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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작업에 대하여 2011년 9월24일
리타 테일러 선생님 (통역 이은화 선생님)
(멀리서 저희들을 보러 오셨습니다. 너무나 감사드리고 박수한번...
오늘 날씨도 좋고 선생님 만나니 기대도 되고 오늘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여러분이 이 학교에 오실 때 오늘 날씨도 그렇고 전체 기운이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어제가 바로 추분이었죠?
그 말이 무엇이냐면 밤낮의 균형을 이루던 시기를 지나 좀 더 평화롭고 깊은 곳으로 겨울으로 들어가는 시점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본다면 우리의 깊은 내면에 대한 작업 전기작업을 하기에 좋은 시기라 볼 수 있습니다.
희망컨대 저와 함께 천천히 움직여보는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두 개의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는 불교 쪽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이고, 하나는 기독교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이야기들을 통해 어떻게 전기작업과 연결시켜 바라볼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크리샤 고탐이라는 아주 젊은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티벳 나라에 운이 좋게도 부처님이 살았던 그 시기에 살았던 여인입니다.
그 여인이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한 살이 되었을 때 아이가 죽고 말았습니다. 혹시 엄마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느낌이 오시나요? 아이를 가슴에 안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거리에 나가 이 죽어가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약이 있으면 달라고 청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혀 관심없다는 듯 지나쳤고, 돕고 싶지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더럽고 지저분한 그 여인을 미친 여자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 나이많은 지혜로운 노인이 말하기를 '당신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붓다이다. 그 사람만이 기적을 가능하게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붓다에게 가서 아이를 발밑에 놓았습니다.
붓다가 그 여인에게 연민과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마을에 모든 집을 가서 어느 한집이라도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을 찾아봐라. 만약 단 한번도 죽음을 경험한 가정이 없다면 겨자씨앗을 얻어오너라.'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죽음의 아픈 경험을 경험치 않은 집은 없었습니다. 첫 번째 집은 이미 여러번 많은 죽음을 경험했고, 그렇게 다닌 모든 집이 죽음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그 여인은 붓다가 자신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자신의 아이를 무덤에 묻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러고 나서 붓다에게 갔더니 붓다가 물었습니다. '겨자씨는 얻어왔느냐?' 여인이 ‘아니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런자 부처가 '그런데 왜 나를 다시 만나러 왔느냐?'하고 물었습니다. 여인이 말하기를 '당신이 제게 무엇을 가르쳐주고자 하는지 제가 깨달았습니다. 이런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당신께 배움을 얻고자 합니다. 죽음이 무엇이인지, 제가 죽음 후에도 계속해서 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결국 그 여인은 붓다의 제자가 되어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전기작업에 대해 말하자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죽은 이후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정신을 향한 갈구이며 정신을 찾아 나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기작업이란... 여기서 죽음만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과 삶은 뗄 수 없는 하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는데요,
착한 사마리아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 중간에 강도를 만났고 옷까지 훔쳐갔습니다.
레위라는 가문의 한사람이 사업상의 일로 예루살렘에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중요한 사업 때문에 너무 바빠 멈추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남자는 히브리 사제였습니다. 그도 또한 멈추지 않았습니다. 반고호가 이에 대해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 이 남자는 아주 두꺼운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조금 후에, 세 번째 남자는 착한 사마리아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 지역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남자는 현재의 삶과 연결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삶과 연결된 행동을 한것입니다. 사업상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목적이 분명히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조건에 구속되어진 과거에 연결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책이 어떤 책이었느냐하면 예부터의 관습과 법에 대한 책이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사제는 절대 죽어가는 사람을 만지면 안 된다는 법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현재와 관계된, 자신의 현재 상황에 적합한 행동을 반응으로 보이는 사람입니다. 자유롭게, 미래도 과거도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정말 올바른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 해드리는 것은 전기작업 자체가 그 길로 가기위한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전기작업을 통해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져온 여러 가지 이상들, 조건들로부터 자유로와지기 위한 것입니다.
