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연의(退魔演義) 046 - Side Story Ⅳ Preta
3월 5일.
새 학년이 된지 이틀째다.
나에게는 천국과 같은 이틀이었다.
반이 배정된 후, 매일같이 행복에 겨워 웃고 다니는 날 보고는 남들은 귀신도 피해간
다는 고3이 뭐가 좋으냐고 구박이지만, 난 매일 매일이 천국이고 행복이다. 그 이유
는 바로 내 짝사랑의 상대와 한반이 됐기 때문이다.
내 짝사랑의 상대.
이민우.
민우를 처음 본 건 입학한지 한달 째 되던 날.
입학식이 끝난 지 한달이 지났지만 학교의 그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거나 함께
놀아주지 않았다. 물론 나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점심을 먹거나 등하교 할 때
같이 군것질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시간들이 길어져만 갔다.
-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민우가 내게 했던 첫마디였다.
- 나... 난...
- 그렇게 바라만 본다고 네 친구가 되는 게 아냐.
민우의 냉정하지만 다정한 말에 난 중정에 놓인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는 우리 반 여
자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교실 복도에서 내려다보면 벤치와 아이들이 아주
잘 보인다.
- 하지만... 아무도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는 걸?
난... 소위 말하는 왕따니까...
- ......................
- 나도 모두와 함께 어울리고 싶어. 하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
- 그러니까 네가 제대로 했어야지. 너 자꾸 그러면 안 된다?
- ...............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 준 건 네가 처음이야.
- 네가 이러고 있으니까. 당연한 거잖아.
- .....................
-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 .......... 알았어. 내가 먼저 말 걸게. 그리고 먼저 아는 척 할게.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서서 날 지켜봐주는 민우가 고마워 난 그렇게 말하고는 중정
으로 뛰어 내려갔다.
- 안녕? 저기... 이 빵 먹을래?
- 뭐니? 어디서 썩은 냄새 안나니?
내가 중정 벤치에 앉아있는 여자애들에게로 다가가 들고 있던 땅콩크림빵을 내밀자
동그랗게 앉아있던 여자애들 중 한 명은 혜진이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혜진이는
눈살을 찌푸린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쪽을 힐끗- 보고는 계속 투덜거리기 시작
했다.
- 이래서 우리 학교는 환경 정화 좀 해야 한다니까?
학교 공기가 이게 뭐니? 이게???
- 글쎄 말야. 나 요즘 천우랑 민우 때문에 전학 안 가고 다니고 있는 거야.
학교가 점점 이상하지 않니?
- 그래. 맞아. 요즘 같아서는 전학가고 싶다니까...
나는 완전히 무시하고는 계속해서 자기들끼리 떠들어 대는 아이들의 모습에 난 몸을
돌려 다시 학교 건물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2층에서 아직까지 날 내려다보고 있는
민우의 모습을 발견했다. 민우는 쓸쓸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지만, 난 결국 아무 것도
해내지 못했다.
.
.
.
“ 윤서야. 너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냐? ”
“ 내가? ”
“ 그래. 너 벌써 빵 다섯 개나 먹었어. 점심 먹은 지 한 시간도 안됐잖아. ”
“ 아... 그렇지... 근데 자꾸 배가 고파. ”
“ 요즘 대체 왜 그래? 너 어제부터 이상해. ”
“ 내가? ”
“ 그래. 어쩐지 평소보다 훨씬 활발하고 말도 많은 건 좋은데, 좀 들떠 보인달까? ”
“ 아... 그건... ”
너희가 말을 걸어 주니까...
어제부터 아이들이 말을 걸어주기 시작했다. 3학년이 되서도 단 한번도 말을 걸어주
지 않던 아이들이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아마도 우리 반에서 인기 있었던 그.애.를
도와주고 난 뒤부터 인 것 같다. 같은 여자가 봐도 예쁘고 사랑스럽게 생긴 아이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하더니 어제는 결국 내 앞에서 쓰
러지고 말았다. 그 애를 도와주고 난 후부터 아이들이 내게 말을 걸어주고 다정하게
대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많이 놀라기도 하고, 또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곧 그 애
의 짓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척이나 인기가 많았던 그 애는 내가 자기를 도와 준
것을 친구들에게 말했고, 그래서 그 애의 친구들이 내게도 친절히 대해 주고 있는 것
이다.
