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향은 찬바람이 불면 더욱 진해진다. 아스라한 그 향을 좇아서 쓸쓸한 빈 들녘을 스치고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아 한참을 달려갔다. 산마루 첩첩인 경북 문경시에서도 더욱 외진 곳에 들어앉은 산북면 에 있는 한 술도가를 찾아 나선 길이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금수강산 대한민국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참 많다. 물 좋은 곳에서는 당연히 차(茶)가 맛있고 술(酒)이 달다.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로 불리던 문경새재(명승 제32호), 옛길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토끼비리(명승 제31호)를 비롯해 경북8경중에서도 1경으로 꼽힌다는 진남교반과 고모산성 등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되는 문경에 맛난 술이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500년을 이어온 장수황씨(長水黃氏) 집안의 가양주 문경 호산춘(湖山春·경북무형문화재 18호)은 문경의 자랑이며 경주 교동의 법주, 서천 한산의 소곡주와 더불어 한국 3대 명주로 꼽힌다.
500년 황희家의 기품이 담긴 명주 ‘호산춘’ 조선 초기 영의정을 지낸 황희 정승의 후손들이 문경 산북에 자리 잡으면서 호산춘이 시작되었다. 6촌 안에 과거급제한 진사가 8명이나 되고 모두 천석지기여서 당시 황 씨 집안은 '8진사 8천석'으로 불렸다. 집안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으니 그 많은 손님을 접대하고 또 조상님께 올리는 봉제사를 지내기 위해 술을 빚어야 했다. 그 술이 바로 호산춘이다.
‘신선이 탐할 만 한 술’이라 하여 ‘호선주(好仙酒)’라고 불리기도 하는 문경 호산춘은 국내에 전승되는 전통주 가운데 유일하게 술 주(酒)자 대신 봄 춘(春)자를 쓴다.‘춘’자는 술의 색과 맛, 향이 맑고 깨끗한 술에 붙이는 존칭이다. 같은 밥이라도 ‘밥’과 ‘진지’가 그 품격이 다르듯, 춘자가 붙은 술엔 남다른 존엄함이 있다. 예전에는 서울의 약산춘, 평양의 벽향춘, 백화춘, 한산춘 등 또 다를 춘주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호산춘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중국 송 대에는 춘주를 설명하면서 맛이 향기롭고 연하여 입 속에 넣으면 날아가 버린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춘주는 특별하다.
호산춘은 쌀 한 되로 딱 술 한 되만 뽑을 수 있는 고급술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더욱 귀했던, 소수의 상류층을 위한 술이기도 했다. 번성했던 황씨가문의 가세가 기운것도 집안에 끊이지 않는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 호산춘을 많이 빚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그 이유다.
호산춘은 술밥을 2차례 나눠 담근다. 밑술과 덧술의 비율은 1대2. 밑술은 멥쌀로 고두밥을 찌고, 덧술은 찹쌀로 백설기를 찐다. 멥쌀과 누룩을 섞은 밑술을 7~10일 간 발효하고, 여기에 덧술을 더해서 20일을 더 기다린 뒤 술을 내린다. 말간 호산춘을 얻으려면 꼬박 한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쌀과 누룩 외에 호산춘에 들어가는 것은 솔잎이다. 많은 솔잎을 넣은 술에선 진한 솔향이 배어난다. 발효과정에 솔잎이 첨가되기에 담황색을 띠며 손에 묻으면 끈적거릴 정도로 진하다. 주도는 18%이다. 발효주로는 상당히 높은 도수다. 일반 약주의 도수는 대개 15~16도. 18도는 한산 소곡주와 호산춘만 낼 수 있다고 했다. 술맛은 진득하고 무거운 다른 약주들과 달리 유난히 가볍고 부드럽다. 달큼하지만 끈적거리지 않았고 뒷맛도 깔끔하다. 노련한 풍미가 후각마저 적신다. 입에서 날렵하고 상쾌하게 넘어간 술은, 금세 뱃속을 화하게 달궈 주었다. 첨가되는 솔잎은 향과 약리작용이 뛰어나며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호산춘은 막걸리처럼 유산균이 살아있는 생주다. 때문에 보관에 취약하다. 유통기한은 상온에선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참으로 까다롭고 귀한 술이다. 하지만 냉장 보관하면 유통기간이 1년으로 늘어나니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호산춘은 먹고 싶다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술이 아니다. 호산춘은 아무도 못 꺾는다는 '황 씨 고집'에 의해 지켜온 장수황씨 가문의 자존심이다. 장수 황 씨 가양주인 호산춘의 전수자이며 명망 높은 서예가이기도 한 심경 황규욱 선생은 정성스레 술을 빚지만 파는 데는 영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 흔한 판매장도 하나 없다. 그러니 직접 가서 사는 수 밖에 없다. 돈을 벌기 위해 술을 빚는 것이 아니고, 가문의 명예와 전통을 잇기 위해 자존심으로 술을 빚기 때문이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방한당시 청와대에서 환영 만찬주로 쓰겠다며 호산춘을 요청한 적이 있다. 필요하면 와서 가져가라 호통을 쳤고 비서관들이 내려와 일일이 봉인해 가져갔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술이 떨어지면 한달이고 두 달이고 문을 닫아걸기도 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술은 절대 내놓지 않는 종손의 고집이 아름답다. 술을 빚어 놓았다 하면 소문을 듣고 단골손님들이 달려온다. 금세 술이 떨어져 평소에는 구경하기도 힘드니 20년 자존심이 빚은 옹고집 술 한 방울도 참으로 소중하다. (한국교직원신문 2010. 11.09)
술향은 찬바람이 불면 더욱 진해진다. 아스라한 그 향을 좇아서 쓸쓸한 빈 들녘을 스치고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아 한참을 달려갔다. 산마루 첩첩인 경북 문경시에서도 더욱 외진 곳에 들어앉은 산북면 에 있는 한 술도가를 찾아 나선 길이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금수강산 대한민국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참 많다. 물 좋은 곳에서는 당연히 차(茶)가 맛있고 술(酒)이 달다.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로 불리던 문경새재(명승 제32호), 옛길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토끼비리(명승 제31호)를 비롯해 경북8경중에서도 1경으로 꼽힌다는 진남교반과 고모산성 등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되는 문경에 맛난 술이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500년을 이어온 장수황씨(長水黃氏) 집안의 가양주 문경 호산춘(湖山春·경북무형문화재 18호)은 문경의 자랑이며 경주 교동의 법주, 서천 한산의 소곡주와 더불어 한국 3대 명주로 꼽힌다.
