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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사리불의 의문
사리불의 의문입니다.
여기 왜 사리불의 의문을 여기서 제기 시키는가!
사리불은 여기서 아주 못난 쪼그러든 소승!
사리불뿐 만 아니라 목건련 수보리 할 것 없이
대가섭까지도 이렇게 이제 사리불의 좁은 소견을 약간 등장시키면서
앞으로 이제 제자품, 그 다음에 보살품 이런데 가서 이제 소승!
참 그 사리불이나 목건련 뭐 대가섭 같은 이 들도 유마경에서 소승노릇 하느라고 참 욕봤어요 고의는 아닙니다만 아뭏튼 그런 악역을 했습니다.
아 얼마나 자비롭습니까?
그런 대 제자 부처님을 대신 할 수 있는 때로는 제자가 이런 악역을 했다는 것이 유마경에서 그러면서 우리를 깨우치게 해준 것입니다.
이런 것 까지도 우리가 이해해야지
사리불은 별거 아니고 어떤 뭐 속가의 어떤 처사한테 꼼짝 못하더구만
이런 식으로 보면 안되요.
사리불은 보통분이 아닙니다.
정말 아무리 칭찬해도 칭찬이 부족한 분입니다.
이 분은 그 당시 부처님께 귀의하기 이전에도
인도사회에서 최고의 지성인이고 최고의 지식인이고
그리고 수많은 제자들을 이미 거느리고 있고
그리고 이 분이 출가했을 때는 출가하자마자
모든 제자들을 전부 압도하는 그런 인물 이었어요.
그래서 유명한 또 불교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근사한 절 ,
지금은 없어졌지만 기원정사!
그 기원정사를 설계 자재구입 감리감독 마감재 구입하는 것까지
일체를 전부 총감독을 맡은 분이 사리불입니다.
그런 역사가 있어요.
세상사 대해서도 그렇게 밝은 분이야 출세간에만 그래 밝았던 분 이 아니고
정말 사리불의 인격은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그래서 경전에 보면 사실 계속 끊임없이 사리불 사리불 하는 거죠.
하다못해 그 짧은 반야심경에도 사리자야! 하고 나오잖아요
거기쯤엔 빠져도 되는데!
경중의 왕인 법화경에는 뭐 말할 것도 없습니다 .
우리가 사리불에 대해서도 다시 인식해야 돼요.
그런 천하의 사리불이 이유마경에서는 참 죄송스럽게도 그렇게 이제 악역을 합니다. 악역 이라고 할 수는 없죠. 뭐 소승이니까!
爾時에 舍利弗이 承佛威神하야 作是念하되 若菩薩이 心淨則佛土淨者인댄
이시 사리불 승불위신 작시념 약보살 심정즉불토정자
我世尊은 本爲菩薩時에 意豈不淨이리요마는 而是佛土不淨이 若此인가한대
아세존 본위보살시 의기부정 이시불토부정 약차
그때 사리불의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서 이러한 생각을 했다.
만약 보살이 심정즉불토정(心淨則佛土淨)이라고 한다면
우리세존은 본래 보살이 되었을 때 그 마음이 어찌 부정했기에,
얼마나 부정했기에 사바세계가, 이 세계가 대개 불교에서는 세계를
전부 다 불토라고 합니다.
왜냐? 불교니까! 부처님 중심으로 세상을 규정할 때
부처님 중심으로 세계를 규정하는 거예요.
부처님 중심으로 규정하다보니까 세계, 세계 해야 할 것도 불 세계.
불토 이렇게 표현 되어 있어요.
그게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너무 말하면 좀 치우친 표현이라고도 할 수가 있죠. 아뭏튼 이 세계가 부정하는 것이 이렇게 썩어빠지고 부정부패 사기 근시남 난무하는가! 약차(若此)!
佛知基念하사 卽告之言하사대 於意云何오 日月이 豈不淨耶하야
불지기념 즉고지언 어의운하 일월 기부정야
而盲者不見가 對曰不也니다 世尊아 是盲者過언정 非日月咎니다
이맹자불견 대왈불야 세존 시맹자과 비일월구
舍利佛아 衆生罪過로 不見如來國土嚴淨이언정 非如來咎니
사리불 중생죄과 불견여래국토엄정 비여래구
舍利佛아 我此土淨이어늘 而汝不見이니라
사리불 아차토정 이여불견
이와같이 부정부패와 사기 이렇게 난무하는가!
그리고 땅은 인도사회에 그 얼마나 가시는 그래 많습니까?