변화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여학생들뿐만 아니라 남학생들까지 내게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게다가 그냥 말을 거는 것도 아니라 오늘은 날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해
왔다. 하지만 난 이미 민우를 좋아하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했다. 내가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을 하자 남학생들은 많이 당황한 듯 보였다. 그렇겠지... 아직 한번
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니까...
“ 이제 그만해. ”
“ 민우야- ”
그렇게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낸지 사흘째. 사흘 내내 내게 말 한마디 걸지 않았지만
한 순간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던 민우였다. 게다가 다른 남학생들이 내게 말을 걸어
올 때면 무서운 눈초리로 나와 그 남자애를 노려보기도 했다. 그래서 그 남자애에게
적당히 웃어주고는 다시 민우를 바라볼 때면 민우는 여전히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럴 때는 그 남자애를 돌려보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어쩌면 내 느낌
일지 모르겠지만, 특히 우리 학교에서 인기 있고 멋진 남자애들이 말을 걸어올 때 더
욱 심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민우만 좋아하는 걸-
“ 적당히 놀았으면 그만해. ”
그때 민우의 옆에 서 있던 혜성이가 무서운 눈을 하고는 내게 말했다. 혜성이는 2학
년 때 민우의 반으로 전학 온 남자애였다. 천우, 민우와 함께 어울려 다니는 혜성이는
반년 사이 우리 학교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아이가 되었다. 좋은
성적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가장 커다란 이유라면 단연 튀는 외모였다. 큰 키에 호리
호리한 몸매가 잘 어울렸고, 또 그에 맞는 곱상한 외모는 많은 여자애들의 가슴을 설
레게 했다. 물론 나에게는 민우뿐이어서 단지 항상 민우와 붙어 다니는 혜성이가 부
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내게 이렇게 무서운 눈빛으로 말하다니...
“ 혜... 혜성아... ”
“ 네가 원하는 대로 사내자식들 고백도 받고, 하고 싶은 거 다 했으면 됐잖아.
이제 그만해. 더는 못 봐주겠다. ”
“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민우야. 혜성이 왜 이래? 너무 무서워. ”
“ 하아- 혜성이 말대로 이제 그만해라.
너 모르는 거 아니잖아. 왜 괜히 모르는 척 해? ”
예전과는 달리 더 이상 내게는 다정한 표정을 지어주지 않은 채 무서운 눈빛으로 혜
성이의 편만을 들어주는 민우가 야속하고 섭섭했다. 난... 난 그렇게 오랫동안 널 좋
아해 왔는데, 넌 어쩜 이럴 수 있니?
“ 민우야- 어쩜 그렇게... 난 너만 좋아한단 말야!!! 아!... ”
아! 이런... 흥분해서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민우에게 고백을 하고 말았다. 게다가 혜성이 앞에서...
아... 이런 실수가...
“ 아. 저... 그... 그게..... 나... 난 몰라!!! ”
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직접 민우에게 고백이라니...
민우는 또 얼마나 놀랬을까? 민우는... 민우는... 아... 정말 죽고 싶어...
난 그대로 몸을 돌려 뛰었다. 민우가 날 잡을 수 없도록 여자 탈의실로 뛰어 들어갔
다. 다행히 다음 시간이 체육시간이라 탈의실은 우리 반 여자애들로 가득 차 있었다.
“ 윤서야. 왜 이렇게 늦었어. 네 체육복은 우리가 가져왔어. ”
“ 아. 고마워... ”
난 혜진이에게서 체육복이 든 가방을 받아들고는 교복을 벗고 체육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 윤서 너 요즘 살이 너무 빠진 거 같아. ”
“ 그래? ”
체육복을 입기 위해 교복을 벗은 날 본 지우가 말했다. 지우의 말에 난 얇은 민소매
티셔츠만 입고 있는 내 팔을 내려다 봤다. 물론 내 팔은 지우를 비롯해 탈의실에 있
는 다른 여자애들보다는 훨씬 가늘었다. 하지만 내 팔은 원래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월등히 가늘었으니까...
“ 그래. 너 너무 다이어트 심하게 하는 거 아냐? ”
지우의 말에 옆에서 벌써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혜진이도 말했다.
“ 아냐. 난 먹을 거 좋아하는 걸? ”
“ 그래. 지금도 이렇게 많이 먹고는 있지만, 그래도 자꾸 살이 빠지니까...
