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쓰기
이 기 운
(시조시인, 한강문학회 총무이사, 서강대 겸임교수)
▲한시 쓰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옛날에는 한시를 쓰려면 수많은 한자를 익히기 위하여 십 년 이상 한문을 공부하여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많은 한자를 굳이 다 알 필요가 없어졌다. 편리하게도 컴퓨터 전자옥편과 사전을 찾아보면서, 한시에 쉽게 접근할 길이 열렸다.
기본 한자를 아는 수준이, 한국인들의 한자 인지 수준이 절대 중국인들 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고등학교 과정까지 배우는 한자는 대략 1,800자, 인명용 한자는 2,300자 정도 된다.
대략 고등학교 때까지 잘 공부했다면 대략 2,000자 정도, 대학 과정에서 제대로 공부 했다면 대략 3,500자의 한자를 공부하게 된다고 한다. 또 현대 중국인도 2,700자 정도의 한자를 공부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한국 성인이 정상적으로 공부 했다면, 인지하는 한자가 중국인보다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만 중국인은 간체를 배우고, 또 현대 생활에 맞추어 살다 보니 고전에 사용하지 않는 한자를 새로 만들어서 일상에서 100여 자 정도를 사용할 뿐이다.
한자 공부를 많이 한 한국인들이 중국어를 배울 때, 이 신형 한자들 때문에 중국어를 위해서는 한자를 새로 배워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두보나 이백의 시를 읽을 때 한 두 자 정도 모를 정도라면 대략 3,000자 정도 알고 있는 경우가 된다.
대학을 졸업한 경우 1급 정도(3,000자)는 입사 지원서에 첨부하는 경우도 있고, 고졸은 2급(2,000자), 중졸은 3급(1,000자)를 시험 봐서 급수를 받지만 급수 증만 받고 나면 바로 잊는 정도라 비효율적인 공부 방법이 되고 있다.
기존에 한자 공부를 했지만, 책이나 다른 곳에서 한자를 쓸 기회가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 배운 한자를 계속 공부하고 꾸준히 학습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시를 쓰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지득한 한자의 인지 수준만 깨울 수 있다면, 기본적으로 작성하는 요령만 배울 수 있다면 쉽게 한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시를 쓰면서 꾸준히 한자 능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 시대에 한시를 쓴다는 것은 새로 한문을 공부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라기 보다, 이미 알고 있는 한자를 끄집어 내서, 한시란 틀 속에 적절하게 쏟아 붓는 기능에 불과한 것이다. 알고 있는 한자를 되새기면서 새로운 한자를 옥편과 사전을 찾으면서 공부해가며, 한자를 잘 배합해서 표현하는 기능이다.
▲한시, 중국어시?
많은 사람들이 한시를 중국어 시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생각은 일부는 맞는 말이지만 일부는 틀리는 경우가 된다.
예를 들면, 한글로 쓴 글은 다 한국어인가? 대부분의 경우 지금까지는 맞는 말 일 것이다. 또, 지금 한국인들이 문자가 없는 사람들에게 한글을 교육하여 그들이 언어를 문서화 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인도네시아 변두리 섬에 사는 사람이 한글을 썼다고 그 사람들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인가? 그들은 그들의 언어를 단지 한글이라는 도구로 기록하는 것일 뿐이다.
즉 한자를 사용했다고 다 중국어는 아니다. 물론 한자로 썼을 경우에 중국어로 읽을 수는 있지만, 한자로 쓴 것이 다 중국어는 아니다.
한문은 한자로 표현한 문장을 의미하고, 한시는 한자를 이용해서 쓴 시를 의미한다. 한시는 중국어 또는 다른 다양한 언어를 쓰는 사람이 한자를 이용해서 시로 쓴 것이다. 즉 광둥어, 또는 다른 지역 사투리, 베트남어, 한국어, 일본어를 쓰는 사람들이 그들 나름대로 한자를 이용해서 표현한 시가 한시이다. 그렇기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서로 통할 수 있도록 오랜 기간 형성된 작법의 원칙이 있다.
