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카이사르는 민중파의 노선에 섰다. 기원전 60년대 말에서 5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소위 제1차 삼두 정치라는 초법적 정치 연대를 이루어 수년간 로마 정계를 장악하였다. 이들 파벌은 자신들끼리 권력을 분점하고자 하여, 원로원 내에서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小 카토),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 등 벌족파의 반대를 받았으며,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이에 가세하기도 하였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기원전 59~55년)하여 로마 제국의 영토를 북해까지 넓혔으며, 기원전 55년에는 로마인 처음으로 브리타니아 침공을 감행하였다. 이러한 공훈 덕분에 카이사르는 강력한 세력가로 입지를 굳혀 폼페이우스를 위협하게 되었으며, 카라이 전투에서 크라수스가 전사하면서 삼두정의 두 정치가 사이에 긴장이 높아졌다. 이렇듯 로마 정계가 재편되면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서로 대치하게 되었으며, 폼페이우스는 원로원의 대의를 내세웠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군단으로 하여금 루비콘 강을 건너게 하는 결단을 내려 기원전 49년에 내전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카이사르는 로마 세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등극하였다.
정권을 장악한 뒤 그는 로마의 사회와 정치에 광범위한 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는 공화정의 귀족 정치를 고도로 중앙집권화하였으며, 급기야 종신 독재관으로 선언하였다. 기원전 44년 3월의 열닷새에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이끄는 일군의 원로원 의원들이 공화정을 복고하고자 카이사르를 살해하였다. 그러나 또 다시 내전이 일어났으며, 결국 카이사르의 양자인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가 영속적인 전제정을 성립하였다. 카이사르가 죽은 지 기원전 42년에, 원로원은 카이사르를 공식적으로 로마의 신으로 축성하였다. 따라서 그의 사후 그의 공식명칭은 신격 카이사르가 되었다(Divus Caesar). 또한 그 이후부터 로마 황제가 죽었을 경우 후임자가 그를 신격화시키는 것이 관례화되었다.
카이사르의 삶은 본인이 쓴 전쟁 기록(갈리아 전기, 내란기)을 통해 상당 부분 알려져 있으며, 정적임과 동시에 오랜 친구였던 키케로와의 서신과 그의 연설, 살루스티우스의 기록, 카툴루스의 시 등 당대의 다른 사료도 남아 있다. 또 아피아노스, 수에토니우스, 플루타르코스, 카시우스 디오, 스트라본 등 여러 후대 역사가들의 기록도 그의 삶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올해는 아프가니스탄 북부 바미얀 주에서 탈레반 정권에 의해 바미얀 석불이 사라진 지 10년 되는 해이다. 2001년 3월, 탈레반은 이교도의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1500년 전 유적인 바미얀 석불을 로켓포와 다이너마이트로 완전히 폭파했다. 바미얀 석불은 2개가 있었는데 각각 높이 55m와 38m짜리로 절벽의 한 면을 파서 만든 작품이다. 그리스 조형미술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을 잘 보여주는 세계적 문화유산이었다. 당나라 현장 법사와 < 왕오천축국전 > 을 남긴 신라의 혜초 스님도 순례 길에 찾았던 이 귀중한 석불이 무지한 종교주의자들 때문에 사라진 것이다. 탈레반 정권은 바미얀 석불뿐만 아니라 사람 모양으로 생긴 모든 조형물과 그림을 아프간에서 없애려고 했다.
2002년 필자는 카불 국립박물관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건물 벽에는 총탄 자국이 여기저기 나 있고 지붕은 로켓을 맞아 날아가버려 박물관이라기보다 공포 영화에 나오는 폐가 같았다. 박물관 입구에 있었다던 두 소조상 자리에는 돌조각만 있었다. 이 소조상은 서기 1세기 쿠샨 왕조의 조로아스터교 제단 중 하나인 수르흐 코타르에서 발견한 것으로, 카니슈카 왕의 동상과 쿠샨의 왕자 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탈레반은 바미얀 석불을 파괴한 것과 같은 이유로 이 소조상들을 폭격했다.