너 혹시 먹고 토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 ”
“ 아냐!!! ”
혜진이의 말에 난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내가 먹을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 그래. 그러지 마. 그런 짓 했다가는 거식증 걸리니까. 괜히 그러면 몸만 버려. ”
“ 그래. 안 그래. 근데 네가 자꾸 먹는 거 이야기 하니까, 또 배고프다- ”
지우의 말에 난 얇은 민소매 티셔츠 아래에 있는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아까 꽤 많
은 양을 먹은 거 같은데도 배가 고프다. 속이 더부룩-한 것을 봐서는 소화는 안 된
거 같은데...
“ 너 그거 다이어트 부작용이야. 지금 자꾸 먹으면 정말 살찐다- ”
“ 하지만 너무 배고픈 걸? ”
난 얼른 체육복 상의를 걸쳐 입으며 말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자꾸 배가 고프다.
“ 게다가 윤서 이렇게 먹는데, 살은 점점 더 빠지는 거 같아. ”
“ 휴우- 자. 이 초콜릿 먹어. 그리고 좀 참아봐.
이러다 너 정말 유래 없이 살찐다. 다이어트 요요현상이 제일 무서운 거야. ”
지우와 혜진이는 나로 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좋은 친구들... 이렇게나 날 걱정해주
는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는 거 난 너무 행복하다. 그래. 이런 친구들이 있는데 배고픔
쯤은 참는 거야. 참는 거야-
“ 알았어. 초콜릿 고마워- ”
난 혜진이가 건네주는 초콜릿을 받아들고는 웃었다. 친구에게 받은 초콜릿은 너무
너무 맛있었다. 하지만 체육수업이 시작 되서 몸을 풀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하자 다
시 배가 너무 너무 고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견뎌야 해. 견뎌야 해. 애들이 그렇게나 걱정해 줬는데, 견뎌야 해.
견뎌야... 견뎌야... 견뎌.... 하지만... 하지만... 아... 배가... 배가 고파.
배가 고파. 배가 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 윤서야!!! ”
“ 이윤서!!! ”
“ 윤서야!!! ”
결국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운동장을 돌던 대열에서 뛰쳐나와 음식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달렸다. 뒤에서는 나의 이름을 부르는 친구들과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난
멈출 수 없었다. 마침 학교 식당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지, 국 냄새, 반찬 냄새가
난다. 그리고 매점에서는 쥐포를 굽는 냄새와 새로 들여놓은...
- 탁!!!
“ 무슨!!! 민우야!!! ”
갑자기 뒤에서 내 팔을 잡아채는 손길에 화를 내려는 순간 보이는 사람은 민우.
하지만 지금은 민우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
“ ................... 당장 나오지 못해??!!! ”
그게... 무슨 말이니?
“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
“ 당장 그 애 몸에서 나오지 못해??!!! ”
나오라니. 대체 어딜? 어떻게?...
“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
“ 헉. 헉... 얘 진짜 말 안 듣네... 헉... 헉..... ”
뒤에는 달려온 건지 숨을 헐떡이는 혜성이가 서 있었다.
싫어!!!!
“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
“ 안되겠다. 잡아!!! ”
민우의 말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혜성이는 나의 양쪽 팔을 잡아 뒤로 돌렸고,
그 순간...
“ 分離 ”
민우가 손으로 이상한 모양을 만들면서 이상한 말을 하고는 손가락으로 내 이마에
뭔가를 쓰자, 난...
아! 혜성이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어? 근데 저건?... 이윤서?
아니. 이윤서는 난데.
그럼 쟤는 누구?
그리고 난 누구?
난...
난...
“ 네 이름은 박고은. 넌 이미 10년 전에 죽었어. ”
아냐. 그럴 리 없어.
말도 안돼. 거짓말! 거짓말!!!
“ 네가 믿지 않으려 하면 더더욱 성불하기 힘들어.
어서 현실을 직시하고 환생해라. 넌 이미 너무 많은 죄를 저질렀어. ”
그럴 리가... 말도 안돼. 말도 안돼... 그릴 리 없어. 아냐. 아니야!!!
“ 더 이상 사람들을 해하지 마라. ”
아냐. 아니야. 아니야. 난 그런 적 없어...
“ 젠장!!!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잖아!!!
