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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리와 배우는 세계문화유산
7탄-라틴아메리카
이 자료는 세계지리와 세계문화유산 수업을 위해 만들어진 동영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자료입니다.
수업에 활용할 동영상은 생각날기 홈페이지에서 구입하시면 됩니다.
교육법 영상은 유튜브 생각날기 코너에서 관련 영상을 보시면 됩니다.
이제 세계문화유산을 수업하실 수 있도록 교육자료를 올릴 거예요.
교재를 26쪽에서 35쪽까지 미리 읽도록 한 후 영상을 보며 대화를 주고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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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따라 질문의 정도를 알맞게 조절해주세요.
라틴 아메리카는 어떤 대륙일까요?
아메리카 대륙은 파나마 지협을
중심으로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로 나뉘어요.
또는 리오그란데강을 기준으로 위쪽을 앵글로아메리카,
아래쪽을 라틴아메리카로 나누기도 해요. 왜 이렇게 나눌까요?
앞에서 유럽 사람들이 향신료를 찾아서 대항해를 떠났다는 것을 배웠지요?
이때까지 유럽 사람들은 지구에는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대륙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바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바다 끝에는 절벽이 있거나 괴물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서 바다를 통해서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당시 유럽은 부자 나라 중국과 값비싼 향신료와 황금이
가득 있는 신비한 나라 인도로 가기 위해서 경쟁을 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실크로드로 가는 길목에 있던 오스만제국이 막고 있어서 갈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다른 길을 찾아야겠죠?
낭떨어지라서 서쪽으로 갈 수 없으니 아프리카를 삥 돌아서 인도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서기도 했어요.
드디어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는 그동안 ‘암흑의 바다’로 알려져 감히 가볼 수 없었던
아프리카 동쪽 바다를 탐험하는데 성공했어요.
문제는 아프리카로 가서는 아프리카에 살던 원주민들을 유럽으로 억지로 끌고 와 노예로 팔았어요.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지독한 불행의 시작이었지만 유럽사람들에게는
노예를 붙잡아다가 팔아서 큰돈을 벌 수 있는 행운이 시작된 것이었어요.
그러니 유럽인들이 더 경쟁적으로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어요.
그러자 콜럼버스가 어떻게 하나요?
에스파냐의 도움으로 대서양을 건넜어요.
왜 에스파냐는 이탈리아의 탐험가인 콜럼버스를 도와주었을까요?
포르투갈이 찾아나서니 질 수는 없어서 지구는 둥그니 대서양을 건너면
인도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하는 콜럼버스에게 투자를 한 것이지요.
세 척의 배를 타고콜럼버스가 갖고 떠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어요.
원래 지구는 4만 킬로미터가 넘는데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에는 1만 1000킬로미터로 되어 있어요.
거기다 아메리카 대륙은 그려져 있지도 않아요.
그러니 콜럼버스는 조금만 가면 인도에 도착할 거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탐험을 시작하니 지도와는 너무나 달랐어요.
금을 찾으려는 희망을 품고 떠났지만 가도가도 끝없이 나타나는 바다 때문에 불안해지고
세 척에 배에 타고 항해를 함께 한 선원들이 굶주림에 지쳐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어요.
드디어 1492년 10월 12일에 콜럼버스와 선원들은
카리브해에 있는 한 섬에 닿았고 섬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을 환영했어요.
그곳이 인도라고 확신한 콜럼버스는 섬에 사는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어요.
몇 년 뒤 이탈리아 사람인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그곳은 인도가 아니라
신대륙이라는 것을 밝혀내자 사람들은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콜럼버스가 첫발을 디딘 땅은 콜럼버스를 기념하기 위해서
서쪽에 있는 인도란 뜻에서 서인도제도라고 이름 지었어요.
참고사항)
중, 고등학생이라면 연대표에서 알맞은
시대를 찾아보도록 해주시면 세계사 학습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됩니다.
유럽은 남부 유럽과 북서부 유럽으로 나뉜다고 했지요?
남부 유럽에는 라틴족이 살았고, 영국에는 앵글로 색슨족이 살았어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는 라틴족이라고 불리는 에스파냐와 포르투칼,
네덜란드가 침략했고, 북아메리카는 앵글로색슨족이라 불리는 영국과 프랑스가 침략했어요.
당연히 중앙, 남아메리카도 이 사람들이 지배하니까 영향을 받겠지요?
언어도 영국이 지배하는 곳은 영어,
에스파냐가 지배하는 곳은 스페인어,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했어요.
이렇게 문화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 경계선이 리오그란데강이에요.
그래서 리오그란데강을 경계로 북쪽은 앵글로아메리카,
남쪽은 멕시코부터 라틴아메리카라고 부르는 거예요.
유럽인들의 침략은 아메리카 곳곳에 사는 원주민들에게는 큰 재앙이 되었어요.
이들 몸에 묻어온 천연두, 홍역, 감기 등의 전염병을
처음 접한 원주민들이 병에 걸려 떼죽음을 당할 정도였어요.
이때 아메리카 원주민의 4분의 3이 죽었다고 해요. 살아남은 원주민들도 무사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림을 보세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아메리카를 침략한 정복자들은 남아 있는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죽이고,
노예로 부리며 죽을 때까지 광산이나 농장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게 했어요.
왼쪽 윗부분을 보세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원주민이 십자가를 들고 예배를 드리고 있죠?
유럽에서는 계속 믿어왔던 카톨릭에 반발해서 신교인 기독교가 탄생했어요.
그러니 온통 카톨릭의 세상이었던 유럽 국가들도 카톨릭과 개신교를 믿는 나라로 나뉘었겠지요?
