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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人 全尙烈 第 11 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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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 序
Ⅰ.잊어버린 그 모습 꿈결 / 풋감 / 곽공(郭公) / 엿장수 가윗소리 / 소년(少年) / 겨울햇살·2 / 초당(草堂) / 약손 / 목소리 / 소문 / 낙방(落榜) / 강변연가 / 싸락눈 / 매우기(梅雨期) / 장날 / 삼거리 주막(酒幕) / 한 때 그리고 지금은 / 오도 가도 못하던 시간 / 산(山)과 마주 앉아 / 저녁 반주(飯酒) / 시락국 집 / 유산(遺産) / 나의 자전(自轉) / |
Ⅱ. 산(山) 그늘 산(山) 그늘 / 늘그막에 / 꽃 소식 / 무위(無爲) / 까치소리 / 저무는 풍경(風景) / 귀로(歸路)·2 / 가을바람 / 가을호반(湖畔)에서 / 연륜의 지혜 / 노인(老人)들의 외출(外出) / 기도(祈禱) / 시절단장(時節斷章) / 편지 / 서지산방(西芝山房) / 소망(所望) / 빈집 / 코스모스와 샐비어 / 홍시(紅枾) / 황혼병(黃昏病)·2 / 겨울을 사는 법 / 생전(生前)에 / 어느날의 나 / 신후지지(身後之地) / 뿌리를 찾아 / 핏줄 / 신도비(神道碑) / | |
Ⅲ. 기타 전화를 받고 / 초대(招待)받고 갔더니 / 추모(追慕)의 밤에 / 88로 가는길 / 우리모두 화합(和合)하자 / 대구방송총국 개국 50주년에 / <오월>10집에 / 달구벌축제 그 전야에 / 반가운 소식 산(山)자락에 선 동안(童顔)의 세계 / - 崔昌祿 (문학평론가, 대구대학교 교수) / |
시집(詩集) [세월의 징검다리] 이후의 작품들을 모아 열한번째의 시집을 엮는다. 이길에 들어선 지 40년, 나는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을 바탕으로 향토적인 소재에 눈을 돌려 사물의 본질을 직시하고 밀도 있는 언어의 조형에 힘써왔다. 남은 햇살이 짧을수록 그리움은 과거의 시간 속을 배회하고 인간 본연의 귀소성은 아늑한 고향에로 돌아가게 한다. 이 시집은 주로 그러한 시간과 공간의 문제들이라 하겠다. Ⅰ은 잊어버린 그 모습들이고, Ⅱ는 산(山)그늘 그런 것들이고, Ⅲ은 그 밖의 행사(行事)들이다. 끝으로 시의 해설을 맡아주신 문학평론가 최창록(崔昌祿) 교수께 사의를 표하고 시집출간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에게 감사한다. 1990년 6월 牧 人 |
할매 등에 업히어 울다가 잠이 들고 그 날, 가리마 곱던 엄마 품에 안기어 눈망울 초롱초롱한 나를 만난다. 뒷동산 도래솔에 뻐꾸기 울어쌓고 세월이여, |
게(蟹) 구멍 쑤시다가 소나가를 만났다. 그날 밤 돌이는 감기가 들어서 이마가 볼가지고 감나무 밑에 |
뻐꾸기는 왜 자꾸 우는가. 뻐꾸기가 울면 갈대도랑 둑에 들찔레 그냥 피고 누룽지 자랑하던 순이랑 그 날 그 가시네도 머슴애도 곽공(郭公) 너는 왜 자꾸 우는가. |
동네 조무래기 모여든다. 헌 고무신, 몽당숟가락, 삼베헝겊, 많이도 말고 손톱만치 가윗소리 골목 끝으로 사라지면 마당 가에 모기불 피워놓고 잠이 든 꿈 속에 엿장수 가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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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마을 앞을 지나다가 아랫보 논 서마지기 새떼 쫓는 소년을 본다. 한 60년 전 그 얼굴이다. 느티나무 언덕길을 올라 익어가는 가을 들녘을 달리면서 오래 잊어버린 그 모습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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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에 앉아 동화를 읽고 있노라면 어디서 졸래졸래 또래들이 모여든다. 돌다리 건너 감나무집 노인이 |