너만 알아듣고 신난다고 떠들어 대면 뭐하냐? 난 뭐 허수아비냐??!!! ”
그 순간 옆에 서 있던 혜성이가 버럭- 화를 내며 민우에게 소리쳤다. 우리 학교에서
민우에게 그렇게 구는 건 혜성이와 천우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민우와 친하다는 증거
기에 난 늘 그런 혜성이가 부러웠다. 그런 혜성이의 모습에 민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혜성이에게 뭔가 하얀 종이를 건네주었고, 혜성이는 그 종이로 눈을 문지르
더니 날 째려보며 말했다.
“ 너구나? 나 참...
그러니까 진작에 사고 치기 전에 해결하자니까,
니가 괜히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일만 커졌잖아. ”
뭐... 뭐라고?...
“ 뭐긴. 이민우 이 자식이 너 보호한답시고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이 꼴 난거잖아.
야. 이 자식아. 어쩔래??? 윤서 꼴 좀 봐. 이게 사람이냐?
가뜩이나 비쩍- 마른 애가 이게 뭐야? 이게??!!! ”
혜성이의 말에 난 옆을 돌아봤다. 혜성이와 내 옆에는 형편없이 마른 여학생의 모습
이 보였다. 아. 윤서. 이윤서다. 예쁘던 얼굴은 이미 마르고 말라서 예전의 모습은 알
아볼 수조차 없어져 버렸다. 불과 사흘 전 나와 만났던 윤서의 모습이 아니었다. 대체
이게 무슨...
“ 모르겠어??? 이게 네가 한 짓이야! ”
“ ......................... ”
혜성이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민우를 돌아보자 민우는 아무 말 없이 날 바라보고 서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야? 민우야?
“ ................. 넌 아귀(餓鬼)가 된 거야. ”
아... 아귀??!!!
“ 넌 10년 전 무리한 다이어트로 거식증에 걸려 죽었어.
그때도 좋아하던 남학생이 널 보고 뚱뚱하다고 말한 걸 듣고는
살을 빼기위해 무리하다가 그런 일이 일어났지.
거식증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도 살이 빠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학교에 나온 너는 학교에서 죽었어. ”
아냐. 아니야.
“ 그 뒤, 넌 너 스스로 죽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는
계속 이 학교에 머물러 있었지. 일종이 지박령이 된 거야. ”
말도 안돼.
“ 물론 넌 네가 죽은 걸 모르고 너 스스로를 그냥 왕따라고 생각하며
3년마다 한번씩 입학식과 졸업식을 겪으며 이 학교의 학생으로 살아가고 있었지.
너 스스로를 학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넌 그 때 네가 좋아했던 남학생과 닮은 학생을 보면
너도 모르게 과거의 기억에 혼돈스러워 한 거야.
그리고 그 남학생이 좋아하는 여자애의 몸속에 들어간 거지.
하지만 넌 이미 거식증으로 죽어 아귀(餓鬼)가 된 상태.
끊임없이 배가 고프고 또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은 채워지지 않았지.
하지만 그렇게 먹는 건 네가 아니라 네가 깃든 다른 여학생들의 육체였고,
넌 그 육체로부터 생기와 양분을 빨아먹고 있었지.
그래서 그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모두 영양실조로 사망한 거야. ”
난... 난...
“ 아직도 기억나지 않아? 3년마다 한번씩 죽은 애들의 모습이? ”
난 그런 적 없어. 난... 난 그런 적 없어...
“ 형편없는 녀석!!! ”
뭐?
“ 그 자식들만 형편없는 놈들인 줄 알았더니, 너도 만만치 않구나!!!
네가 한 짓을 잊다니!!! ”
신혜성. 넌 대체 왜 그렇게 화는 내는 거야?
“ 왜 화를 내냐고??!!! 당연히 화가 나지!!!
네 잘못으로 아무런 죄도 없는 애들을 죽여 놓고,
당사자는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니!!! 이런 황당한 경우가 어디 있어??!!!
한순간 널 잃어 슬픈 너희 부모님만큼이나
자식을 잃어 슬퍼할 그 애들의 부보님은 생각도 안 하는 거야??!!! ”
아!...
부모님. 우리 부모님.
내게 뚱뚱한 몸을 물려줬다고 내가 그렇게도 저주하던 우리 부모님.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저주받은 나의 몸을 물려주신 우리 부모님.
나의 원망 속에서도 나의 죽음을 가장 슬퍼해주셨던 우리 부모님.
엄마. 아빠.
난...
난...
생각 나 버렸다.
모든 게...
