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사건 <계엄보통군법회의판결> 1979년 12월 20일
피고인 김재규는 국가원수를 보필해야 할 입장에 있으면서도 사태를 수습지 못한 무능을 은폐하고 일련의 사태 발생에 대한 책임을 상관인 대통령 각하에게 전가하는 한편
이를 거사의 기회로 역이용하여 대통령을 살해한 후 정권탈취를 기도한 점은 가증스럽다 아니할 수 없으며
당 공판정에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침없이 ‘자유민주주의 회복’이란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범행동기를 미화하려는 치졸한 작태를 계속하고 있으나
범행 전에는 유신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누구보다도 앞장서 오던 장본인이 상황이 악화되자 하루아침에 변심하여 체제타도를 부르짖는 자가당착적 행위를 본 재판부는 납득할 수 없고
설사 피고인의 동기가 제아무리 숭고하고 순수한 것이라 할지라도 총칼로써 민주회복을 기도하였다면, 그것은 폭력의 악순환만을 초래하는 시대착오적 과대망상이라 아니할 수 없고
그 자체가 자유민주주의 대한 중대한 도전이요 위협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인간적 측면에서 볼 때 대통령 각하와는 동향이며, 육사 동기생으로서 그간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과 총애를 받아 군과 정부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자로서
아무런 주저 없이 대통령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그것도 부족하여 두부를 향하여 확인사살까지 서슴지 않은 피고인의 행위는 인간의 양심마저 저버린 비인류적 행위로서 일말의 동정도 받을 수 없다.
---김재규는 1980년 1월 24일 최후진술에서 자신의 행동으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20~25년 앞 당겨졌다”주장.
---계엄보통군법회의는 김재규에게 사형을 선고, 이 형량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유지되어 광주 사태 한복판이던 1980년 5월 24일 교수형 집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