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715 세상을 떠나던 날
바라보다 _웹진 문지
2010/07/15 16:33 http://blog.naver.com/withkumsil/30089929819 |
세상 떠나던 날.
어제 텔레비전 「동물의 농장」 프로그램에선 중국의 어린 판다 3형제를 보여줬는데, 모두들 키 작은 나무들 위에 올라가 가지 사이에 큰 머리를 걸쳐놓고 엎어져서 여러 시간 미동도 않고 마냥 잔다. 어린 곰이든 사람이든 잠은 달콤하다. 나는 원래도 잠이 많은데다가, 특별히 규칙적으로 땀 흘려 하는 운동도 마땅히 없다 보니 50이 훌쩍 넘은 지금도 주로 늘어지게 자면서 피로를 푼다. 그렇지만 몸이 너무 둔해지고 뻣뻣해지는 것 같아서 운동량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다행히 잔병치레도 안 하는 편이라서 어쩌다 감기에 걸려도 그냥 푹 자다 보면 낫고, 가끔씩, 여러 해에 한 번 정도 계단에서 구르거나, 의자 위에 올라가다 의자가 부서지거나 하여 와장창 넘어지는 일이 있어 몸에 피멍이 들고 팔다리가 아픈 경우를 빼고선 그다지 몸의 아픔을 겪는 일도 없다. 주인의 게으른 관리에 비해 몸이 알아서 그럭저럭 건강을 유지해오는 듯해서 몸한테 고맙다.
그런데 한두 달 전부터 오른쪽 발바닥 가운데가 안에서 긁어대듯 가렵더니, 양쪽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 사이도 저리기 시작했다. 몸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내게 하소연하는 듯하다. 몸의 자발적인 신호를 받고 보니 드디어 나도 병이 찾아오는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감회가 든다. 시인 두보가 읊었던 “늙고 병든 몸”…… 어릴 때는 어머니가 물려주는 젖을 먹고 마냥 누워 자다가, 두발로 일어서서 걷게 되면 생기발랄한 팔팔함으로 청춘을 구가한다. 거미가 거미줄을 만들어 찬찬히 거미집을 짜 나가듯이 자식을 낳고 재물을 쌓고 다양한 종류의 업적을 쌓아나가는 어른의 시절을 거치고 나면 죽음에 이르는 노쇠함의 자연에 몸을 의탁한다. 태어나 죽는 걸 알면서도 부지런히 노동하여 삶을 영위하니, 주어진 삶을 겸허히 받아들여 열심히 산 사람일수록 말년의 늙고 병든 몸에 새겨진 삶의 수훈을 기억하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한다.
삶의 의미를 그침 없이 묻고, 어차피 죽는 생의 유한성이 허무하게 느껴지더라도 몸이 아프면 일단 병을 고치려고 애쓴다. 사는 건 마음이 아니라 몸이다. 몸은 스스로 수명을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살고자 하고, 가능한 한 살아 있는 생생함을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죽느냐 사느냐, 그런 골치 아픈 심각한 문제는 젖혀두고서라도 일단 손발이 저리다 보니 주위에 수소문한 결과 민간의 지압치료법을 계통 있게 배워 아주 잘하신다는 선생을 찾아가보라고 소개받았다. 그리고 소개받자마자 그 다음날 아침 일찍 그 선생을 찾아 나섰다.
‘이상준지압물리시술원’. 서울 남산 힐튼호텔에서 후암동으로 내려가는 한적한 2차선 도로변에는 오밀조밀한 가게들이 쭉 들어서 있다. 빵집, 양품점, 해장국식당 등의 그 간판들을 쭉 훑으며 내려가다 보니 왼쪽으로 이상준 선생네 간판이 눈에 띄었다. 파란색 바탕에 흰색으로 글자를 쓴 평범하고 구닥다리 같은 페인트 간판이 자그맣게 걸려 있고, 두 짝 알루미늄 새시문을 밀고 들어가니까 콘크리트 바닥에 넓적한 소파가 놓여 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얌전하게 생기신 젊은 아주머니가 소파에 앉아 계신 분이 이상준 선생이라고 안내해준다. 이 선생은 몸이 펑퍼짐하고 얼굴이 둥그스름하니 주름 하나 없이 뽀얗게 빛나는지라 생각보다 젊고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사람이 인사를 해도 쳐다보지 않으니 두 눈이 안 보이는 사람처럼 시선이 다소 아래쪽 한 군데에 몰려 있어 앞을 못 보시는 건가? 긴가민가하게 한다. 사람을 쳐다보기보다는 목소리를 집중해 들으며 대화를 나누기는 한다만, 거동이 자유로운 걸 보면 아주 안 보이시는 것도 아니다.
