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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디모데 후서 4장 1절-5절 2023년 9월 17일 주일 말씀지
계속해서 사도들의 신앙이 들어 있다고 하는 사도신경이라고 하는데 온전히 100% 들어있는 것은 아니기에 이것만 외워서는 안 됩니다. 니케야 신조부터 사도 신경까지 삼위를 부인하고 자유주의, 신비주의자들이 나타남으로 당시에 신학자들이 너무나 간단하게 만든 초보의 사도신경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만을 날마다 고백하는 것은 영적 성장을 알지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 고백은 영적 성장을 이루게 하신대로 나에게 어떤 하나님을 믿게 하셨는가? 를 예배 때에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이 함께 고백을 하는 것이요. 올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자의 예배를 받으시고 영광스러운 주님의 교회로 자라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16:18-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을 나에게 믿어지게 하신 대로 고백하는 것이지 주문 외우듯이 하면 안 됩니다.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까지도 천주교의 많은 기도문들을 외우듯이 하면 안 됩니다. 왜? 이렇게 기도하라셨는가? 그 뜻을 깨닫게 하시고 이와같이 기도하게 하시는 것이요 기도하게 하신 대로 이뤄주신다는 것입니다.
주기도는 마태를 통해서는 5장에 산위에 오르사 8복을 말씀하시고 지옥을 말하여 교인들로 두렵게 하는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교훈과 생활을 책망하시고 6장에 구제할 때 나팔을 불지 말고 사람듣기 좋으라고 중언부언하며 오래 기도하는 자들에게 골방에 들어가 은밀하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나타내주셨고(마6:9-13) 누가를 통해서는 기도를 마치시고(눅11:1)
제자들이 세례 요한이 기도를 가르쳤듯이 우리들에게도 가르쳐달라고 요청함으로 가르치신 것으로 다르게 나타내신 너무나 간단한 주기도인 것입니다. 눅11:2-4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하여 하신 일(생명역사)과 십자가를 지신 것(구원역사)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중심에는 성자, 주, 예수, 그리스도, 더 자라나면 신랑 예수가 되십니다. 신랑 예수는 나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살게 하사 첫째부활로 인도하시는 예수십니다. 마태, 마가, 누가는 예수님이 행하신 말씀과 행하신 일을 빠지지 않고 낱낱이 기록하려고 하였으나 요한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내게 비춰서 아들의 영을 살리시고(요3장) 그 영을 자라게 하시고(요6장) 내 속에서 강같이 넘치니(요7장) 참포도 나무에 붙어 열매가 풍성하며(요15장) 앞으로 환난이 두렵지 않고(요16장), 예수님처럼 순교의 날을 기다리고 있고 첫째 부활의 날을 기다리게 하시는 것을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요20:31-
그러나 이 중요한 부분들이 사도신경에는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배 때에 지금의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이 다 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부활하사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무엇을 하십니까? 히브리서 7:25에는 성령을 보내사 구원하신 자들을 살리고, 자라게, 열매를 맺게, 그 영광으로 인도해주시기를 나를 위해서 아버지께 항상 기도하고 계십니다. 기도는 예수님께 하는 것이 아니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되신 하나님께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골4:2-
그 예수님의 기도를 깨달은 대로 우리도 기도하게 하시고 성령의 역사가 있게 하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역사를 밝히 보고 성령으로
인도함 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계시면서 부활하신 모습을 보이시고 믿어지게 하시고
하늘에 올라가 성령을 보내실 것과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행1:11-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500명이 10일 동안 기다리면서 흩어지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무엇이 우선입니까? 사모하지 않는 자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겠습니까?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교회가 생기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골1:18-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도합니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하시고 맺게 하신 열매와 생명 살리게 하신 감사가 하늘에 쌓이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는 날 동안 나를 통해서 한 생명을 살리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신 예수님이 믿어지고 예수님이 사시는 동안 하신 일들이 나를 살리신 생명 역사이고,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믿어져 죄사함의 기쁨과 성령을 부으사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게 하시고 나도 순교케 하시고 이미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신 것처럼 순교자들을 첫째 부활로 일으키시려 신랑으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재림신앙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저리로서’ 고백하게 하시는데 ‘거기서부터’라는 뜻인데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서 때가 되면 오시는데 실상은 수가 차면 오시는 것입니다. 더 자세히는 십사만 사천의 수가 차고 순교자의 수가 차면 오시는 것입니다(계6:11).
