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힘을 빼고 살아라. 눈은 크게 뜨나 적게 뜨나 힘이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란다. 눈을 크게 뜨면 세상일이 다 보여서 걱정이고 적게 뜨면 보이는 면면마다 안쓰러워진단다.
세상일을 잘 본다는 것은 망막으로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그빡 속에 들어있는 째깐한 주름막인 송과체로 보는 것도 아니다.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눈 코 귀 입으로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단다. 저 울타리를 둘러싸고 있는 앉은뱅이 뒤똥나무 속에서 삐삐하고 하늘 소리를 내는 음파가 듣게 하는 것이다. 또한 먼 산 아지랑이 뒤에서 물망초가 바람으로 그려주는 구름 그림의 무채색이 눈을 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이란 우리 딸이 어렸을 때, 입으로는 내 젖꼭지를 빨고 손으로는 젖을 만지작거리며 엄~마라고 불렀던 옹알이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딸아, 내 딸아!
의도적인 눈으로 세상을 치떠 보지 말고, 듣는다고 하지도 말고, 말한다고도 하지 마라. 참으로 세상 소식을 잘 들으려거든 서숙알보다 더 작게 몸을 만들어 그 속에 들어가는 삐비새가 되어 보아야 한다. 잘 보려거든 눈이 보고 있는 물체보다 한 걸음 더 빨리 날아가 먼 산 뒷자락 아지랑이 끝에 달려있는 물망초 이파리의 바람타고 나는 하늘치마를 휘감아 보아야 할 것이다. 말을 잘 하려거든 자주 이승의 몸을 바꿔야 한다. 진주조개 속살보다 보드라운 살갗으로 갓 피어난 배꽃을 얼굴에 비벼보아라. 그때서야 놀라운 말인 아어으히 같은 하늘 말이 터져 나올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이것들과 같아서 힘들다느니, 슬프다느니 괴롭다느니 사랑한다느니 라는 억지 말은 길게 꾸며대지 말아라. 진실한 봄, 진실한 들음, 진실한 말은 어쩌면 시각장애자, 청각장애자, 벙어리들에게만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생에서 어쩌다가 별똥에 눈탱이를 얻어맞고 눈 뜬 사람 하나가 있다는 소식은 들은 것 같다.
남쪽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간지름 나무 꽃 속에서 우리 딸이, 우리 내개가 태어났다는 것을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러니까 딸아! 누군가 귀신이 씨 나락을 까먹은 것처럼 하늘이야기 우주이야기를 횡성수설해도 크게 마음 쓸 일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 딸은 이미 눈에 힘이 빠져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