사무실 안쪽에는 남녀 구분하여 세 명씩 누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요를 깔아놓은 큰 방 두 개가 있다. 방 안쪽 탈의실에서 환자복을 갈아입고서 진단을 받았다.
손발이 저리다 하니 대뜸 목 뒤를 짚어보고 목 양쪽 근육이 모두 굳어서 여섯번째 경추가 눌려 협착되었다며 이틀 동안 침을 맞은 후에 지압을 받으라 한다. 목이 눌리다 보니 순환이 잘 안 되어 손발저림 증세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아무래도 이 경추협착의 원인은 텔레비전을 너무 오랜 기간 본 데 있는 것 같다. 2008년 4월 총선 지나 변호사로 복귀한 이후 내가 아직까지도 잘 고치지 못하고 있는 악습이 텔레비전 보는 거다. 집에만 들어가면 거의 언제나 소파에 옆으로 길게 누워서 여러 시간을 쉬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아왔으니 그 자세로 인해 목에 이상이 온 것 같다. 이 선생이 목 뒤에 침을 여러 개 잠깐 놓았는데 그날은 약에 취한 사람처럼 종일 피곤했다. 선생의 설명이 상세한 것도 아니고 침을 오래 놓는 것도 아니고 지압도 10분, 15분 정도 짧게 하신다 하는데, 소개를 받은 탓도 있으나 그 집의 상황이며, 이 선생 생김새며 진료 방법이며 깨끗하게 빨아서 접어놓은 환자복이며, 전체가 어우러져 상당히 신뢰감을 갖게 해서 선생이 시키는 대로 치료를 시작했다.
이틀을 침을 맞은 후에 계속해서 지압을 받으라고 했는데 일주일 동안 바빠서 가질 못했다. 마침 내 조카 나현도 뒷목과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나현을 데리고 찾아갔더니 크게 야단을 치신다.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야 효과가 있는데 일주일 동안 안 와가지고 도로 아미타불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현에게는 그날 하루 침을 맞고 이틀만 지압 받으라 하면서, 나더러는 지압을 스무 번 받아야 한다고 진단을 내리신다. 그리해서 다시 그날 침을 맞고 계속 야단맞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 선생의 목소리는 크고 굵으면서 짧고 퉁명하게 쏘아붙이듯 말한다. 콕 찌르는 말 하나를 잡아서 반복하고 그다지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다.