모든 게...
흑... 흐흐흑... 그러려고 그런 게 아냐.
난... 난 그냥 단지 예쁜 외모를 가지고 싶었던 것 뿐이었어.
예쁜 얼굴. 날씬한 몸매.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성격.
나도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나쁜 짓을 할 생각은 아니었어.
“ 이제 학교를 떠나.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
민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체육복 주머니에서 무슨 종이를 꺼내더니 내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난 그것을 받아드는 순간...
- 파앗!!!!!
- 고마워...
“ 쉬운 길을 힘들게 돌아왔어. ”
“ 알아. ”
“ 잘난 척 하긴... ”
민우에게 싸늘하게 말한 혜성은 비쩍 마른 등 위로 윤서를 끌어올려 업었다. 이미 평
소의 반 이상 말라버려 뼈밖에 없는 윤서를 업었으면서도 마른 등에는 많이 버거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민우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는 혜성의 등에 업힌 윤서를 끌어
당겨 자신의 등에 업고는 양호실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고은이를 처음 본 날이 생각난다.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에 전학생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
시. 그 아이는 현생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적 능력이 강하지 않은
나의 눈에 보이는 귀신은 흔치 않았기에 그 애가 영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
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 학교의 학생이라고 생각하는 그 아이는 비록 다른 학생
들과는 어울리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다. 수업도 열심히 듣고, 청
소도 열심히 하고, 시험공부도 열심히 하고... 비록 수업 시간에는 단 한번도 지적받
지 못했고, 청소 시간에는 단 한번도 칭찬받지 못했으며, 시험시간에는 매번 시험지를
받지 못했지만, 그 애는 늘 열심히 였다.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였다. 그래서 선뜻
없앨 수 없었다. 그래서 윤서의 몸에 고은이가 들어갔다는 것을 알 게 되었을 때도
그만둘 수 없었다. 고은이 죽음의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결국 윤서가 위험할 뻔 했다. 자신의 생기와 양분이 모두 빨려 그대로 미라가 될 뻔
했기 때문이었다.
“ 어설픈 자비심은 오히려 해가 될 뿐이야. ”
윤서를 양호실에 눕히고는 한마디 쏘아 붙이는 신혜성의 말에 난 반박할 수 없었다.
- 어설픈 자비심은 오히려 해가 될 뿐이에요.
언젠가 그 사람에게 들었던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그 사람도 신혜성만큼이나 마음이
여린 주제에 망설이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그때도 난...
“ 알고 있어. ”
- 알고 있습니다.
똑같은 말을 했지만, 또 똑같은 실수를 번복하고 말았다.
“ 피이- 어차피 또 그럴 거면서... ”
- 네.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답은... 다르다.
누가 날 더 잘 알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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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귀(餓鬼) : 아귀는 불교에서 말하는 굶주림 귀신(또는 괴물)입니다.
불교에서는 윤회전생을 이야기하는데, 생전에 탐욕에 쌓인 삶을 산 사람은
죽은 후 환생을 할 때 인간계나 축생계가 아닌 아귀계에서 태어나게 되고,
이 중 아귀는 항상 굶주림을 느끼는 귀신(또는 죽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원래는 흰두교 사상에서 나온 말로, 고대 인도에서는 죽은 조상의 영혼을
프레타(preta)라고 하는데, 이 영혼은 자손들이 바치는 제물(음식 공양)을
원한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이 불교에 도입이 되어, 죽은 후 육도(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계) 중 아귀계로 환생하여 굶주림에 허덕이는 삶을 살게
되는 귀신(보다는 인간이 아닌 것의 의미가 더 가깝습니다만)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아귀계는 염마왕이 다스리는 세계로, 아귀들은 먹을 것을 찾으나 음식을 입에
넣으면 돌이나 뜨거운 불덩어리로 변하기 때문에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다른 기록을 보면 아귀는 입은 크나 목구멍이 바늘구멍처럼 작아
굶주림에 비해 먹을 수 있는 양이 적어 항상 굶주림을 느낀다고도 하는군요.
여러분. 음식을 소중히 하시고, 다이어트는 건강을 위해서만 적당히... ^^
[퇴마/연의] 退魔演義 046 + α - Side Story Ⅳ Preta & 그 뒤...
퇴마연의(退魔演義) 046 + α - Side Story Ⅳ Preta & 그 뒤...
