게 여기고 보호하면 물은 물다워지는 것이다.
애수운동은 우선 가정에서부터 시작하면 효과적이다. 수질오염의 주범은 가정에서 버리는 생활하수다. 한강을 썩게 만드는 폐·하수의 오염부하량 중 생활하수의 비중이 73%나 된다.
우리는 스위스 사람들이 맑은 물의 원천인 알프스를 보호하기 위해 외국화물트럭의 알프스통과를 금지키로 결의한 국민투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일본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선정된 도야마 현의 경우 모든 현민이 물을 보호하기 위해 등산, 레저활동에 가져갔던 쓰레기는 반드시 자기 집으로 되가져가는 운동을 전개한 결과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에 고기떼가 노닐게 되었다.
물을 살리는 방법은 애초 오염행위를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방법밖에 없다. 오염의 원인행위를 원천부터 봉쇄하는 방법이 비용을 최소화하고 가장 쉬운 방법 이다. 일단 오염된 물을 원상으로 회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을 살리기 위한 범국민운동은 가정, 유치원, 각급학교, 직장을 중심으로 착수해야 한다.
현재 가정의 경우 부모가 수질보호에 솔선수범하는 가정이 드물다. 학교에서도 물을 비롯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육은 하고 있으나 배운 것을 실천하는 학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물을 보호하자」 「물을 절약하자」 등 구호만 요란했지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오염된 강은 이미 강이 아니라 환경파괴의 주범이요 우리 모두의 부담이다.
일본은 범국가적으로 강을 살리는 운동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즉 내 고향 시냇가에 송사리떼가 살게 하자는 운동이다.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성공한 사람을 대상으로 자신의 고향마을 작은 시냇가에서 고기 잡던 추억에 호소해서 그들이 번 돈으로 고향마을의 몇 가구 단위로 소규모 하수처리장을 건설해 수질 오염을 원천적으로 막자는 운동이다.
둘째로 물을 아끼는 절수운동이다. 정부는 이제 물 공급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극적인 정책의 일환으로 앞으로 물 수요관리에 나서야 한다. 물은 곧 돈이다. 물을 돈 처럼 아끼는 절수운동은 댐을 신규로 건설하는 효과와 하수량을 줄이는 효과로 수질개선에 기여한다.
현재 1인당 1일 물 사용량을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일본이 3백67ℓ, 이탈리아 2백93ℓ, 영국 2백67ℓ, 프랑스 2백11ℓ, 독일 1백96ℓ, 네덜란드 1백95ℓ인 데 비해 우리나 라는 무려 3백94ℓ나 쓰고 있다. 근본적으로 물에 대한 인식이 잘못돼 있는데다 물값이 너무 싸기 때문에 물을 아끼는 사람이 적다.
우리 물값이 t당 2백원 수준이지만 미국은 2천3백30원, 스위스는 1천2백52원, 일본은 9백62원으로 우리보다 훨씬 높다.
지난해 전국의 하루평균 물 사용량은 1천4백40만t이었다. 이를 하루 10%만 절약해도 경상남북도민 4백30만명이 쓰고 남을 물량에 해당한다.
현재 수도관 관리의 소홀로 하루 평균 2백80만t(하루 사용량의 19.4%)의 물이 누수되고 있다.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누수방제대책을 세워 이미 확보한 물이라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중수도의 장려, 물값의 현실화, 물절약 기업에 대한 세제혜택, 물 절수기기의 개발, 물절약 홍보 등 종합적인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물 절약은 하수량을 줄이고 하수의 감소는 완전한 하수처리로 오염을 방지하는 지름길이 된다. 물값이 싸기 때문에 물을 많이 쓰고 많이 사용하면 하수량이 증가, 결국 완벽한 처리가 불가능하므로 오염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셋째로 온 국민이 물과 가까이하는 친수운동이 필요하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요, 물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철학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환경운동이다.
예로부터 물에 관련된 공간, 즉 수변공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정서와 생활환경에 중요한 의미를 지녀왔다. 로마 가로의 곳곳에 솟구치는 분수, 우리 전통 한옥의 우물과 연못 등은 물과 인간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더 많은 수변공간을 개발해서 온 국민이 물과 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함이 바람직하다. 각종 수상레저산업을 육성, 물을 이용하고 물과 가까이해서 물을 사랑하고 귀중함을 알고 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이 삼수운동은 범국민운동으로 전개해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매월 정부가 실시하는 민방위의 날을 삼수운동의 날로 승화시키기를 제창한다. 오수처리장 하나 건설하는 데 3백억원 이상 몇 천억이 소요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민방위의 날에 이 삼수운동을 포함시키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의 하나로 생각된다.
이태교<한성대 대학원장·前수자원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