대표적인 카톨릭 국가는 스페인과 포르투칼이고 개신교 국가는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에요.
그렇다면 라틴아메리카에는 어떤 종교가 전파되었을까요?
카톨릭이 전파되었어요. 그래서 옆에 신부님이 계시죠?
콜럼버스는 “내가 가는 곳마다 십자가를 심을 것이다.” 라고 했다고 해요.
그만큼 카톨릭을 중시해서 라틴아메리카 곳곳에
성당을 지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카톨릭을 믿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땅에 자신들의 도시를 건설해서 살며 새로운 문화를 발전시켰어요.
그래서 라틴아메리카에는 곳곳에서 침략의 흔적을 볼 수 있어요.
참고사항)
중, 고등학생이라면 연대표에서 알맞은
시대를 찾아보도록 해주시면 세계사 학습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됩니다.
이 성당은 뒤에서 배울 아즈텍의 신전 위에 지어진 성당이에요.
유럽인들은 라틴아메리카를 침략한 것도 모자라 카톨릭을 전파하기 위해
그들의 신전 위에 성당을 지었다는 것도 특징이니 기억해두세요.
참고사항)
중, 고등학생이라면 연대표에서 알맞은
시대를 찾아보도록 해주시면 세계사 학습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됩니다.
성당 안에 그려진 성모마리아예요.
지금까지 익숙하게 보던 성모마리아랑 어떤 차이가 있나요?
과달루페 성모마리아는 갈색 피부와 흑색 머리를 한 것이
마치 멕시코의 원주민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어요.
과달루페 성모마리아 탄생에 관련된 이야기를 알아볼까요?
1531년 12월 9일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후안 디에고가 성당으로 가기 위해서
페테야크 언덕을 오르는데 하늘에서 섬광이 빛나더니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어요.
성모마리아는 후안 디에고에게
“나는 너희의 고통을 위로해주려고 왔으니
이 언덕 위에 나의 사랑을 상징하는 성당을 세워라!"
라고 말하고 사라졌어요.
깜짝 놀란 후안 디에고는 곧바로 성당으로 가서 이 사실을
수마라가 주교에게 말했지만 주교는 이 말을 믿지 못하겠으니 증거를 갖고 오라고 했어요.
후안 디에고가 증거를 찾기 위해 성모마리아가 나타났던 페테야크 언덕 위로 다시 올라갔어요,
그 언덕 위에는 놀랍게도 아름다운 장미꽃들이 한다발이나 피어있었어요.
12월이라 추운 겨울(12월)이라 꽃이 필 시기가 아니었고,
바위투성이의 언덕이라서 결코 장미꽃이 필 수가 없는 지역이었는데도 말이에요.
거기서 성모마리아는 후안 디에고에게 ‘이 장미꽃들을 한다발 따서,
대주교에게 갖다 보여주거라.
그러면 대주교도 너의 말을 틀림없이 믿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이에 후안 디에고는 자신이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어서
장미꽃 한다발을 망토에 담아서 성당으로 돌아왔어요.
수마라가 주교 앞에서 후안 디에고가 망토를 펼치자, 망토에 있던 장미꽃들은 사라지고
대신 성모마리아의 모습이 망토 위에 새겨졌어요.
그러니 이제 완전히 믿었겠지요?
주교가 과달루페 성당을 세우자 과달루페 성모마리아의
발현 소식이 멕시코의 전지역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서,
멕시코인 90% 이상이 천주교로 개종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놀랍고도 신기한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가요?
이외에도 과달루페 성모에 관한 기적적인 이야기는 많이 있어요.
그만큼 신성시한 존재라는 증거겠지요?
그래서 라틴아메리카 성당에 가면 과달루페 성모마리아를 많이 볼 수 있어요.
그 중 수크레의 성모상을 잠시 볼까요?
해발고도 2810미터에 있는 수크레는 스페인에 의해 세워진 도시예요.
전염병을 몰아내기 위해 하얀색으로 칠한 것이 기원이 돼서
아직까지 온통 하얀색의 집으로 되어 있어서 백색의 도시라고 불려요.
수크레 대성당 박물관에 있는 과달루페의 성모예요.
이곳의 성모상이 유명한 이유는 수크레 사람들이 온갖 보석으로 치장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수크레가 무척 부자 동네라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겠죠?
수크레 가까운 곳에는 세계적인 은광인 포토시 세로리코가 있어요.
여기서 캐온 은을 수크레에서 스페인으로 가져갔다고 해요.
나라 이름에서 침략의 흔적을 찾아볼까요?
콜롬비아라는 이름은 아메리카 대륙의 항로를 처음으로 발견한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고 에콰도르는 스페인어로 적도라는 뜻이에요.
적도가 지나가는 나라라서 지은 이름이죠.
또,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어로 은이란 뜻의 아르젠툼에서 나왔어요,
아르헨티나는 유명한 은광이 없는데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은
은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감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실제 볼리비아와 페루에서 은이 많이 나왔는데 이 은들이
아르헨티나로 가서 스페인으로 갔다고 하니 은이란 이름이 아주 안 맞는 건 아니지요.
또, 베네수엘라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와 비슷해서 베네수엘라,
페루는 페루를 침략한 피사로의 상관 이름을 따서 지은 거예요.
아마존강이 있는 브라질은 붉은 염료로 쓰이는 브라질나무가 많아 나라 이름이 브라질이 되었어요.
라틴아메리카는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살아요. 왜 그럴까요?
전염병과 고된 노동으로 원주민들이 자꾸 죽어가자
광산이나 대규모 농장에서 농산물을 심고 거둘 노동자들이 모자랐다고 했죠?