ⓒReuter=Newsis 2001년 3월 탈레반이 파괴한 '바미얀 석굴' 앞에서 아프간 사람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전쟁 직전인 2000년 한 해에만 탈레반 정권은 카불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미술 작품 2750여 점을 파괴했다. 그것도 당시 탈레반 정권의 문화공보장관과 재무장관이 앞장서서 벌인 일이다. 역사학자인 야하 모헤브자다 씨는 "첫날에는 관리 2명이 돌로 미술품을 파괴하더니 다음 날에는 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나중에는 탈레반 병사들이 큰 망치를 들고 박물관에 나타났다"라고 회상했다. 카불 국립박물관에 있던 미술품 대부분이 이렇게 탈레반에 의해 파괴됐다. 야하 씨는 "이제는 그 유물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1974년 펴낸 관광 안내책자를 봐야 겨우 기억할 정도다"라고 전했다. 이 박물관뿐 아니라 아프간 전역에서 2000년 가까이 보존돼오던 유물 중 상당수가 탈레반 손에 사라졌다.
탈레반, 정책적으로 문화유산 파괴
아프간은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중동 지역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해 역사적 유물이 풍부하다. 페르시아인·그리스인·인도인·터키인·몽골인이 2500년 동안 아프간을 통치했다. 그리고 각 시대에 걸쳐 다양한 통치자들이 그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겼다. 알렉산더 대왕이 2300년 전 아프간을 넘어오면서 힌두교와 불교가 아프간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중국과 몽골 및 한반도까지 전파되었다. 그로 인해 고대 조로아스터교부터 지금의 이슬람 문화까지 다양한 종교와 유물이 아프간 전역에 퍼져 있다.
이렇듯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아프간의 각종 문화유산은 오랜 내전과 옛 소련의 침공, 그리고 탈레반의 무지에 의해 파괴됐다. 탈레반 정권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숱한 내전으로 유물이 많이 훼손되었다. 1992년 아프간에서 공산 정권이 붕괴할 때까지만 해도 카불 국립박물관은 건재했다. 그러나 이후 아프간의 점령군이 바뀔 때마다 카불 국립박물관에 있는 유물은 대거 약탈당하거나 파괴되는 신세가 되었다. 고고학자들은 현재 카불 국립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의 70% 정도가 분실되거나 파괴되었다고 추정한다. 기원전 6세기께부터 사용된 금화와 은화는 대부분 도둑맞았다.
'망가진 카불 국립박물관'을 취재하는 모습.
결정적으로 1993년 5월12~23일 12일간 카불 한복판에서 벌어진 게릴라 간 전투는 박물관 건물을 폐허로 만들었다. 건물에 총알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박격포가 수시로 날아들었다. 그 와중에 최고 10만 년이나 된 유물 수만 점이 파괴되었다. 사라진 보물 중 최고 걸작은 최소한 1200년 된 불상이라고 한다. 겨우 12일간 벌인 전투로 이토록 엄청난 유산이 사라졌다. 당시 박물관장이었던 나즈볼라 씨는 "나는 그때 유물을 포장해 박물관 지하에 보관했다. 덕분에 게릴라 파벌 간 전투로 박물관에 박격포탄이 수시로 날아들어도 유물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마저 게릴라들이 탈취해 모두 부숴버렸다"라고 말했다.
당시 박물관 직원이던 누르 칸 씨는 "게릴라들은 문맹이었다. 그들에게 불상은 그저 바윗덩어리요, 그림은 낙서로 보일 뿐이었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유물 중에는 기원전 6세기께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흙으로 빚은 물병이 있었는데, 한 게릴라 전사는 그 병에 물을 담아 마시고 병을 부수어버렸다"라고 떠올렸다. 1993년 당시 상황을 보도한 AFP 기사는 "국립박물관의 한구석에는 힌두 여신 두르가가 인간의 머리를 한 황소를 죽이는 대리석상이 산산조각 나 굴러다니고 있다. 불에 탄 건물의 위층에는 검게 거슬린 철제 항아리와 호리병 및 단지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라고 묘사했다. 당시 문화부 차관이던 메스바 장관은 인터뷰 중 눈물을 흘리며 "게릴라들은 이 박물관이 바로 나라의 심장이며 전 세계의 유산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 후 탈레반 정권이 이들 게릴라를 진압하고 들어섰다. 탈레반은 유물 파괴에 더욱 열을 올렸다. 게릴라들이야 무식해서 유물을 파괴했다지만 탈레반은 글도 알고 이 유물들의 중요성도 알았다. 단지 이들에게는 종교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알려진 바와 같이 바미얀 석불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유산을 정책적으로 파괴했다. 탈레반과 맞서 싸우던 북부동맹 또한 유물 보호에는 문외한이었다. 2500년 전 알렉산더 대왕이 건립한 '다시트-에-할라'라는 고대 성곽이 아프간 북부에 있다. 북부동맹은 탈레반에 맞서 탱크와 대포를 이 고대 성곽에 설치하고 참호를 파 전투를 했다. 북부동맹 전사들은 참호를 파기 위해 파묻힌 성벽의 돌을 파헤쳤다. 탈레반과 벌인 전투에서 포탄을 주고받으며 이 고대 성벽은 조금씩 허물어졌고 성 안에 있었던 고대 유물들은 먼지로 변했다. 결국 근대 역사상 아프간에서는 탈레반이건 게릴라건 혹은 북부동맹이건 그 귀중한 유물을 지킨 세력은 아무도 없었다.
