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 游氏曰 : “三年無改, 亦謂在所當改而可以未改者耳.” 유씨가 말하길, “3년 동안 고치지 않는다는 것은 역시 마땅히 고쳐야 하지만 아직 고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한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不忍改 以心言 所當改 以事言 可未改 以時言 운봉호씨가 말하길, “차마 고치지 못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말한 것이고, 마땅히 고쳐야 할 바라는 것은 일로써 말한 것이며, 아직 고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때로써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延平李氏曰 道者是猶可以通行者也 三年之中 日月易過 若稍稍有不愜意處 卽率意 改之 則孝子之心 何在 有孝子之心者 自有所不忍耳 非斯須不忘極體孝道者 能如是耶 연평이씨가 말하길, “도라는 것은 그래도 널리 통하여 행할 수 있는 것이다. 3년 중에 날과 달은 지나가기 쉬운 법인데, 만약 조금이라도 흡족하지 못한 곳이 있다 하여, 제 생각대로 그것을 고쳐버린다면, 과연 효자의 마음이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효자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저절로 차마 할 수 없는 바가 있을 따름이니, 잠시라도 효도의 체행을 지극히 하기를 잊지 않는 자가 아니라면,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朱子曰 父在觀其志 此一句已自有處變意思 必有爲而言 觀其文意 便是父在時 其子志行已自有與父不同者 父在時 子非無行而 其所主在志 父沒時 子非無志而其所主在行 道猶事也 言道者 尊父之辭 三年無改是 半上落下之事 雖在所當改 但遽改之 則有死其親之心 有揚親之過之意 須三年後徐改之 便不覺 若大故不好底事 則不在此限矣 其不可改者 則終身不改 固不待言 其不可以待三年者 則又非常之變 亦不可以預言善 讀者推類而求之 或終身不改 或三年而改 或甚不得已 則不待三年而改 顧其所遇之如何 但不忍之心 則不可無耳 存得不忍之心 則雖或不得已而改 亦不害其爲孝 尹氏設得孝子之心 未說得事 游氏則於事理上說得聖人語意出 주자가 말하길,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는 그 뜻을 살핀다는 이 한 구절은 이미 저절로 변화에 대처한다는 의미가 있으니, 반드시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말한 것이다. 그 글의 뜻을 살펴보면, 부친이 살아계실 때는, 아들의 뜻과 행함이 이미 저절로 부친과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이다. 부친이 살아계실 때 아들이 실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주안점을 두는 바가 뜻에 있는 것이고,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아들이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주안점을 두는 바가 실행에 있는 것이다. 도는 일과 같은 것이니, 道라고 말한 것은 부친을 높인 말이다. 3년 동안 고침이 없다는 것은 바로 잘하다가 중도에서 그만두는 격의 일이다. 비록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일지라도, 다만 갑자기 고친다면 자기 부친을 죽었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고, 부친의 잘못을 들추어낸다는 뜻이 있는 것이니, 모름지기 3년 후에 서서히 고쳐야만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큰 변고의 좋지 않은 일이라면, 이러한 제한은 없는 것이다. 고쳐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종신토록 고치지 않는 것이니, 본래부터 말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3년을 기다릴 수 없는 것이라면, 또한 평범하지 않은 변고이니, 이 역시 미리 선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독자가 비슷한 것을 미루어서 구한다면, 혹은 종신토록 고치지 않거나, 혹은 3년을 기다려 고치거나, 혹은 더욱 부득이하여 3년을 기다리지 않고 고치기도 하는데, 모두 자기가 닥친 상황이 어떠한지 고려할 것이지만, 다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은 없어서는 안 될 따름이다.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보전할 수 있다면, 비록 혹시 부득이하여 고친다고 할지라도, 이 또한 효도가 되는 것에 방해되지 않는다. 윤씨는 효자의 마음을 말했을 뿐 일을 말하지는 않았고, 유씨는 즉 사리 위에서 성인께서 말씀하신 뜻을 말하여 드러낸 것이다.”라고 하였다.
