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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예술로서의 사진》
The Photograph as Contemporary Art
- 샬롯 코튼(Charlotte Cotton)
제4장 무언가 아무것도 아닌 것
(Something and Nothing)
= Part. 1 =
[1] 평범한 사물이 사진의 주제가 된다
1. ‘아무것도 아닌 것’의 의미
(1) 이 장에서 말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평범한 사물과 장면이다.
① 쓰레기, 얼룩, 빈 침대, 먹다 남은 음식, 창문의 습기, 버려진 물건 등이 해당한다.
② 빛, 입김, 그림자처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도 포함된다.
③ 이러한 대상은 일상에서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눈앞에 있어도 주의 깊게 보지 않는 것들이다.
(2) 사진은 사소한 대상을 시각적 사건으로 바꾼다.
① 현실에서 무심히 지나치던 사물을 프레임 안에 선택하여 정지시킨다.
② 정지된 사물을 오래 바라보게 하여 형태·색·질감·위치·분위기를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③ 평범한 사물도 사진으로 제시되는 순간 생각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된다.
2. 사진의 모호성과 상상력
(1) 사진은 현실의 전체가 아니라 잘려 나온 한순간이다.
① 사진에는 사건의 전후 과정과 원래의 시공간적 맥락이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다.
② 관객은 누가 사용했는지, 왜 그곳에 놓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③ 이러한 모호함은 사진의 결함이 아니라 관객의 추론과 상상력을 일으키는 힘이 될 수 있다.
(2) 사진의 의미는 작가가 완성하여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고정된 메시지가 아니다.
① 작가는 대상·순간·시점·프레임·배열·제시 방식을 선택하여 해석의 조건을 만든다.
② 관객은 자신의 지각·기억·경험·감정뿐 아니라 사진이 놓인 사회적·문화적·역사적 맥락에 접속하여 의미를 구성한다.
③ 따라서 사진의 의미는 작가, 작품, 관객, 제시 환경과 사회문화적 맥락이 서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④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무 해석이나 모두 타당하다는 뜻이 아니라, 사진의 구체적인 형식과 맥락을 근거로 서로 다른 의미가 형성될 수 있다는 뜻이다.
[2] 사물성은 사물을 익숙한 이름과 기능에서 벗어나게 한다
1. 사물성의 개념
(1) 사물성(thingsness)은 사진 속 사물이 완전히 상징이나 메시지로 환원되지 않고 사물 자체로 남아 있는 성격이다.
① 컵은 여전히 컵이고 침대는 침대이며 유리는 유리이다.
② 그러나 사진 속에서는 단순한 생활용품이나 도구로만 보이지 않는다.
③ 사물의 형태·표면·질감·무게·놓인 상태와 말로 완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드러난다.
(2) 사물의 익숙한 기능이 약해질 때 사물성이 두드러진다.
① 현실에서는 사물을 주로 이름과 용도에 따라 인식한다.
② 사진은 사물을 원래의 사용 관계에서 부분적으로 떼어내어 낯설게 보이게 한다.
③ 기능에서 벗어난 사물은 다시 바라보고 생각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2. 칸트의 ‘물 자체’와의 관계
(1) 사물성은 칸트의 ‘물 자체’와 비유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① 물 자체는 인간의 감각과 인식 형식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사물의 존재를 뜻한다.
② 사진 속 사물도 관객의 해석으로 완전히 소진되지 않는 물질적 존재감을 남긴다.
③ 그러나 사물성과 칸트의 물 자체는 동일한 개념이 아니며, 사물이 인간의 해석을 넘어서는 부분을 지닌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제한적인 비교이다.
[3] 사진은 존재의 증거이자 부재의 흔적이다
1. 사진의 정지와 ‘그것은 존재했음’
(1) 사진은 실제로 존재했던 한순간을 정지시킨다.
① 회화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장면도 만들 수 있다.