인구를 늘이기 위해서 원주민 여자와 살면서 혼혈아를 낳았어요.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부족한 노동력을 매울 수가 없어서 유럽 정복자들은
아프리카 흑인을 남아메리카로 끌고 와서 노예로 부려 먹었어요.
이런 이유로 라틴 아메리카에는 백인과 흑인.
아메리카 원주민이 있고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물라토,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삼보,
백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메소티소가 섞여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살게 되었어요.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은이 없어서 그런지.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도시를 건설했기 때문에 97퍼센트가 백인이라고 해요.
요즘은 이들을 히스패닉이나 라틴아메리카 출신이라 하여 라티노라고 불러요.
라틴아메리카의 특징 중 하나는 열정적인 춤과 카니발이에요.
카톨릭 국가에서는 부활절이
시작되기 전인 2월~3월에 40일 동안 기도하고 금식하는 사순절을 보내요.
사순절 단식이 시작되기 전에 사흘 동안 고기를 먹고 즐겁게 노는 카니발을 즐겼어요.
그것이 전파되어 라틴 아메리카에서 카니발을 즐기게 된 거예요.
백인들에게 지배당하던 노예들은 카니발 기간 동안이라도 백인처럼 멋진 옷을
차려입고 춤을 추면서 억울하고 슬픈 마음을 달래었어요.
이것이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퍼져 카니발이 열리게 된 거예요.
특히 흑인과 남아메리카의 원주민과의 혼혈인 삼보에서 유래 된 말인
삼바 춤을 브라질읜 삼바 카니발은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하게 되었어요.
라틴아메리카는 축구를 잘 하는 나라가 많지요?
축구는 유럽에서 시작되어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에 노동자들이 즐겨 하던 운동이에요.
이것이 라틴아메리카로 전달되어 축구를 잘 하는 나라들이 많이 모여 있어요.
라틴아메리카는 대륙 남북의 길이가 가장 긴 대륙인 만큼 거의 모든 기후가 나타나요.
중앙아메리카에서는 건조기후와 사바나기후가 나타나고,
적도 근처의 브라질은 열대우림기후, 안데스 산맥과 멕시코 고원에서는 고산기후가 나타나요,
또, 안데스산맥 서쪽에서는 건조기후, 동쪽에서는 열대기후,
온대기후가 나타나고 남아메리카 남쪽에서는 냉대기후, 한대기후가 나타나요.
라틴 아메리카에는 어떤 지형이 있을까요?
남아메리카에는 거대한 아마존 강이 흘러요.
아마존 강을 흐르는 물의 양은 지류까지 합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을 거예요.
아마존 강을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는
열대 밀림을 셀바스라고 부르는데 포르투갈어로 ‘삼림’ 이라는 뜻이에요.
셀바스는 동물들과 식물들의 낙원이며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곳이에요.
지구의 산소 중 4분의 1이 이곳에서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에요.
그러나 최근 아마존 강 주변의 자연까지 마구 파괴되고 있어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답니다.
적도 주변에서는 사바나 기후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북쪽은 야노스, 남쪽은 캄푸스라고 불러요.
사바나와 이름이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라가 다르니 언어도 다르기 때문이에요. 사바나에서는 풀이 잘 자라니까 농사도 잘 되겠지요?
그래서 유럽 사람들이 여기서 플랜테이션 농업을 하도록 했어요. 플랜테이션이 뭘까요?
무엇을 하는 그림인가요?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있지요?
설탕을 처음 만든 나라는 인도로,
이들은 인도에서 향신료와 설탕을 사다가 유럽에 팔아서 돈을 벌었어요.
설탕을 맛보게 된 유럽인들은 설탕 맛에 반했어요.
이때까지 유럽인들이 이가 썩은 경우가 없었대요.
하지만 설탕을 맛본 후에는 이가 썪었다고 해요.
일설에 의하면 태양왕으로 유명한 루이 14세는 설탕을 좋아해서 충치가 많이 생겼어요.
고생을 하는 루이 14세에게 주치의가 왕의 건강이 중요하니
고생시키는 이를 몽땅 뽑아야 한다고 했어요.
당연 루이 14세는 이를 모두 뽑으라고 했는데 이만 뽑힌 것이 아니라 입천장도
모두 너덜너덜~~~그래서 밥 먹을 때 코로 음식이 나오기도 하고, 평소에도 악취가 심했다고 해요.
그런데도 잘보여야 하니 너도 나도 왕에게 아부를 했으니 생각만 해도 ~~~~
여튼 다시 설탕으로 돌아가서 유럽인들은 설탕을 직접 만들고 싶었지만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는 열대 지역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유럽에서 기르기는 적합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라틴 아메리카의 사바나 기후에서는 잘 자라요.
그러니 유럽인들이 어떻게 했을까요?
남아메리카의 열대 지역 중에서도 유럽으로 오가는 배가 쉽게
다닐 수 있는 곳에다 사탕수수를 심고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을 부려 먹었어요.
그래서 남아메리카에 있는 섬나라인 쿠바는 지금도 첫 번째로 꼽히는 사탕수수의 나라가 되었어요.
쿠바 지폐에요.
지폐에 사탕수수가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저기 보이는 남자는 쿠바의 유명한 혁명가 체 게바라에요.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의과 대학에 다니던 평범한 청년이었는데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 여행을 하던 중 라틴아메리카의 가난과 고통을 보게 되었어요.
이들을 돕기로 결심한 그는 1956년 쿠바 반정부 혁명군에 들어 가서 크게 활약을 하였어요.
1959년 혁명이 성공하며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국립 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 등 쿠바의 핵심 지도층이 되었어요.
