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리처드 어텐보로
출연: 더크 보거드(브라우닝), 제임스 칸(에디 도헌) , 마이클 케인( 조 밴델러)
{이젠 기억이 힘들지만, 이것이 1944년 유럽의 모습이다. 2차 세계대전이 5년째 접어들었고, 여전히 히틀러의 독일군이 전 유럽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그 날(D-Day) 모든 게 달라졌다. 공격 개시일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이 아이젠하워 장군의 지휘 아래 프랑스 북쪽 해안에 상륙하여 7월엔 공격을 시작할 수 있었고, 8월에 파리를 수복했다. 전 지역에서 독일군이 퇴각했지만, 연합군도 문제는 있었다. 600km나 떨어진 노르망디에서 실어오는 군수품도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연합군의 전진도 주춤해졌다. 아이젠하워가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그의 두 부관, 남쪽의 패튼과 북쪽의 몽고메리가 서로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거였다. 둘 사이의 해묵은 경쟁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양측 모두를 지원할 군수품이 부족한데도 두 사람은 서로 독일군을 섬멸하고 먼저 베를린에 입성하기를 원했다. 1944년 9월, 몽고메리가 암호명 '마켓 가든(Market Garden)'이란 그럴듯한 새 작전을 고안해냈다. 상부의 압력에 아이젠하워는 작전을 수락하게 되고, '마켓 가든' 작전은 실현이 된다. 그 계획이란 그 전에도 많이 시도됐던 것처럼, 전쟁을 크리스마스 전에 끝내, 병사들을 빨리 집에 돌아가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2차대전 막바지에 이르자 연합군은 종전을 앞당기기 위하여 대규모 작전을 계획한다. 작전명은 ‘마켓 가든’. 독일 국경과 연결되는 네덜란드의 교량를 확보하는 것으로, 연합군 보병, 전차부대, 공정대 등 대규모 부대가 투입되는 대규모 작전이다. 마침내 D-DAY는 시작되고 보병, 포병, 공정대 등 전군이 독일군 서부 전선을 공격 개시하는데......
2차대전 막바지에 연합군에서 전격 실행한 ‘마켓 가든 작전’(1944.9.17~9.25)과 그 막대한 희생을 그린 전쟁영화. 노르망대 상륙작전을 그린 대작 <지상 최대의 작전>의 원작자이기도 한 코넬리어스 라이언(Cornelius Ryan)의 원작을 역시 대규모 인력과 군장비 및 항공기를 동원하여 영화화한 3시간의 대작으로, 영국군 제1공수사단장으로 출연한 숀 코네리를 비롯, 제임스 칸, 라이언 오닐, 로버트 레드포드, 로렌스 올리비에, 마이클 케인, 에드워드 폭스, 엘리어트 굴드, 진 해크만, 맥시밀리언 쉘, 리브 울만, 던홈 엘리어트, 안소니 홉킨스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연합군 지휘관들로 출연하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마켓가든 작전이나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는,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각지에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 등이 산만하게 보이는 등 극적 전개의 이해 부족으로 흥미가 반감될 수 있다. 따라서 2차대전에 대한 사전 정보를 갖고 관람하는 편이 좋다. 한편, 전선이 없는 상황에서 독일군 부대가 주둔 중인 적진 한가운데에서 지프차를 몰고 전우를 구출해 오는 제임스 칸의 모습이라든가, 포로 수용이 불가능하여 백기를 들고 항복을 요청하는 독일군을 거절하는 연합군의 모습 등 전쟁의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나바론 요새>와 함께 77년 연말에 국내 개봉했는데, 당시 개봉명은 ‘멀고 먼 다리’였고, ‘머나먼 다리’로 89년에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이 제목은 영화 마지막 대사에 등장한다. 너무 큰 희생을 치루고 돌아와 유감을 표하는 숀 코넬리에게 이번 작전을 지휘한 브라우닝 장군이 이렇게 말한다. “알다시피 우린 너무 먼 다리까지 가려했소”