“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
분홍색 꽃무늬의 예쁜 침대시트가 덥힌 침대 위에 공주처럼 예쁘게 누워있던 윤서는
밤이 되자 스르륵- 몸을 일으키더니 정신없이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
고 나와 거실을 걸어갔다. 하얀 잠옷 바지 끝이 바닥을 쓸며 스윽- 스윽-하는 소리를
냈다. 윤서는 캄캄한 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걸어 들어가서
는 냉장고 문을 열자, 냉장고의 오렌지색 불빛이 윤서의 하얀 잠옷을 오렌지색으로
물들였다.
“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
그리고 그 순간 윤서는 손으로 냉장고에 든 과일들을 집어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메론을 껍질 채 마구 먹어대는 통에 메론 껍질의 푸른 즙과 내용물의 노란 즙이 하얀
잠옷 위로 줄줄-흘러내렸다. 그렇게 과일 칸에 있는 메론과 키위를 모두 먹어치우고
는 뒤이어 위칸에 있는 햄을 들어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마구 먹어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햄 비닐 껍질이 툭툭-터지면서 그 사이로 햄 속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햄을
다 먹고 난 후 뒤 이어 냉장고에 든 날계란과 음료수들까지도 마구 먹어대는 통에 하
얀 잠옷에는 온통 터진 날계란과 음료수들이 지저분하게 묻어버렸다. 그렇게 냉장고
안의 모든 것을 먹어버린 윤서는 다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
다.
“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
그리고는 냉장고 옆에 있는 김치 냉장고를 열어 김치 냉장고 안에 든 김치들을 두 손
으로 집어 마구 먹어대기 시작했다. 자르지도 않은 포기 긴치를 마구 먹어대는 통에
손에서 들고 있는 배추김치에서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졌고, 이미 지저분해 진 잠옷
은 다시 붉은 김치 국물로 물들어 엉망이 되었다.
“ 우적- 우적- 우적....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
하지만 곧 김치 냉장고 가득 들어있는 김치까지도 다 먹어버린 윤서는 온갖 음식물로
범벅이 된 입으로 끊임없이 배고파를 중얼거리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매었다. 냉장고
옆에 있는 쌀통을 열어 생쌀마저 모두 먹어버린 윤서는 온몸에 음식물을 묻힌 채 이
미 잠옷을 적신 음식물 국물을 뚝뚝- 흘려대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더 이상 먹을 것
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지저분한 모습으로 부모님이 있는 안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 달칵-
“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
“ ....... 으음... 윤서니? 왜? 어디 아파? ”
“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
“ 배고프면 뭐라도 꺼내먹지... 윤서야!!! 그게 뭐니??!!! ”
방에 들어와서도 배고파를 되뇌이는 윤서의 모습에 몸을 일으키던 윤서의 엄마는 온
통 음식물로 더럽혀진 윤서의 잠옷을 보고는 놀라 일어났다.
“ 으흐음... 왜 그래?... ”
윤서의 낯선 모습에 놀라 일어나는 윤서 엄마의 모습에 윤서 아빠도 잠이 깨 윤서
엄마 옆에서 일어나 앉았다.
“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
“ 윤서야? ”
“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
그리고 그 순간 배고파를 중얼거리던 윤서는 자신의 앞에 서서 놀라 자신의 얼굴에
손을 올리는 엄마의 손을 잡더니 물어버렸다.
“ 아아악!!! ”
“ 이윤서!!! ”
그 모습에 놀라 윤서 아빠는 윤서의 팔을 잡았지만 윤서는 무시무시한 힘으로 물고
있는 엄마의 손을 씹기 시작했다.
“ 아아아아악!!!!!!!!!! ”
“ 무슨 짓이야??!!! 왜 이래??!!!! ”
- 우적- 우적- 뿌득- 뿌드득-
“ 아아아..... ”
- 풀썩-
결국 윤서에게 손을 씹힌 윤서 엄마는 고통에 기절하고 말았고, 그 순간 윤서를 떼어
놓으려는 윤서 아빠의 거센 손길에 윤서가 드디어 윤서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 윤서의 입에 물려있던 손 역시 뚝-하고 부러져 딸려왔다. 그 상태로
도 그대로 물고 있던 손을 계속 먹어대는 윤서를 보고는 경악한 윤서 아빠는 기절해
있는 윤서 엄마를 안아들고는 정신없이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미 잘려진 손목에서
는 피가 쏟아지고 있었고, 그런 상태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남은 손을 먹는 데만 집
중하던 윤서는 잠시 후 텅 비어버린 집을 배회했다. 그러다가 결국 집 안에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다는 걸 안 윤서는 자신의 손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오른 손등에서 시작
해 손목과 어깨까지 이어지는 팔의 생살을 뜯어먹고는 왼손으로 옮겨갔고, 그 뒤에는
다리로 옮겨갔다. 그렇게 밤이 깊어져 새벽의 푸르름이 들이울 무렵까지 윤서의 만찬
은 계속되었다.
