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읽는 기쁨] <11> 제1편 제4장 육자진언의 복덕
만다라회 기획, 박희택 집필
육자진언의 공덕장에 이어 육자진언의 복덕장을 독송한다. 회당대종사께서는 공덕은 무상(無相)이고, 복덕은 유상(有相)임을 명료하게 말씀하셨다(실행론 5-1-1)고 이미 언급한 바 있다(제6회). 무상은 무변법계(無邊法界)의 법신형상이고, 유상은 중생세간(衆生世間)의 색신형상이다. 무상은 온 우주에 충만한 본래의 모습이라 그 덕의 경계가 없고, 유상은 중생계에 나타난 변화의 모습이라 그 덕의 경계가 있다. 진리계의 한계 없는 공덕이고, 현실계의 한계 있는 복덕이라 이해하여도 되겠다.
대종사께서는 엄밀하게는 이렇게 구분하셨으나, “육자대명왕진언 한 번 외우는 묘득은 팔십억 겁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공덕과 같다(실행론 1-4-1)”고 하셔 복덕과 공덕을 동일범주로 보기도 하셨다. 왜냐하면 위 말씀 중 ‘묘득’은 육자진언의 복덕장에 나오는 묘득이라서 복덕을 가리키는데, 이 묘득(복덕)이 공덕과 같다고 하시기 때문이다. 불교경전에서도 공덕과 복덕을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는 서술을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서 나보다 더 간절하게 복을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래는 여섯 가지에서 만족할 줄 모릅니다. 보시와 배움, 인욕과 설법, 중생보호,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함이 여섯 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힘 중에 복의 힘이 가장 훌륭하니 그 복으로 깨달음도 이룹니다. 그러니 아나율이여, 어떻게 해서라도 이 여섯 가지를 얻도록 애써야 합니다(불교성전 1-5-7).”
이 말씀에서 부처님은 복을 짓는 사람으로 개념정의되고 있다. 이 복(덕)은 공덕에 준하는 개념이라 할 것이다. 공덕과 통용되는 복덕이 된다. 위 붓다의 말씀에서 여래가 짓는 여섯 가지 복은 육바라밀의 원형에 해당되는데, 육행실천이 복짓기에 다름없다는 붓다의 말씀이다. 그렇기에 육행실천(육행불공)인 육자진언 염송 또한 복짓기가 되는 것이다. 대종사께서는 아래와 같이 육자진언의 복덕을 강렬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육자대명왕진언은 여의주(如意珠)와 같아서 원대로 되지 않음이 없으며, 모든 부처와 호법 성신대중(聖神大衆)이 옹호하여 종종(種種) 재앙을 소멸하여 악마 사신(邪神)을 항복받는다(실행론 1-4-1).”
여의주와 같이 원대로 되는 복덕, 부처와 성신대중의 옹호를 받아 재앙을 소멸하는 복덕, 악마 사신을 항복받는 복덕 등을 육자진언의 복덕으로 표현하셨다. 이런 복덕은 현실적인 증과(證果)로서 중생살림에 아주 소중한 자량(資糧)이다. 복 있는 사람을 당할 자는 없다.
대종사께서는 육자진언을 한 번 외우는 묘득(복덕)에 이어, 항상 뜻으로 외우거나 몸에 지니는 이의 복덕에 관해서 이렇게 설하셨다. ‘항상 뜻으로 외우거나’는 「금강정유가중약출염송경」 제4권에 나오는 4종 염송법(음성염송·금강염송·삼마지염송·진실염송) 중 금강염송이나 삼마지염송에 해당된다. ‘몸에 지니는’은 육자진언을 새긴 다라니카드를 수지(受持)함을 말한다. 수지 육자다라니를 지갑 같은 곳에 넣어 다니는 것이다.
“항상 뜻으로 외우거나 몸에 지니는 이는 질병이 물러가고, 관재(官災)가 소멸하며, 지혜가 총명하여 학업이 우수하고, 자손이 선량하고 창성하며, 칠보세계와 칠보주택에서 살게 되고, 재물이 뜻과 같이 되며, 삼공(三公)과 높은 직위에서 떨어지지 아니하며, 전란과 진중(陣中)이라도 일체 재난을 면하게 된다(실행론 1-4-1).”
8가지의 복덕을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이러한 육자진언의 복덕의 말씀은 사실의 차원을 넘어선 진실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제8회 참조). 마치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설하는 관세음보살의 12가지 위신력과 같이 진실의 신행도에서 이해되고 수용될 수 있는 바이며, 이렇게 이해하고 수용하면 육자진언 염송의 복덕을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적 확신으로 “소원이 있을 때 단시(檀施)하고 오른손으로 금강권을 하고 오분 이상 시간을 정하여 마칠 때까지 남과 말을 하지 않고 진언(육자진언)을 외우면 소원을 성취한다(실행론 1-4-1)”는 금강권 염송법을 일러주고 계신다. 아사리의 인도 없이도 진언행자가 그 자리에서 금강권으로 육자진언 염송불사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일상생활 중에 진언행자 자신을 안락으로 인도하는 값진 실제적 생활수행법이라 하겠다.
그러시면서 대종사께서는 물질을 중하게 여기는 현시대는 안빈낙도만으로는 평안하지 못하므로, 육자진언 염송으로 복업도 짓고 마음도 평안하게 하여야 한다고 일러주신다. 육자진언 염송은 현실적 복덕과 심리적 평안을 동시에 성취하는 수행법이라는 확언이다. 이같은 육자진언인 까닭에 외우고 실천하면 나쁜 사주팔자가 물러난다는 말씀, 팔자 때문이 아니라 사도 때문에 팔자가 나빠진다는 말씀, 인 지어서 과 받는 것이 팔자라는 말씀 ― 이 모든 말씀이 종교인이든 아니든, 불교인이든 아니든 모두에게 번개로 번쩍이는 말씀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육자진언을 외우고 실천하면 나쁜 사주팔자가 물러난다. 팔자 때문에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를 행하니 팔자가 그렇게 된 것이다. 팔자소관이 아니라 모두 자신의 업과 행 때문이다. 인 지어서 과 받는 것이 팔자이다(실행론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