하지만 쿠바 대혁명 6년 후, 집권자 카스트로의 다음가는 쿠바의 제 2인자가 되었음에도
콩고, 볼리비아 등의 혁명을 지원하기 위해 쿠바를 떠났어요.
결국 그는 1967년 볼리비아에서 게릴라군을 조직하여 싸우다 정부군에 체포되어 죽음을 맞이했어요.
체 게바라는 많은 젊은 사람의 우상이 되는 영웅이니 상식으로 알아두세요.
이렇게 유럽으로 오가는 배가 쉽게 다닐 수 있는 열대 기후 지역의 큰 농장에서 커피나
바나나, 사탕수수, 카카오 같은 농산물 한두 가지를 재배하는 것을 플랜테이션이라고 불러요.
하지만 한두 작물만 재배하는 플랜테이션은 문제가 있어요.
잘 될 때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지만 너무 잘 돼서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거나 흉년이 들면 어떻게 될까요?
어려움에 처해지겠죠?
그래서 요새는 다양한 작물을 재배한다고 해요.
일은 누가 하나요?
원주민이나 흑인이 노예가 돼서 일을 하지요?
아르헨티나를 보세요.
아르헨티나는 온대기후지역으로 넓은 초원을 가지고 있어요.
한반도의 세 배가 되는 넓은 땅이라 얼마나 넓은지 ‘평평하고 넓은 땅’이란 뜻의 팜파스라고 불러요.
이곳에서는 밀과 옥수수, 콩을 많이 기르는데 팜파스 콩은 세계에서 생산량이 세 번째로 많아요.
소를 키우고 있네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을 때에는 소와 말이 살지 않았어요.
그 후 점점 많은 유럽인들이 살게 되면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고기와 우유를 먹기 위해서 소를 키웠어요.
유럽보다 훨씬 넓은 팜파스는 풀도 잘 자라서 소나 양을 기르기 아주 좋아요.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상추 값보다 소고기 값이 쌀 정도라서 하루 한 끼는 소고기를 먹어요.
이 소들을 지키고 관리하던 사람들이 카우보이로 스페인어로 가우초라고 해요.
남북으로 길이가 7천 킬로미터인 안데스산맥은 세계에서 가장 긴 산맥이에요.
게다가 높이가 6,100미터 이상인 봉우리가 50여 개나 있대요.
히말라야 산맥에 이어 두 번째에요.
여기는 높아서 사람들이 살기 힘들만큼 험준한 곳인데도 오랜 옛날 훌륭한 문명을 꽃피우기도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안데스산맥에서는 상춘기후가
나타나는 데다가 중간중간 평편한 고원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잉카제국이 번성할 수 있었고 지금도 높은 고원에 도시가 발달해 있어요.
이제 멕시코 고원으로 가볼까요?
고원은 왜 생길까요?
처음에는 낮은 곳에 있던 편평한 땅이 지구의
운동에 의해서 높이 솟아오르면서 높지만 맨 위는 편평한 고원이 돼요.
멕시코 고원 역시 이렇게 해서 생긴 고원이에요.
그래서 안데스 산맥에서 세워진 잉카제국처럼 이곳에서도
아즈텍 제국이 생겼고 지금도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 시티가 있어요.
멕시코 시티는 1950미터인 한라산보다 높은 230미터에 있는
지역이라 상춘기후가 나타나고 편평해서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아요.
볼리비아에 있는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가볼까요?
고원이 솟아오를 때 바다도 솟아올랐어요.
그러니 높이 올라오니 바닷물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빙하기를 거치면서 빙하가 되었던 이곳은 오랜 세월동안 빙하가 녹으면서
만들어진 호수가 햇볕에 의해 증발해서 온통 소금이 펼쳐진 사막이 된 거예요.
우유니는 해발고도 3,653미터의 높이에
가로, 세로 1,000킬로미터가 넘는 세계 최대의 소금사막이에요.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소금이 쫘악 펼쳐져 있고
비가 오는 우기(12월-3월)가 되면 물이 고여 얕은 호수로 변해서
사막 위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반사해요.
그래서 우유니 사막을 지구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어때요?
정말 멋지죠?
바다 가운데 섬이 있듯이 우유니 사막에는 섬이 하나 있어요.
물고기 모양이라 물고기 섬이라고도 하고 잉카인의 집이란 뜻의 잉카와시라고 불러요.
건조한 섬에는 무척 큰 선인장과 옛날에 바다속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산호가 있어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에 접해 있는 이구아수 폭포는
너비 4.5km에 폭포 높이는 60~82m라고 하니 무척이나 넓고 높죠?
휘어져 흐르는 폭포의 물줄기가 약 270여 개에 이르는
거대한 폭포로 미국과 캐나다 국경선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크다고 해요.
그래서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거대한 물’이라는 뜻의 이구아수라고 불러요.
아메리카에는 어떤 문화유산이 있을까요?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도착해서 머무른 섬은 서인도제도에 있는 히스파니올라섬이에요.
이 섬의 동쪽에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인 산토도밍고는 성스러운 일요일이라는 뜻을 가졌어요.
콜럼버스가 10월 12일 일요일에 이곳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에요.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산토 도밍고에는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 에스파냐인들이 찾아와 신대륙 최초의 도시를 건설했어요.
식민지구라고 말하는 소나 콜로니알로 가볼까요?
올드타운인 이 지역은 길바닥의 돌 하나도 최고 500년이 넘은 것이라고 해요.
신대륙 최초의 거리인 라스 다마스에요.
1502년부터 1505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이 길을 중심으로 콜럼버스 유적이 펼쳐져요.
