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장 너 시험을 당해
야고보서 1:12
342장 “너 시험을 당해” 이 찬송가는 저에게 큰 용기와 도전을 준 찬송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0년, 어느 화창한 봄날에 한 젊은 신학도가 교정에 서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하염없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눈물은 나 같은 죄인을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시고 당신의 종으로 불러주신 그 큰 사랑에 감격하여 흘리는 눈물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교정위에 펼쳐진 하나님의 뜨거운 봄날의 광채는 돌아온 탕자를 반기는 아버지의 품같이 따사롭고 향기로웠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기쁨에 넘쳐 흘러나온 찬송이 있었는데 그 찬송이 342장, “너 시험을 당해 범죄치 말고 너 용기를 다해 곧 물리쳐라 너 시험을 이겨 새 힘을 얻고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 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의 찬송이었습니다. 그때 그 감격, 그 사랑, 그 은혜 이후 이 찬송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늘 나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극복하기 어려운 시험과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너 시험을 당해” 이 찬송을 부르며 다시금 용기를 얻고 새 각오를 가지고 재출발을 하고는 하였습니다.
이 찬송을 작시, 작곡한 ‘호레이시오 리치몬드 파머’(H.R.Palmer, 1834~1907)박사는 미국 뉴욕에서 음악대학 교수와 성가대 지휘자, 오르간니스트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 역시 청년기 때의 여러 가지 시험과 유혹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믿음으로 이기고 용기를 얻고자 이 찬송을 만들었습니다. 이 찬송가는 방황하는 젊은이들과 성도들에게 많은 은혜와 도전을 주는 영감 있는 찬송입니다. 사람들은 시험이 닥쳐왔을 때, 그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시험에 굴복하며 더 깊은 죄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거나(1절), 적극적으로 이를 퇴치하는 것입니다(1,3절). 시험을 극복하려는 비장한 각오와 인고의 자세 없이(2절) 어찌 정금 같은 신앙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이 찬송가 한 절 한 절 씩 가사를 음미하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절
너 시험을 당해 죄 짓지 말고 너 용기를 다해 곧 물리쳐라
너 시험을 이겨 새 힘을 얻고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 편에서 서서 항상 도우시리
1절에서는 “너 시험을 당해 죄 짓지 말고 주 예수를 믿어 새 힘을 얻고 늘 승리하라”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시험의 양상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천재지변과 같은 재난으로 오는 고통이라든지, 병으로 오는 시험 그리고 예수 믿는 것으로 인해 당하는 핍박, 뜻하지 않은 사고와 사망, 가난과 고난으로 오는 시련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시험과 시련이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이와 같은 시련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을 때 어떻게 그 시험을 이기고 나올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해답을 찬송가의 가사를 중심으로 발견하고자 합니다.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의 첫째는 “시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적자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는 자는 시험받을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디모데후서 3:12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10:30에서도 주를 믿는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박해와 시험은 천국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9:23에서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예수님을 쫓았던 요한은 밧모섬에서 유배 중에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0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복음은 꽃가마가 아닙니다. 복음은 영적싸움입니다. 영적전쟁에서 시험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믿음으로 나갈 때 여호와 닛시 즉 승리의 기쁨이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시험을 끝까지 참고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믿음에 강한 자로 만들기 위하여 시련과 고통이라는 시험의 채찍을 간혹 드십니다. 그때 시험에 낙심하여 쓰러지지 않고, 시험을 참는 자는 야고보서 1:12에서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함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말씀이 있는데 고린도전서 10:13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러한 시험은 우리를 온전하게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는 하나님의 방법(약 1:2~4)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세 번째 방법은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란과 시험에 빠졌을 때 대부분 타인의 도움을 통해 문제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로는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명기 4:30에서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 말씀을 청종하라.”고 하였듯이 고난과 시련과 어려움이 닥쳐올 때에 사람과 물질과 방법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참 위로와 힘을 얻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위로도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위로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편 119:104~105에 있듯이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고 버린 후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심을” 고백하며 말씀을 앞세우고 담대히 나아갈 때 그 어떤 시험이 닥쳐와도 능히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주인공이 될 줄 믿습니다.
