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버거빅은 매 달 수익금의 1%를 마을을 위해 기부했다.
2.
2015년 8월 23일. 석빈도에 위치한 버거빅은 가게 마감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패스트푸드점은 한산했고 에어컨 소리만이 그곳을 채웠다. 반면 바로 뒷골목 위치한 고시원에선 열대야에 땀을 뻘뻘 흘리며 앓는 소리들이 늘어갔다. 그들은 버거빅의 에어컨 바람을 조금이라도 기대했지만, 앞 건물에서 돌아오는 건 환풍기 속 더운 바람뿐이었다.
커다란 빵에 두꺼운 패티, 신선한 양상추와 토마토. 버거빅의 아르바이트생들은 오늘도 조그만 손으로 커다란 버거를 만들었다. 버거 1개를 만드는 데 걸리는, 아니 걸려야 할 시간은 15초였다. 15초. 잠시라도 손이 버벅대 소스통을 놓친다면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런 틈에서 불가능한 몸놀림으로 10초의 기적을 보이는 사내가 있었다. 똑같은 갈색 반팔 유니폼 속에 유일하게 별뱃지를 달고 있는 사람. 부점장은 방금 들어온 주문지 속 버거를 12초 만에 만들고, 어느새 위생장갑을 벗으며 카운터로 향했다.
“고객님 주문하신 버거 단품 나왔습니다. 치즈 2장 추가하신 것 맞죠?”
34초. 고객이 주문을 하고 버거를 손에 넣을 때 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만약 치즈 2장이 없었다면 32초 만에도 가능했을 터였다.
“오늘도 마을을 위한 선택, 감사드립니다 고객님.”
부점장은 잔뜩 올린 입 꼬리로 멀어지는 고객의 뒤통수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고객은 힘겨운 발걸음만을 옮기고 있었다. 점장은 그 모습을 억지로 외면하며 카운터에 모아둔 만 원짜리 뭉치를 꺼냈다. 그리고 최대한 천천히 지폐를 세기 시작했다.
정산이 끝난다면 부점장에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그 일이 남아있었다. 부점장의 손은 점점 느려졌지만, 그러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달 전에 비해 월등히 줄어든 만 원짜리는 그 시간이 다가옴을 빠르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잠시 손을 멈추고 유리 넘어 위치한 배달 오토바이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오늘 아침 사장은 부점장에게 배달부를 한명 자르라고 지시했다. 부점장의 고개가 저절로 가로저어졌다. 사장은 경제학을 들먹이며 말했다. 이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버거빅이 운영되는 방식입니다. 버거빅은 석빈도 전체의 경제를 살리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선 정해진 룰에 맞게 운영되어야 합니다. 부점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랬다. 그는 버거빅을, 이 마을을 지켜야했다. 그러기 위해선 동혁 한 사람 쯤 잘리더라도 괜찮을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동혁의 숭고한 희생을 거두어야 했다. 그는 지금 대의를 추구하고 있었다.
부점장은 만 원짜리 지폐를 들고 가게 뒤 금고로 결연하게 걸어갔다. 금고에 돈을 넣고는 전화기를 들고 동혁의 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다이얼을 누르려는 순간, 부점장의 귀에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부점장은 유리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버거빅 마크가 적힌 배달 오토바이 하나가 멀어지고 있었다.
“도둑이야! 도둑.”
부점장은 다급하게 오토바이를 향해 외쳤지만, 그의 말에 반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
밖에서 부점장이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 나와 K는 가게 뒤 휴게실에서 야간 교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K는 팬티 차림으로 유니폼 바지에 한 쪽 다리를 끼다가, 급하게 휴게실로 들어온 부점장과 마주쳤다. K의 표정은 일그러졌으나, 부점장이 근무표를 가지고 밖으로 나갈 때 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이 닫힌 걸 확인한 뒤에야 K가 투덜거렸다.
나는 슬쩍 K가 신고 온 신발을 훔쳐봤다. K의 신발 바닥엔 아무런 무늬가 없었다. 밑창을 아예 떼고 온 듯도 보였다.
