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한 때는 가진 자의 전유물이었다.
대중은 글에서 철저히 배척당했다. 글을 알면 죄인이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인류 최고의 발명이 된 이유도
활자가 보급되면서 일반 대중도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글자를 아는 소위 ‘대중’이란 개념이 생겨났다.
글은 누구나 쓴다. 회사에서 사고를 쳐 쓰는 시말서나 경위서, 학교에서 쓰는 반성문, 친구들과 대화하는 SNS나 메신저도 모두 글쓰기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쓰고 또 쓰는 삶이다. 쓰기를 벗어나서 결코 살 수 없다. 송숙희 작가는 ‘글쓰기의 궁극의 영역은 책 쓰기’라고 했다. 글은 누구나 쓰지만 책은 아무나 쓸 수 없다. 이 책은 글쓰기와 책 쓰기를 아우르고 있으므로, 지금부터는 누가 책을 쓰는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책을 쓰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일찍이 책 쓰기 강연에사 강사가 한 말이다. 자꾸 기억이 난다.
책을 쓰는 사람은 상위 1%다. 그리고 책 쓰기 언저리에 있는 사람이 19%이고, 책을 안 쓰거나 못 쓰는 사람은 나머지 80%다.
이 말은 책 쓰는 사람의 우월성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책은 최대한 쉽게 써야 한다는 말을 하려고 위 예를 들었다. 하지만 난 자꾸 딴 생각이 들었다. 책은 정작 상위 1%의 초 엘리트만 쓰는 걸까?
책을 쓴 사람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 ▲ 눈물 없이 듣지 못할 인생의 곡절이 있는 사람, ▲ 아주 유명한 사람, ▲ 나머지 기타(일반인)가 있다.
첫째는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다. 어느 한 분야의 일을 꾸준히 하다보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우리가 소위 이야기하는 ‘사(士)’자 직종이다. 전문자격증 소지자나 학위를 가진 사람이다. 연구자나 교수가 여기에 포함되겠다. 이런 분들은 특정 분야를 집중적으로 오랜 기간 공부하고 연구하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난 지적 역량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분들은 책 쓰기가 무척이나 쉽다. 본인이 평생 공부하거나 연구한 전문 분야에 대해 일반인이 알기 쉽도록 안내하는 책을 쓰거나 관련 동종 분야의 사람들이 읽을 만한 전문서를 쓰면 된다. 가령 정신과 의사를 수십년 한 의사가 관련 분야의 일반적인 책을 쓰면 된다. 대표적인 예가 윤홍균 저자의 <자존감 수업>이다. 윤저자는 의사로서 심리 상담가로서 오랜 기간 환자를 대하며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자존감에 대한 책을 썼다. 그가 상담한 환자 중 자존감과 관련한 상담일지만 적당히 정리해도 책 한 권 내기가 어렵지 않다. 이런 분들은 책을 씀으로써 더욱더 유명인이 되고 방송출연을 하거나 강연을 꾸준히 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한 예를 들자면 <한국 부자들의 오피스 빌딩 투자법>의 민성식 저자를 들 수 있다. 민성식 저자는 오랜 기간 상업 부동산 업계에서 일하며 쌓은 노하우로 위의 책을 비롯하여 <부동산 직업의 세계와 취업의 모든 것>, <부동산 자산관리 영문 용어사전 >, <부자의 계산법>을 연이어 히트시킴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가 쓴 책 쓰기 관련 책인 <나도 회사 다니는 동안 책 한 권 써볼까?>도 상당히 좋은 책이므로 일독을 권한다.
둘째는 눈물 없이 듣지 못할 인생의 굴곡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분들의 스토리는 일반인들은 도저히 겪어볼 수 없는 것들이라 책으로 출간하면 반응이 아주 좋다. 아예 열광한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해보지 못한 것을 그걸 이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정작 나는 하지 못할 것 같아도 혹은 하고 싶지 않아도 그 세계만은 엿보고 싶은 일종의 몰카 심리다.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나름 판단도 하고 재단도 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특히 완전히 망했다가 역경을 딛고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선 사람의 스토리는 특히 더 좋다.
가령 <계단을 닦는 CEO>를 쓴 임희성 대표와 같은 사람이다. 그녀는 지적 장애 및 언어장애가 있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부터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일을 해야 했다. 22살의 어린 나이에 원치 않는 출산을 하고 군대로 끌려간 남편은 자살을 하고 말았다. 먹고 살기 위해 남대문 옷가게에서 13년 간 뼈빠지게 일하여 청소용역업체를 차려 잘 되려고 할 순간 뇌종양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병마가 그녀를 찾아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병마와의 싸움에서 이겼지만 사업에서 실패하여 수십억 원의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이 엄청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그녀는 회사를 정상화시켜 지금에 이르렀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나는 사업이 가장 쉬웠어요>의 최인규 대표다. 최 대표는 매출 100억 원이 넘는 중견기업의 CEO이지만 그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종교단체에 빠져 10년간을 허송세월을 하다가 27살에 종교단체에서 쫒겨나 노숙자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복사용지 사업이 전망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같이 종교단체에서 쭂겨난 여자친구를 찾아 200만 원을 빌린다. 그리고 그 돈으로 사업을 시작해 지금의 회사를 일구어 냈다.
이런 분들을 ‘N자형 인간’이라고 한다. 평범하거나 무난하게 잘 살다가 갑자기 추락을 맛보고, 다시 역경을 딛고 일어났다는 점이 알파벳 N자와 비슷하다고 하여 N자형 인간이다. 이런 분들의 스토리는 책을 출간하기 아주 좋다.
셋째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 쓴 책이다. 이런 분들은 유명세 자체가 무기다. 워낙 인지도가 있어서 무슨 내용의 책을 써도 화제가 된다. 가수 양준일이 19년만에 복귀하여 쓴 책, <양준일 Maybe>가 대표적인 예다. 이 책은 출시되자마자 전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사람들은 양준일이란 가수가 왜 19년만에 나타나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는지, 그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척이나 궁금해한다. 이런 콘셉트를 사람들은 아주 좋아한다.
넷째, 이도 저도 아닌 일반인이다. 아주 유명하지도 않고, 전문가도 아니면서 인생은 평범함 그 자체인 사람도 책을 쓴다. 내가 여기에 해당한다. 나 역시 전문가도 아니고, 유명하지도 않으며, 인생의 곡절도 없다. 과거에 책을 쓰는 사람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책 쓰기가 대중화되고 글쓰기 플랫폼이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확장되면서 누구나 쓸 수 있다. 책을 출간하는 방식도 과거의 기획출판 방식에서 탈피하여 이제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다. 심지어 글을 쓰지 않아도 대필작가를 이용해 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다.
실제 이런 유형의 작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작가가 <꿈꾸는 다락방>, <리딩으로 리드하라>, <에이트>의 이지성 작가다. 이지성 작가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을 하다가 뜻한 바 있어 전문 작가가 되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로, 교과서에도 이름이 실릴 정도고, 그가 판 책은 수백만 권에 이른다. 지금도 그가 책을 출간하면 기본으로 20~30만 부 이상 팔리는 유명 작가가 되었다.
‘지대엷얄’의 채사장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는 대중하게 교양 지식을 전달하는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해당 내용을 정리해 책을 출간했다. 베스트셀러가 된 ‘지적 대화를 위한 엷고 얕은 지식’이다. 다양한 주제로 여러 권이 출간되어 ‘지식에 목마른’ 수많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