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여러 가지 일들로 무리한 탓인지 저도 상당히 건강하다고 자부했었는데, 수 일 전부터 우측 안면신경 마비가 경하게 발생하여 현재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 봐서 표시 날 정도는 아니고, 스스로 증상을 자각할 수 있는 정도의 아주 경한 정도입니다. 그런데 막상 경하지만 안면신경마비가 오고 보니, 막연히 알고 있던 우리 몸의 대칭성과 비대칭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경의 신약에 보면 사도바울이란 인물이 나옵니다. 예수님 이후 기독교의 사상적 정립과 정착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기독교를 탄압하던 인물이었는데,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크게 뉘우쳐 평생을 기독교의 전파에 몸을 바쳤던 분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성령이 충만하여 갖가지 이적을 행했다고 합니다. 특히 신유(병을 낫게 하는 능력)의 능력이 뛰어나 그가 사용하던 손수건을 얹기만 해도, 귀신이 나가고 병이 낫는 이적이 빈번히 일어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사도바울 본인은 고질적인 눈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는 사도바울이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만일 제 눈병이 고쳐지기만 하면, 제가 훨씬 더 의욕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발 제 눈병을 고쳐 주십시요!”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기도에 응답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제자 바울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물론 야사이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눈에 보기에 완벽하게 보일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히 모자란 부분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구조적으로 완벽하게 보일지라도 잘 관찰해 보면 분명히 한쪽으로 균형이 깨어진 비대칭성이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좀 더 완벽한 상태를 원하고, 모자람이 없는 완전무결한 상태를 꿈꿉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비대칭성이야말로 우리를 세상에 존재하게 만드는 근원적인 힘이요, 에너지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비대칭성 자체가 아니라, 비대칭된 상태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몰려서 경직되어 자유로움을 상실하는 상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역경에 보면, 64괘중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가 위에 있고, 땅을 상징하는 곤괘가 아래에 있는 괘를 비괘라고 하는데, 이는 마땅히 가야할 길이 막혀 갈 수 없는 그리 좋지 않은 괘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언뜻 보기에는 천지간의 조화로운 모양을 상징하는 좋은 괘인 것 같으나, 내려 가야할 양기는 올라가 있고, 올라가야할 음기는 내려가 있으니 이는 서로 엇갈려 있어 막혀서 고여 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탁구에 있어서도 동일한 이치가 성립합니다. 양쪽 발에 균등하게 체중이 걸려서는 절대로 제대로 공을 타구할 수 없습니다. 공을 타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균형이 깨어지고, 어느 한쪽 발로 체중이 이동하여 편심력이 생겨야 공을 타구하기 위한 에너지가 발생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중심의 편중을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제대로 된 변화의 계기를 이끌어내기 힘들 것입니다.
또한 중심의 편중이 편중으로 끝나버린다면, 이것 또한 왜곡된 또 다른 형태의 정체성에 불과할 뿐일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제대로 공을 타구하기 위해서는, 오른쪽 발과 왼쪽 발로 조화롭게 체중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공을 포핸드로만 처리할 수도 없고, 모든 공을 백핸드만으로도 처리할 순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포핸드로 오는 공을 반구하기 위해, 왼발에서 오른발로 체중을 이동하며 백스윙할 때, 백스윙의 완료점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어떤 점이 아니라 언제든 왼발로 체중을 넘겨주며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살아있는 어떤 점이 되어야지만 위력있는 임팩트가 가능하며, 자연스러운 팔로우드로가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견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차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신체적 특성에 의한 비대칭성에서 근원적으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견해가 어떤 것이라고 하든지, 그 견해의 비대칭성은 보다 완전하고 역동적인 상태를 지향하는 선상에서의 비대칭성이어야지 또 다른 형태의 왜곡된 정체성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탁구계에서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여러 가지 논란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본다면 어느 정도 해결의 가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탁구는 아주 비대칭적인 운동입니다. 허리축을 기준으로 두 가지 회전 방향중 어느 한 방향으로의 회전을 많이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쪽 발에서 다른쪽 발로 넘겨준 물리적 정신적 에너지를 다시 완전하게 넘겨 받을 수 없다면, 또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에너지를 주고받으려 한다면, 필연적으로 내 몸과 마음에는 후유증이 남을 수 밖에 없고, 그러한 후유증은 육체적으로는 부상으로 다가올 것이고, 정신적으로는 미움과 분노를 동반한 편협함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즐탁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러한 우리 스스로의 비대칭성을 깊이 인식하고, 가지지 못한 나머지 다른 편에 대한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첫댓글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