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0
론다는 안달루시아 말라가주에 속한 말라가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말라가에서 북서쪽으로 120km 떨어져 있고 인구 4만 정도의 작은 도시이다.
3세기경 로마에 의해 건설되었고, 6세기경 켈트족에 의해 번성하였다.
높이 750m인 산악지형에 형성된 지세로 인해 예로부터 요새의 역할을 해왔다.
론다는 헤밍웨이에 의해 그 이름이 더욱 잘 알려졌다..
그가 이곳에 거주하면서 그의 유명한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시인 릴케 또한 론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그는 1912년 스페인 여행을 통해 풍부한 문학적 영감을 얻었음을 그의 여행기와 편지에서 밝히고 있는데
특히 론다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곳의 분위기와 풍경을 통해 인간 존재의 깊이와 신비를 탐구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론다는 스페인에서 최초로 투우경기가 열렸던 투우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1785년에 건설된 오래된 투우장 Plaza de Toros de Ronda이 있다.
투우장 지름이 66m로 마드리드나 세비야의 투우장보다 6m 더 큰 경기장이다.
수용인원이 6000명으로 2층 관중석에 천정이 있어 스페인에서 가자우 아름다운 투우장으로 꼽힌다.
매년 9월이면 역대 최고의 투우사인 페드로 로메로를 기리는 '페드로 로메로 투우축제' 열린다.
해밍웨이는 론다에 거주하며 자주 이 투우장에서 투우를 관람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피카소와 함께 투우 관람을 즐겼다는 일화가 있다.
투우장 건립 후 론다에서는 로메로 가문이 3대에 걸쳐 투우사를 배출하였고
그 중 페드로 로메로는 5600마리 이상의 황소를 죽인 투우사의 역사적 인물이다.
그를 기념하여 론다에서는 매년 9월 첫째 주에 페리아 고예스카 투우 축제가 열린다.
투우장 입구에는 이곳에서 활약한 두 명의 Ordonez 투우사 동상이 서 있다.
전통적인 투우사 가문인 오르도네즈 집안의 유명한 두 인물 Antonio Ordonez 와 Cayetano Ordonez 이다.
두 사람은 할아버지와 손자 관계이다.
카예타노의 아버지는 그가 8살 때 투우에서 황소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위키백과 영문)
최근 투우는 동물학대 측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고 실제로 상당 지역에서 폐지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론다의 투우는 그 발상지라는 상징성 때문에 아직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ANTONIO ORDONEZ | CAYETANO ORDONEZ |
론다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어 있다.
버스터미널과 시청이 있는 신시가지는 투우장, 호텔, 상가 등 주요 관광 인프라가 갖춰져 있고
누에보 다리나 비에호 다리 등으로 연결된 구시가지는 오래된 전통가옥 등이 자리잡고 있다.
론다 신시가지 골목을 걷다가 관광상품을 파는 상점 앞에 세워진 돈키호테상을 발견했다.
돈키호테의 무대인 라만차가 이곳에서 가까운 곳은 아니지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스페인의 상징이니 그 아이콘이 어디에 서 있든 무슨 상관 있으랴.
해학적인 그의 표정이 너무도 잘 표현된 이미지여서 동상의 손을 맞잡고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그라나다에서 두 시간 걸려 론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일행들이 터미널 화장실로 우르르 달려간다.
그런데 입구 벽면에 뚜렷한 글씨의 한글이 보인다. '화장실' ㅋ ㅋ
TVN 여행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를 통해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졌고
그후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는지 짐작할만 하다.
길러리에선 더 많은 중국어 음성이 들리는 데 중국어가 쓰여있지 않은 이유는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