2절
네 친구를 삼가 잘 선택하고 너 언행을 삼가 늘 조심하라
너 열심을 다해 늘 충성하고 온 정성을 다해 주 봉사하라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 편에서 서서 항상 도우시리
2절은 “너 언행을 삼가 늘 조심하고 너 열심을 당해 늘 충성하고 봉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의 초점은 참 평안과 기쁨과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을 참 좋은 친구로 선택하여 범사에 감사하며 늘 찬양함속에 승리하는 믿음의 생활을 하라는 권면이 담겨진 찬양입니다.
제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 서예로 유명하신 어느 목사님이 써 주신 “생활 즉 목회”라는 액자가 제 기숙사 방에 걸려 있었습니다. 저는 “생활 즉 목회“라는 뜻이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해보았습니다. 물론 “생활 즉 목회”라는 뜻이 학교생활이나 기숙사 생활을 목회처럼 여기고 언제 어디서나 항상 섬김의 본을 보이며 생활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좋은 목회자가 되어 나갈 것이라는 그런 소망을 가득 품은 은혜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숙사 생활과 학교생활 속에서 그렇게 “생활 즉 목회” 본을 보이며,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하는 물음을 가져보면서 혈기 많고 급함이 많은 내가 어떻게 저 같은 영적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반문하던 나에게 문뜩 섬광처럼 비추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근거로 삶에 적용하며 살아간다면 내가 정말 어렵지 않게 이 ‘생활 즉 목회’의 참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때 주신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15:13~15에 나오는 ‘친구’라는 단어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친구’사이는 어떤 관계입니까? ‘친구’는 부모님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서로 도와주면서 기쁨도 슬픔도 함께하는 관계가 ‘친구’ 사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구’로 오셔서 저와 여러분들을 ‘친구’삼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친구’가 아니고 자신의 ‘생명’마저 아낌없이 내어준 영원한 믿음의 ‘친구’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큰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렇다 목회는 위로는 주님을 ‘친구’처럼 여기고, 아래로는 성도와 이웃을 ‘친구’처럼 여기고 살아간다면 그렇게 부담가질 것도 없이 체면 차릴 것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해주며 도와주고 사랑하며 섬길 수 있을 것이다.” 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날아갈 듯 기쁜지 “생활 즉 목회”가 즉시 이루어진 것 같아 너무 기뻤습니다. 저는 이 일 후에 목회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라는 “생활 즉 목회”의 원리를 사용하여 지금도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나쁜 친구를 만나 신세를 망친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처럼 ‘친구’는 한 사람의 운명을 축복과 저주로 바꾸어 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친구가 되셔서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신실성을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친구로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의 영원한 친구로 사귀었으니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엡 4:29~32), 우리의 사는 날 까지 친구 되신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며(행 16:31~32) 사랑하는(요일 3:16~19) 아름다운((엡 5:9) 믿음의 생활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3절
잘 이기는 자는 상 받으리니 너 낙심치 말고 늘 전진하라
네 구세주 예수 힘주시리니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 편에서 서서 항상 도우시리
3절은 “구세주 예수 힘주시고 상 주시리니 너 낙심치 말고 늘 전진하라”고 권면합니다. 3절은 마무리 부분으로 시험을 잘 이기는 자마다 상 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하여 그리고 참 친구 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후렴에도 있듯이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서 확실하게 깨닫고 그 믿음을 사용할 줄 아는 신앙인이 될 때, 참 친구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단 하나뿐인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준 예수님에 대한 바른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여러 가지 실패와 좌절과 절망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실패와 절망과 좌절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시험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일어서서 남자답게 강건하게 나타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실패하거나 절망 중에 있을 때 전능자 하나님을 찾기 보다는 그 고통을 순간적으로 잊고자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며 방황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다보면 더 큰 패배감과 우울증이 나타나게 되고 그런 증상들이 모여 심각한 영적침체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가 되기 전에 우리의 참 위로와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11:28~30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님은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는 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사람, 물질, 배경을 통하여 문제해결을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는 믿음을 가지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늘 전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시편 43:5에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강조하십니다. 앞길이 꽉 막혀 어둡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친구 되시는 예수님께 우리의 문제를 상세하게 아뢰이며 그분의 힘과 그분의 위로를 구하기를 원합니다. 시편 62:5입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 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 이제부터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고 감사함속에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