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이렇게 말했다(저자, 최인)》 작가의 말
어느 맑고 화창한 봄날 오후였다. 나는 흰 벚꽃이 하늘을 뒤덮은 자전거도로를 콧노래를 부르며 라이딩 중이었다. 자전거 도로 양쪽에서는 새들이 노래를 부르듯 아름답게 지저귀었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뺨을 스쳤고, 오색의 자전거 마스크 자락을 살랑살랑 날렸다.
도로 좌우에는 크코 작은 나무들이 울창했고, 벚꽃 향기는 콧속으로 싱그럽게 파고들었다. 그 어떤 것도 향기로운 공기와 상쾌한 기분과 행복한 마음을 깨뜨릴 것 같지 않았다.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에 취해 있는 순간, 오른쪽 숲속에서 커다란 사자가 양발을 벌리고 내 몸과 자전거를 동시에 덮쳤다.
나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필사적으로 사자의 발톱을 피했고, 사자는 자신의 중량과 속도를 이기지 못한 채, 반대편 쪽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고 쓰러졌다. 그때 뒤따라오던 자전거가 사자의 몸을 깔아뭉개고 재빨리 도망쳤다. 나는 남자를 따라 도망치려다가 ‘죽어 가는 생명체를 내버려 두고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숨이 넘어가는 사자의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몇 분 후, 사자는 눈을 뜨고 슬그머니 일어섰다. 그리고는 머리에서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말했다.
“인간의 선은 살리는 것이지만, 악마의 선은 죽이는 거라는 것을 알고 있소?”
내가 말했다.
“그대는 악마가 아니잖소?”
사자가 재빨리 뿔이 달린 악마로 변신하며 말했다.
“악마는 자신에게 선을 베푸는 자에게는 언제나 파멸을 베푸는 법이오.”
내가 반문했다.
“나는 죽어 가는 그대를 살린 사람이오.”
악마로 변신한 사자가 껄껄 웃었다.
“악마의 인간에 대한 법칙은, 살리는 자는 죽이고, 죽일 자는 더욱 철저히 죽이는 것이외다.”
“그럼 내가 그대를 죽게 내버려 둬야 했단 말이오?”
“맞았소. 인간의 선행은 이제 인간에게도 쓸모없는 것이 되었소. 지금 당신이 할 유일한 선행은 그대로 내 밥이 되는 것이오.”
악마는 이렇게 말하고 내 목에 크고 날카로운 이빨을 박았다. 그 정체절명의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뜨고 꿈에서 깨어났다.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는 처음에 250매 분량의 중편으로 쓰여졌고, 이후 약간 손을 봐서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러나 2022년 4월 이 같은 꿈을 꾸고 난 다음, 장편으로 확대 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2개월 만인 6월에 초고(2000매)를 끝냈고, 그 후 4개월간 탈고를 거듭해서 완성시켰다. 이 작품은 철저히 악마화 된 인간과 인간을 대신해 죽은 신과, 천사를 타락시키는 악마를 서사시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 작가 프로필
최 인 (본명 최인호)
경기도 여주시 명성황후탄강구리에서 출생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비어 있는 방」으로 등단
2002년 1억원고료 국제문학상 수상 「문명, 그 화려한 역설」
2008년~2019년 종로에서 <최인소설교실> 운영
2020년 도서출판 글여울 설립
발표작품
<장편>
「문명, 그 화려한 역설(2021년)」
「도피와 회귀(2021년)」
「돌고래의 신화(단편집/2022년)」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2023년)」 출간
<단편> 「비어 있는 방」, 「화이트 크리스마스」, 「안개 속에서 춤을 추다」, 「킬리만자로 카페」, 「뒤로 가는 버스」, 「장미와 칼날」, 「변증법적함수성」, 「캐멀비치로 가자」, 「그들 그리고」, 「돌고래의 신화」
● 도서출판 글여울 홈페이지 https://gly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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