먼저 십사만 사천의 수가 차면 첫삼년반환난이 시작되고(계7:4) 순교자의 수가 차면 공중에 오시는 것이라는 것인데 신학자들은 ‘저리로서’ 로 표현한 것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여기서 산 자 죽은 자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다 죽어서 심판을 받는데 산 자가 왜? 나오는가? 히9:27-
육에 속한 자들은 육신이 사는 것과 죽은 것만 보게 되므로 제대로 알 수 없는 말씀입니다.
복음이 바로 믿어지게 하신 자들은 산 자요 아직도 복음이 믿어지지 않았거나 믿어진 후에 다시 육에 떨어진 자들이 죽은 자들입니다.
1.먼저 전체 성경을 통해 ‘산 자’를 나타내주셨는데 제일 먼저 나타낸 곳이 창세기 3장에 아담과 여자에게 가죽옷을 입히시면서 여자의 이름을 ‘하와 곧 산 자의 어미라’ 하신 것입니다. 무엇이 살았나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기에 따먹고는 말씀하신 대로 정녕 죽은 아담과 여자입니다. 영에 육신을 입혀 열매대로 상과
영광을 얻게 하시는 여호와신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기 전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이 없었던 아담과 여자입니다. 창2:16-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은 먹으라 하신 것은 먹으며 감사했고 먹지 말라 하신 것은 안 먹었으니 순종한대로 상입니다. 또한 성인 남녀를 지으시며 ‘생육 번성하라’ 하셨으니 자녀를 낳고 있으니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했으니 아무 부끄러움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 그대로 두시면 상과 영광을 받게 될때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상과 영광을 받았다고 자랑하게 됩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천사장 중 하나도 다른 천사보다 더 아름답게 지어 놓으매 하나님과 비겨 보려고 교만해진 것처럼(사14:12-15) 모든 택자들의 표상인 아담과 여자도 교만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 순종치 않는 자리에 가두어 두신 것입니다. 롬11:22-
그대도 두면 그 천사장처럼 하늘에서 쫓겨나게 됩니다(계12:9).
그래서 미리 아시고 성자의 구원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계획해놓으시고 에덴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신 것이요 창2:9-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지으신 들짐승 중 가장 간교한 뱀으로 유혹하게 내버려두신 것입니다(창3:1). 이것을 보지 못하니 먹지 말라 하신 실과를 먹음으로 에덴에서 쫓겨나고 육신이 죽게 되었다고 말하며 이제 예수를 믿어야 복받고 천국간다고 거짓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녕 죽은 자리에서 살리사 산 자가 되게 하시려 가죽옷 구원을 입히신 역사를 보지 못한 탓입니다. 창3:20,21-
이제 다시 영광 받을 하나님의 아들들을 가죽옷 구원을 입히시고 어떻게 그 영광을 얻게
하시나 4장부터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2.이제 두 번째 산 자를 나타내주신 곳이 다윗 때입니다. 시편 27:13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사 가나안에 들이신 것은 열매맺는 생명으로 살게 하사 상을 얻게 하시고 생명들을 살리게 하사 영광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다윗으로 가나안으로 들이신 뜻을 깨닫게 하시니 너무나 감사해서 어려서부터 찬송시를 많이 지었고 왕이 되게 하신 후 신하들과 백성들로 심지어 이방인들에게까지 영광의 하나님을 알게 함으로 그들도 열매맺는
생명으로 영광 받을 생명으로 살아가게 되었으니 이것이 산 자의 땅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 이후 열 왕 때 왕들은 가나안 땅이 산 자의 땅임을 알지 못하고 세상 권세로 백성들 위에 군림이나 하며 온갖 욕심과 악행을 저지름으로 죽은 자로 산 것입니다.
또한 그 배경에는 거짓된 자들이 영을 죽이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겔13:19-
지금도 영을 살리는 일을 하는 복음의 일군이 있고 영을 죽이는 사단의 일군들이 있는데
사단의 일군들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말하며 겉으로 더 화려하고 천사처럼 보이니 많은 자들이 그 미혹에 빠져 거짓으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11:13∼15-
3.신약에 누가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매 ‘장사하고 오겠습니다’ 할 때에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살았으니 나를 좇으라 하셨는데 말씀을 받은 제자들은 복음이 믿어지게 하신 ‘산 자’요 아직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자들은 ‘죽은 자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눅9:60).