미군 폭격에 사라진 유적들
2001년 미국에 의해 아프간 전쟁이 일어나고 난 후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미국의 첨단 미사일이나 무인 폭격기가 아프간 전국을 벌집 쑤시듯 폭격했다. 그로 인해 오래된 성곽이나 고대인이 집단 거주한 집터 따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물론 미군이 이들 유적지에 관한 정보를 상세하게 갖고 있지 않았기에 생긴 일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한 발만 맞아도 마을 전체가 날아가는 토마호크 미사일이나 폭격기는 이전 그 어느 것보다 더 어마어마한 힘으로 유물을 파괴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08년 5월 나토군 소속 뉴질랜드 군이 노후 군수품을 폭파 처리하는 과정에서 바미얀 석불 두 개 가운데 높이 38m짜리 잔해 일부를 파손한 사건이다. 바미얀 주 문화재 당국의 책임자 나지불라 하라르 씨는 "(당시 폭파로 인해) 불상의 잔해와 그 주변의 벽이 파괴됐다"라고 말했다. 세운 지 1500년 가까이 된 이 바미얀 석불은 탈레반이 파괴한 것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 이 사건은 뉴질랜드 군이 '순진하게' 사실을 실토하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유물 파괴 사건은 이보다 훨씬 많으리라 추정된다. 소련군에서부터 탈레반, 미군과 나토군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아프간 땅에 들어온 점령자들은 유물 파괴 동조자라는 점에서 한통속이었다.
첫댓글음, 곱슬머리 부처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군요, 아프칸지역에 남아있던 불교유적과 그 지역이 대대로 불교의 중심지였고, 동이족들의 터전중 하나였다는 것을 완전히 망각시키기 위해서 탈레반이라는 악역배우들을 고용했던 것이군요,, 그넘들 임금은 마약재배한거 사주는 것으로 지불하고,,,어쩐지 아프칸전 후에 아프칸지역이 전 세계 마약재배의 최대 주산지로 떠올랐다는 것이 수상했는데, 나토군은 탈레반놈들의 마약재배지는 공습을 안한다지요.. 탈레반의 돈줄은 마약재배고, 따라서 마약재배지만 공습으로 초토화시키면 탈레반은 스스로 붕괴될것인데.. ..
아프칸전은 일타삼피의 전략인 것 같습니다. 탈레반이라는 악역배우를 고용해서 아프칸에 남아있는 불교역사와 불교유적,그리고 200만명이 넘는 몽골계혈통들을 말살하고 인종청소 하는 것, 그리고 나토군은 그 탈레반이라는 악당배우를 물리치는 정의의 기사역할로 깜짝등장,,,,,동시에 이란의 동쪽을 봉쇄하고, 동쪽으론 중국을 봉쇄하고,,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아프칸과 중앙아시아의 석유,가스를 장악하고....호..이정도면 거의 일타오피쯤 되겠꾼요..