다시 침을 맞은 후에는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일주일에 사흘 이상 지압을 받으러 다녔다. 아침에 강남에 있는 집을 나서서 남산까지 갔다가 지압을 받고 강남역 근처 사무실로 출근했다. 어쩌다 받는 건강검진 외에 병원 가기 싫어하는 나로서는 참 성실하게 열심히 치료를 받는 거였다. 삼주 정도 지압을 받으면서 손발 저린 증세는 사라졌고 다만 손바닥 안으로 저릿한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 선생은 정말 잠깐 동안만 목 뒤를 중심으로 몇 군데 맥을 눌러주는데 그 짧은 치료를 받고 나서도 나는 종일 어질어질해서 평소와 달리 낮잠을 잤다. 어느 날엔가는 이틀 만에 가니까, 스트레스를 받았느냐, 목 뒤가 부어올랐다며 다시 침을 놓아주었다. 그러고 보니 맡게 된 사건이며 인간관계며 겹쳐 좀 마음고생을 하긴 했다. 마음상태에 몸이 그렇게 빨리 반응하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몸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압을 한 열번째쯤 받은 지난 목요일, 이 선생이 치료를 해주면서 유언장을 작성하고 싶다고 말을 꺼내셨다. 요즘에야 꼭 죽기 직전이라든가, 특별한 사정이 닥치지 않더라도일찌감치 유언장을 작성해놓는 게 필요하다는 인식이 우리에게도 차츰 익숙해지고 있는 터라 그의 계획이 그다지 의외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와 유언장 작성 뿐 아니라 사후 재산관리 방법도 구체적으로 정해놓으시는 게 좋다고 변호사답게 몇 마디 법률적 조언을 해줬다. 이 선생은 자신이 휴가를 내는 8월 20일부터 31일 사이에 내 사무실로 찾아와서 상담을 하고 유언장을 작성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날 이 선생이 한 말씀은 당신이 실제 나이는 쉰다섯이고, 얼굴은 서른처럼 보이지만, 몸은 칠십이라고 했다. 지압치료라는 게 환자가 힘들면 선생이 편하지만, 환자가 회복되고 쉬워질수록 선생은 힘들다고 했다. 이 선생의 배경도 잘 모르고 지압에 대해서도 아무 사전지식이 없었지만, 지압치료가 선생의 몸과 마음을 집중해서 기를 모아 환자의 환부를 눌러주고 그 힘으로 환자의 몸에 기가 돌고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게 도와주는 치료라는 건 알 수 있다. 그런 치료를 하다 보면 결국 환자에게 선생은 계속 기를 뺏기게 될 것이다. 명의로 소문난 때문인지 이 선생 시술원은 예약을 안 받는데 내가 지압치료를 받는 기간 동안에도 하루에 수십 명씩 치료를 받으러 찾아왔고, 대부분 오래 다니는 단골고객이 많았다. 이 선생은 이렇게 살다 언제 갑자기 죽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고 했다. 나야 물론 좋은 생각이라고 도와드리겠다고 약속을 하고 치료를 마쳤다.
주말을 지나 사무실 일이 바쁜 월요일 지나 화요일 점심에 강북 남산에서 약속이 생겼다. 이제 막 신접살림을 차린 교수 부부와 결혼 축하 겸 만나서 실컷 먹고 마시고 즐겁게 떠들다가 헤어지고서 바로 근처에 있는 시술원을 찾아갔다. 새시문을 밀고 들어가니 강아지도 안 보이고 아주 조용하다. 큰방 두 개 앞에 항상 환자들의 신발들이 여러 개 놓여 있었는데 신발도 하나 안 보인다. 오늘은 손님이 하나도 없네, 오후가 더 한가한가 봐요 하고 인사말을 건네니까 그 젊은 아주머니가 나를 붙잡고서 아주 조용한 말투로 이 선생이 오늘 아침 돌아가셨어요 한다. 아침 여덟 시 반쯤 소파에 앉아서 강아지와 놀다가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아, 참 놀랍고 황망하다. 뭐라 해야 할지. 이 선생의 마지막 치료가 되는 줄도 모르고 열 번 지압치료를 받으며 어떻게 병을 고쳐 살아보겠다고 매달렸던 나로선…… 참 뭐라 해야 할지…… 죽음이 이렇게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살짝 찾아와서 며칠 전까지 볼 수 있었던 선생의 모습이 홀연 사라지고 적막한 공간만 남았다. 이제 그 거리에 그 간판도 사라지겠지. 병의 처음에 선생을 떠나보낼 줄이야……
[출처] 100715 세상을 떠나던 날|작성자 강금실
|
첫댓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 이네요.
저 역시 몸에 대해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느껴 더욱 공감이가고..
재회를 약속한 사람이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확인해보니..
그 전날 세상을 떠났다는 황망한 소식을 접한 기억 역시 비슷하고..
사람이 참...한치 앞만 내다볼수 있어도..
마지막 하루는 참 신실하게 살텐데요...
그럴수 없으니..사람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