얼마나 땅이 척박합니까? 땅이. 우리나라는 참~ 수목들도 부드러워요.
산에 뭐 아무리 깊어도 들어 갈수가 있습니다.
인도는 들어갈 수가 없어요.
전부 가시야! 그러니까 그런 문제 까지도 이제생각을 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거예요. 그걸 굳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리불이 그런 말을 하니까 부처님은 그 생각을 아시고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해서 말씀하시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태양과 달이 어찌 캄캄하며 태양이 어찌 캄캄하며 달이 어찌 캄캄하냐?
그것은 맹인이 보지 못할 뿐이지 그런 뜻이죠.
여기 글대로는 태양이 어찌 저렇게 캄캄해서 맹인이 보지 못 하는가?
그렇게 물었어요. 그러니까 대답하여 가로되 사리불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눈 먼 사람의 허물이지 태양과 달의 허물이 아닙니다.
사리불아 중생의 죄과로 여래의 국토엄정을 보지 못할지언정
국토가 이렇게 훌륭하건만 그것을 중생들이 죄과가 많아서 보지 못할지언정 여래의 허물이 아니다. 사리불아! 나의 이 정토는, 나는 이 국토는 청정하고 내가 보기엔 너무 청정한데 너는 어찌하여 그것을 보지 못하고 청정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온갖 부정부패, 사기, 언덕, 구름, 계곡 이런 것만 보느냐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도 많은 교훈 이 있지요. 정말 어떻게 보면 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우리가 보아야 한다라는 교훈과 특히 사람을 볼 때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제 내가 가지는 마음이 좀 구부러져 있으니까 상대를 그렇게 좋지 않게 보는 경우가 거의 99%입니다. 나는 아주 나쁘게 보고 아무리 좋게 볼려고 해도 볼 수없는 나쁘게 보이는 그 친구도 딴 곳 가면 아주 환영 받습니다.아주 환영 받아요. 그런데 어디서 환영받는 인물도 아주 몹쓸 인간으로 치부되는 그런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까 정해진 것이 없다. 그런데서 우리가 인간관계의 갈등을 풀어야 되요. 저 사람은 나한테는 몹쓸 사람이지만 딴 데 가서는 환영받는 인물이다. 이렇게 하고 자책을 해야지 그 사람 자체를 옳다 그르다 이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이야! 누구를 뭐 정말 가슴 아프게 하려고 계획적으로 그렇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사는데 보는 사람은 대화가 나하고 안 맞으니까 가슴 아프고 속이 상하는 것이에요. 나에게 상처준거야. 그 사람을 상처 줄 의도가 전혀 없어요. 그런데 괜히 상처 받는 거야 그 사람이 그렇게 사는 사람이야 그냥! 그렇게 보면 되는데 그렇게 못보고 우리는 상처 받는다니까 공연히 상처 받아요. 이게 그런 경우 아닙니까? 태양이 어찌 저렇게 어두우냐 말이야! 우리가 보니까 밝잖아 환하잖아 그와 같이 불국토라고 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은 것이야 똑같은 인도사회에서 살았지만은 사리불이 보니까 엉망진창이고 부처님이 보기에 너무 좋은 거예요. 얼마나 좋으냐! 화엄경은 시성정각(始成正覺)으로 인연을 삼았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비로소 정각을 이루시니 그 땅은 견고하야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더라, 그랬어요. 내가 화엄경을 보고서 다이아몬드 찾으러 인도에 갔지. 부처님 성도한 붓다가야에 가서 그 땅은 견고해서 전부 다이아몬드로 깔렸더라. 이렇게 경전에 해놨으니까 그럼 다이아몬드 구하러 갔다고! 가보니까 다이아몬드는 하나도 없고 전부 척박한 흙이고 모래고 저기 뭐 정등각산 가는데 미릉천하도 가보고 해도 다이아몬드는 볼 곳이 아무데도 없어 그저 척박한 모래자갈일 뿐이야. 그런데 거기는 기지가 견고하야 금강소성이라 그 땅은 견고하여 다이아몬드를 이뤄서 그리고 보리수는 온갖 금은 보화칠보로 보리수가 되었더라. 난 보리수가 칠보로 됐는가 하고 아무리 잎을 따고 가지를 겪어 봐도 칠보가 아니야! 나무더라고! 그리고 그 사좌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화려하게 그려놓았어요. 화엄경에! 말도 못하게 그려놓았어요. 당시 사자좌에 깔고 앉아서 기껏해야 길상초라고! 길상초도 부처님이 깔고 앉아서 성불을 했으니까 나중에 길상초라고 이름을 지어줬어. 일주일이상 깔고 앉았으니까 삐쩍 말라가지고 볼품없을 텐데 그것을 화엄경에서 얼마나 근사하게 그려 놓았습니까? 