② 전통적인 광학 사진에는 대상이 카메라 앞에 실제로 있었다는 감각이 남는다.
③ 롤랑 바르트는 이를 “그것은 존재했음(That-has-been)”이라고 설명한다.
(2) 사진은 존재를 증명하면서 동시에 사라진 시간을 보여준다.
① 사진 속 대상은 실제로 존재했지만 촬영된 순간은 이미 지나갔다.
② 따라서 사진은 존재의 증거인 동시에 부재와 상실을 환기하는 이미지이다.
③ 빈 침대, 식사 후의 식탁, 벗어놓은 옷과 얼룩은 보이지 않는 사람과 지나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2. 지표성과 흔적의 미학
(1) 사진의 지표성은 현실의 대상과 사진 사이에 물리적인 접촉 관계가 있었다는 성격이다.
① 전통적인 사진에서는 대상에서 반사된 빛이 필름이나 센서에 흔적을 남긴다.
② 사진은 단순히 대상을 닮은 그림이 아니라 실제 대상에서 나온 빛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이다.
③ 그러나 사진이 현실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사진의 의미나 진실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2) 사진은 대상의 재현이면서 부재의 흔적이다.
① 입김은 사라졌지만 사진에는 남아 있다.
② 사람은 떠났지만 침대와 식탁에는 사용의 흔적이 남아 있다.
③ 사진은 현재 보이지 않는 존재와 지나간 순간을 현재의 이미지로 불러오는 매체이다.
3. 법의학적 독해
(1) 관객은 사진 속 사물과 흔적을 사건의 증거처럼 읽을 수 있다.
① 누가 이곳에 있었는가를 추측한다.
②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한다.
③ 왜 이런 흔적이 남았는지 추적한다.
(2) 이를 ‘법의학적 독해(forensic reading)’라고 할 수 있다.
① 사진은 답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② 관객은 탐정처럼 세부적인 단서를 찾아 의미를 구성한다.
③ 그러나 예술사진은 단순한 증거사진이 아니라 흔적이 선택·프레이밍·확대·인화·배열을 통해 하나의 이미지로 변형되는 방식까지 보여준다.
[4] 동시대 정물사진은 전통적 정물화를 변형한다
1. 전통적 정물화
(1)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는 과일·책·악기·해골·촛불·모래시계 등이 등장한다.
① 각 사물은 당시의 문화 속에서 특정한 상징과 의미를 가졌다.
② 썩어가는 과일과 꺼지는 촛불은 삶의 덧없음을 상징했다.
③ 해골과 모래시계는 죽음과 시간의 유한성을 상기시켰다.
(2) 이러한 정물화는 바니타스와 메멘토 모리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① 바니타스는 삶과 세속적 욕망의 덧없음을 뜻한다.
②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이다.
③ 전통적 정물화는 당시 관객이 공유하던 비교적 분명한 상징체계를 통해 죽음과 시간의 문제를 드러냈다.
2. 동시대 사진의 새로운 바니타스(Vanitas)
(1) 일부 동시대 사진은 죽음을 직접적인 상징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① 해골 대신 빈 침대와 벗어놓은 옷을 보여준다.
② 촛불 대신 곧 사라질 입김·습기·빛을 보여준다.
③ 썩은 과일 대신 먹다 남은 음식과 식사 후의 지저분한 식탁을 보여준다.
(2) 이러한 동시대 정물사진은 부재와 시간의 흔적으로 죽음을 암시한다.
① 누군가 사용하고 떠난 자리를 보여준다.
② 한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기록한다.
③ 전통적 바니타스의 문제를 현대의 생활환경과 사진 매체의 특성에 맞게 변형한다.
[5] 사진은 현실의 사물을 발견된 오브제로 바꾼다
1. 레디메이드와 발견된 오브제
(1) 레디메이드는 이미 존재하는 기성품을 작가가 선택하여 예술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① 중요한 것은 사물을 직접 만드는 솜씨보다 선택과 제시이다.