500년 황희家의 기품이 담긴 명주 ‘호산춘’ 조선 초기 영의정을 지낸 황희 정승의 후손들이 문경 산북에 자리 잡으면서 호산춘이 시작되었다. 6촌 안에 과거급제한 진사가 8명이나 되고 모두 천석지기여서 당시 황 씨 집안은 '8진사 8천석'으로 불렸다. 집안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으니 그 많은 손님을 접대하고 또 조상님께 올리는 봉제사를 지내기 위해 술을 빚어야 했다. 그 술이 바로 호산춘이다.
‘신선이 탐할 만 한 술’이라 하여 ‘호선주(好仙酒)’라고 불리기도 하는 문경 호산춘은 국내에 전승되는 전통주 가운데 유일하게 술 주(酒)자 대신 봄 춘(春)자를 쓴다.‘춘’자는 술의 색과 맛, 향이 맑고 깨끗한 술에 붙이는 존칭이다. 같은 밥이라도 ‘밥’과 ‘진지’가 그 품격이 다르듯, 춘자가 붙은 술엔 남다른 존엄함이 있다. 예전에는 서울의 약산춘, 평양의 벽향춘, 백화춘, 한산춘 등 또 다를 춘주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호산춘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중국 송 대에는 춘주를 설명하면서 맛이 향기롭고 연하여 입 속에 넣으면 날아가 버린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춘주는 특별하다.
호산춘은 쌀 한 되로 딱 술 한 되만 뽑을 수 있는 고급술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더욱 귀했던, 소수의 상류층을 위한 술이기도 했다. 번성했던 황씨가문의 가세가 기운것도 집안에 끊이지 않는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 호산춘을 많이 빚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그 이유다.
호산춘은 술밥을 2차례 나눠 담근다. 밑술과 덧술의 비율은 1대2. 밑술은 멥쌀로 고두밥을 찌고, 덧술은 찹쌀로 백설기를 찐다. 멥쌀과 누룩을 섞은 밑술을 7~10일 간 발효하고, 여기에 덧술을 더해서 20일을 더 기다린 뒤 술을 내린다. 말간 호산춘을 얻으려면 꼬박 한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쌀과 누룩 외에 호산춘에 들어가는 것은 솔잎이다. 많은 솔잎을 넣은 술에선 진한 솔향이 배어난다. 발효과정에 솔잎이 첨가되기에 담황색을 띠며 손에 묻으면 끈적거릴 정도로 진하다. 주도는 18%이다. 발효주로는 상당히 높은 도수다. 일반 약주의 도수는 대개 15~16도. 18도는 한산 소곡주와 호산춘만 낼 수 있다고 했다. 술맛은 진득하고 무거운 다른 약주들과 달리 유난히 가볍고 부드럽다. 달큼하지만 끈적거리지 않았고 뒷맛도 깔끔하다. 노련한 풍미가 후각마저 적신다. 입에서 날렵하고 상쾌하게 넘어간 술은, 금세 뱃속을 화하게 달궈 주었다. 첨가되는 솔잎은 향과 약리작용이 뛰어나며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호산춘은 막걸리처럼 유산균이 살아있는 생주다. 때문에 보관에 취약하다. 유통기한은 상온에선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참으로 까다롭고 귀한 술이다. 하지만 냉장 보관하면 유통기간이 1년으로 늘어나니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호산춘은 먹고 싶다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술이 아니다. 호산춘은 아무도 못 꺾는다는 '황 씨 고집'에 의해 지켜온 장수황씨 가문의 자존심이다. 장수 황 씨 가양주인 호산춘의 전수자이며 명망 높은 서예가이기도 한 심경 황규욱 선생은 정성스레 술을 빚지만 파는 데는 영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 흔한 판매장도 하나 없다. 그러니 직접 가서 사는 수 밖에 없다. 돈을 벌기 위해 술을 빚는 것이 아니고, 가문의 명예와 전통을 잇기 위해 자존심으로 술을 빚기 때문이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방한당시 청와대에서 환영 만찬주로 쓰겠다며 호산춘을 요청한 적이 있다. 필요하면 와서 가져가라 호통을 쳤고 비서관들이 내려와 일일이 봉인해 가져갔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술이 떨어지면 한달이고 두 달이고 문을 닫아걸기도 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술은 절대 내놓지 않는 종손의 고집이 아름답다. 술을 빚어 놓았다 하면 소문을 듣고 단골손님들이 달려온다. 금세 술이 떨어져 평소에는 구경하기도 힘드니 20년 자존심이 빚은 옹고집 술 한 방울도 참으로 소중하다. (한국교직원신문 2010. 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