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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의 부족함은 이러하다
이수학 이라는 이름은 비문에 없고 이시랑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비문에 의하면 이러하다.
越妓瓊春殉節之處(월기경춘순절지처)
越妓瓊春(월기경춘) 영월기생 경춘(瓊春)은
故李侍郞莅越時(고이시랑리월시) 예전 이 시랑(李侍郞)이 영월 땅에 부임해 왔을 때,
所眄以其初許身也(소면이기초허신야) 눈에 들은 바 되어 처음으로 몸을 허락하게 되었다.
故欲自潔以守(고욕자결이수) 이런 고로 스스로 몸을 정결히 하여 수절코자 하였는데,
及後官之來(급후관지래) 후임 관리(부사)가 오게 되자
衙內人有强之者(衙內人有强之者) 관아 내의 사람으로 그녀를 강제하는 자가 있어서,
數被箠楚(수피추초) 수차례 추초(箠楚: 볼기를 치는 형벌)를 당하매,
殆不能堪(태불능감)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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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의 부족함은 이러하다
순절한 시녀와 종인들의 숫자는 고문서와 여러기록에 명기되어 있지 않다
그저 그 숫자를 알 수 없다고만 표기되어 있을 뿐이다
<민충사창건기 愍忠祠刱建記> 홍성보(洪聖輔)
歲辛酉之秋(세신유지추) 신유년(1741. 영조17)가을,
余出守于寧越府(여출수우영월부) 나는 영월부의 수령으로 부임(영조17년 8월15일 임명. 승정원일기)하였다.
府東五里許(부동오리허) 영월부에서 동쪽으로 5리쯤 떨어진 곳에
有落花巖(유낙화암) 낙화암(落花巖)이 있는데,
高四五十丈 臨江壁立(고사오십장 임강벽립) 높이가 너댓 길 정도 되는 절벽이 강을 마주한 채 서 있다.
莊陵陟遐後(장릉척하후) 단종께서 승하하신 뒤,
侍女從人登是巖 投江而死(시녀종인등시암 투강이사) 시녀와 노복이 이 바위에 올라 강물에 투신하여 죽자,
邑人憐之 名之曰落花(읍인련지 명지왈낙화) 고을 사람들이 이들을 가엾게 여기며 ‘낙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按『丙子錄』云 (안『병자록』운) 병자록(丙子錄)을 살펴보건데
魯山以天順丁丑十月遇變 是二十四日酉時也(노산이천순정축십월우변 시이십사일유시야) “노산군께서는 천순 정축년(1457, 세조3) 10월에 변고를 만났는데, 바로 24일 유시(酉時 오후 5시~7시)였다.
侍女從人爭投郡之東江(시녀종인쟁투군지동강) 시녀와 노복이 영월군 동강(東江)에 다투어 몸을 던지니,
浮屍滿江(부시만강) 수면에 뜬 시체가 온 강에 가득했다. ~하략~
正宗十五年【辛亥】二月十五日(정종십오년【신해】이월십오일) 정조15년[신해 1791] 2월15일,
敎曰(교왈) 전교하시기를
寧越府所在愍忠祠刱建在於何年(영월부소재민충사창건재어하년) “본도에 관문(關文)을 보내어 영월부에 위치한 민충사의 창건 연대와
殉節人之列食於本祠者幾人(순절인지열식어본사자기인)본 사당에 배향된 순절한 자들의 규모,
而其姓名皆有籍 記興否(이기성명개유적 기흥부) 그들의 성명을 기록한 문헌의 유무를
發關本道 詳細知入(발관본도 상세지입)상세히 조사하여 보고하게 하여라.” 하였다.
【『政院日記』】【『정원일기』】
四月十七日 4월17일,
寧越府使朴基正報內閣曰(영월부사박기정보내각왈) 영월부사 박기정(朴基正)이 규장각에 보고하기를
本府愍忠祠在於落花巖傍(본부민충사재어낙화암방) “본부의 민충사는 낙화암 옆에 있는데
卽端廟從人侍女滚薦之所也(즉단묘종인시녀곤천지소야) 바로 단종의 노복과 시녀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입니다.
刱建年條(창건년조) 창건한 연대와
享祠人姓名 本無記籍(향사인성명 본무기적) 배향된 자들의 성명에 대한 기록은 본래부터 없습니다.
而年久頹廢(이년구퇴폐) 한편 연대가 오래되어 기울고 무너진 탓에
殆不成樣(태불성양) 거의 모양새를 이루지 못하는바,
赤爲次第修改計料(적위차제수개계료) 이곳 역시 차례대로 수개(修改)할 계획입니다.” 라 하였다.
筵臣以聞(연신이문) 연신이 이러한 내용을 아뢰자
上可之(상가지) 주상께서 옳게 여기셨다.【『政院日記』】【『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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