이 우화들을 통해 할 수 있는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는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직관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일들을 해낼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전기작업에 대해 모르시는 분 알려주세요. 전기작업이 궁금해서 오신 분들이 많으신 거네요. 전기작업은 인지학을 바탕으로 일어난 한 분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인간의 삶의 주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삶의 주기는 주로 7년을 1주기로 돌아갑니다. 7이라는 숫자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여러분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청중들 답)행운, 무지개, 일주일, 기독교에선 7가지 은혜인 7성사, 3-7일, ...
일주일이 있고요. 7음계 한 옥타브도 일곱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8번째는 새로운 음계가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있는 세포도 매 7년마다 완전히 새롭게 재생되어진다고 합니다. 이미 슈타이너가 말하기 전에 그리스 시대 의사인 히포크라스도 삶의 7년 주기에 대해 말했습니다.
7이라는 주기는 시간과 연결되어진 것입니다. 두 개의 그림을 그릴텐데... 무엇부터 할지... 커다란 그림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 뒤에 있는 그 모든 시간을 포함한 그림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재육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시작점을 탄생이라 보고 7, 14, 21세 세 번의 주기가 표시되고 그다음 28, 35, 49, 56, 63세 7년 주기의 그림을 그려보겠습니다. 7년의 간격이 정확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각 삶의 주기는 다시 세 번의 주기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몸이 주되게 완성되어지는 것이 세 번의 주기입니다. 아기가 얼마나 빨리 성장하는지 기억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세 번의 삶의 7주기는 간략히 설명하자면, 영혼이 발달하는 시기입니다. 나머지 세 번의 7주기는 정신의 발달시기로 정신발달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떻게 보면 삶의 주기표 U자 곡선이라고 하는데 전기작업과 관련하여 더 설명하겠습니다.
이 커다란 그림에는 어떻게 그려넣을 수 있을까?
태어나지 않은 시기가 있고, 땅에 태어난 시기가 탄생이라 해봅시다. 태어나서 세 번의 큰 주기를 거쳐 몸, 영혼, 정신이 완성되고 죽음에 이르게 되면 탈육을 하게 됩니다. 즉 죽음을 맞이하고 정신으로 가게 되는 과정에서 영혼의 여정이라 할 수 있는 모든 행성들을 거치는 시간을 가지고 한밤중에 해당하는 자신의 빛나는 영혼의 별을 지납니다. 그 다음 주욱 다른 별들을 거쳐 새로운 삶을 준비하게 됩니다. 이것을 육화라고 해도 좋고 재육화라고 해도 좋습니다. 불교에서의 육화와 기독교에서의 재육화라 하는 데에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재육화라는 단어는 기독교에서 원래 존재했던 단어인데 기독교가 공인되는 과정에서 그 단어가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어쨌든 전기작업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이 작업에서 여러분을 너무 놀라고 당혹하게 하고 싶지 않아 간단히만 말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이것, 재육화를 카르마, 업의 수레바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시대에 이 업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더 이상 돌아오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지학에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육화는 나선형 모양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말씀드리자면 한곳에 계속 머물러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발전해 위로 올라가는 발달의 과정, 발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더 높은 단계로 진정으로 우리를 발전시키려면 한번 태어난 것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도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이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이것을 꼭 나의 가치관 , 세계관으로 가져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정도입니다. 그래서 큰 그림은 빨리 지우겠습니다. 그러나 여기 여전히 있습니다.(모두 웃음) 전기작업하면서 우리는 현실에 있지만 이 커다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잠시 휴식을 갖겠습니다. 많은 질문이 가능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질문을 담은 바구니를 준비해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문)전기작업이 어떤 것인가?
답)전기작업을 하게 되면 삶의 각각의 주기를 되돌아 볼 것입니다. 각 단계, 주기에서 특별히 발달하고 커가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왜 이런 식으로 표시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이 많은 작업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작업들은 앞으로 이루어질 전기작업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몇 가지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하자면...
첫 번째 삶의 주기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한동안 살이 포동해지는 것이 아니라 살이 조금 빠집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처음 자궁에서는 엄마가 먹는 것을 받아 자신의 몸을 키웁니다.