‘마켓가든 작전’에서 ‘마켓(Market)’은 공수사단(미국 제82공수사단, 101공수사단, 영국 제1공수사단)을, 가든(Garden)은 독일 본토로 진격할 기갑부대(영국 제30군단)를 뜻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연합군의 빠른 진격 속도가 1944년 가을부터 더디어지자, 1944년 9월 10일 아이젠하워 총사령관과 몽고메리 장군 간의 회담에서 마켓가든 작전의 구상이 시작된다. 독일군이 벨기에를 포기하고 네덜란드에 집결해 있으니 네덜란드로 병력을 집중하자는 것으로,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벤-네이메겐-아른헴의 요지에 공수부대를 투하시키고 아르헴(Arnhem) 지역의 주요 교량을 확보하면, 영국 제30 군단 2만대의 차량이 진격하여 네덜란드를 해방시키고 독일 본토로 진입하여 그 해 안에 베를린을 점령할 수 있지 않냐는 것이었다. 물론, 회의적 의견도 있었으나 당시 퇴각 중인 독일군의 전황상 장밋빛 낙관론에 따라 3만 5천여 명 이상의 공수부대와 약 4000대의 공중수송기, 약 1500대의 전투기가 작전에 동원되었다. 영화에서 하늘을 뒤덮은 101공수사단의 수송기를 보며 안헴의 독일군 비트리히 장군이 이렇게 말한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한 번만이라도 내게 저만한 병력이 있어 봤으면”
1944년 9월 17일, 연합군 제1공수군 예하 영국군 1공수사단, 미군 82, 101공수사단의 1만 9000여 병력이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서 아른헴에 이르는 지역에 강하하면서 작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초반부터 예기치 않은 여러 난관에 부딪쳐 101공수사단 지역에서는 독일군이 교량 하나를 폭파시키는 데 성공했을 뿐, 82공수사단은 강한 저항에 부딪쳐 네이메겐의 교량을 점령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깊숙이 아른헴에 투입된 영국 1공수사단(3개 사단과 1개 여단)은 사단 주력이 독일군에 차단된 채 프로스트 중령이 이끄는 1개 대대만이 아르헴 대교에 도착하지만, 미국의 제 82, 101 공수부대원들과 힘들게 합류한 영국의 제30 군단이 독일군의 공격으로 더이상 아르헴으로 진격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면서 영국의 제1 공수사단은 적진에 포위당하고 만다. 프로스트의 대대는 탄약과 식량이 떨어져서도 81시간이나 버텼으나, 영국군 전차들이 아른헴을 10km 남겨둔 작전개시 5일째인 9월 21일 새벽 5시에 항복하고 말았다. 고전 중인 제1공수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추가로 폴란드 제1공수여단이 적진 한가운데에 용감히 투하되어 하루만에 전부대원의 대부분을 잃고 제1공수사단과 합류한다. 영화에서 폴란드 제1공수여단을 이끄는 진 핵크만이 낙하산 투하하면서 이렇게 외친다. “몽고메리 장군을 용서하소서”. 결국 제1공수사단은 30군단과 합류하지 못하고 9월 24일 전달된 ‘작전중단, 전원철수’ 명령에 따라 9월 25일 밤 야음을 틈타 강을 건너 후퇴한다.
지나치게 승리를 확신한 영국군 주도의 이 작전은 결국 참혹한 패배로 끝난다. 우선 네덜란드의 좁은 도로에 늘어선 전차 대형은 적에게 좋은 표적이 되었고 한 대가 피격당하면 치울 때까지 전체 부대가 멈춰야만 했다. 여기에다 공수 직후 통신 두절 등의 악조건에 공수부대가 몇몇 교량을 확보하는데 실패함에 따라 30군단의 진격 속도는 계획대로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작전 초기 연합군에서 파악한 네덜란드 주둔 독일군 전력이 예상을 깨고 막강했다.(당초 2선급 부대로 예상했으나 독일군 정예 제2SS기갑군단 예하의 제9기갑사단과 국방군 소속 10장갑사단이 주둔 중이었다) 이를 말해주듯, 영화 초반 보급문제로 연합군이 벨기에에서 멈춰있다는 보고를 받은 독일군 서부전선 사령관인 본 룬트슈테트 원수가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저들(연합군) 진격보다 너무 빨리 퇴각하고 있어”.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이 작전에서 투하된 보급품 390톤 중 단 31톤만이 연합군 손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영화 중반부에도 포로가 된 프로스트 중령(안소니 홉킨스)에게 독일군 장군이 초콜릿을 건네주며 이렇게 말한다. “좋은 초콜릿입니다. 그쪽 비행기에서 어제 떨어뜨린 겁니다”
몽고메리 장군의 지나친 공명심과 패튼에 대한 경쟁심이 전승분위기의 낙관론과 맞물려 진행된 이 작전은 80km의 진격과 병력 손실 뿐 전황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작전이 종료된 9월 25일까지 투하됐던 영, 미 공수부대의 병력손실은 1만 7000여 명에 달했고 특히 영국 제1공수사단은 10,005명을 강하시켜 7842명을 잃었다. 후일 ‘머나먼 다리’라고 불린 이 마지막 교량 하나를 장악하지 못해 마켓 가든 작전은 끝내 실패로 돌아갔으며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까지 이어지며 많은 희생자를 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