② 사물이 원래 있던 장소에서 분리되어 미술관이나 새로운 맥락에 놓이면 그 의미와 지위가 달라진다.
③ 마르셀 뒤샹 이후 평범한 기성품도 예술적 사유의 대상이 되었다.
(2) 사진도 레디메이드와 유사한 구조를 가질 수 있다.
① 카메라는 현실 속에 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선택한다.
② 프레임을 통해 현실의 연속적인 관계에서 일부를 잘라낸다.
③ 사진은 선택한 사물을 새로운 이미지와 해석의 맥락에 놓는다.
④ 다만 사진과 레디메이드는 동일한 개념이 아니며, 선택과 재맥락화라는 구조에서 유사성을 가진다.
2. 탈맥락화와 재맥락화
(1) 사진은 사물을 원래의 현실적 관계에서 부분적으로 분리한다.
① 기능과 이름이 분명했던 사물이 사진 속에서는 낯설고 모호해질 수 있다.
② 관객은 사진에서 사라진 관계와 전후 상황을 다시 연결하려 한다.
③ 이 과정에서 사물은 새로운 사회적·정서적·상징적 의미를 얻는다.
(2) 이 장에서 다루는 많은 작가는 의미를 사진 속에 완전히 고정하지 않는다.
① 관객이 궁금증을 느끼도록 평범한 대상을 낯선 방식으로 제시한다.
② 관객의 지각과 기억, 사회문화적 지식과 상상력이 작동할 여지를 남긴다.
③ 사진은 사물을 예술적 사고와 성찰의 대상으로 바꾸는 장치가 된다.
[6] 개념미술과 포스트미니멀리즘이 사진의 성격을 바꾸었다
1. 개념미술과 사진
(1) 개념미술에서는 뛰어난 촬영 기술보다 작품을 이루는 아이디어와 체계가 중요해졌다.
① 사진은 행위·과정·설치·수행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② 이후 기록사진 자체가 작품의 한 부분 또는 최종 결과로 제시되기 시작했다.
③ 일부 작가는 의도적으로 아마추어적이고 무표정한 촬영 방식을 사용했다.
(2) 작가의 솜씨와 천재성이라는 전통적 관념이 약화되었다.
① 작품의 가치는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는가에만 있지 않다.
②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관계를 만들며 어떤 질문을 제기했는지가 중요해졌다.
③ 작가는 완성된 의미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객의 경험과 사고가 일어날 조건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2. 포스트미니멀리즘과 일시성
(1) 포스트미니멀리즘은 단단하고 영구적인 조각의 형식에서 벗어났다.
① 섬유·펠트·라텍스·고무·폐품 등 일상적이고 불안정한 재료를 사용했다.
② 작품은 쉽게 변형되고 파손되며 사라질 수 있다.
③ 완성된 형태보다 과정·우연·중력·장소와 시간에 따른 변화가 중요해졌다.
(2) 사진은 일시적인 작업을 보존하는 데 적합한 매체이다.
① 금방 무너질 설치를 정지된 이미지로 남긴다.
② 사라지는 과정과 임시적인 형태를 기록한다.
③ 현실에서는 지속될 수 없는 상태를 사진 이미지 안에서 계속 볼 수 있게 한다.
[7] 왜 사진이어야 하는가
1. 매체 선택의 의미
(1) 어떤 매체를 선택하는가는 작품의 의미와 연결된다.
① 같은 장면도 회화·조각·영화·사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② 전통적인 사진은 실제로 존재한 순간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③ 사진은 사라지는 현상과 임시적인 상태를 현실이 남긴 흔적으로 기록할 수 있다.
(2) 사진은 일시성과 정지의 긴장을 만든다.
① 현실에서는 곧 무너지고 사라질 대상이 사진에서는 계속 정지해 있다.
② 관객은 정지된 사진을 보면서 대상이 이미 변했거나 곧 사라질 것임을 상상한다.