탄생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있습니다. 뱃속에 태어나 있는 이 아기는 엄마의 심장소리, 사지를 움직이는 소리, 모든 소리를 다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함께 있던 엄마로부터 뚝 떨어져 독립된 존재가 됩니다. 그 아기가 처음하는 행동은 울음입니다. 아기는 앙하고 웁니다. 엄마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되는 그 순간이 살이 빠지는 그 시기가 최초의 개별화되는 시점입니다. 최초로 분리되어지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울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입니다. 나 여기 있어요. 그리고 우는 아이에 대해 반응을 합니다. 따뜻하게 해주고 이 세상은 따뜻하고 살만한 곳이고 안전한 곳이라고 느끼도록 돌봐줍니다. 각각의 삶의 주기에서 필요한 것이 있는데 둥지와 같은 보금자리가 삶의 첫 주기에서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굉장히 할 일이 많고 바쁩니다. 먹고 싸는 것만이 아니라 뒤집고 기고 아이들이 스스로 땅을 딛고 일어서는 것은 어마어마한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 아이들은 감각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는 시기입니다. 만지고 맛보고 보고 하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배웁니다. 삶의 첫 주기 동안 자신의 모든 감각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입니다. 7세 즈음되면 아이들은 학령기가 됩니다. 왜냐하면 7세 즈음 되면 몸을 만들기 위해 쓰였던 많은 힘들이 배움, 약간의 지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힘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됩니다. 사춘기가 되면 2차 성징도 나타나고 21세에 접어들면 성인기에 접어듭니다.
위기라는 한번 단어를 써보겠습니다. 탄생이라는 것을 보면 삶을 살며 경험하는 위기의 아주 원형적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고통들을 경험합니다. 위기에 대한 상징과 같은 그림입니다. 안고 다니던 아기가 안을 수 없을 만큼 성장하게 됩니다. 성장을 통해 점점 더 다음 시기로 나아가게 되는데 파도의 그림으로 나타내질 수 있습니다. 일상을 통해 많은 고통, 고뇌를 겪게 되는데, 바로 이 탄생의 순간에 어마어마한 고독과 고통, 분리를 겪게 됩니다. 바로 우리의 성장을 위해 겪는 것입니다.
실제로 위기를 통해 삶을 계속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위기가 두 가지로 해석되어지는데 하나는 변화, 하나는 돌파, 새로운 기회를 가지는 것이 위기라고 합니다.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은 새로운 것으로 나갈 수 있는 큰 기회입니다. 위기라는 것은 위험의 측면이자 동시에 기회입니다. '아이고 지겨워라 삶이 고난의 연속이라는 것이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위기를 통해, 고난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전기작업을 하게 되면 우리가 지나온 많은 기회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지나온 과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우리 삶에서 가능해집니다. 어려운 과정, 어려운 경험이 내 삶의 변화, 내 삶의 새로운 기회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전기작업이란 하나의 풍경화와 같습니다. 아니 실은 삶이 풍경화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삶에는 산도 있고 나무도 있고 햇빛이 빛나는 곳도 그늘진 곳도 있을텐데, 그 모든 것이 함께 담겨져 있는 것이 우리 삶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 삶의 첫주기인 7년을 바라보면 아주 오래전이기에 잘 기억안나지만 어떤 긍정적인 그림을 찾을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삶의 우물, 삶의 생기를 북돋는 어떤 일이 그 시기에 있었는지 돌아봅시다.