뒷동산 된비알에 참꽃 피고 앞냇가 버들숲에 호드기 소리, 여름철에는 가을에는 겨울 밤에는 팔씨름 어금버금하던 창밖에 한창 농사철인데 |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등잔의 호롱불이 일렁거리고 할매는 약사발을 팔모상 위에 놓고 그러고 내 머리를 짚으시고 오늘, 그때의 나만한 손자가 있는 |
햇살 걷어가고 어스레 해거름 나를 부르시던 할매의 목소리, 함지박에 무럭무럭 강냉이 삶아놓고 쇠죽바가지에 담아 실겅 위에 얹어둔 손주들 따로 살고 목소리가 없는 요즘 *간돔배기 : 소금간을 한 상어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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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네들의 입방아 찧는 소리 별의별 소문이 나돌았다. 터줏대감 아들은 고자라고 십리밖 절간에서 누가 봤단다. 아랫마을에 밤마실 가서 무수골 옹달못 메레가 넘던 날 |
내 이름은 없더라. 삼월 하늘에 갈가마귀 날고, 그날에서 오늘 꽁보리밥 곱삶이 골목골목 다 누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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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둑길을 거닐면 죽은 시간이 살아난다. 강물은 길게 흐르고 그늘을 깔고 앉았노라면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데 |
여자정신대(女子挺身隊)가 겁이나 서둘러 시집가버린 그녀와 함께 걷던 금호강 긴 둑길. 세월도 강물도 흘러가고 타버린 촛불 꺼지고 |
내 젊은 한 때가 가슴을 적신다.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 그 시절 간수(看守)를 데불고 명을 타고나기는 잘 타고났는데 오늘도 자욱히 비가 내리고 |
포목전 옆에 옷전 있고 모자전 옆에 신전 있고 어물전 옆에 생선전 있고, 난전에는 뒤죽박죽이다. 야바윗군 뺑뺑이 돌리고 국밥가게 기역자판에서 |
과수댁 아줌마가 백발 할미더라. 디딜 방앗간이던 아래채에는 막내동생 또래의 딸년이 있었는데 술심부름하는 소녀의 옆 얼굴이 과수댁 할미는 팔자가 기박하다고 |
성도 이름도 바꾸고 말도 근본도 없애고 밥그릇도 숟가락도 빼앗기고 보리강죽 퍼먹는 아가리가 있어도 없던 잊어버린 그 모습이여, 지금은 |
오도 가도 못하던 어두운 역사의 길목에서, 붙잡는 사람은 쫓아다니고 어중이 떠중이 다 모여 시간이 밤을 지우고 나면 잊어버린 그 모습이여, |
등산객이 찾아와서 자네가 누구더라 묻는다. 어찌보면 정정하고 산과 마주 앉아 종일 낭랑한 하늘 빛깔 다리가 낫거들랑 다시 만나세 |
처가에 가면 찹쌀술 용수에 걸러 닭 잡고 산적 굽고 목이 긴 백자 두루미 술상 내어오던 새 색시 분냄새도 풍기더니, 한 오십년 함께 살다보니 |
옛날 그대로 돌담 좁은 골목 낡은 마을이다. 해거름에 나는 가끔 이 마을 시락국 집에 간다. 시래기 술국을 끓인다고 내가 붙인 옥호다. 실은 주막이 아니라 구멍가게다. 이 마을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에서 풀려나면 명절이면 안마당 가득히 민속놀이도 하고 |
윗보는 논 서마지가 아랫보 논 닷마지기 논문서가 자꾸 줄었다. 오오사까에 아무아무가 있고 할매와 엄마는 길쌈하고 참으로 재물과 인연이 먼 당신께서 생전에 맏잡이 내가 봉양했듯이 기아M 자전거도 길쌈하던 베틀도 |
대(代)를 누리고 살아온 고향은 화천리(花川里)인데 내가 태어난 마실은 평사리(平沙里)이고 내가 자라난 마실은 동강리(東江里)이다. 본적도 주소도 대구(大邱)인데 재산이라고는 그 밖에 더 가진거라고는 아이야, |
산그늘이 내린다. 산그늘이 내리면 하루를 지우고 몫이 주는데, 소심한 사람이 산그늘이 |