전부 금은보화야, 칠보고 금은보화야. 이 세상에 보물이란 보물은 거기에 다 가져다놓고 설명을 했어. 몇 페이지가 넘어 가잖아요. 이것이 말하자면 부처님의 깨달음의 안목에서 보면 이세상은 더없이 훌륭하고 아름답고 멋진 세상이다 뭐 금은보화 보다 더 멋지고 다이아몬드 보다 더 값진 것이 있다면 아마 그런 용어를 썼을 거예요. 땅이 다이아몬드라서 다이아몬드가 아니야 부처님이 보기엔 다이아몬드보다 더 소중한 세상이야 더 값진 세상이야 이것을 그렇게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경전은 그런 뜻이 정말 아주 금상 어떤 다른 종교서적에도 그런 표현은 없습니다. 한데 그것은 절대 허구가 아닙니다. 거짓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니지만은 진실입니다. 깨달음의 부처님에게 있어서는 너무 진실한 표현입니다. 당신에게 그렇게 소중하게 비치는 걸 어떻게 합니까? 길거리에 걸어가다가 그런 경우 더러 생각을 하죠. 저런 사람하고 누가 살까? 그런데 세상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저런 사람하고 누가 살까 싶은데도 그 사람이 생각하기엔 되게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야! 그보다 더 뭐 미인은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다니까 전부 그 사람에게는 그게 진실입니다. 절대 위장으로 무슨 뭐 돈 울궈 내기 위해서 위장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정말 그렇게 보여서 사는거죠. 부처님 눈에는 다이아몬드 보다 그 척박한 자갈모래밭이 훨씬 소중 한 거죠. 바로 내가 사는 이 순간, 이 땅, 이 자리가 최고죠. 그게 화엄입니다. 어디에서 무슨 소중한 시간과 소중한 공간이 따로 또 있겠습니까? 극락세계 뭐 화장세계 그 역시 눈뜬 사람이 살고 있는 그 순간 그 자리예요. 여기 아주 뭐 간단하게 여긴 참 그~ 명쾌한 비유를 가지고 태양이 어찌 어두우며! 맹인이 눈이 어두워 참 명쾌한 비유입니다. 이런 말을 세상에 어떤 책에서 볼 수 있겠습니까?
"한사람이 성불이면 모든 사람이 다 성불이다 "
螺髻梵王이 語舍利佛하사대 勿作是念하야 謂此佛土를 以爲不淨이라하라
나계범왕 어사리불 물작시념 위차불토 이위부정
그런 생각 해가지고 서 이 세상을 부정하다고
좋지 않은 세상이라고 여기지 말라
所以者何오 我見釋迦牟尼佛土淸淨을 譬如自在天宮이니라
소이자하 아견석가모니불토청정 비여자재천궁
왜냐하면 내가보니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토가 청정한 것을 비여자재천궁이니라! 자재천궁 ,제일 높은 하늘의 천궁보다 더 아름답고 근사한 불토다. 아니 사리불이 어찌돼서 나계범왕보다 못해 그래! 범천의 왕보다 못한 거예요. 여기서 안목이 사리불의 안목이 새삼 그래 됐습니다. 그러니 참 사리불이 지금 면목이 없지요.
舍利佛이 言하되 我見此土하니 丘陵坑坎과 荊棘沙礫과 土石諸山에
사리불 언 아견차토 구릉갱감 형극사력 토석제산
穢惡이 充滿이로다
예악 충만
사리불이 말하기를 아견차토 하니 내가 이 국토를 보니까 구릉갱감 또 형극사력 토석제산 또 예악 이런 것들 이 충만해있다. 온갖 차별과 갈등과 부정부패와 사기와 거짓과 탐욕과 갈취 폭행강도 이런 모든 것들로 꽉 차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보고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은 내용에 있어서는 차별과 갈등과 부정부패 사기 협박 거짓 탐욕 갈취 폭행 정치력을 빙자해 가지고 그~~사업가 에게 돈 뜯어내고 사업가들은 그것을 메꾸기 위해서 저기 다른 나라 에서 온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는 영주권 같은 게 없다고 품값도 적게 주고 나중에는 주지도 않고 쫒아 보내고 또 심지어 악덕 사업가는요 나중에 고발까지 해버려요 이 사람은 영주권도 없고 무슨 여권만료 된 사람이다 불법체류자다 이렇게 자기가 부려먹고 자기가 그 사람으로 해서 쪼끔 품 주고 그래놓고 자기가 또 고발해서 붙잡혀 가도록 만들고는 그러고는 임금 떼어먹는 거야 이런 세상이라고 이런 세상을 사리불이 다 이야기 안했습니다. 마는 이런 눈에 비추는 모습으로서 내용이 그런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무슨 뭐 저기 저 낮은 곳은 낮아야 하고 높은 곳은 높아야 하고 가시도 있어야 되죠. 흙도 있어야 되고 돌도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똥도 있어야 되고 오줌도 있어야 되고. 특히 인도에는 가면은 길거리에 뭐 똥오줌 널려 있는 것이 인도니까 그거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는 거죠.