자신을 도미니카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산토 도밍고를 사랑했던 콜럼버스 광장이에요.
광장에는 산토 도망고 성당과 콜럼버스 동상이있어요.
광장을 중심으로 올드타운에는
성당과 병원, 수도원, 요새, 대학, 도로 등을 건설해서 침략의 본거지로 삼았어요.
말하자면 신세계에서 스페인 권력의 첫 번째 본부가 된 것이지요.
그래서 신대륙에 진출한 다른 나라들도 산토 도밍고를 본떠 도시를 건설했다고 해요.
하지만 나중에 페루, 멕시코 등을 스페인이 정복하면서 이곳의 중요성이 차차 낮아졌어요.
서인도 제도의 총독으로 지내던 시절, 콜럼버스 아들인 디에고
콜럼버스가 사용하던 집무실과 저택으로 사용하던 건물이에요.
저 건물은 끌과 정을 이용해서 만들었고, 못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남아 있어요. 대박~~
이처럼 산토도밍고의 콜럼버스 유적지에는
15, 16세기의 특성으로 지은 당시에 요새의 성벽과 성당 등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요.
도시 건설이 시작 처음 만들어진 것이 오사마 요새예요.
오사마 강 하구에서 침입하려는 적으로부터 산토 도밍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건축 당시에는 산토 도밍고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해요.
니콜라스 데 바리 병원이에요.
지금은 태풍과 지진의 피해를 받아 기능과 뼈대만 남아 있어요.
이외에도 아퀴나스 대학과 원주민을 가두는데 사용했던 오사마 교도소 등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요.
산토 도밍고에 식민도시가 건설되면서 본격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원정이 시작되었어요.
그 중 에르난 코르테스는 쿠바를 점령해서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하며 큰 부자가 되었어요.
더 큰 욕심이 생긴 그는 유카탄 반도를 침략했어요.
그리고는 마야 부족을 점령하고 마야 문명을 파괴했어요.
마야문명은 과테말라, 벨리즈, 멕시코에 걸쳐 널리 퍼져 있어요.
마야문명을 잠깐 보고 갈까요?
마야족은 세계에서 0의 개념을 최초로 사용한 부족으로 태양력을 사용했다고 하죠.
마야문명의 특히 우수한 건축술을 가진 것으로 유명해요.
과테말라 티칼에 있는 마야 유적이에요.
열대 밀림 속에 있어서 예전에는 이곳을 종교적 목적으로 지어진 상징적
건물로 여겼으나 더 발굴을 하면서 보니 왕족과 귀족의 거주지였다고 해요.
저기 보이는 피라미드가 재규어 사원이라고 해요. 참 신비롭죠?
신비로운 모습 때문인지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으로 나오면서 유명해진 유적이에요.
멕시코에 있는 치첸이트사예요.
5세기경 마야족이 들어와서 살다가 10세기경 톨텍 문명의 틀렉족의
침략으로 빼앗겼다가 13세기경 다시 들어와서 마야문명을 일구었다고 하는 곳이에요.
가운데가 유명한 쿠쿨칸 피라미드이고요. 왼쪽 옆이 구기장이에요.
엘카스티요 피라미드는 높이가 30미터인데 자체가 마야의 달력을 나타내고 있다고 해요.
왜 그런지 살펴볼까요?
피라미드는 4면으로 되어 있는데 한 면당 91개의 계단이 있어서 합치면 총 364개의 계단이에요.
여기에 최상부에 있는 쿠쿨칸 신전인 1단을 더하면 365가 되어 1년 365일과 일치해요.
그리고 총 9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4면을 합치면 총 36층,
이것을 반으로 나누면 18이 되어
마야의 달력에서 말하는 1년인 18개월과 일치한다고 해요.
피라미드 바닥 쪽에는 뱀머리 모양의 석상이 있어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날,
해가 지기 직전에 보면 피라미드에
그림자가 지면서 계단 옆면에 구불구불한 뱀 그림자가 나타난다고 해요.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마야족이 뱀을 무척 숭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독수리 신전에 새겨진 조각이에요.
사람의 심장을 들고 있는 독수리와 뱀신인 케찰코아틀 신이 새겨져 있어요.
조금 있다가 나올 아즈텍 문명의 케찰코아틀신의 형상을 마야 문명에서도 볼 수 있네요.
케찰코아틀신은 아즈텍문명에서 이야기할게요.
이곳은 구기장이에요.
구기장 가운데 있는 것이 왕의 자리인데 저기를 보고
말을 하면 양쪽 벽면에 소리가 부딪쳐 우렁차게 나간다고 해요.
손을 제외한 몸의 다양한 부위를 이용해서 원 안에 골을 넣는 거예요.
저 원의 높이가 8미터가 넘는다고 하니 승자는 대단한 실력자였겠죠?
봄, 가을에 경기가 열리는데 여기서 이긴 사람은 태양신에게
제물로 바쳐졌다고 하니 공놀이가 아닌 일종의 종교의식이라고 해요.
지고 말지~~~
구기장 오른쪽에 있는 희생 제물의 해골을 걸어 놓는 곳으로 촘빤틀리 제단이라고 해요.
이외에도 여러 건축물이 있지만 아직은 모두 밝혀지지 않았어요.
마야문명은 아직 시작과 멸망을 확실하게 풀지 못한 수수께끼 문명으로
코르테스는 이들을 점령한 후 눈길을 멕시코 고원에 있는 아즈텍 제국으로 돌렸어요.
멕시코고원에 세워진 아즈텍으로 가볼게요.