아직도 내 수저가 놓여 있음은 참으로 다행 아닌가. 새벽에 샘터에 오르면 낮에는 고금(古今)을 뒤적이다가 해질무렵이면 늘그막에 그런대로 사느이. |
참꽃이 피기 시작하네요. 개나리도 따라 피네요. 땅을 비집고 정원 가득히 일제히 일어서는 몸짓이여, 그까짓 것 |
초록색 바람 흘러가고, 자목련 꽃잎이 한들한들 뒷산(山) 떡갈나무 숲에 올라가 해질무렵 개울따라 돌아오면 세월이사 권한 밖이지마는 |
감나무 가지 끝에 간당거린다. 반가운 손님 오실랑강 기쁜 소식 전해 올랑강. 까치소리 곧이곧대로 믿어도 들창에 해 저무는데 |
옛 마을 주막 앞을 지나간다. 쉬어가라해도 들은체 만체 한 무더기 새 떼가 날아가고 탱자나무 울타리 너머 주모(酒母)는 등을 밝히고 병에 술이 남았는데 어둡사리가 끼이듯 그렇게 |
바람이 사르르 풀잎을 눕히고 길게 늘어진 포플라 그늘에서 아이들이 소꿉장난하고 논다. 해는 아직도 한발이나 남았다고 서산머리 꽃구름도 사라지고 먼 마을 애환(哀歡)의 등불 켜지고 |
백양나무 숲이 잎을 떨군다. 하늘이 저렇게 비어 있어도 바람이 마음을 스쳐가는 건 설레는 가슴에 행여 멍이 들까봐 |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재재거리는 새소리 듣노라면 그 빛나던 세월과 더불어 나는 혼자가 아니다. 비낀 볕살이 서산을 넘고 나뭇잎 시나브로 지고 |
그 만큼 몫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저마다 타고 난 몫은 신(神)의 뜻이라 해 두자. 진달래 피던 봄 한나절도 내 예순 다섯 번째 생일(生日)날 저마다 배정(配定)된 시간은 |
경로우대증 때문만은 아니다. 가지 끝에 남은 햇살이 아쉬워 발돋움하는 것이다. 내 마음의 통로(通路)를 오가는 버스여, 사랑하는 이웃이여, 늙은이들이 소간도 없이 |
까마아득한 하늘 저쪽에서 부수히 쏟아져내리는 별빛 이 한량없는 우주(宇宙)의 속내는 설령, 지구가 유성으로 흐른다해도 인간 목숨의 섭세(涉世)가 시공(時空)을 다스리는 지엄한 당신에게 |
아득히 밀려오는 숨소리 듣노라면 이윽고 꽃등을 밝히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세월의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됩니다. 무수한 별빛이 쏟아져내리는 창가에 앉아 풀잎에 이슬 맺히고 물들어가는 나뭇잎이 하늘이 차츰 가라앉아 숨소리 무거워지고 |
내기 이곳에 온지도 며칠이 지났구나. 내가 이곳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오늘은 멍석에 술상 내어다 놓고 있던 것 없어지고 또 생겨나는 그것도 아이야, |
서지산방(西芝山房)을 찾으면 마실앞 거랑둑에 들어서자마자 술상 내어오고 그새 산그늘이 내리고 *西芝 = 金潤植의 雅號 |
집 한 채 장만하는 일이다. 뒤에는 산(山) 앞에는 시내, 흙으로 벽돌 디디고 지붕은 새(茅)로 이이고, 울은 나지막하게 치고 삽짝은 그냥 열어 두고 인도보석(人道步石) 그 밖에는 꽃나무와 텃밭 가꾸고 세간은 이대로 족하다. 명(命)대로 살다가 빈 손으로 가는 건데, 집인들 다 두고 가는 건데 한 번 해본 소리지. 세상에서 쓸모가 있으면 기념관도 짓는데. |
감나무 한 그루 빈집을 지키고 서 있다. 돌각담 안마당에 우물이 고여있고 허물어진 뒷결에 살구꽃이 피어서 봄을 지키고 서있다. 잠시 쉬어가는 나그네 |
바람이 맑아지더니 코스모스가 피고 샐비어가 피고 이웃집 미망인이 한결 젊어 보인다. 창밖으로 가끔 세월이사 그를 버려도 |
산지기집 텃밭머리에 해묵은 감나무 한 그루 홍시(紅枾) 스무남은 개 촌뜨기 얼굴에 멍든 것이 더러 있긴 해도 씨가 유난히 많은 토종(土種)의 그 속살 맛이여, |
냉동고에 참새가 소복하다. 참새가 방앗간 지나듯 황혼병 환자들이 술을 마신다. 약값은 두목형 멋쟁이가 내고 약값이 소중한 그런 날에는 |
구둘목에서 손이 시린 날 기다림은 하염없이 봄비에 가슴 젖는다. 바람이 햇살을 꺾고 참으로 가난하고 외로울 때 |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하는 시 한 편 쓰고 싶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하는 그도 저도 아니면 |