螺髻梵王이 言仁者의 心有高下하야 不依佛慧故로 見此土爲 不淨耳니라
나계범왕 언인자 심유고하 불의불혜고 견차토위 부정이
나계범왕이 말하기를 인자여 심유고하 하야 마음에 높고 낮은 것이 있어서 부처님의 지혜를 의지하지 못하는 까닭에 이 국토를 부정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舍利佛아 菩薩이 於一切衆生에 悉皆平等하며 深心淸淨하고
사리불 보살 어일체중생 실개평등 심심청정
依佛智慧하야 則能見此佛土淸淨하니라
의불지혜 즉능견차불토청정
사리불아 보살이 일체중생에게 대해서 실개평등하며 심심청정하고 모두 모두 평등하고 그리고 깊은 마음으로 볼 때 아주 청정하고 의불지혜할 것 같으면 능히 이 불토가 청정함을 보게 될 것이다. 부처님의 안목으로 좀 봐라 말이야 !부처님 안목으로 !그러면 그 나름대로 다 일리가 있고 다 괜찮은 것이다. 뭐 부처님 당시에도 지금이나 뭐 크게 다를 거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부처님이 눈을 뜨고 나니까 ! “시성정각(始成正覺)”하고 하니까 그렇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더라. 이렇게 표현 했잖아요.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전부 부처님이더라. 여래출현품에 “기개기재(奇哉奇哉)”라 신기하고 신기하다 어찌하여 저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지혜와 공덕을 똑같이 갖췄는가? 나는 왕자출신이야 아주 귀족이야 그리고 또 6년이라는 피나는 고행을 했어 그렇게 해서 눈을 뜨고 비로소 성불했는데 아니 저 인간인지 동물인지 구별이 안가는 그~ 불가촉천민 사성계급에도 들지 않는 불가촉천민마저도 여래의 지혜와 공덕을 고스란히 다 갖추고 있더라. 완벽한 부처님이더라. 이런 표현이잖아요. 부처님 되면 다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불가촉천민 까지도 여래의 지혜와 공덕을 공히 갖추고 있더라. 신기하고 신기하다 부처님이 신기하다고 하는 소리는 화엄경에 딱 거기 한번 뿐입니다. 부처님이 무슨 그런 출신으로서 세상에 신기한 게 뭐 있겠어요. 지방에 있던 스님들 서울 올라오면 신기한 거 많죠. 부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런 거 보고 신기하다고 안 해. 부처님께서 신기한 것은 저 무지랭이같이 보이는 천민에게도 여래의 지혜와 공덕 을 똑같이 갖추고 있더라고 하는 이 사실이 신기 한 거예요. “기재기재(奇哉奇哉)”라! 두 번이나 탄복을 하신 거예요 그 사실에 눈뜨고는. 이걸 알아야 돼요 우리는. 우리 불교는 이런 점들이 위해하다는 겁니다. 저기 저 오백명장자의 아들들이 오백 개의 일산을 가지고 왔는데 하나의 일산으로 통일했다 얼마나 근사한 법문입니까? 하나의 일산으로 통일됐다. 우리 외형은 다~ 차별합니다. 다 출신이 다르고 얼굴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학력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업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다르지만은 궁극적인 차원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공히 통일된 우리 모두 는 한결같은 부처님입니다. 똑같은 것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로서 뭐 오백 개의 일산이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 이라는 그런 것으로서 아주 잘 표현하고 있잖아요. 경전을 우리가 참 그 깊은 속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 속뜻을 하나같이 제대로만 이해하면은 정말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보물보다도 위대한 보물이라고 하는 것을 더욱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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