“동혁이 신발을 두고 간 것 같은데, 그걸 신는 게 어때?”
나는 옆에 고무 쿠션으로 된 동혁의 운동화를 가리켰다.
“이게 좋아. 멋있으니까.”
K가 바지 벨트를 채우며 대답했다.
그리고 K의 대답은 일은 나 혼자 하라는 일종의 선고처럼 들렸다. 오늘은 24시간 오픈하는 버거빅이 한 달에 한 번 문을 닫고 야간 청소를 하는 날이다. 매장 안에 있는 모든 테이블과 의자를 치우고는 대걸레로 구석 구석 닦아야 했다. 말 그대로 팔이 빠지는 작업이었다. 그런데도 K는 금방 미끄러져 제대로 설 수도 없는 신발을 신고는 거울을 보며 머리 정돈만 하고 있었다.
“지금 부점장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어서 나가자.”
나는 바닥에 뿌릴 윤활유를 챙기며 휴게실 문을 열었다.
“아직 10시가 되려면 좀 남았어. 더 쉬다 가도 괜찮아.”
나는 K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윤활유 통을 들고 매장으로 나왔다. K의 얼굴을 더 보느니 일을 먼저 시작하는 게 속이 편했다. 가게 문 앞의 팻말을 CLOSE로 바꾸고, 우선은 테이블을 한쪽으로 밀고 있는데, 저기 멀리 카운터에 황 매니저가 뚱뚱한 배를 들이밀며 등장했다. 그의 배는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튀김 존을 통과하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감자를 튀기던 바스켓 손잡이에 걸려버렸다. 바스켓이 튀어 올라 안에 있던 200도씨의 기름이 황 매니저의 배에 튀겼다. 황 매니저는 뜨겁다고 비명을 지르려다, 바로 옆 부점장의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오늘 오후에 배달했던 애가 누구였죠?”
부점장이 근무표를 급하게 넘기며 물었다.
오늘 오후 근무는 동혁이었다. 그의 신발장에 있는 퇴근 도장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즉석에서 바뀐 거라 부점장의 손에 들린 근무표엔 적혀있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버거빅에서 6개월 간 일을 하며 배운 게 있다면, 시키지 않은 일에 나서지 말라는 것이었다. 괜히 나섰다가는 덤터기만 쓰일 뿐이다. 나는 그저 그 둘의 대화를 엿들으며 매장 바닥에 윤활유를 부었다.
“모르겠는데요.”
황 매니저는 여전히 기름이 뜨거운지 배를 쓰다듬었다.
“왜 가만히 서게십니까? 지금 야간시간 담당자죠? 빨리 알아봐요.”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황 매니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머리를 들자마자 나를 향해 외쳤다. “감자 다 튀겼으면 이런 건 빨리 치워버려. 왜 쌓아둬?”
위험하다. 불똥이 나에게로 튀고 있다. 나는 재빨리 튀김 존으로 가 바스켓을 들고는 싱크대로 가져다 놨다. 매장도 이미 닫았는데 식용유까지 치울까 생각했지만, 역시 시키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다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일만 해라. 그게 버거빅에서 배운 유일한 교훈이었다.
4.
잠시 뒤 어느새 매장에는 경찰이 와있었다. 부점장은 오토바이에 열쇠가 그대로 꽂혀 있었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부점장의 말대로라면 동혁이 잘못했다는 뜻이었다. 부점장의 말을 받아 적던 경찰이 구석에 있던 나를 쳐다봤다. 나는 열심히 대걸레질을 하는 척 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창가 쪽으로 돌려버렸다.