깨어진 조각들을 줍다가 문득 어느날의 나를 생각한다. 아직도 내 모습 그래로 깨어진 조각들을 주워들고 |
하나의 목숨으로 왔다가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속으로 절로 사라져가는 것인데, 여기 송림리(松林里) 앞산 발이 빠른 겨울 햇살은 |
그 수많은 씨앗들 가운데서 인간으로 태어난 목숨이 한량없는 시간으로 이어지는 세월이여, 나를 낳아주신 어버이 그 아이야, 하고많은 모양 이름들이 |
산(山)길 몇 십리를 걸어 야동할배 댁에 갔더니 팔순(八旬) 노인 야동할배는 미투리에 다래지팡이 짚으시고 증조할배 산소에 앞장 서시더라. 야동할배도 아버지도 당숙(堂叔)도 무덤 안에 계시는 혼령과 |
문평공(文平公)할배 신도비가 서 있다. 서당 뒤에는 서당 앞에는 거북 등어리를 디디고 선 문평공(文平公) 할배가 이룩하신 어느날의 후손들이여, *樸谷書堂 : 慶北 達城郡 嘉昌面 上院洞所在 |
전화를 받고 알았네. 석모(夕茅), 너무 억울하게 살아왔지마는 이자식 사기꾼, 매춘부, 거지밭싸개 같은 놈 우리 이승의 그 주막에서 주소가 바뀐 자네집 청구공원에서 1987. 1. 12 |
초대받고 갔더니, 인환(人環)의 거리에서 멀리 보리 이싹 익어가는 밭둑에 메레가 넘치는 못물 굽어보면서 머리에 등(藤)꽃 꽂은 아가씨가 은사시나무 잎새가 연신 팔랑거리고 귀로(歸路)에 자네가 아끼던 젊은 시인은. 1990. 5. 13 |
우리 곁을 떠나신지 어언 스무해가 되었다. 청마(靑馬)선생은 당신의 시(詩)세계는 청마(靑馬)선생이 가신지 스무해 세월을 만드는 우리들 가슴 속 깊이 1987. 2. 13 |
십자로에서 다투던 향방(向方)의 입씨름도 끝났다. 어차피 하루는 저무는 것. 한해도 한시대도 그런 것. 인간의 꿈과 슬기는 어두운 밤을 밝히고 생각은 저마다 다르지마는 이튿날 또 하늘에 해는 떠오른다. 보라, 눈부시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장백의 줄기줄기 그 골짜기마다 대대로 이어온 겨레의 숨결 위에 쏟아지는 햇살이여, 광명(光明)이여, 새해 새날 아침에 끝없이 뻗은 길은 88로가는데, 푸른 물결 파도치는 가슴을 안고 노래를 뿌리며 둥둥 북소리 울리며 춤추는 겨레의 날개 죽지에 쏟아지는 푸른 광명(光明)이여, 길은 외줄기 88로 가는데 시간의 사슬은 길고 질기다.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살아서 즐거운 목숨들이여, |
오늘은 정월 초하루라 한다. 시간은 절로 흐르는 것인데, 사람들은 토막을 내어 어제는 어제라 하고 오늘은 오늘이라 한다. 한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주(民主)의 물결은 홍수로 넘어치는데 요순(堯舜)의 시대가 아니더라도 옛날에도 화백(和白)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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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 보름날 귀밝게 술을 마시고 까치가 소식 전해준다고 믿었다. 인간의 슬기는 마침내 전파를 타고 오늘 개국 50주년을 맞은 세월은 21세기로 달리고 1989. 4. 19 |
어머니들이 모여 시와 산문 문학의 잔치를 베푼다. 장미는 장밋빛으로 모란은 모란빛으로 옥매화는 옥매화대로 싱푸른 생각들이 출렁거린다. 쏟아져 내리는 햇살과 잡치집 안 마당은 너울너울 춤도 추고, |
금호강(琴湖江) 굽이 돌아 기름진 달구벌 옛터전 거리에 넘치는 풍요와 이웃끼리 정다운 고장 우리는 대구직할시민이다. 신라와 고려와 조선조 오늘은 시민의 광자에 모여 |
타오르는 암장(岩漿)과,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도 소리가 있었나니, 다시 수 만 년을 거쳐, 지혜는 마침내 소리가 노래되고, 거문고와 가야금을 튀기고, 이제, 국악은 가슴마다에 창창한데, 1990. 6.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