③ 사진의 정지는 완전한 안정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사라짐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한다.
2. 사진적 시각
(1) 사진은 인간의 일상적인 눈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보여준다.
① 특정한 거리·각도·노출·초점·프레임을 선택한다.
② 움직이는 현실을 평면으로 정지시키고 그 일부를 잘라낸다.
③ 크기 확대, 흐림, 흔들림, 겹침을 통해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시각을 만든다.
(2) 사진은 대상을 재현하는 동시에 사진의 표면도 의식하게 한다.
① 피아노 표면의 입김은 실제 사물의 흔적이면서 인화지 위의 얼룩처럼 보일 수 있다.
② 창문 사진은 창밖의 깊은 공간과 유리 또는 사진의 평평한 표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③ 사진은 관객의 시선을 3차원적 현실의 재현과 2차원적 이미지의 표면 사이에서 오가게 한다.
[8] 현상학적 보기와 주의력의 미학
1. 현상학적 보기
(1) 현상학은 세계가 우리의 지각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피는 철학적 태도이다.
① 무엇을 보았는가뿐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고 어떻게 경험되었는가를 묻는다.
② 메를로퐁티의 지각 현상학은 신체와 감각을 통한 세계 경험을 중요하게 본다.
③ 사진은 사물의 의미만이 아니라 사물과 공간이 지각되는 조건을 드러낼 수 있다.
(2) 보는 위치와 조건에 따라 대상은 다르게 나타난다.
① 촬영 거리와 각도가 바뀌면 같은 창문도 전혀 다른 이미지가 된다.
② 초점과 노출이 달라지면 사물의 기능보다 빛과 표면이 중심이 될 수 있다.
③ 사진은 현실이 언제나 하나의 고정된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2. 주의력의 미학
(1) 이 장의 핵심은 사물을 아름답게 미화하는 데 있지 않다.
① 우리가 무엇을 보지 않고 지나치는지를 드러내는 데 있다.
② 사진은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대상을 다시 보게 한다.
③ 사진의 정지는 무뎌진 감각을 깨우고 사소한 대상에 대한 주의력을 환기한다.
(2) 오래 보기는 중요한 감상 방법이다.
①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사진도 오래 보면 다르게 나타난다.
② 사물의 위치·빛의 방향·표면의 질감·미세한 흔적이 서서히 드러난다.
③ 사진은 현실에서 오래 바라보기 어려운 장면을 천천히 관찰하게 한다.
[9] 반스펙터클의 미학
1. 스펙터클 이미지와의 차이
(1) 광고·뉴스·SNS 이미지에는 즉각적으로 시선을 끄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① 강렬한 색채, 충격적인 사건, 극적인 표정과 결정적 순간을 강조한다.
② 관객에게 빠르고 직접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③ 의미와 감정이 즉각적으로 전달되도록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2) 이 장의 사진은 대체로 그 반대편에 있다.
① 작고 조용하며 밋밋한 장면을 보여준다.
② 극적인 사건이나 화려한 볼거리를 피한다.
③ 처음에는 무의미하고 텅 빈 것처럼 보이게 한다.
2. 반스펙터클 사진의 의미
(1) 반스펙터클 사진은 관객의 느린 관찰을 요구한다.
① 즉각적인 감동보다 지속적인 주의력을 요구한다.
② 익명의 사물과 미세한 흔적을 세밀하게 보게 한다.
③ 관객이 자신의 지각과 해석 과정을 의식하면서 의미를 구성하게 한다.
(2) 초상사진의 익명성이 인물을 다시 보게 한다면 사물사진의 사물성은 익명의 사물을 다시 보게 한다.
① 무표정한 초상은 관객이 얼굴·자세·옷·주변 공간을 오래 보게 한다.
② 평범한 사물사진은 표면·질감·위치와 흔적을 오래 보게 한다.
