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술 구조에서 아가보의 예언은 이후 사건을 이해하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합니다. 반면 네 딸의 예언은 구체적인 사건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네 딸의 예언이 중요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것과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가보의 예언은 바울이 고난을 겪으리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지, 그 자체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명령이라고 명시되지는 않습니다. 바울의 동행자들은 예언을 듣고 가지 말라고 권했지만,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 결박당하는 것뿐 아니라 죽는 것도 각오했다고 답합니다(행 21:12–14).
이 대목은 예언의 내용과 그 예언을 들은 사람들의 해석 및 대응을 구분해서 읽게 합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가 특히 흥미롭다고 봅니다. 누가는 바울의 운명과 직접 연결되는 아가보의 예언은 자세히 기록하면서, 빌립의 네 딸이 예언했다는 사실은 짧게 남겼습니다.누가가 기록할 사건을 선택한 결과, 우리는 네 딸에게 예언의 은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들의 예언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합니다.
이 침묵을 억지로 채우기보다, 성경이 알려 주는 사실과 알려 주지 않는 사실을 구별하는 것이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