此章只是折轉說 上二句觀人之大槪 下句就觀其行細看其用心之厚薄如何 行雖善矣 父道可以未改而輕率改之 亦未善也 纔說三年無改 便是這事有未是處 若父道已是 何用說無改 終身行之可也 이 장은 단지 꺾어서 돌려 말한 것인데, 위의 2구절은 사람의 대개 상황을 살핀 것이고, 아래 구절은 그 행실에 나아가 그 마음 씀씀이의 두텁고 얇음이 어떤지를 세밀하게 살펴본 것이다. 실행한 것이 비록 좋다고 할지라도, 아버지의 도가 아직 고치지 않아도 됨에도 경솔하게 고친다면, 이 역시 아직 선한 것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삼년 동안 고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이 일에 아직 옳지 못한 곳이 있다는 뜻이다. 만약 아버지의 도가 이미 옳은 것이라면, 어찌 고치지 않는다고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종신토록 행할지라도 괜찮은 것이다.
大意不忍改之心是根本 而其事之權衡 則游氏之說盡之 대의는 차마 바꾸지 못하는 마음이 근본이라는 것이지만, 그 일의 저울에 있어서는 유씨의 말이 그것을 극진히 한 것이다.
父在時 使父賢而子不肖 雖欲爲不肖之事 猶以父在而不敢爲 然雖無甚不肖之行而其志可知矣 使子賢而父不肖 雖欲爲善事而父有所不從時 有勉强而從父之爲者 此雖未見其善行而要其志之所存 則亦不害其爲賢矣 至於父沒則已自得爲於是 其行之善惡 可於此而見矣 아버지가 계실 때, 만약 아버지가 현명하고 아들이 불초하다면, 비록 아들이 불초한 일을 하고자 할지라도, 그래도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감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대단히 불초한 행실은 없을지라도, 그 뜻은 가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아들이 현명하고 아버지가 불초하다면, 비록 선한 일을 하고자 할지라도, 아버지가 따르지 않을 때가 있어서, 억지로 아버지를 따라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비록 그 선한 행실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뜻이 보전된 바를 요약한다면, 역시 그가 현명하다는 것에는 방해가 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에 이르면, 이미 여기에서 스스로 행할 수 있을 것이니, 그 행실의 선악은 여기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問志者志趣 其心之所趣者 是也 行者行實 行其志而有成也 父在子不得專於行事 而其志之趣向可知 故觀其志 父沒則 子可以行其志矣 其行實暴白 故觀其行 然三年之間 疾痛哀慕 其心方皇皇然望望然 若父母之存 而庶幾於親之復見 豈忍以爲可以得行己志而遽改以從己志哉 存得此心 則於事有不得不改者 吾迫於公議不得已而改之 亦無害其爲孝矣 若夫其心自幸以爲於是 可以行己之志而於前事不如己意者 則遂遽改而從己之志 則不孝亦大矣 豈復論其改之當與不當哉 蓋孝子之處心 親雖有存沒之間而其心一 如父在不敢自專 況謂之父道 則亦在所當改而可以未改者 三年之間 如白駒過隙 此心尙不能存而一不如志 率然而改 則孝子之心 安在哉 故夫子直指孝子之心 推見至隱而言 不必主事言也 若乃外迫公議內懷欲改 而方且隱忍遷就以俟三年而後 改焉 則但不失經文而已 大非聖人之意耳 曰 此說得之 누군가 묻기를, “뜻라는 것은 의지와 취향이니, 자기 마음이 가는 곳이 바로 이것입니다. 行이라는 것은 행실이니, 자기 뜻을 행하여 이룬 바가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계실 적에 아들은 일을 행함에 있어 제멋대로 할 수 없지만, 그 뜻의 취향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뜻을 살핀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들은 자기 뜻을 행할 수 있게 되니, 그 행실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行을 살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년 동안 매우 아파하며 슬피 사모함하니, 그 마음은 바야흐로 황망하여 어쩔 바를 모르는데, 마치 부모님이 살아계신 것처럼 하여 거의 부모님을 다시 뵙는 것 같이합니다. 그러니 어찌 차마 자기 뜻을 행할 수 있다고 여겨서 대번에 바꾸어서 자기 뜻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마음을 보전할 수 있다면, 일에 있어 부득이하게 고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는 공의에 밀려 부득이하게 고치는 것이니, 이 역시 효가 되는 것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무릇 그 마음이 여기에서 자신의 뜻을 행할 수 있음을 스스로 다행으로 여겨서, 예전의 일 중에서 자기 뜻과 같지 않은 것을 마침내 갑자기 바꾸어서 자기의 뜻을 따른다면, 불효가 또한 막대한 것이니, 어찌 또다시 그 고침이 마땅한지 부당한지 논할 것이 있겠습니까? 