이곳에 세워진 고대 왕국 중 가장 발달한 아즈텍 제국이 있었던
멕시코는 세계에서 제일 은이 많이 나는 나라에요.
그러니 많은 부를 축척하고 싶었던 코르테스에게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어요.
아즈텍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이에요. 어디에 세워졌나요?
호수에 세워진 도시에요. 이곳이 지금의 멕시코 시티에요. 어떻게 될까요?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고 하죠?
그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고,
호수 위 세워진 도시 테노치티틀란은 외부로 다닐 때는
배를 타고 다니고 적이 침입할 때는 다리를 들어 올렸다고 해요.
여기를 기반으로 중앙아메리카 전 지역 지배하자 인구도 늘고 식량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1265년에 치남파의 늪과 습지를 밭으로 만들어 옥수수와 감자를 재배했다고 해요.
지금 티티카카호수에 사는 민족이 갈대로
섬을 만들어 사는 것을 보면 당시 아즈텍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어찌되었든 대단한 민족이에요.
테노치티틀란이 모습이에요. 어떤가요?
무척 번화한 모습이죠?
인구는 당시 2500만 명 정도가 되었다고 해요.
비교하자면 비슷한 시기였던 조선 세종대왕 때
인구가 1500만 명, 많을 때는 1900만 명이었다고 하니 정말 많은 거죠.
이들은 물건을 사고 팔 때 초코렛의 원료인 카카오 콩을
화폐로 사용했다고 하니 카카오 콩이 이들에겐 무척 귀한 물건이었던 것 같죠?
저기에 보면 분장을 한 아즈텍 전사들이 있어요.
전쟁을 할 때 저런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요?
상대방에게 두려움을 주겠죠?
저기에 재규어 가죽을 쓴 전사도 보여요.
이런 모습을 한 용맹한 전사가 주변 부족을 모조리 점령한 거예요.
그리고 진 부족을 잡아 와 노예로 부리기도 하고 저기
보이는 피라미드에서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제물로 바치기도 했어요.
왜 이들을 제물로 바쳤을까요?
아즈텍족은 고산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옥수수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태양신을 섬겼어요.
이들은 신에게 옥수수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빌기 위해서 피라미드를 세워 제사를 지낸 거죠.
또, 제사를 지낼 때는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는데,
이는 인간의 피로 우주의 생명이 유지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말이 제물이지 심할 때는 10분에
한 명씩 제물로 바쳐서 일 년에 오만 명이 제물이 되기도 했다고 해요.
정말 끔찍하죠?
그럼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딱히 단백질을 보충할 만한 가축이 없어서 단백질 보충용으로 인육을 먹었다고 해요.
아즈텍족이 달력으로 사용하던 태양의 돌이에요.
아즈텍족은 농사를 짓기 위해 해와 달의 움직임을 관찰해서 1년이 365일인 달력을 만든 거예요.
이렇게 뛰어난 문명과 용맹한 전사가 있었던 아즈텍 제국은 왜 코르테스에게 멸망 당하고 말았을까요?
첫 번째는 신화를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아스텍 신화에 등장하는 뱀 신인 케찰코아틀이에요.
아름다운 뱀이라는 의미의 케찰코아틀은 녹색 깃털 날개를 단 뱀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인간의 모습을 할 때도 있다고 해요.
아즈텍 신화에서는 현재의 세계가 탄생하기 전에 세계는 세 번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중 두 번은 케찰코아틀이, 한 번은 전쟁의 신 테스카트리포카가 만들었어요.
그리고 네 번째인 지금의 세계는 두 신이 협력해서 만들었는데
나중에 전쟁의 신인 테스카트리포카가 배신을 해서 케찰코아틀신이 아스텍에서 추방되었다고 해요.
옥수수를 발견한 신이며 달력, 문화 예술을 창조한
케찰코아틀신은 추방되면서 다시 돌아와서 풍요의 시대를 열 거라고 했어요.
아스텍족은 이 전설을 믿어서 케찰코아틀이 돌아올 때까지
제단에 만들어 제물을 바치고 곳곳에 케찰코아틀을 새겨 놓았어요.
아즈텍 제국의
몬테수마 황제가 코르테스를 만났어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스텍 제국의 황제는 처음 보는 하얀 백인들을
보고 전설 속의 신이 자기들을 찾아왔다며 성대하게 맞이했어요.
하지만 코르테스는 마음을 놓고 있는 아스텍 사람들을 죽이고 황제를 포로로 잡았어요.
두 번째는 주변 부족들과
전염병이 도왔기 때문일 거예요.
전쟁에서 진 주변 부족들은 어땠을까요?
언제 잡혀서 제물이 될지 모르는데 자기네 들은 신나서 축제를 벌이니 이를 갈았겠지요?
그래서 코르테스를 도와주었어요.
그래서 황제가 잡혀서 죽은 후에도 용맹하게 싸웠지만
총과 칼을 앞세운 코르테스의 군대, 주변 부족의 도움으로 결국은 지고 말았어요.
거기에 유럽인들이 몰고온 전염병도 한몫했어요.
아즈텍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과 문자예요.
아즈텍은 그림문자를 만들어 썼어요. 어떤 내용인 것 같나요?
상형 문자는 쉽긴 하지만 의미 전달이 어떤가요?
쉽지 않아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마야문명, 아즈텍문명, 잉카문명은 제대로 된 문자를 갖고 있지 않았어요.
잉카인들은 마야와 아즈텍족이 상형문자를 썼던 것과는
달리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외워서 전하는 아마우타라를 사용했어요.
그리고 다른 보조 수단으로 키푸라는 매듭을 사용했어요.