4.영과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 부활 후에 누구와 살게 되느냐? 라는 질문에 답하시는 것으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나타내주셨는데(마22:32, 눅20:28) 산 자는 복음으로 그 영이 살리심을 받은 자요 죽은 자는 아직도 자기 의를 앞세우며 열심히 충성하는 자들로 그 행한 일이 열매가 되지 못하니 죽은 자인 것입니다. 이제 살리심을 받은 자를 자라게 하시려 양식을 공급하시고 자라나 열매맺게, 생명살리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5.사도행전에 베드로를 보내사 기도와 구제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넬료에게 복음을 증거하게 하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사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라 증거하게 하셨고 행10:42-
6.또한 로마서 14:9에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사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7.벧전 4:4-5에 베드로를 통해서도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를 나타내었습니다. 복음이 믿어진 후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말 것을 당부하신 것입니다.
8.사도 요한으로는 산 자는 그 영이 살아나는 영생을 얻은 자요 아직 복음이 믿어지지 않은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한 자로 죽은 자요 무덤에 있는 자라고 하셨고 요5:25-
살아났음에도 영생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지 못한 나사로는 다시 죽은 자임을 나타내셨고
그러나 찾아가 다시 생명의 부활로 살리시는 것을 나타내주셨습니다(요11:25).
산 자와 죽은 자를 가장 많이 나타내주신 성경이 바로 요한복음인데 그래서 생명복음, 영적복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아직 내 안 영이 있음도 모르고 육신만 가지고 사는 자들은 다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택하셨기에 가죽옷 구원을 입히사 이 땅에 열매를 맺으라고 보내셨는데 살리심 받지 못한 자들이 다 사망 아래 있으니 죽은 자요 엡2:1-
그 죽은 자를 살리러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성령시대가
시작되게 하셨고 부르사 복음이 믿어진 자들은 하나님 나라 안에 사는 산 자요 아직 복음이 믿어지지 않는 자들은 육신은 살아있어도 죽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영을 살리시는 능력이 있는데 1.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임이 믿어지게 하시고 2.주 예수의 구원이 입혀진 것이 믿어지게 하시고 3.성령의 열매와 생명역사를 하게 하시고 4.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義)가 믿어지는 것인데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셔서 믿어지는 것이지 내가 믿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심령을 가난케 하사 복음이 믿어지게 하신 자는 산 자인 것입니다. 엡2:5-
①아직도 바리새인처럼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이나 열심하는 자들이나
②내가 예수를 열심히 믿어 천국가는 구원받으려 하는 자들이나
③사두개인처럼 복이나 받아 평안히 살려고 하는 자들은 다 죽은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죽은 자를 일락을 좋아하는 자라 하셨고(딤전5:6) 사도 요한으로는 계시록에 복음으로 살아났으나 열매가 없는 사데 교회를 실상은 죽었다고 하셨습니다. 계3:1-
<복음서에 죽은 자를 살리시는 역사를 나타내주셨는데>
1.마태로는 야이로의 회당장의 딸(마9:18-26)과
2.누가복음에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눅7:12)
3.요한으로는 나사로를 나타내주셨습니다. 요11:14-
야이로의 딸은 열두 살인데 아버지 집을 알지 못함으로 그 영이 떠나 잠들었고,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은 많은 사람들의 칭찬에 그 영이 죽은 것이요, 나사로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인데 양식 받는 자리를 떠남으로 영이 병들어 잠들고 결국 죽은 것을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다시 마리아같이 주의 발아래 앉아 생명 양식을 받는 자가 되게 하심으로 생명의 부활로
살리신 것입니다. 요12:3-
4.사도행전을 통해서는 삼층에서 유두고(복되다)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앉아 잠들어 떨어져 죽은 것을 나타내주시고(행20:9) 아직 그 생명이 있음을 나타내주셨는데(행20:10) 청년의 믿음에서 아이의 믿음으로 떨어진 것을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행20:12-
그리고 사도 바울로 후계자 디모데에게 서신의 양식을 주게 하실 때 산 자와 죽은 자를 나타내 주신 것으로 사도들의 신앙인 것입니다.
1절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먼저 사도 바울로 통하여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임을 3장까지 일깨워 주시고 영광된 생명으로 살리심 받은 직분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함을 나타내주십니다. 이 말씀을 받으면 사도 바울과 같은 중심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 앞은 사도 바울은 항상 영광의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살다 가신 분입니다.
