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정(啓貞)(판서공파, 31세, 1960년생) 명진기업(주) 대표이사, 장흥 대덕 초당출신
■계정종친의 고향인 대덕(大德)에 대해 [대덕은 우선 그 이름부터 성스럽다. 불가에서는 비구 중에서도 장로 또 는 불보살의 최고 경칭이며 고승에 대한 존칭이다. 공자 는 중용에서 순(舜)이야말로 대덕으로 성인이 되었고 이 덕목이 한 고을의 지명이라면 복 받은 읍민이다. 삼국시 대는 오차현지, 통일신라는 오아현, 고려는 정안현, 174 7년에는 대흥면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덕 (大德)으로 개칭된다. 대덕의 공성, 오성, 부곡산은 더없 이 어울리니 1914년 대흥(大興)을 대덕(大德)이라 개 칭함은 우연보다 필연인 것 같다]라고 桂沙 위성호 종친 의 소고집 하권 220쪽에 기록하고 있다.
■계정종친은 판서공파 중에서도 임계탄과 상소문 그리 고 대흥향약 설정으로 유명한 간암공의 후손이다. 간암 공께서 방촌에서 대덕 초당으로 이거 후 지금에 이르렀 다. [존재공을 병계 윤봉구선생과 사제의 연을 맺게 해준 간암공은 누구인가. 그는 판서공의 증손, 영흥부사 겸 방어사 재임 중 병조참판의 직함으로 후금의 수도 심양 을 다녀온 회답사 휘 정철(廷喆)의 손자, 남해군수 등을 역임한 휘 동전(東峑)의 3남으로 1689년 서울 주자동 에서 태어났다. 간암공은 아버지가 1676년 무과에 급제 한 이후 1697년 총수어 閔鎭遠의 보좌관으로 인연을 맺어 世交를 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라면서 閔鎭安과 承洙의 문하에서 민씨들과 우정을 쌓으면서 수학했다. 강경공부는 물론 주역과 역사서와 오서와 비전 등을 읽으면서 폭 넓은 지식을 축적했다. 그러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입신출세를 단념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고향인 관산으로 33세 때인 1721년 하향했다. 방촌에 정착한 후 장천재에서 詠而齋公, 剩餘翁 등과 담론하며 생활했다. 하향한지 6년 되던 해에 존재가 태어나자 아낌없이 후원했다. 1766년 78세에 大興에서 타계 했다]라고 圓山 위정철 씨족문화연구소장은 [장흥위씨 청장년밴드]에 간암공에 대해 무려 5회에 걸쳐 그 사상 과 공적을 자세히 게재하고 있다.
■계정종친의 대종회 내 위상과 그 역활은 매우 무겁다 하겠다. 먼저, [장흥위씨 재경종친회]의 부회장과 [장흥위 씨 재경청장년회]의 감사를 맡고 있는데 재경에서는 항 렬이 31세 계자 돌림으로 최고의 위치이다. 1960년생 50대중반의 나이에 60대와 40대를 연결하는 교량으 로서 향후 위문의 대들보로서 역할을 준비하는 데 여념 이 없다. 2014년 10월경 남양주시 진접에 소재한 오리 고기 전문점인 [약수촌가든]에 松潭 위자형 대종회장을 비롯한 20여명의 종친을 초대하여 극진히 대접했다. 또한 2015.06.10부로 발족된 위문 최초의 동호회인 [위씨골프회] 부회장을 맡아 동호회를 통한 위씨문중 융성의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에 앞서 2014년 가을에 치르진 [위씨골프회] 발족 예비라운딩 에서는 비용을 대부분 부담하기도 했다.
■사업 또한 매우 번창하여 남양주에 거주하면서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 289-7번지]에 소재한 명진기업 (주)의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본 회사는 유, 공압 실린더와 파워유닛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업체로서 POSCO(주)에 납품하여 그 상품의 경쟁력과 차별성으로 인해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특허제품 중 몇 가지는 대기업에 독점공급중이다.
■계정종친은 2014.08.08~10까지 장흥에서 열린 [장흥하계수련회]에 3명의 아들을 데리고 참여하여 조상 들의 흔적을 찾아서 솔선수범했다. 해외에서 공부하는 자녀들이라서 혹시 위씨문중의 전통을 잊어 버릴까? 하는 염려에서이다. 더 나아가 핏줄을 소중함을 일깨워 주려는 계정종친의 혜안 또한 크게 작용했다. 하산사, 장천재, 장원봉, 송광사, 존재고택, 위성탁고택, 사월재, 추원각, 경호정, 석천사 등 2박3일간에 걸친 대종회와 도문회, 장흥종친회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값진 나날이었다. 2014년 장흥하계수련회를 통해서 계정 종친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위씨문중의 위대함과 자부심 을 영원히 간직하게 되었다. 그래서 계정종친은 틈만 나면 “위씨의 뿌리와 위대성을 알고 싶으면 하계수련회 를 참여하라”라고 독려하는 종친이 되었다. 위씨문중의 대소사라면 발벗고 나서는 위씨문중의 정통 핏줄이다. 다른 성씨 종친회와는 달리 100%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어려운 대종회의 살림살이를 걱정하여 금전을 부담하 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자못 위문의 중흥이 가까움을 직감할 수 있다.
■[근면, 배려, 솔직, 담백]의 성격을 소유한 계정종친을 보노라면 항상 위씨문중의 융성함과 인화를 바라셨던 대덕 초당의 간암공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계춘(前 장흥종친회장)종친, 계점(행정학 박사)종친, 계찬(한양대 교수)종친, 두량(천관지 편집장), 희량(LIG부장) 종친과 는 종형제 및 당숙간이다. (자문:백강/글:계사,원산,벽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