.
.
.
“ 자네들 지난 번에 아귀(餓鬼) 퇴치한 적 있나? ”
“ 네. 교수님이 어떻게 아셨어요? ”
서둘러 집으로 오라는 유영의 연락에 집으로 온 민우와 혜성은 유영의 물음에 놀라
되물었다. 안 그래도 사흘째 등교하지 않았다는 윤서의 소식에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민우와 혜성이었기에 유영의 말에 더욱 긴장했고, 그 모습에 선호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유영을 바라봤다.
“ 연락이 왔다. 이윤서라는 그 아이. 자기 엄마 손을 뜯어 먹고
자기 몸의 절반을 뜯어먹다가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군. ”
“ 그럴 리가... ”
유영의 말에 혜성이 놀라 말을 더듬었고, 선호는 그 끔찍한 장면이 상상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아버지는 겨우 애 엄마를 안고 탈출했다는데, 애 엄마도 수술은 했지만,
잘린 것도 아니라 뜯긴 거라 경과가 좋지 않고 또 과다출혈로 위험한 상태다.
아버지란 사람도 꽤 많이 놀란 상태고... ”
“ 아귀(餓鬼)짓인가요? ”
“ 그래. ”
유영의 설명에 민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로를 뜯어먹다 못해 자기 자신까지도
먹어버릴 존재라면 아귀(餓鬼)뿐이다. 하지만 아귀(餓鬼)라면 이미 퇴치했는데...
“ 조사에 의하면 아귀(餓鬼)가 너무 많은 생기를 빨아먹어
스스로도 아귀(餓鬼)가 되어버렸다더군.
이윤서도 이미 지나친 다이어트로 몸이 많이 상해있던 상태야. ”
“ ....................... ”
“ 그걸 미처 모른 건 저의 잘못입니다. ”
“ 이민우. 하지만 넌 이미 아귀(餓鬼)를 퇴치했잖아!!! ”
유영의 설명에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선호와 달리 담담하게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는 민우의 말에 혜성이 놀라 소리쳤다. 분명 아귀(餓鬼)를 퇴치할 때 함께
있었기 때문에 혜성 역시 아귀(餓鬼)가 완전히 퇴치되었다고 생각했었다.
“ 그래. 민우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책임의 소재는 물게 되었다. ”
“ 그... 그런!!! ”
유영의 말에 선호가 당황해 소리치는 사이에도 혜성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고, 민우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 책임이라뇨? 대체 어떻게?... ”
“ 당분간 일은 없다. 차후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다시 전달하기로 결정됐고. ”
“ ......................... ”
“ 그럼 난 이만 들어가 보마. ”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는 유영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혜성은 아직까지도
미동 없이 앉아만 있는 민우에게 소리쳤다.
“ 넌 잘못한 거 없잖아! 근데 왜???... ”
“ ...................... ”
“ 이민우!!! ”
“ 됐어. 잘못했건 안 했건 결과는 잘못된 거니까.
네 말대로 하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니까. ”
“ 그렇지 않아!!! ”
“ 어설픈 자비심은 오히려 해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무시한 내 탓이야. ”
“ 이민우!!! ”
“ 그러니까 됐어. ”
혜성의 안타까운 표정에도, 애절한 목소리에도 민우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민우... 민우 어떻게 되는 거야? 나쁘지... 않겠지??? ”
“ ..................... ”
혜성은 민우가 방 안으로 사라지자 잠시 입술을 깨물며 생각하다 곧바로 옆에 앉아
있는 선호를 잡고는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 나쁜 일... 나쁜 일 없지? 그렇지??? ”
“ ....... 그럴... 거야... ”
“ ..... 나쁜 일... 없겠지?..... ”
“ ...................... ”
하지만 되풀이되는 혜성의 질문에 선호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괜찮을 거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그 거짓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