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무슨 죄야?
최광희 목사
우리나라 속담에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힘 센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는 애먼 사람에게 화풀이한다는 말인데 여기서 등장하는 지명이 왜 하필 종로와 한강일까요?
종로는 조선시대의 시전 중에서도 육의전이 있던 곳입니다. 육의전이란 독점적 판매권을 부여받고 비단, 무명, 종이, 명주, 모시, 어물 등 여섯 종류의 국가 물품을 조달한 큰 상점입니다. 육의전을 운영하는 상인은 양반이 아님에도 나라의 권세를 등에 업고 상당히 위세를 부렸다고 합니다.
반면 한강은 마포, 노량진, 서강 등의 물길을 이용해 전국의 물품이 서울로 들어오는 입구였는데 그래서 한강에는 난전이 형성되었습니다. 난전은 불법이지만 서민들을 위해 묵인을 해주다가 중요한 물품의 암거래나 난전의 지나친 성장을 저지하기 위해 때로 단속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로의 시전에서 위세 높은 상인과 시비가 벌어져도 아무 말도 못하던 사람이 한강의 난전에 가서는 힘없는 상인에게 화풀이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한강에 가서 애먼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단판을 짓든지 그게 안 되면 자기 마음을 비우면 됩니다. 세상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 맘대로 안 된다고 꼭 화를 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맘대로 안 되어 화가 난 사람이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 중에는 엉뚱하게도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영문도 모르고 화풀이를 당하는 그 사람은 뭡니까? 그 사람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아니, 그 사람이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고 시시하게 보입니까? 종로에서 빰을 맞았는데 왜 죄 없는 한강에서 화풀이를 합니까? 한강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A라는 사람에게 화가 났는데 잠시 후에 B라는 사람을 만나서 B에게 얼굴을 붉히고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참 못난 사람입니다. 정말로 이상한 사람입니다. 정 힘들면 내가 지금 속상한 일이 있으니 좀 내버려 달라든지, 내 하소연을 좀 들어 달라든지 부탁하는 것이 옳습니다.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은 자기 인격의 바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어떤 사람이 자기가 화나는 일이 있다고 상관없는 나에게 화풀이를 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자녀에게 화풀이 하지 마세요. 부인에게 화풀이하지 마세요. 부하 직원에게 화풀이 하지 마세요. 엄마에게 화풀이 하지 마세요. 식당 종업원에게 화풀이 하지 마세요. 강아지에게 화풀이 하지 마세요.
화가 나서 견디기 힘들면 저를 찾아오세요. 저에게 하소연을 하세요. 중재를 요청하세요. 해결을 요구하세요. 제가 들어 드릴게요. 제가 같이 울어 드릴게요. 제가 같이 욕해 드릴게요. 제가 위로해 드릴게요. 할 수 있는 것은 제가 해결해 드릴게요. 그러니 한강을 괴롭히지는 마세요. 부메랑이 되어 당신에게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