이제 그를 통하여 생명역사에 쓰임을 받는 모든 자에게 엄한 명령을 주시는데
산 자는 1.복음이 믿어지게 하신 자요 2.진리로 자라나 열매가 있는 자요
3.더 자라나 주님의 신부감들입니다. 이제 첫째 부활로 일으키실 자들로 신령한 몸을 입혀서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제사장 노릇 왕노릇을 천 년 동안 하게 하십니다.
죽은 자는 1.복음을 모르고 율법 아래 있는 자요 2.나사로처럼 양식 받는 자리를 놓쳐서
잠든 자요 3.열매없는 사망의 자리에 있는 자요 4.육신만 가지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런자들은 육신이 죽은 뒤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끝날 때까지 살아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계20:5-
창세기 4장에 가인은 가죽옷 구원을 입히신 후 낳게 하신 산 자의 아들이지만 영광을 놓치는 자가 되고 아벨은 가죽옷 구원을 입히시고 생명나무 실과를 보여주신 것이 믿어졌으니 그것을 사모하고 예배할 때에 온 전심을 다합니다. 형이 핍박을 해도 맞붙어 싸우지 않고 순교하였습니다. 아벨의 이름의 뜻은 ‘생기’입니다. 하와가 가죽옷을 입히신 후에 에덴에서 쫓아내신 뒤 가인을 낳고는 내가 낳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창4:1-
가인은 내가 제사를 했는데 왜 하나님은 받지 않으시는가? 불만이 있었고 동생을 미워하는 죄를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것은 영광성에 들어갈 자인가? 성밖에 쫓겨날 자인가? 심판하는 자리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으로 롬14:10-
열매가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고(고후5:10), 열매가 없는 자들은 흰 보좌 앞에 서게 됩니다(계20:11,12). 성령의 열매가 얼마인가를 판결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산 자는 열매가 있는 자요 죽은 자는 열매가 없는 자입니다.
아직도 육신에 속하여 육신 죽는 것 사는 것만 말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은 열매맺는 생명의 역사를 알지 못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24에 내 말은 복음입니다. 영생은 영이 살아난 것이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
것은 복음으로 살아났으니 계속해서 자라기를 원하고 열매를 맺어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열매없는 자들의 심판에 이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심판은 얼마나 사역을 했으며 얼마나 열매를 맺었는가? 를 보는 심판입니다.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또한 엄한 명령인 생명 살리는 명령은 예수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와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하시려 엄히 명하게 하셨습니다. 생명 살리는 직무를 바로 하다가 순교케 된 자는 예수님 재림할 때에 첫째 부활시켜서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맡기시고 이제 영원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와 영광과 상급이 클 것이며 잘못한 자는 책망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영광의 직분을 맡아 생명 살리는 자로 세우심을 받은 자들은 이제 자신이 말씀으로 살리심 받았으니 그 말씀을 어디서든지 증거하는 일을 항상 힘써야 합니다. 이제 십사만 사천의 수가 차고 순교자의 수가 차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요 그때는 일할 수 없습니다. 일할 수 있는 기회는 환난이 시작되기 전까지요 우리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뿐입니다. 안수하여 병을 고치라고 하신 말씀은 없습니다. 요9:4-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때를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파할 수 있도록 조건을 갖추어 주신 것입니다. 때를 못 얻은 것은 환난과 핍박을 받는 때입니다.
생명 살리는 그 일을 하기 좋은 때나 힘든 때나, 말씀을 잘 받든지 잘 받지 않든지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항상 힘써 말씀을 증거 해야 합니다. 계속하여 가는데 마다 말씀을 뿌리면 말씀을 진정으로 받는 자들을 붙이시고 받는 분들은 그 말씀이 옥토에 떨어지게 하사 영적으로 성장케 하신대로 백배, 육 십배, 삼 십배의 열매를 얻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시 126:5) 사도 바울같이 살리심 받은 자들이 마땅히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고전 9:16-
생명 살리는 그 일에 자신의 일생을, 젊음을, 주신 모든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생명 살리는 그 복음을 전파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증거하는 자신도 기쁨이 더합니다.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여 경계하며 권하라 생명 살리는 역사는 그 결과가 속히
나타나지 않아도 낙심하지 말고 오래 참으면서 계속하면 반드시 거둘 날이 있게 하십니다.