잠깐 휴식을 하고 오면
지금까지 말한 것을 완전히 뒤집는 질문을 해주시오...-------------------
이미 작업을 한 사람들은 어떤 작업을 할지 알겠지만 새로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실제로 어떤 일을 하게될지 말하겠습니다. 삶의 7년 주기에서 삶의 중요한 측면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각각의 단계에서 여러분이 직접 경험했던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을 요청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지는 나중 작업에서 더 설명하겠습니다. 아까 제가 왜 유자곡선으로 되어있나에 대해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양쪽 곡선면에 반사되어 나타나는 평행하게 나타나는 지점이 있는데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아주 좋은 창의적인 글쓰기에 관한 책이 있습니다. 기존에 작업을 하신 분들과는 그 작업을 더 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좀 다른 접근방법으로... 그룹으로 작업하는 시간을 가질텐데... 지금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미 해본 사람과 새로운 사람들이 서로 섞여서 그 작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그룹에서 하는 일들은 말 그대로 대화인데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듣고 내 이야기도 하고 하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자유입니다. 말하고 싶은 것은 말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안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유입니다. 진정으로 듣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말하는 사람입장에서는 들어주는 것은 상당한 치유의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모라는 작품을 읽어본 적 있습니까? 모모가 얼마나 잘 들어 주는지 나온 대목이 있습니다.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하고 듣는 그 순간 새로운 에너지가 흘러들어옵니다. 그것이 쓴 글이든 구두로 말하는 것이든 그 순간 치유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예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부터 말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동양이나 한국의 유명한 철학자는 애석하게도 모릅니다.
'병이 있으면 제일 먼저 말을 사용해라. 말이 안 되면 그때에 신 허브를 사용해 병을 다스려라. 그것도 안될 때 마지막으로 칼을 쓰는 수술을 사용해야 한다.' 예측컨대 동양의 지혜로운 철학자도 그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제3의 눈에 대해 말하지요? 그렇다면 제3의 귀는 어디에 있을까요? 알고 싶으신가요? (심장?) 가슴 뒷부분, 날개뒷부분에 있는 곳에선 말로 되어지지 않은 말들을 받아들이는 귀가 거기에 있습니다.
예술작업으로는 그림과 흙작업을 할 것입니다. 첫 시간에는 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젖은 수채화를 할텐데... 특정한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기작업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색으로 그려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처럼 긴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날 하게 될 작업에 대해 알려주고 그룹작업이 진행됩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으로 함께 삶의 여정을 떠나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질문이 있으시면 해주십시오. 아무 질문이나 가능합니다. 질문의 리스트를 적어보고 그다음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문1.> 직접적인 질문보다는 측면적인 질문인데..
인생의 싸이클에 대해 인지학적으로 조금 알고 있는데 제 주변에서 11살의 어린나이에 한 아이가 백혈병으로 죽었습니다.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은데... 인지학적으로 우리 인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음에도 어떤 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인식의 짧음에서 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의 죽음, 우정
문2.> 중간에 죽거나 자살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문3.>자신의 삶에서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알 수 있고...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대충살거나 잘 못살면 어떻게 되나요? 어떤 사람은 너무 무난하고 평탄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너무나 힘겹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교에선 전생의 업보라고 하는데 선생님께선 어찌 생각하시는지?
문4.> 단어에 대해서 질문하자면...생각, 마음, 영혼, 정신 생각이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 속에 살잖아요? 더 본질적인 것, 그 다른 것이 있는데 그 미묘한 차이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영혼/ 정신의 한국적 정의
문5.> 42세 29세 시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특별히 필요한 과제나 의미가 있다면 위기를 맞았을때 도움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6.> 전기작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되돌아보기를 하려고 할 때... 돌덩이에 부딪혀 막히는 어려운 시기가 있습니다. 3주기 청소년시기인데 그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도움을 알고 싶습니다.
답>
일단 모르는 분이라 답하기 힘들지만 혼자 작업하다가 이미 전기작업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혼자할 때 가장 놓치는 부분이 대화입니다. 아마 누군가가 들어주기만 해도 지금 힘든 부분이 자연스럽게 풀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42세부터 49세의 주기가 어떤 시기냐하면... 삶의 전체가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내 삶의 여기저기가 왜 이렇게 얽혀있는지 조망할 수 있게 되는 시기입니다. 그 힘을 키우는 것이 그 시기 과제입니다. 사회적 관계를 넓히는 것이 그 시기 과제라 생각됩니다.