창문 밖으로 고시원이 눈에 들어왔다. 저 조그만 창문들 중 하나엔 동혁이 있을 것이다. 동혁은 지금 자고 있을까? 까딱 하단 그가 오토바이 값을 덮어 쓸지도 몰랐다. 아무리 나서지 말아야 한다지만 동혁에게 지금 사태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복잡해진 마음으로 한참을 생각하고 있는데 발바닥이 싸늘했다. 어느새 윤활유가 엎어져서 온 바닥을 흥건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아직도 K는 등장하지 않았다. 이미 10시 하고도 10분이나 지난 상황이었다. 나는 휴게실 앞으로 달려가 문을 퉁퉁 쳐서 K를 불러냈다. 잠시 뒤 K는 천천히 걸어 나왔다.
“분배해서 닦으면 될 거야.”
K가 내가 엎어놓은 윤활유 바닥을 보더니 말했다. 마치 남 일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조금 도와주는 게 어때?”
“그러고 싶은 데 오늘 신발이 조금 그러네. 들어가서 싱크대나 청소하고 있을게.”
나는 대걸레를 K의 발 옆에 갖다 대고는 꾹 한 번 눌렀다. K의 발쪽으로 윤활유가 흐르고 있었다. 곧이어 K는 걸음을 옮겼고, 윤활유와 만난 그의 신발 바닥은 일자로 미끄러졌다. K는 중심을 잡느라 양팔을 흔들어 댔는데 마치 탭댄스를 추는 것 같은 우스운 꼴이 되었다.
움직임이 멎었을 때 K는 자기 발밑에 윤활유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도 좀 제대로 닦아야겠다.”
5.
버거빅에서 동혁이 처음 일하게 된 건 6개월 전이었다. 그 때 나와 K가 낮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손님 줄이 너무 길어 우리는 차마 동혁에게 까지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동혁은 손님이 다 사라질 때를 가만히 기다리더니, 마침내 매장이 조용해 졌을 때 꾀죄죄한 모자를 벗으며,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를 봤다고 말했다. 그런 동혁을 향해 황 매니저가 팔짱을 끼며 다가갔다.
“아르바이트? 아 배달부 말하는 건가? 어디 살아요? 가까운 데 사네. 그런데 그런 차림으로 일할 수 있겠어? 아시다시피 버거빅은 최고만을 만드니까. 아무래도 손님이 내신 돈만큼의 대우는 해드려야 하잖아.
시급? 5580원이야. 그런데 우리는 주휴 수당도 맞춰주니까. 일은 좀 해봤나? 주휴 수당이 뭔지는 알지? 그래. 그런데 다시 봐도 차림이 좀 심각하네. 메뉴판을 봐봐. 당신이 2시간 일해야 겨우 사먹을 수 있는 버거야. 그걸 사는 손님들을 생각해봐. 그에 맞는 서비스를 원하신다고. 게다가 버거빅이 또 우리 마을의 이미지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배달부라도 좀 깔끔한 인상을 원하거든. 남자라도 화장도 했으면 좋겠고....”
동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차피 유니폼이 다 나올 텐데요. 마스크도 쓸 거고.”
보다 못한 내가 한 마디를 거들었다. 다행히 동혁은 채용됐지만 나는 그날 가게의 모든 바스켓을 닦아야만 했다.
그 이후로 동혁은 배달이 없을 때 나의 일을 도와주었다. 콜라를 대신 따라주고, 케첩도 채워주었다. 그런 동혁에게 나는 항상 한 가지의 당부의 말을 했었다.
“안 힘들어?”
동혁은 고개를 저었다.
“이럴 땐 적당히 눈치 보며 쉬어도 돼.”
K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기가 퍼와야 할 얼음 통을 동혁에게 내밀었다. 나는 통을 다시 뺏어다가 K에게 주고는 동혁에게 귓속말을 했다.
“잘 들어. 이곳에선 절대 나서면 안 돼. 일만 더 하게 될 뿐이야. 적당히. 가만히. 시간만 채우면 되는 거야.”
동혁은 내말을 듣고는 소리 내어 웃더니 일을 더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받아쳤다. 그게 일주일 전이었다.
그런 동혁이 지금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쓸 위기에 처했다. 동혁은 열쇠를 꽂아놓고 내릴 사람이 아니었다. 동혁의 오토바이는 3번이었는데, 사라진 오토바이가 2번인 것만 봐도 이 것은 동혁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부점장은 서류만 넘겨보았고, 동혁이 오후 근무 대타를 섰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같았다.