탈레반은 유물 파괴에 더욱 열을 올렸다. 게릴라들이야 무식해서 유물을 파괴했다지만 탈레반은 글도 알고 이 유물들의 중요성도 알았다. <=== 텔레반이 아프칸의 CIA지부라는 사실은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심지어 텔레반과 싸우는 게릴라도 역시 CIA가 배후조종하죠. 그래서 이들 모두가 CIA의 돈과 지령을 받고 불교유물과 유적들을 모두 부숴버린 것이죠. 개르만족이 자기들을 인도아리안족이라 칭하는데 역시나 이들의 본향이 인도였군요. 로마제국을 날조한 이태리 등의 라틴족의 본향은 아프리카일 겁니다. 곱슬머리 흑인이 무슨 명상을... <=== 역시나 에이즈는 성문란에 기인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런데, 전에 주인장께서 이성계를 예수게이라 하셨는데, 허구의 인물인 예수의 실제 탄생년도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1392년 이후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태동한 시기도 역시 1392년 이후 같습니다... 그렇다면 천주교와 개신교를 만든 장본인은 이성계와 조선왕실이란 결론이 아닐까요? 아마도 백인종에게 어울리게끔 불경을 베껴서 조작해 만든 것 같은데, 그만큼 불경을 잘 아는 동양인의 소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쎄요. 예수교를 만든 사람들이야 불경을 잘 알았을지 모르나, 예수교나 유대교, 수니파 이슬람의 삼위일체교는 뭐 교리랄 것도 거의 알 필요도 없는 아프리카인을 위한 단무지 종교라 글이나 철학.사상 따위는 분에 넘치는 사치라 여겨졌던것 같습니다. 하도 무식해서 폼 좀 잡으려면 글로 쓴 책이 필요치 않느냐 해서 나온게 바이블이란 건데,
그 내용이란 것이 차마 글에 담기에 적합하지 않은 더 혹독한 단무지를 양파에 곁들여 쳐먹으라는 격인데, 제대로 된 정신문화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양이들은 그조차도 맛있다고 우걱우걱 쳐먹은 것이 예수교의 역사인 듯 합니다.
저자가 기억은 안나는데, 서양에서 진실을 폭로하는 어떤 역사학자가 말하기를 "바이블(기독경")은 사실은 불과 1800년대 후반에 완성된 것이라는 글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1800년대 말에 유다학자들이 기존의 많은 종교교리를 짜집기하고 각색해서 180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즈음에 완성시켰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바이블의 무대가 지금의 잊으라헬과 팔레스타인지역이란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랍니다. 동유럽에 있던 빈곤층 아슈케나지들을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시켜서, 중동의 석유를 감시할 병영기지의 군대로 써먹기 위해서 동유럽의 아슈케나지 유다혼혈들에게 그곳이 원래 지들 조상땅이라고 꼬이기 위해서 날조했다더군요
실제로 잊으라헬은 남자나 여자나 다 군대에 보내서 여자애들도 거친 빳빳한 빤스를 입게하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병영국가인데,,이것은 서유럽의 세파라딤 유다왕초들 입장에서는 잊으라헬에 몰아넣은 동유럽게 아슈케나지 혼혈유다들을 이용해서 중동의 전략적 요충지에 최대한 많은 군대를 주둔시켜야 하기 때문에,, 잊으라헬의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까지 로봇화된 군인으로 써먹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항국이란 나라는 유다를 숭배하는 집단들이 지배층이다보니, 이게 무슨 이즈라헬 애들이 대단한 애국심이 있어서 여자도 군에 자발적으로 간다고 개구라를 침. 어차피 갸들도 서유럽 세파라딤 왕초들한테 이용당하는 것인데
역사서에 나오는 일본=히브리=왜노의 정체: 저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재물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언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며 친구를 팔며 조급하며 죽이는도다. 실제 역사서에 나오듯이 이런 인간들은 교미가 유일한 최고 기쁨일 것이기에 그래서 신라가 왜노들에게 문란한 성풍습을 고치라고 통보했던 것이죠. 이들의 집권층이 사기종교로 실외에서 저지르는 문란한 성풍습인 소돔과 고모라 행위를 제한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심술, 거짓말, 모함, 침략, 해코지, 악행 등의 sadistic psychopath 행위로 대신 푸는 것 같습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양대세력이었던 소련과 미국한테 쌍으로 침략받은데가 아프간말고 또 있나요? 제가 알기로 아프간에 마약재배가 급격하게 늘어난 시기가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미CIA업자들이 마약으로 돈벌어서 무기사라고 하면서 엄청나게 늘어난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이후 계속 증가하다가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잡으면서 마약재배지역 소탕으로 마약생산을 많이 줄여가다가 미국이 아프간침공하면서 탈레반에 대항하는 반군이 다시 생산을 늘렸습니다.