정신. 영혼---- 영어, 독일어, 한국어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이 답을 만족스럽게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답변으로 들어가기 전에 정확히 이 단어들을 중국어로 쓰실 수 있는분! 한국 스님 중 한분이 정확히 한문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 번역이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인지학적으로 봤을 때 두 그림중 하나를 그리자면, 여기에서 삶을 살고 죽음을 맞이하면 감각적인 모든 것이 죽고 영혼과 정신에 해당하는 부분은 육체를 떠나게됩니다. 정신과 영혼이 함께 떠나는데 세계의 한밤중의 정신세계로 가서 다시 재육화하게 하는 힘은 오로지 정신의 힘입니다, 영혼의 힘은 그렇지 않습니다. 카톨릭에서는 영혼이 저세상으로 간다고 해서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영혼과 정신이 함께 여행을 하게 되는데 정신은 고차원적인 자아이고, 우리가 가진 감정, 느낌이 영혼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어느 특정한 시기가 되면 영혼이 모이는 곳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게됩니다. 자신 삶의 개별성의 끝, 삶의 뒷부분까지 온전히 다 가는 것은, 삶의 자산을 오롯이 다 가지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정신입니다.
문) 정신이라는 것은 나의 본질, 고유의 것이고 영혼은 좀 더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것이라고 할 때 감정의 발달이 영혼적 발달이 정신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가?
답)어떻게 보면 그 과정이, 영혼에 작업을 한다는 것이 정신을 순수하게 청결히 하는 작업입니다. 내 정신이 나를 순수하게 내려다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영혼의 작업입니다.
카르마에 대한 답>
카르마는 인과에 대한 것으로 직선적입니다. 카르마에 대한 의미를 떼어봅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네가 전생에 이 일을 해서 지금 이런 결과가 있는거야라는 인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인지학에서 말하는 카르마는 그런 선적인 카르마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카르마라는 것은 좀더 원의 형태룰 지닌 카르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카르마는 어떻게 보면 미래와 연결되어 있는 거라 볼 수 있습니다. 카르마는 미래가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 더 도움이 됩니다. 젊은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미래의 삶에서 이 땅에서 필요했기 때문에 먼저 불리어 간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 일어난 일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1900년대 한 젊은 Emmet Till이라는 흑인이 두 백인에 의해 아주 잔혹하게 살해되었습니다. 생긴 모습을 완전히 다르게 보일정도로 잔혹하게 가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너무도 아름다운 일을 했습니다. 보통사람으로선 생각키 어려운 것이었을 텐데..., 정말 잔혹하게 살해당한 아들을 정면으로 직면했습니다. 그 아이를 관에 넣을 때 엄마 앞에서 몸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주장했습니다. 시체를 보여 달라고 말입니다. 너무나 잘생긴 하나뿐인 아들을 보내는 엄마의 마음을 여러분은 아마도 이해할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미디어를 통해 이 아이의 죽음이 전해졌습니다. 이 소년의 죽음으로 인하여 미국인들이 백인들이 흑인들에 가하는 가해에 대해 새로운 인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아이의 죽음을 조명해보면 이것이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에 흑인에게 덜한 잔혹행위, 가혹행위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 엄마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적 체험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신의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에머슨은 너의 아들이 아니라 나에 속한 아들이다. '라는 소리를 들었고 그 엄마는 신의 커다란 뜻 속에서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가혹한 것 중 하나가 아이의 죽음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정말 여러 가지 고통과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는데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알수 없는 무엇인가 더 큰 의미가 그 속에 놓여져 있을 것이라는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마 러시아의 도스토옢스끼의 소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중 알로샤라는 막내의 화두중 하나가 왜 아이가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였는데 거기엔 그 의미가 있을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의심이 일어날 수 있지만...
아이가 죽은 어머니에게는 바로 맞닥들이기엔 너무 큰 고통이지만 죽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아이가 떠나는 길에 동반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이 세상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괴로운 친구를 보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람과 함께 같이 길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의 죽음과 현세 우리의 카르마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말하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살과 관계된 부분도 큰 주제에 해당하게 때문에 짧은 시간에는 벅차고, 우리의 과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여할 것은 나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이 내가 해야할 것이고 다른 사람의 과제를 잘하고 있는지는 그 사람들의 몫입니다. 전기작업이 바로 내 삶의 과제를 찾는 작업이 아닐까생각합니다.
많은 질문 가지고 계시다 다음기회에 다시 함께 나누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