③ 데드팬의 무표정한 태도와 이 장의 사물사진은 극적인 감정 표현을 줄이고 관객의 지속적인 관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10] 한 장보다 배열과 시퀀스가 중요하다
1. 사진 사이에서 생기는 의미
(1) 한 장의 사진은 사소한 관찰에 머물 수 있다.
① 여러 장이 반복되고 편집되면 리듬과 정서가 생긴다.
② 사진 사이의 유사성·차이·충돌이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③ 의미는 개별 사진 안뿐 아니라 사진과 사진 사이의 관계에서도 발생한다.
(2) 관객은 나란히 놓인 사진들을 서로 연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① 색·형태·빛·대상·질감의 공통점을 찾는다.
② 서로 다른 사진 사이에 서사와 인과관계를 상상한다.
③ 부드럽게 이어지는 사진과 서로 충돌하는 사진 사이에서 시각적 긴장이 생긴다.
2. 시퀀스와 편집
(1) 사진집과 전시에서는 배열 순서가 작품의 중요한 일부이다.
① 같은 사진도 앞뒤에 어떤 사진을 놓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② 사진의 수와 관계가 많아질수록 가능한 연결과 해석도 증가한다.
③ 시퀀스는 한 장의 모호함을 반드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와 맥락으로 확장한다.
(2) 좋은 배열에는 하나의 고정된 공식이 없다.
① 많은 사진집과 전시를 감상해야 한다.
② 직접 사진을 선택하고 편집하며 배열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③ 반복적인 실천을 통해 사진 사이의 시각적 관계와 리듬을 감각적으로 익혀야 한다.
[11] 사진의 의미는 사회문화적 맥락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1. 의미는 작가·사진·관객·맥락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1) 사진의 의미는 작가가 독점하지 않는다.
① 작가는 대상을 선택하고 촬영하며 편집과 배열을 통해 의미의 방향을 제시한다.
② 그러나 작가가 의도한 의미가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③ 관객은 자신의 지각·기억·경험·감정·지식과 상상력을 통해 사진을 해석한다.
(2) 관객의 해석은 순전히 개인적인 마음속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① 관객은 자신이 속한 사회와 문화공동체가 만들어놓은 의미와 가치의 체계를 통해 사진을 본다.
② 무엇을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고 느끼는지, 무엇을 중요하거나 하찮다고 판단하는지도 사회문화적 학습의 영향을 받는다.
③ 따라서 사진의 의미는 관객의 개인적 경험과 사회문화적 맥락이 사진에 접속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2. 사진은 익숙한 의미의 맥락을 어긋나게 한다
(1) 사진이 관객에게 익숙한 의미의 맥락과 자연스럽게 접속하면 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 방식으로 사진을 이해한다.
① 아름다운 풍경은 감탄의 대상으로 읽힌다.
② 가난한 사람은 연민의 대상으로 읽힐 수 있다.
③ 가족사진은 사랑과 행복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2) 그러나 사진이 익숙한 맥락에 어긋나거나 쉽게 접속되지 않을 때 새로운 해석이 시작된다.
①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던 쓰레기나 얼룩이 화면의 중심에 놓일 수 있다.
②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가족사진에서 불안과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
③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사물이 오히려 인간의 부재와 시간의 흔적을 드러낼 수 있다.
(3) 이러한 어긋남은 관객에게 질문을 일으킨다.
① 나는 왜 이 대상을 하찮다고 판단했는가.
② 나는 왜 이런 장면을 아름답거나 불쾌하다고 느끼는가.
③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의미와 가치의 기준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가.
3. 사진은 관객 자신의 세계관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1) 사진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관객은 사진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게 된다.
①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사진 속 대상과 사건을 바라보는지 알게 된다.
②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가치와 규범이 자신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발견하게 된다.
③ 사진에 대한 해석은 관객이 가진 사회적 위치·기억·욕망·편견과 세계관을 드러낸다.
(2)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철학에서 성찰 또는 반성이라고 한다.