문득 통일신라의 종교가 5교(敎) 9산(山)이기 때문에 불교왕조인 쿠산조의 이름이 九山宗의 나라에서 온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신라의 최대판도가 아마 북방불교의 최극성기를 이룩한 쿠산조의 영토와 일치하는 듯 보입니다. 물론 시대야 300-600년 가량 차이가 나지만요. 어쨋든 신라의 문화권의 중심은 구산(九山)의 종파가 번성했던 부처의 땅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오늘날 남은 것이라곤, 잔나비들이 모래 바위 위에다 조각해 논 원숭이 사원이 대부분이지만요. 신라가 유태인에게 찬탈되긴 했지만, 애초부터 부처와 신라인들이 그 느끼한 남방의 가야인들과 피를 섞었던 건 아닙니다.
첫댓글 음, 곱슬머리 부처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군요, 아프칸지역에 남아있던 불교유적과 그 지역이 대대로 불교의 중심지였고,
동이족들의 터전중 하나였다는 것을 완전히 망각시키기 위해서 탈레반이라는 악역배우들을 고용했던 것이군요,,
그넘들 임금은 마약재배한거 사주는 것으로 지불하고,,,어쩐지 아프칸전 후에 아프칸지역이 전 세계 마약재배의
최대 주산지로 떠올랐다는 것이 수상했는데, 나토군은 탈레반놈들의 마약재배지는 공습을 안한다지요..
탈레반의 돈줄은 마약재배고, 따라서 마약재배지만 공습으로 초토화시키면 탈레반은 스스로 붕괴될것인데..
..
아프칸전은 일타삼피의 전략인 것 같습니다. 탈레반이라는 악역배우를 고용해서 아프칸에 남아있는 불교역사와 불교유적,그리고 200만명이 넘는 몽골계혈통들을 말살하고 인종청소 하는 것, 그리고 나토군은 그 탈레반이라는 악당배우를 물리치는 정의의 기사역할로 깜짝등장,,,,,동시에 이란의 동쪽을 봉쇄하고, 동쪽으론 중국을 봉쇄하고,,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아프칸과 중앙아시아의 석유,가스를 장악하고....호..이정도면 거의 일타오피쯤 되겠꾼요..
언제나 날카로운 본향님의 세세한 해설에 감탄하며 감사드립니다 ^ ^
일타 오피! 게임 끝이군요 ^ ^
탈레반은 유물 파괴에 더욱 열을 올렸다. 게릴라들이야 무식해서 유물을 파괴했다지만 탈레반은 글도 알고 이 유물들의 중요성도 알았다. <=== 텔레반이 아프칸의 CIA지부라는 사실은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심지어 텔레반과 싸우는 게릴라도 역시 CIA가 배후조종하죠. 그래서 이들 모두가 CIA의 돈과 지령을 받고 불교유물과 유적들을 모두 부숴버린 것이죠.
개르만족이 자기들을 인도아리안족이라 칭하는데 역시나 이들의 본향이 인도였군요. 로마제국을 날조한 이태리 등의 라틴족의 본향은 아프리카일 겁니다.
곱슬머리 흑인이 무슨 명상을... <=== 역시나 에이즈는 성문란에 기인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런데, 전에 주인장께서 이성계를 예수게이라 하셨는데, 허구의 인물인 예수의 실제 탄생년도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1392년 이후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태동한 시기도 역시 1392년 이후 같습니다... 그렇다면 천주교와 개신교를 만든 장본인은 이성계와 조선왕실이란 결론이 아닐까요? 아마도 백인종에게 어울리게끔 불경을 베껴서 조작해 만든 것 같은데, 그만큼 불경을 잘 아는 동양인의 소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쎄요. 예수교를 만든 사람들이야 불경을 잘 알았을지 모르나, 예수교나 유대교, 수니파 이슬람의 삼위일체교는 뭐 교리랄 것도 거의 알 필요도 없는 아프리카인을 위한 단무지 종교라 글이나 철학.사상 따위는 분에 넘치는 사치라 여겨졌던것 같습니다. 하도 무식해서 폼 좀 잡으려면 글로 쓴 책이 필요치 않느냐 해서 나온게 바이블이란 건데,
그 내용이란 것이 차마 글에 담기에 적합하지 않은 더 혹독한 단무지를 양파에 곁들여 쳐먹으라는 격인데, 제대로 된 정신문화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양이들은 그조차도 맛있다고 우걱우걱 쳐먹은 것이 예수교의 역사인 듯 합니다.