키푸의 색깔과 키푸에 지어진 매듭의 숫자나 모양,
매듭이 지어진 위치 등으로 가구 수나 세금액 등을 계산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힘들어요.
그러니 이들이 정보를 얻고 교환하기 쉬웠을까요?
콜럼버스는 서인도제도를 발견하고 그것을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겼어요.
그러니 이것을 유럽인들이 보고 꿈을 꿨을까요?
분명 코르테스도 정보를 얻었을 것이고,
잉카 제국을 점령했던 피사로도 코르테스에게
정보를 얻어서 총과 칼로 쉽게 이길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기록의 힘!!
정말 중요해요.
전쟁에서 이긴 코르세트는 스페인 국왕에게 카카오를 바쳤어요.
코르테스는 행군하는 병사가 한 잔만 마셔도 하루 종일 힘을 내는 음료라고 했어요.
이때 스페인 국왕은 그냥 먹으니 쓰잖아요.
그래서 설탕과 우유를 타서 마셨더니 무척 맛있어졌어요.
요걸 비싸기 팔아야겠죠?
그래서 비법을 금지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걸 굳게 만들면 뭐가 되나요?
초코렛이 돼죠. 유럽 사람들이 열광했을까요?
그러니 뭐가 필요해요?
유럽에도 우유는 충분히 있으니 사탕수수와 코코아가 필요했고,
유럽인들은 신대륙에 진출해서 앞다투어 플랜테이션 농업을 하게 된 거죠.
이들은 카톨릭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아즈텍 문명을 파괴하고 그 위에 메트로폴리탄 대성당과 큰 광장을 만들었어요.
지금은 파묻힌 문명을 재건하고 있지만 아직은
아즈텍문명 위에 세워진 도시인 멕시코시티로 인해 테노치티틀란을 볼 수는 없어요.
안타깝지만 테오티우아칸에 가면 아즈텍 문명의 뿌리를 느낄 수 있는 유적이 있어요.
테오티우아칸은 아즈텍 문명 이전에 멕시코 고원에서 발달한 문명이었어요.
이 문명은 다른 부족의 침입을 받아 멸망했지만
고스란히 아즈텍에 전해져서 아즈텍문명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에요.
저기 보이는 길이 죽은 자의 길이에요.
16세기에 저곳을 발견한 유럽인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보고 신들의 도시라는 의미의 테오티우아칸이라고
이름을 짓고 저길 양옆에 있는 피라미드는 무덤이라 생각해서 죽은 자의 길이라고 지은 거예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주민들이 살던 집이었다고 해요. 아무래도 귀족의 집이었겠죠?
156년 걸쳐 만든 도시인데 대부분 땅속에 묻혀있어서 지금은 10%만 발굴되었다고 해요.
멕시코는 지진이 많은 나라인데도 얼마나 튼튼한지 아직까지 남아 있어요.
테오티우아칸에는 이들이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태양의 피라미드가 있어요.
이 피라미드는 65미터의 높이에
아래폭은 230미터,248개의 계단이 있는 멕시코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예요.
크기가 책마다 다르니 참고로만 알아두세요.
사람들과 비교하니 엄청나게 크죠?
여기서도 제물을 바쳤겠죠?
테오티우아칸에는 케찰코아틀 신전과 달의 신전도 있어요.
저 조각은 케찰코아틀에 새겨진 비의신 틀락록과 케찰코아틀신이에요.
비의 신이라 물을 피하려고 수경 같은 눈이 달렸나 싶게 눈이 동그랗죠?
로봇같기도 한 것이 마치 외계인이 와서 새겨 놓은 조각같아요.
안데스산맥에 세워진 잉카제국으로 가볼까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페루는
100여 년 동안 안데스 지방을 지배했던 잉카제국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큰 나라예요.
여기서 문명이 일어난 이유는 알고 있죠?
안데스 산맥은 무척 높지만 상춘기후가 나타나고,
산맥 사이사이에 넓은 계곡과 편평한 땅이 있어서 문명을 발전시키기가 좋았어요.
잉카제국 역시 태양신을 섬긴 제국이에요.
그러니 스토리는 비슷하겠죠?
아스텍이 멸망한 후 잔혹한 피사로가 이끄는 또 다른 에스파냐의 군대가 잉카로 쳐들어 갔어요.
비운의 황제 아타우알파예요.
의자에 앉아서 거드름 피우가 앝타우알파 황제가 어떻게 되었나요?
이들이 쏘는 포, 총, 칼 앞에서 맥도 못 추고 있죠?
자신들의 인원이 많아서 방심한 데다가 신무기에 꼼짝 못하고 있어요.
십자가를 든 신부님도 보이네요.
이들은 잉카의 황제를 인질로 삼아 금,은 보화를 요구했어요.
그러니 줘야 하죠?
황제는 자기를 풀어주면 많은 양의 금은보화를 주겠다고 하지만 이미 게임의 결말은 뻔하죠.
그러니 어떻게 했을까요?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 교수형이고 안 하면 화형을 시킨다고 했어요.
결국 아타우알파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 처형되었어요.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에요.
잉카제국에는 왕이란 신과 같은
불멸의 존재라서 미라로 만들면 태양신이 다시 부활시켜 준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러니 아타우알파는 죽더라도 시신을 그대로 보존해야겠죠?
미라가 되면 태양신이 다시 살아나게 할 것이라고 믿었기에 그리스도교 세례를 받은 것이지요.
잉카 부족은 황제가 죽은 후에 대항하다가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전염병으로 죽기도 했어요.
남은 사람들은 이렇게 광산에서 일해야 했어요. 앞에서 포토시를 잠시 이야기했죠?