① 성찰은 사진의 의미를 알아맞히는 일이 아니다.
② 사진을 보면서 자신의 판단 기준과 감정의 근원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③ 좋은 사진은 대상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관객이 자신의 인식 방식까지 바라보게 할 수 있다.
4. 사진은 당연한 의미를 흔들 가능성을 가진다
(1) 모든 사진은 익숙한 현실의 일부를 프레임으로 잘라 새로운 관계 속에 놓는다.
① 현실에서 당연하게 보이던 대상도 사진 속에서는 낯설게 보일 수 있다.
② 원래의 맥락에서 분리된 장면은 기존의 의미와 어긋날 가능성을 갖는다.
③ 이때 사진은 관객이 습관적으로 받아들였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2) 그러나 모든 사진이 실제로 새로운 성찰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① 사진의 형식과 제시 방식이 기존 의미를 그대로 반복할 수도 있다.
② 관객이 이미 익숙한 해석의 틀만 적용하면 사진의 낯섦과 모호함은 쉽게 사라진다.
③ 따라서 사진에는 기존 의미를 흔들 가능성이 있지만, 그 가능성이 언제나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5. 사회는 사진의 낯설게 하는 힘을 익숙한 의미체계 안에서 약화한다
(1) 사진은 익숙한 대상과 의미를 낯설게 보여줄 수 있다.
① 현실의 일부가 사진의 프레임 안에 놓이면 원래의 맥락과 관계가 달라진다.
② 관객은 평소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대상과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③ 그 과정에서 관객은 기존의 가치관과 판단 기준을 되돌아볼 수 있다.
(2) 그러나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유통되는 이미지는 사진을 익숙한 의미의 코드에 연결한다.
① 광고는 사진을 욕망과 소비의 코드에 연결한다.
② 뉴스는 사진을 사건과 정보의 코드에 연결한다.
③ SNS는 사진을 공감·호감·인증·감동의 코드에 연결한다.
(3) 관객은 반복되는 이미지를 통해 이러한 의미와 감정의 코드를 학습한다.
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자동으로 감탄한다.
② 불행한 장면을 보면 익숙한 방식으로 연민을 느낀다.
③ 익숙한 코드에 연결되지 않는 사진은 어렵거나 의미 없는 사진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4) 그 결과 사진이 익숙한 의미를 어긋나게 하고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힘은 약해진다.
① 관객은 사진에서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의미만 확인한다.
② 사진이 기존의 생각을 흔들어도 곧 익숙한 방식으로 해석해버린다.
③ 사진을 새롭게 생각하기보다 정해진 의미와 감정에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5)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관객의 생각뿐 아니라 감각과 감정도 익숙한 의미체계에 길들여진다.
① 무엇을 아름답거나 추하다고 느낄 것인지 미리 정해진다.
② 무엇에 감동하고 무엇을 무시할 것인지도 관습적인 기준의 영향을 받는다.
③ 결국 관객은 사진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기보다 사회가 제공한 기존의 의미를 반복해서 확인하게 된다.
6. 이 장에 수록된 사진들은 익숙한 의미의 자동 작동을 멈추게 한다
(1)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여주는 사진은 즉각적인 의미의 코드에 쉽게 접속되지 않는다.
① 쓰레기·얼룩·빈 침대·습기·남겨진 음식은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명확하게 지시하지 않는다.
② 관객은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 멈추고 오래 바라보아야 한다.
③ 그 과정에서 자신이 왜 어떤 대상을 중요하거나 하찮게 여겼는지 생각하게 된다.
(2) 따라서 이 장의 핵심은 평범한 사물에서 특별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만 있지 않다.
① 익숙한 의미와 감정의 자동적인 작동을 잠시 멈추게 하는 데 있다.
② 관객이 자신의 지각과 판단을 형성한 사회문화적 기준을 되돌아보게 하는 데 있다.
③ 사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해왔는지를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