단무지 종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기막힌 비유군요
저자가 기억은 안나는데, 서양에서 진실을 폭로하는 어떤 역사학자가 말하기를 "바이블(기독경")은 사실은
불과 1800년대 후반에 완성된 것이라는 글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1800년대 말에 유다학자들이 기존의 많은 종교교리를 짜집기하고 각색해서 180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즈음에 완성시켰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바이블의 무대가 지금의 잊으라헬과 팔레스타인지역이란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랍니다.
동유럽에 있던 빈곤층 아슈케나지들을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시켜서, 중동의 석유를 감시할
병영기지의 군대로 써먹기 위해서 동유럽의 아슈케나지 유다혼혈들에게 그곳이 원래 지들 조상땅이라고 꼬이기 위해서 날조했다더군요
실제로 잊으라헬은 남자나 여자나 다 군대에 보내서 여자애들도 거친 빳빳한 빤스를 입게하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병영국가인데,,이것은 서유럽의 세파라딤 유다왕초들 입장에서는 잊으라헬에 몰아넣은 동유럽게 아슈케나지 혼혈유다들을 이용해서 중동의 전략적 요충지에 최대한 많은 군대를 주둔시켜야 하기 때문에,,
잊으라헬의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까지 로봇화된 군인으로 써먹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항국이란 나라는 유다를 숭배하는 집단들이 지배층이다보니, 이게 무슨 이즈라헬 애들이 대단한 애국심이 있어서 여자도 군에 자발적으로 간다고 개구라를 침. 어차피 갸들도 서유럽 세파라딤 왕초들한테
이용당하는 것인데
역사서에 나오는 일본=히브리=왜노의 정체: 저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재물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언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며 친구를 팔며 조급하며 죽이는도다.
실제 역사서에 나오듯이 이런 인간들은 교미가 유일한 최고 기쁨일 것이기에 그래서 신라가 왜노들에게 문란한 성풍습을 고치라고 통보했던 것이죠. 이들의 집권층이 사기종교로 실외에서 저지르는 문란한 성풍습인 소돔과 고모라 행위를 제한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심술, 거짓말, 모함, 침략, 해코지, 악행 등의 sadistic psychopath 행위로 대신 푸는 것 같습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양대세력이었던 소련과 미국한테 쌍으로 침략받은데가 아프간말고 또 있나요? 제가 알기로 아프간에 마약재배가 급격하게 늘어난 시기가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미CIA업자들이 마약으로 돈벌어서 무기사라고 하면서 엄청나게 늘어난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이후 계속 증가하다가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잡으면서 마약재배지역 소탕으로 마약생산을 많이 줄여가다가 미국이 아프간침공하면서 탈레반에 대항하는 반군이 다시 생산을 늘렸습니다.
문득 통일신라의 종교가 5교(敎) 9산(山)이기 때문에 불교왕조인 쿠산조의 이름이 九山宗의 나라에서 온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신라의 최대판도가 아마 북방불교의 최극성기를 이룩한 쿠산조의 영토와 일치하는 듯 보입니다. 물론 시대야 300-600년 가량 차이가 나지만요. 어쨋든 신라의 문화권의 중심은 구산(九山)의 종파가 번성했던 부처의 땅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오늘날 남은 것이라곤, 잔나비들이 모래 바위 위에다 조각해 논 원숭이 사원이 대부분이지만요. 신라가 유태인에게 찬탈되긴 했지만, 애초부터 부처와 신라인들이 그 느끼한 남방의 가야인들과 피를 섞었던 건 아닙니다.
유태인인 가야인과 피가 섞이기 전까지 신라왕족을 성공(聖骨)이라 했던 것이고. 이후 잔나비와의 혼혈로 그 뼈대가 허약해진 짝퉁 신라를 개뼉다귀란 의미로 러시아어로 beg(벻-거꾸로 읽어 개뼈)이라 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