요즘 중국인들은 소위 자유시를 쓰기도 한다. 그리고 요즘 한국인들 중에서도 한자를 기본 율격을 벗어난 채로 자유롭게 쓰면서 한시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인은 자유롭게 한시를 쓰더라도 나름대로 중국어에 내재된 리듬을 알고 있기에 자유롭게 쓸 경우 자유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중국어에 내재된 리듬을 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사람이 영어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영어권에 가서 상당히 공부를 하고 살면서 영어의 리듬을 체득한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영어로 시를 쓴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한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외국인이 한시를 쓴다면, 전통적인 율격에 충실한 시를 쓰는 것이 맞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언어로 한시 읽어 보기
이백의 <망여산폭포>를 다른 언어로 읽어 보면서 비교하자.
<望廬山瀑布>
日照香爐生紫煙
遙看瀑布掛前川 (*長)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망여산폭포>
일조향로생자연[하니]
요간폭포괘전천(을) (*장)
비류직하삼천척(하니)
의시은하락구천(을)
<wàng lúshān pùbù>
rìzhào xiānglú shēngzǐ yān
yáokàn pùbù guàqián chuān (*cháng)
fēiliú zhíxià sānqiān chǐ
yíshì yínhé luòjiǔ tiān
<望廬山瀑布>
日照香炉生紫烟
遥看瀑布挂前川
飞流直下三千尺
疑是银河落九天
<廬山の瀑布を望む>
日は香爐を照らして 紫煙を生ず
遙かに看る瀑布の 前川に?かるを
飛流直下 三千尺
疑うらくは是銀河の 九天より落つるかと
(이상 關西吟詩文化協會)
<여산 폭포를 바라보며>
해가 향로봉에 비치니 자색연기 피어나고
멀리서 보이는 폭포 앞엔 냇물이 걸려있고
나는 듯 흘러내리니 삼천 척이요
아마도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
(*)遙看瀑布掛前川 한국에서 나온 자료나 한국의 인터넷은 遙看瀑布掛長川으로 되어 있는 글이 많이 있다.
한국에서 한시를 읽는 방법은 통상 한 구(련) 끝에 훈이나 토를 달아서 같이 읽는 경우가 많고, 일본은 한 단어 뒤에 훈이나 토를 달아서 읽는다. 그리고 한시 원문 순서가 아닌 일본어 순으로 읽는다. 예를 들면, 첫 번 째 구 뒷 부분의 3글자, 生紫煙은 쓰기는 비록 동사와 목적어 순서대로 쓰지만, 읽을 때는 “紫煙を生ず” 순으로, 목적어를 먼저 읽고 동사를 읽는다. 즉 중국어 어순이 아닌 일본어 순으로 읽는다.
▲ 한시란? 이다.
비록 같은 한자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쓴 시지만, 중국, 한국, 일본은 각각 그들 만의 언어로 그들만의 방식으로 낭독을 하는 것이다. 동양의 각 민족들은 한시를 중국어 시가 아닌 한국의 시, 일본의 시, 또 동남아인들은 그 나라 고유의 시로 짓고 읽고 발전시켜 왔다.
즉 한국인이 쓴 한시는 한자를 도구로 한국어로 읽는 한국인의 한시 일뿐 중국어 시는 아니다.
그래서 동양의 여러 나라들은 한자를 매개로 한시를 쓰기 위해 한시 작법 규칙을 준수하여 쓰고, 또 자기들의 한시를 만들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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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쓰는 작법에 대해 가볍게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이 내용은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 기존의 고전적인 한시 작법, 또는 오랫동안 한문 공부를 하면서 한시를 배우신분들의 경험과는 다소 상이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중국에서는 AI를 이용한 한시 작법도 시도하였습니다. 이미 그 AI가 쓴 한시는 여러 권이나 된다고 한다. 한시는 엄격한 율이 있다 보니, 이 율을 맞춘다면 AI도 작법이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이고 이와 비슷한 작법 요럼을 터득한다면, 일반적인 수준의 한자 능력으로도 한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