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김은영
“사랑한 게 죄는 아니잖아. 둘 다 좋은 걸 어떡해!”
얼마 전, “말이야 방구야. 뭐 저런 인간이 있어.”라며 기혼의 아내들을 분노에 떨게 했던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가 있다. 이미 미국에서 논란을 일으킨 드라마를 우리식으로 리메이크했다고 한다. 주제는 흔한 불륜을 소재로 했지만 유책자인 남자의 뻔뻔함이 주부들을 분노케 했다.
나는 그 주인공 부부의 이혼 후의 모습에 많은 의구심이 들었다. 남자는 자신의 불륜으로 이혼을 하고도 전처의 주위에 맴돌고 전처의 남자에 질투를 불태운다. 그런가 하면 애증으로 남편에게 복수를 하던 여자는 어느 날 갑자기 전 남편과 뜨거운 밤을 보낸다. 그리고 극 후반부, 모든 것을 잃은 남자가 차에 뛰어들어 죽으려 했을 때 제지하며 안아준 것은 여자였다. 그 모습에 그들의 아이조차 이해할 수 없어 그 자리에서 사라져 오래 방황한다. 애증과 연민 그리고 미련. 복합적인 감정들이 그들 부부에게 그리고 드라마를 보는 내게 혼란을 불러왔다.
친정 부모님의 경우도 그렇다. 아버지의 술버릇, 말과 행동에 엄마는 늘 짜증 섞인 잔소리와 투덜거림이 있었다. 그러나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엄마는 아버지를 마치 어린아이 챙기듯 다독거렸다. 음식을 챙기고 옷과 입언저리 묻은 것을 닦아주는 등. 아버지께서 갑자기 운신이 어려워 병원에 입원하였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아버지의 간호가 온전히 엄마 몫이 되자 그때도 엄마는 짜증을 냈다. 갑작스런 섬망 증세로 밤새 고생을 한 다음 날 전화를 하면 엄마는 하이톤의 하소연으로 우리를 불안케 했다. 그러나 또 비위가 약한 엄마가 얼마간이지만 대소변 받아내는 일과 큰 덩치의 아버지를 닦고 챙기는 것은 살뜰하게 잘 해냈다. 그리 길지 않은 투병생활 후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엄마는 매번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는 연민이었다가 감사이었다가 미안함을 말한다. 그 바탕엔 이젠 같이 할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것이 깔려 있다. “내 아침에 일어나면 안방 문부터 열어준다. 니 아버지 살아 계실 때 그렇게 했듯이. 잘 때는 살포시 닫아준다 아이가.”
부부는 무언가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나 또한 늦은 나이에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랑 산 기간보다 남편이랑 산 기간이 더 많아졌다. 꺾어진 백 살을 보낸 지도 오래, 이제 사랑이란 감정이 무언지 모르고 그저 룸메이트로 사는 듯하다. 일하는 시간대가 다른 우리 부부는 함께 대화 하는 시간이 적다. 이제는 서로 익숙해져 스킨십이 없는 그런 관계가 그리 어색하지 않고 딱히 불편하지도 않다. 그러다 한 사람의 자리가 비면 허전해질까. 혼자 집 밖에서 자고 오는 일이 없는 남편이 며칠 전 이종 사촌 모임에 가서 집을 비웠다. 혼자 밤 시간을 보내는 일은 늘 있는 일이건만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런 걸 정이라 해야 하나 의리라 해야 하나.
남편은 막창집에서 내게 소주를 따르고
“요즘 우리는 잠자리 안 하니 나는 남사친 아이가. 친구야,반갑다!”
하며 건배한다. 나도 소주잔을 들고
“친구야,반갑다!”
답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