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요한복음 5 : 19-47 요절 / 요한복음 5 :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중국의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란 사람이 젊은 날 한 정자에서 낮잠을 잤는데 꿈에 꼬리와 뿔이 없는 양이 나타났습니다. 이게 무슨 꿈일까 궁금하여 해몽가에게 물었더니 그가 갑자기 일어나 큰 절을 하였습니다. ‘양(羊)에게 뿔과 꼬리가 없다는 것은 한자로 하면 임금 왕 (王)자이니 당신은 장차 임금이 될 것입니다.’ 이 해몽가는 왕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렇게 한낮에 꾼 꿈만으로도 장차 임금이 될 사람을 알아보는데, 오늘 말씀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더욱 분명히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주님의 종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1. 아버지와 아들(19-23)
지난 주 말씀에서 유대인들은 38년간 질병에서 고통 받던 사람이 고침 받은 것을 보고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안식일 법을 어겼다는 이유입니다. 이들은 병을 고치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고 예수님께 안식일 법을 왜 어기냐고 따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시며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 한다” 하시자 이제는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 부른다며 신성 모독죄로 예수님을 정죄하고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해주십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과 정확히 일치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은 스스로 하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흉내 내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고자 하는지 아십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하나님과 예수님은 깊고 절대적인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다 보여주셨습니다. 다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되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동안 보여주신 일보다 더 큰 일을 아들로 하여금 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면 구약성경에서 나타났던 일보다 더 크고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완전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구약성경에는 한 번 있었다면 신약에서는 3 번이나 일어납니다. 구약성경에는 전 인류를 사망에서 해방시키는 부활의 역사가 장차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면 예수님께는 그 부활을 통한 전 인류의 구원역사가 완성되고 성취되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시는 역사가 이전에는 일시적이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뵙는 사람이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의 몸을 입으셔서 우리와 함께 먹고 우리와 함께 마시고 우리를 섬기시며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셨습니다.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 아브라함을 25년간 섬기셔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셨습니다. 애굽에서 소망없이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살리시고자 한 사람 모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죽음과 고통의 땅 애굽에서 끌어내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천하만민에게 영원히 살 길을 내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한마디로 살리는 일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일입니다. 생명을 살리시는 일입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살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전에는 이스라엘만 살리셨다면 이제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전 인류를 살리십니다. 나라와 민족과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세상만민을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결정적인 사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심판을 맡기신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이 세상의 죄를 가장 정확히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을 언제 심판하실지 어떻게 심판하실지 심판은 전적으로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그런데 이런 심판을 예수님께 맡기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함께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죄를 예수님께서 판단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한 심판을 맡기신 것은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판하시는 예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한다면 예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면서 예수님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2. 아들과 심판(24-30)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심판의 권세를 주셨으나 예수님은 심판에 앞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에게는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과 같았습니다. 죄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이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사망의 권세 아래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습니다. 사람들을 살았으나 죽은 것과 같습니다. 육체의 삶이 조금 지나면 누구나 찾아오는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임한 곳에는 생명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땅은 버림받은 자들의 땅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그 가운데 사마리아 여자는 모든 관계가 끊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갈증으로 인하여 목말라 죽어가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을 때 그녀는 살아났습니다. 그녀 뿐 아니라 그 동네의 모든 사마리아 사람들도 함께 살아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거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랬을 때 그들은 메시야를 만나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심판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또 갈릴리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이 중한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셔서 안수해주시고 아이를 일으켜 살리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만 주셨습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가는 길에 그는 집으로부터 아들이 예수님께 말씀하신 그 시각부터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또 요한복음 5장1-18절을 보면, 38년 병자는 그 어떤 희망도 없이 죽음을 기다리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하시자 곧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오직 말씀이 임하자 이들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을 주시는 권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만으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야이로의 딸을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죽어서 냄새나는 나사로도 말씀 한마디로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말씀 곧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으로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죽었다가다도 다시 살아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공부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목자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교양강좌정도로 여기는 사람, 말씀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는 사람, 기분이 좋을 때는 듣는 것 같지만 기분 나쁘면 안 듣는 사람, 성경말씀조차 사람이 해석하는 사람의 말로 듣는 사람, 성경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가? 