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람이 비닐 포장을 툭툭 친다. 식당 벽 구실을 하는 얇은 포장 너머는 서해다. 아산만 갯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숯불에 올린 가리비는 속살을 둥글게 말면서 탱탱해진다. 은박지에 싸놓은 석화도 모락모락 김을 내며 익어간다. 뜨거운 조개 껍데기에 데지 않게 장갑 낀 손으로 요리조리 조갯살을 발라 낸다. 접시 위로 잘 익은 조갯살과 겨울 석양이 올라왔다.
조개구이의 계절이다. 조개는 산란기(5~7월)을 앞둔 이른 봄에 맛과 영양이 절정에 오르지만 겨울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살이 쫀득하게 여물면서 미식가들을 유혹한다. 조개는 간 기능을 강화시켜주고, 콜레스테롤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소화기능이 약하거나 피로가 쌓인 사람에게 좋다.
조개구이는 아무래도 갯벌을 끼고 있는 서해안이 제격이다. 안면도도 좋고 대부도도 유명하지만 아산만을 끼고 있는 평택항 주변에도 조개구이 집들이 집결해 있다. 수도권에서 가깝고 가격이 저렴해 평택, 아산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80여 개의 조개구이집=평택호 조개구이 거리는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과 충남 아산시 인주면을 잇는 아산만 방조제 북쪽 38번 국도 주위에 자리잡고 있다. 왕복 4차선 도로 양쪽으로 1.5㎞에 걸쳐 조개구이 집들이 도열해 있다. 1년 전 허베이스피릿호(號) 기름 유출 사건 때 손님이 크게 줄어서 가게 중에는 문을 닫은 곳도 있지만 조개대학, 조개박사 등 80개가 넘는 조개구이집들이 영업 중이다.
가격은 가게마다 다르지만 서너 명이 먹을 수 있는 메뉴가 4만원 선이다. 서해안의 다른 조개구이집들과 비슷한 가격이지만 양은 더 푸짐하다. 이쁘니네 조개구이(031-683-1039) 같은 가게에서는 사장인 박종만씨가 직접 테이블을 돌며 "더 먹고 싶은 조개가 없느냐"며 물어보고 추가로 가져다 준다.
먹는 순서는 따로 없지만 대조개, 가리비, 홍합, 소라부터 불 위에 올리고 호일에 싼 석화는 중간쯤에 올린다. 3명이 4만원짜리 조개구이를 먹고 입가심용으로 바지락 칼국수(5000원) 1인분을 시키면 조금 남길 정도다. 칼국수는 1인분이 서울 음식점 2인분보다 많다. 대부분의 가게가 아산만과 인접해 있어 앉은 자리에서 갯벌을 볼 수 있는 게 매력포인트다.
조개구이 거리 주변에는 영화촬영지, 고사분수로 유명한 평택호 관광단지가 있다. 평택호자동차극장에서 영화를 보거나 피라미드 모양으로 지어진 평택호예술관에서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아산만방조제 건너편 온양온천도 들러봄 직하다. 길이 막히지 않을 경우, 자동차로 20분 거리다.
- ▲ 숯불에 익어가는 조개 너머로 아산만 갯벌이 보인다. 평택항 인근에 형성된 조개구이 단지는 80여 개의 식당이 도로를 따라 도열해 있다. 네 사람을 기준으로 4~5만원이면 조개구이와 칼국수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박수찬 기자 soochan@chosun.com
◆가는 길=평택호 조개구이 거리의 장점은 수도권에서 가깝다는 것이다. 경기도 남쪽이라면 대부분 1~2시간이면 닿는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는 서평택IC로 나와 평택호 관광단지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안성 IC로 나와서 평택항·평택호관광단지 쪽으로 가면 된다. 주말 저녁시간에는 서해안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서울, 수원 방면의 국도가 상습 정체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 저녁시간에 조개구이집 호객꾼들이 도로 위로 나와서 손님을 끄는데, 도로 주변이 어둡기 때문에 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대중교통은 평택시 안중읍에서 삽교행 버스를 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