부점장은 매장 안으로 사라지더니 전화를 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최대한 고개를 빼고 부점장의 말을 훔쳐 들었다.
“자고 있었나? 미안해요. 그런데 아까 오후에 근무했었죠? 살짝 문제가 있는데, 오토바이를 도둑맞았거든요. 아니 동혁씨가 도둑이라는 말은 아니고. 동혁씨가 항상 열심히 일해 줬다는 사실은 알지만… 사람은 실수할 수 있어요. 다만 책임을 져야죠. 잠시 와 줄래요?”
나서야한다. 동혁의 잘못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해야한다.
그러나 차마 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부점장이 전화를 끊고 카운터로 나오는 순간, 나는 고개를 묻고 다시 대걸레질을 시작했다.
6.
에어컨의 바람이 부는 버거빅은 싸늘했다. 황 매니저는 부점장 옆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사실 동혁의 문제는 아니지. 황 매니저가 팔리고 남은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며 생각했다. 이건 담당자가 체크를 했어야지. 버거는 차가웠고, 황 매니저는 한 입 먹은 햄버거를 전자레인지 속에 넣었다.
황 매니저는 조금 전 오후 배달 담당자가 사장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오늘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전자레인지의 벨이 울렸고, 황 매니저는 버거를 꺼내 먹으며 매장 전체의 눈치를 살폈다.
카운터에 선 부점장은 한숨을 쉬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아까부터 자신을 뚫어질 듯 쳐다보는 황 매니저의 강렬한 시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손엔 동혁이 서명해야 할 종이가 들려있었다. 한 번의 서명으로 동혁은 100만 원 정도를 물어내게 될 것이다. 게다가 아직 그가 잘렸다는 통보도 하지 못했다.
부점장은 처음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할 때를 떠올렸다. 그가 처음 자른 아르바이트생은 주부 였다. 버거빅은 사회봉사의 일환으로 주부 회원을 뽑았다. 그러나 매출이 떨어졌을 때 버거빅은 그녀의 느린 손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그 때 생계를 잃은 주부의 눈빛을 부점장은 아직도 머리에서 지워낼 수 없었다.
분명 버거빅이 석빈도에 처음 세워지던 날,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버거빅을 좋아했다. 버거빅은 마을의 희망이었다. 오래된 판잣집들 사이에 생긴 네모난 시멘트 건물. 사장은 버거빅이 마을의 미래가 될 거라고 말했다. 마을에 수익금의 1%를 기부한다고 선언했다. 사장의 말처럼 함께 경제를 활성화 하며 다음 단계로 도약했어야 했다.
그러나 손님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매출은 떨어졌으며, 아르바이트생들도 하나 둘 사라져갔다. 부점장은 분명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한 번도 본인이 틀렸다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짙은 그늘의 얼굴들은 들어났고, 그들과 마주하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오늘 동혁에게 또 심한 짓을 해야 한다. 부점장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7
나는 동혁이 화를 내거나 아니면 격하게 부인하거나, 최소한 부점장을 한 대 때릴 것이라 생각했다. 버거빅에서 쫓겨난다면 고시원에서도 나가야 한다는 말이며, 그건 동혁이 공원의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동혁이 혹시나 금고를 훔치지 않을까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그는 나의 모든 예상을 깨버렸다.
동혁은 순순히 부점장이 들이 민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운동화를 챙겨서 버거빅을 떠날 채비를 했다.
“지금 100만원을 덮어 쓴 거 알아?”
나는 문 앞에서 동혁의 팔을 잡아챘다.
“…….”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는데 오히려 그의 얼굴은 평온하게 느껴졌다. 아마 항의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듯 했다.
“이러다 해고당할지도 몰라!”
동혁은 자신이 이미 잘렸다 말했다. 그리고 부점장이 100만원을 천천히 나눠 갚아도 된다는 조건을 걸었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했다. 오늘 따라 동혁의 모자가 더욱 꾀죄죄해 보였다.
