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곽자기가 탁자에 기대어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짝을 잃어버린 것과 같아 보였다.
그 앞에 시중들며 서 있던 안성자유가 물었다,
어디에 계십니까?
몸은 진실로 시든 나무처럼, 마음은 꺼진 재처럼 만들 수 있습니까?
오늘 탁자에 기대어 앉아 있는 사람은
어제 탁자에 기대어 앉았던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자 남곽자기가 말했다
현명하게도 너는 그것을 질문하는구나 자유야!
지금 나는 내 자신을 잃었는데 너는 그것을 아는냐
너는 사람의 피리 소리를 들어보았어도
아직 땅의 피리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을 수 있다.
너는 땅의 피리 소리를 들어보았어도
아직 하늘의 피리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을 수 있다.
안성자유가 물었다 감히 그 의미를 물어보고싶습니다.
남곽자기가 말했다 대지가 기운을 내뿜는 것을 바람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일어나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일어나기만 하면 모든 구멍이 성난 듯이 울부짖는다.
너는 무섭게 부는 바람소리를 듣지 못하였는가?
높고 깊은 산이 심하게 움직이면 백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의 구멍들,
마치 코처럼, 입처럼,귀처럼, 병처럼, 술잔처럼, 절구처럼,
깊은 웅덩이처럼, 좁은 웅덩이처럼 생긴 구멍들이
각각 물 흐르는 소리, 화살 나는 소리, 꾸짖는 소리,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아우성치는 소리,
탁하게 울리는 소리, 맑게 울리는 소리, 등 온갖 소리를 낸다.
앞의 것들이 ‘우우’하고 소리를 내면
뒤의 것들은 ‘오오’하고 소리를 낸다.
산들 바람에는 작은 소리로 대답하고,
거센 바람에는 큰 소리로 대답한다.
그러다가 사나운 바람이 가라앉으면 모든 구멍들은 고요해진다.
너는 저 나무들이 휘청휘청하거나 살랑살랑거리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는가?(제물론)
이 이야기를 인생의 궁극적 정답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이며, 온전한 참음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 철학은
분별의 쳇바퀴을 끝임없이 돌리므로
문화와 문명을 발전과 발달시키는 철학서 등을 만들고
불교는 싯달타 등이 부처나 불법이 정답이라고
불경 등을 만들고, 유교는 공자 맹자 등이
도덕천의 인이 정답이라고 사서삼경 등을 만들고,
도교는 노자 등이 유무상생의 도가 정답이라고
도덕경 등을 만들고, 기독교는 모세와 바울 등이
야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정답이라고
성경을 만든 것처럼
장자를 대단한 선생이나 정답으로
이미 결론을 내어놓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말들로 분별하여
장자를 도구로 스스로 대단한 선생이 되는
무례한 오지랖을 펼치고 있지만
이 이야기의 본질은 참을 찾기 위한 선정의
유불리를 세상의 가치 기준을 따라 분별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만물은 연기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온전한 참이 없다란 넉두리로 바로 알 때
참이 없고 모든 것이 헛된 이 세상에서
세상의 가치 기준을 따라 원인이나 이유나
결과 등의 유불리를 분별하여 연합이나 야합하여
상생이나 공생하려고 정답처럼 철학서나 종교의
경전 등을 만들어 스스로를 속이는 삶이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수행하는 삶은
바른 정답의 삶이 아닐 뿐 아니라 우리란 이념을
진짜 나로 착각하여 내가 원하는 너로 변화시켜
정복하여 다스리려는 감탄고토의 연기인
무례한 오지랖이 된다
따라서 온전한 지혜는 무분별 지혜이고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기쁨과 평안과 자유가
온전한 조화를 이룬 행복을 소유하여 누리는
사랑으로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또 너와 내가 아닌
스스로 거듭난 온전한 우리만 가능한 것으로
그 실상은 부모나 보호자가 없이 가능한 어린 아이의 삶이나
야훼 하나님 없이 가능한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의 삶으로
결국 스스로 만든 나만의 에덴동산에서만 온전한 행복을
소유하여 누리는 무주상의 삶인 진짜 사랑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