인간적인 생각을 하며 듣는 사람, 피곤하면 말씀도 저버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생명을 얻기 어렵습니다. 생명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해도 변화도 없고 뚜렷한 열매도 없으며 내면의 변화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꾸만 환경을 바꿔 보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바뀔 것을 기대하고 바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어야 살아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으로 들어야 살아납니다. 듣는 자가 살아납니다. 인간적으로 듣는 것은 듣는 것이 아닙니다. 경외심 없이 듣고 건성으로 듣는 자는 죽을 것입니다. 죽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볼 것입니다. 사람을 바꿀 수 있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듣지 않고는 죽는 것을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 은혜와 사랑, 축복과 특권은 한편으론 좋은 것이지만 그것을 거절하는 자에게는 오히려 짐이되고 부담이 됩니다. 듣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주신 은혜와 사랑만큼, 주신 축복과 특권만큼 심판도 무서운 법입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예수님께는 생명을 주셨지만 동시에 심판하는 권세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심판하는 권세가 있음을 자주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장차 모든 사람들이 다 그의 심판의 호령을 들을 날이 옵니다. 그날 죽은 자들까지 전부 다 일어나 예수님 앞에 영원한 심판, 영원한 정죄를 받아야 합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이러한 예수님의 심판은 정당하며 또 정확합니다. 왜냐하면 그 행한바 대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의 심판은 자의적으로 하시거나 분위기를 따라서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원대로 심판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심판은 의로우십니다.
오늘날, 은혜의 시대라고 해서 인생을 함부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직 사람들에게만 신경 쓰고 하나님은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해주면 그것을 스스로 위안을 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는 생명을 주시는 권세와 함께 심판하시는 권세가 있으십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예수님께 대한 증거(31-47)
이상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심판의 권세를 주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절대적인 사실인 것은 객관적인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것들을 스스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절대적으로 증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증거를 받으십니까?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서 증거 하십니다.(31,32절)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직접 하늘로부터 친히 음성으로 사랑하는 아들이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또 변화산에서 홀연히 변화되시고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하시고 난 후에도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직접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 증거하셨으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둘째, 세례요한이 증거하였습니다.(33-35절) 세례요한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온 유대가 다 그에게 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세례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가서 아주 크게 책망만 받았습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선지자로 모두가 인정하였습니다. 그 세례요한의 사명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심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오직 한 가지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명을 감당하고 사라졌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런 세례요한은 인정하면서 세례요한이 증거하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다니! 참으로 넌센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굳이 사람의 증거에 호소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했음을 밝히는 것은 사람들이 요한의 증거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로 나와 구원받기를 원하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셋째, 예수님의 하시는 역사가 예수님을 증거합니다.(36절)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나는 역사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의 역사입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무지 예수님을 믿지 못하겠거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시는 역사를 보라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4:11)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생명의 역사 구원의 역사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넷째, 성경말씀이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구약성경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기록입니다. 구약의 모든 성경은 장차 오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에 대해서 매우 큰 존경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었고 성경을 자랑했습니다. 이방인에게는 주지 아니하시고 자신들에게만 주신 성경을 무한한 자긍심의 근거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성경을 읽고 암기하면서도 정작 성경이 증거하는 메시야 예수님에 대해서는 별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그릇된 메시야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조차도 인간적으로 보았습니다. 성경조차도 자기중심적인 인식세계를 합리화하는데 써먹었습니다. 구약성경이 일관되게 증거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 오시는 메시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다섯째, 모세가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제자, 모세의 후계자들이라고 자부하였습니다. 그들은 특히 모세가 기록한 모세오경은 달달 암기하였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는 오실 메시야에 대한 증거로 가득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마지막날에 모세로부터 정죄를 당할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째서 유대인들은 이러한 많은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까? 42절을 보십시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4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유대인들은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사람에게서 칭찬받고 사람에게서 영광받는 것이 그들의 바라는 전부였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사랑해주면 대만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를 믿음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해주면 그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백성들로부터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존경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관심하였습니다. 눈앞에 와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핍박하고 미워하고 배척했습니다.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배척한 그들의 죄의 대가는 무섭고도 철저합니다. 예수님을 배척한 죄를 자기들이 받겠다고 한 그들의 말대로 무서운 심판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경외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경외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으로 듣는 것입니다. 듣는 자는 살아날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듣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과 사망이 임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안에서 평안과 영생을 풍성히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