부점장은 나가는 동혁에게 만 원짜리 지폐를 쥐어주었다. 속 채우고 힘내라며. 나는 동혁의 떠나는 뒷모습을 그대로 지켜봤다. 동혁의 다리는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 같았다. 더 이상 그 터덜터덜한 발놀림이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때, 나는 매장 뒤쪽 창문을 열고는 동혁의 고시원을 바라봤다. 동혁이 저기서 떨어질까. 동혁은 스스로 목숨을 포기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황은 동혁을 그렇게 몰아가고 있었다.
잠시 뒤 3층 방 하나에 불이 켜지고 창문이 열렸다. 오래된 형광등 때문에 어두운 방에, 더욱 어두운 동혁의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혹시나 동혁이 잘못된 마음을 먹을까 그 쪽으로 뛰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동혁이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기다란 막대를 하나 꺼냈다.
동혁의 손에 형광 포장지를 감은 막대 폭죽이 하나 들려있었다. 동혁은 폭죽을 마치 총처럼 들고는 버거빅을 향해 불을 붙였다.
동혁은 버거빅을 날려버리는 상상을 하고 있을 거다. 폭죽 사용법을 무시하고 쾅쾅쾅 하고 쏴대니 말이다. 나는 최대한 버거빅의 창문을 열어줬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였다. 폭죽은 버거빅과 고시원 사이에서 화려하게 하늘을 갈랐다. 펑.펑.펑. 나는 갑자기 시작된 한 밤의 불꽃놀이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폭죽의 작은 불빛 하나가 버거빅의 창문 안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불빛은 내가 엎은 윤활유에 붙기 시작하더니 빠르게 기세가 커졌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나 이외의 아무도 창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버거빅에서 배운 교훈을 상기 시켰다. 시키지 않은 일엔 굳이 나서지 말 것. 오늘 동혁도 근무를 바꿔달라는 부탁을 들어줬다가 봉변을 당한 거였다. 역시 가만히 있는 편이 낫다. 나는 불꽃을 꺼트리는 대신 내가 맡은 청소나 하기로 결정했다. 그 사이 동혁의 의지는 내 발 빝에서 점점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꽃은 윤활유에 붙어 빠르게 매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기다란 불길은 K가 남겼던 발자국 따라서, 감자튀김의 식용유까지 도달했고, 펑하는 폭발소리를 냈다. 어느새 연기가 깔리기 시작했고, 나는 소방 알람을 누르고 건물을 빠져 나오려다, 다시 창가 쪽으로 가 동혁이 보이는 창문을 닫고는 잠가버렸다.
수없이 기침을 하며 겨우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황 매니저가 같은 모양새로 나를 맞이했다. 안에서 K가 비틀거리며 뛰어 나오다 발바닥에 불이 붙자 신발을 벗어던지고 양말 차림으로 우리 옆에 합류했다. 부점장은 금고에서 돈을 꺼내 마지막으로 건물 밖으로 탈출 했으며, 야간 시간 담당자인 황 매니저만이 119에 신고를 하고 있었다.
버거빅은 활활 타올랐다. 마을 사람들도 간만에 벌어진 불놀이에 모두 나와 구경을 했다. 동혁도 이 모습을 보고 있을까? 석빈도의 한 여름 밤. 제대로 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8
부점장의 시선은 불타는 버거빅 건물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사실 그의 두 눈은 마을 공원의 불탑을 보고 있었다. 3개월 전 마을에 공원을 개장했을 때가 떠올랐던 것이다. 딸아이의 여섯 번째 생일날이었다. 부점장은 딸아이를 데리고 자랑스럽게 공원 입구에 가 양각으로 장식된 글자를 읽어 주었다. ‘2015년 5월. 버거빅이 마을을 위해 기부하다.’
“기부가 무슨 말이야?”