볼리비아는 국토의 삼분의 일을 안데스산맥이 차지하고 있는데
나머지 부분도 높은 지대라 농사보다는 지하자원이 많이 묻혀 있어요.
그중 포토시의 세로리코에는 은이 무척 많이
매장돼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광산 노동에 시달려야 했어요.
16세기에 은광은 포토시의 세로리코에서 책임졌다고 할 만큼이요.
하지만 많은 양의 은을 가져가서 포토시는 잊혀졌어요.
지금도 주석, 금 등 많은 광물이 묻혀 있어서 광산에서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광물을 채취할 시설이 열악해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다고 해요.
이렇게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의 모든 것을 파괴시켰어요.
수백 년간 조용히 찬란한 문명을 만들었던 잉카가 200명도 안 되는
에스파냐 군대에게 멸망 당해 영원히 인류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도 그 영향을 받고 있어요.
잉카제국은 높고 험한 산꼭대기에 정교하게 다듬은 큰 바위 돌로 성벽을 쌓아
도시를 만들고 신전과 집을 세우고 배수 시설까지 갖춘 마을을 만들었어요.
잉카사람들이 농사법을 연구하던 모라이 유적이에요.
옥수수는 따뜻한 아래쪽에. 감자는 위쪽에 심어야 잘 자란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이렇게 연구한 후에 가파른 산비탈에 돌을 쌓아 만든 계단 모양의 밭에서 농사를 지었어요.
잉카사람들은 라마와 알파카를 키워서 털을 사용하기도 하고 고기를 얻기도 했어요.
수백 년간 찬란한 문명을 만들었던 잉카제국의 수도는 쿠스코예요.
세계에서 가장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문명의 하나인
잉카 문명의 중심지인 쿠스코는 해발고도 3740미터에 있어요.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정복자들은 쿠스코에 있는
잉카문명을 파괴하고 그 위에 성당과 광장을 만들었어요.
태양신 대신 카톨릭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산타 도밍고 성당이 세워진 곳은 잉카제국의
태양신전으로 사용되었던 코리칸차 궁전이 있던 곳이에요.
이 궁전은 온통 금으로 덮여 있었다고 해요. 상상해 보세요. 어땠을까요?
당시 스페인인이 남긴 자료에 따르면 신전 자체가 눈부시게 황금빛으로 빛났다고 해요.
스페인 정복자들은 코리칸차를 허물고 싶었지만
워낙 튼튼해서 기단 부분은 남겨두고 성당의 일부로 썼어요.
잉카제국이 건축 솜씨가 얼마나 튼튼한지 1950년과 1650년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성당의 일부는 무너졌지만 코리칸차의 초석은 지진을 견뎌냈어요.
정말 잉카 건축술이 위대하지요?
잉카제국이 만든 벽이에요.
잉카인들은 금속으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지도 않고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건축물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와요.
저 벽이 모두 황금이었으니 스페인 사람들이 그걸 그냥 두었을 리가 없겠지요?
그 금들을 모두 녹여서 스페인으로 가져갔는데 금이 얼마나 많았는지
금 가격이 내려가서 유럽 경제가 혼란에 빠질 정도였다고 해요.
하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서는 다른 곳과 교류하기가 힘들겠죠?
그래서 이렇게 빼앗은 금을 나르는데 적합한 곳인 항구도시 리마를 발전시켰어요.
리마는 지금 페루의 수도이기도 해요. 쿠스코틑 마추픽추로 가는 관문이기도 해요.
여기를 발판으로 잉카제국이 주변 나라를 정복하기도 하고 관리하기도 하면서
나날이 발전하여 오늘날의 페루와 에콰도르를 아우르는 영토를 차지한 제국이 되었어요.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를 산꼭대기를 깍아 만든 도시인 마추픽추는 파괴되지 않았어요.
깊은 산속에 높은 봉우리 사이에 있는
마추픽추는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아 공중도시라고 불려요.
그래서 에스파냐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덕분에 돌을 층층이 쌓아 만든 건물들이 남아 있어서 잉카인들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어요.
마추픽추는 경작지와 주거지가 구분되어 있죠?
저곳에서 2000명 정도가 살았을 거라고 하는데,
왜 높은 산꼭대기에 이런 도시를 만들었을까요?
전쟁이 일어나면 적의 침입을 피해 숨어있기 위한 요새로 만들었을 거라고도 하고,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을 거라고도 하는데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어요.
중앙 신전도 있고, 높은 곳에 잘 지어진 집은 귀족의 집이고
아래로 내려가면 평민이 사는 집으로 나눠서 지어졌어요.
이때도 신분사회는 철저했나봐요.
사람들이 주거지라서 잉카사람들이 사용했던 토기와 금속 그릇이 많이 나왔어요.
안데스산맥은 너무 높아 숨쉬기조차 힘든 곳이에요.
이런 곳에서 수준 높은 문화를 꽃피웠다니 정말 놀랍죠?
지금까지 라틴아메리카의 기후, 지형, 세계문화유산을 둘러봤어요.
역사, 지리와 함께 배우는 세계문화유산 어땠나요?
이제 배운 것을 정리하기 위해서 체험물에 있는 태양의 신전 팝업북을 만들도록 해주세요.
만들기 방법은 홈페이지
지침서-특강- 세계문화유산-체험물 만들기 영상을 클릭하시면 동영상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체험물에 배운 내용을 적도록 해주세요.
고학년이라면 포트폴리오 지도에 배운 내용을 자세히 적도록 하면 더 효과가 높겠죠?
생각날기 제품이 궁금하시다면
생각날기 홈페이지를 클릭하시거나 http://w-think.com
02- 446-8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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