대체로 효자가 마음을 처리하는 것은, 비록 부모님이 계시고 안 계시고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 마음은 한결같은 것입니다. 예컨대 아버지가 계시면, 감히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이를 일컬어 아버지의 도라고 말한다면, 이는 또한 마땅히 고쳐야 하지만 아직 고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3년이란 시간은 흰 망아지가 틈새로 달려서 지나가듯이 금방 지나갑니다. 이 마음을 여전히 보전할 수가 없어서, 하나라도 내 뜻과 같지 않다고 하여, 경솔하게 고쳐버린다면, 효자의 마음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공자께서 직접 효자의 마음을 가리켜서 지극히 은미한 것을 미루어 드러내어 말한 것일 뿐, 반드시 일에 주안점을 두어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도리어 밖으로는 공의에 밀리고 안으로는 고치려는 욕심을 품었으면서도, 바야흐로 또한 숨기고 참으며 늦추면서 3년을 기다린 후에 고친다면, 단지 경문의 해석에서 잘못하였을 뿐 아니라, 이미 성인의 뜻도 크게 아닐 따름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 말은 잘 터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孟莊子之孝也 其他可能也 其不改父之臣與父之政 是難能也 與此同否 曰 不同 此章是言 父之所行有不善而子不忍改 乃見其孝 若莊子之父獻子 自是箇賢者 其所施之政 所用之臣 皆是 莊子能不改之 此其所以爲難 누군가 묻기를, “맹장자의 효도 중에서 다른 것은 다른 사람도 가히 해낼 수 있지만, 아버지의 신하와 아버지의 정치를 바꾸지 않은 것은 해내기 어려운 것이었다는 말은 이것과 더불어 같은 말입니까?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같지 않다. 이 장에서는 아버지가 행하신 것에 선하지 않은 것이 있을지라도 아들은 차마 고치지 못하니 마침내 그 효도를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맹장자의 아버지인 맹헌자의 경우에는, 자체로 현자였으니, 그가 베푼 정치나 기용한 신하는 모두 옳았기에, 맹장자는 그것들을 바꾸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어려운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若悖理亂常之事 孝子其敢須曳以寧 不曰孝子成父之美 不成父之惡乎 曰父之道 則固非悖理亂常之事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만약 이치에 어긋나고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을 어지럽히는 일이라면, 효자가 어찌 감히 잠깐이라도 편안해하겠는가? 효자는 아버지의 아름다움을 이룰 뿐이지, 아버지의 악은 이루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던가? 아버지의 도라고 말한다면, 본래부터 이치에 어긋나고 오상을 어지럽히는 일은 아닌 것이다.”라고 하였다.
西山眞氏曰 爲人子者 當隨所遇而裁之 自人君而言 則武繼文志 則終身無改 宣承厲之烈 則不待三年而改 若可繼雖不若文 而當改又不如厲 則所謂三年無改者也 三年之間 惟盡哀慕之誠 姑泯改爲之迹 不亦善乎 서산진씨가 말하길, “사람의 아들인 자는 마땅히 마주한 상황에 따라서 결단해야 하는데, 임금으로부터 말하자면, 무왕이 문왕의 뜻을 계승하였다면, 종신토록 고침이 없는 것이고, 선왕이 여왕의 사나움을 승계하였다면, 3년을 기다리지 않고서도 고치는 것이다. 만약 계승할만한 것이라면, 비록 문왕처럼 좋지는 않더라도 고치지 않고, 만약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이라도 또한 여왕만큼은 나쁘지 않기에 고치지 않는 것을, 이른바 삼년 동안 고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삼년이라는 시간은 오직 죽은 슬픈 마음으로 그리워함의 정성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쳐서 행하는 흔적을 잠시 없애는 것도 또한 훌륭하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東陽許氏曰 此章主於觀人 但上兩句 觀志行之大分 三年無改又是觀行中之一節 동양허씨가 말하길, “이 장에서는 사람을 살피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는데, 다만 위의 두 구절은 뜻와 행함을 살피는 것의 큰 구분이고, 삼 년동안 또한 행함을 살피는 것 중의 한 절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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