딸의 질문에 부점장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도와줘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딸은 공원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공원의 중심엔 거대한 탑이 있었는데, 탑 위에 가짜 불 모형의 조명이 올려져있어 모두들 불탑이라 불렀다. 사장은 불탑이 이 마을의 상징이 될 것이며, 석빈도를 프랑스 같이 만들 거라 했다.
그러나 사장이 연설을 했던 공원 기념식을 보러오는 마을 주민은 없었다. 쇼를 볼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은 석빈도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공원에 모인 건 노숙자뿐이었다.
“그러면 행복은 뭐야? 저 사람들이 행복한 거야?”
딸아이는 공원에 가득 찬 노숙자들을 가리켰다.
그 때부터 부점장은 마음의 불편함을 느꼈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마을을 위해 만 원이나 하는 비싼 버거를 사먹었고, 공원을 얻었다. 그러나 마을엔 가난한 사람만 늘어갔다. 이 마을에서 웃고 있는 건 사장밖에 없었다.
“오늘도 마을을 위한 선택 감사드립니다.”
그 이후로 부점장이 버거빅에서 인사할 때마다, 그는 차마 고객들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지금 부점장은 불길이 더욱 치솟은 버거빅을 마주하고 있었다. 사장에게 보고해야 했지만, 핸드폰을 꺼내지 않았다. 부점장은 버거빅이 이 마을에 꼭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의 손엔 마지막으로 챙겨온 돈다발이 들려있었는데, 이 것은 결국 사장이 가져갈 것이었다. 마을의 모든 돈을 사장이 가져갔다. 더 이상 석빈도엔 비싼 버거를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게 과연 마을을 위한 길일까. 버거빅이 사라지는 것도 괜찮을 지도 몰른다. 부점장이 고민하는 동안 석빈도의 불꽃놀이는 멈추지 않았다.
9
나는 고시원 문 앞에서 동혁의 이름을 외쳤다. 동혁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버거빅은 눈앞에서 요란하게 타올랐다. 나는 동혁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너의 의지가 결국 성공했으며, 우리는 버거빅을 이 마을에서 없애 버렸고, 마을은 이제 서서히 원래의 모습을 찾을 거라는 것. 그러나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엉뚱하게도 이 것 뿐이었다.
“전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대. 소방대원들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더라.”
소방차가 불을 다 꺼가고 있을 때 쯤, 부점장이 고시원 앞으로 나타났다. 나는 나의 방관이 걸린 게 아닐까 긴장한 채로 눈치를 살폈다. 옆의 동혁도 같은 표정으로 서있었다. 부점장은 손을 들더니 그 손에 있는 돈다발을 동혁에게 넘겼다.
그리고는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홀랑 타버렸습니다. 버거빅 말이에요. 아마 낮에 쌓아놨던 식용유가 문제가 됐나봅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홀랑 타버렸다. 동혁의 계약서도, 사장의 금고도, 마을과 어울리지 않았던 메뉴판도 모든 것이 사라졌다. 불은 마을에서 버거빅을 없애 버렸다.
“어떻게 할거야?”
나는 동혁의 손에 있는 돈다발을 쳐다보며 물었다.
“폭죽을 쏴야겠어.”
그는 공원으로 달려갔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어디로 가는 거야?”
“이제 사람들한테 밥 사먹을 돈은 줘야 하지 않겠어?”
공원엔 더욱 늘어난 노숙자들로 가득했고, 동혁은 돈다발을 들고는 불탑 위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조금 도와주지 않을래? 사람들을 주위로 모아줘.”
나는 그렇게 했다. 지폐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하나의 지폐를 잡은 사람들은 김밥 집으로, 슈퍼로, 짜장면 집으로 달려갔다. 최소한 이 돈은 마을 안에서 사용될 터였다.
종이 폭죽을 뿌리는 동혁의 얼굴이 불탑 위에서 환하게 빛났다. 동혁처럼 살아도 재밌겠다 싶었다. 나도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주워 다시 하늘로 던져 보냈다. 하늘이 어찌나 밝은지 눈이 부셨다. 어느새 석빈도에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