갈6;9-
가르침 이제 살리심을 받았으면 자라나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사람은 가르침 받은 대로,
깨달은 대로 자라납니다. 혹 잘못된 사람일지라도 관용하는 마음으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경책은 자라나야 할 성도들이 다시 세상에 기울어지려 할때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망하는 것입니다. 또한 범죄자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경계는 잘못된 자들을 드러내어 주어서 그들의 미혹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권면은 약한 자리에, 가련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들로 정신을 차려서 다시금 힘내어 달려가게 하여 권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생명 살리는 그 말씀이 먼저 있어야 하며 자라나게 하시는 말씀들이 증거되어야 하며 잘못하거나 자라나지 못하는 자들은 경책,
경계, 권면해야 하는 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곳이 많습니다. 마18:15-
3절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때가 이르리니 때는 성령시대 말세를 가리킵니다. 성령시대 말세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른 신앙에서 떠나 바른 교훈을 받지 않게 될 것을 미리 나타내주십니다.
그러니 이러한 때에 영광 길을 바로 가게 된 것은 너무나 크신 은혜요 복입니다.
바른 교훈은 헬라어로 건전(健全)한 교훈을 가리킵니다. 건전한 교훈은 영을 살리시는 영광의 복음의 말씀으로 바로 신령한 교훈입니다. 딤전1:11-
육신 중심과 사욕 중심으로 나가는 자들은 이런 신령한 교훈을 받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도리어 거역할 것입니다. 이는 자기 사욕과 도무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자기 육신의 소욕(所欲)을 좇아 방종 생활하는 것을 용납하고 그 욕심을 합리적으로 채워주고 즐겁게 해 주는 선생을 많이 두어 그 말을 듣고 쾌감(快感)을 얻으려 하는 것이 귀가 가려운 자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건전한 교훈은 자기를 제어하고 정욕을 이기고 신령한 신앙에 서도록 하는 신령한 진리의 말씀인데 이는 영의 귀를 주신 자만 받을 수 있습니다. 계 2:17, 29, 3:6, 13-
4절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자기 사욕을 좇아 나가는 자들은 그 사욕에 맞는 교훈만 따라가기 때문에 건전한 진리에서 귀를 돌이켜 허탄한 거짓 교훈을 좇아가게 됩니다. 거짓 교훈은 간증을 잘못하는 자들 중에 많으며 은사, 은혜 체험을 강조하는 자들과 개그맨같이 귀를 즐겁게 하는 자들에게 많습니다. 그런 것을 좋아하는 자에게는 세상 이야기나 육신이 기뻐하는 거짓 교훈이 달콤하게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교훈을 들을 때 자기가 가진 이 세상과 육신의 모든 욕심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는 것이요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허탄한 이야기가 교회 안에서 성행하고 구별을 못하고 있을 것을 미리 아시고 디모데 전후서의 말씀을 사도 바울로 기록케 하사 오늘 나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딤전1;4-
5절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자기 사욕을 채우려고 진리에서 떠나 허탄한 이야기를 좇아가는 자들이 많은 이때에 아직도 구별하지 못하고 모두 육신의 평안과 안전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생명 살리는 바른 진리를 전하며 좇아가는 자들에게는 고난이 때때로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각오하고 고난을 달게 받으며 따라가야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마 16:24).
이것이 전도인의 생활입니다.
근신(謹愼)은 자유 방종과 반대로 항상 깨어 삼가 조심하여 자기를 날마다 쳐서 이기는
생활입니다. 시간을 정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성경 읽는 시간과 양식 준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나누게 하실 때는 겸손히 하는 것입니다. 눅21:36-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복음이 믿어진 것을 생활로 나타내는 것이 전도이지
말로만 전도지로만 하는 것은 전도가 아닙니다.
한 생명이라도 나를 통해 살리심을 받았다면 별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직무(職務)는 생명 살리라고 맡기신 영광의 직분입니다. 앞서 본을 보이며 달려가라고 주셨습니다. 목사의 할 일은 오로지 생명역사이지 교인 수나 늘리고 예배당 건물이나 크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과 핍박 죽음이 내 앞에 올지라도 생명 살리는 일을 계속하여 자기에게 맡기신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직분을 맡고는 마가처럼 중도 하차하는 것이 아니고
죽을 때까지 감당하는 것인데 이것이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딤후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