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구조構造 structure의 미학적 탐색>
서태수
*필자 주 : 계간 <문심> 탑재(2023) 평론의 요지 발췌본임
<1> 문학작품의 구조
구조構造 structure란 전체를 이루는 각 요소들의 총합으로 문학은 하나의 통일체로서 서로 긴밀히 짜인 구조물이다. 문학에서는 일반적으로 ‘구성, 체계, 유기체, 동적구조’ 등과 유사한 맥락을 가진 개념이다.
구조적 미감 창출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다. 창작에서도 ‘제작’의 요소가 다양하게 동원된다.
창조는 신의 영역, 생산은 기계의 영역이라면 창작과 제작은 인간의 영역이다. 창작創作은 재능才能, 제작製作은 기능技能의 요소이다.‘예술藝術’이란 말에 이미 기술적 제작의 의미가 담겨 있다. ‘언어의 연금술사’란 기술자를 일컫는다.
문체style는 문학작품 미감美感을 형성하는 특징적 작문법characteristics composition으로 작가의 개성이 문장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따라서 문체는 작가가 이미 선정한 내용에 어떤 형식의 당의정糖衣錠을 입히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당의정은 일상적 어휘를 어떻게 정서적으로 직조하느냐의 기술적 문제이다.
문학작품에서 ‘기술적 제작’은 운문이든 산문이든 다 적용된다. 시는 순간의 형이상학이므로 시상의 내포를 강화하여 ‘발아發芽, 성장成長’시키면 된다. 이 과정에서 주제 강화를 위한 비유적 형상화로 정서 함양 기능을 발휘한다.
운문이든 산문이든 모든 글도 기본은 구조 문제이다. 문학작품에서 구성을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체는 처음 중간 끝이 있기에 잘 짜인 작품은 유기적 관계를 형성한다. 아름다움이란 크기와 질서에 의존하므로 부분들의 질서 있는 배열과 일정한 크기의 조화가 필요하다.”라는 견해는 곧 구조론을 설파한 것이다. 이런 예술 작품에는 미의 3요소인 ‘통일, 조화, 균제’가 저절로 생성된다.
<2> 논술문의 구조
내용과 형식 균형에서 가장 합리적 구조를 지닌 글은 논문, 논술문이다. 그런데 이런 조직체계는 실용문이나 일반 산문은 물론 문예문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소설, 희곡, 수필, 시, 시조 등에서 크게 실패한 작품은 주제 선정이나 세부적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한다. 건축물에 비교한다면 설계도가 잘못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한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 관계’, ‘크기와 질서의 조화로운 아름다움’ 에 담긴 논리의 핵심은 <질서 – 크기 – 조화>이다. 곧 이야기의 순서, 각 부분의 양적 균형, 질적 조화이다. 이를 문학작품 제작에 원용하기 위해서는 창작 단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순서와 양적, 질적 단계별로 진행되는 작품 구조는 <1. 내용 전개의 질서 2. 전개 요소의 양적 균형 3. 표현의 효율성> 세 요소로 대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작품 창작에서는 내용, 즉 주제를 먼저 설정한다. 이때 제재 운용과 내용 전개 방향의 큰 그림은 이미 결정된 상태이다. 남은 과정은 <질서 – 크기 – 조화>를 위한 미적 구현의 구체적 과정이다.
<3> 시, 시조의 구조
시는 순간의 형이상학으로 정서 표현과 전달이 목적이지만 시에도 시적 논리가 있다. 내용이나 주제가 잘못되어 시를 실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의 속성이 세계의 자아화이므로 독자가 이를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세부적 표현의 미묘한 오류는 미감 표현의 위상位相 문제이지 성패의 문제가 아니다.
시의 실패는 전개상의 구성적 미감 실패에 기인한다. 즉 구조적 결함 때문이다. 좋은 시는 구조도 완벽하다. 난해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사 전달의 방법으로 볼 때, 시는 논설문에 가깝다. 겉으로 드러난 표현이 묘하긴 해도 아주 짧은 논설문이다. 시 속에는 반드시 필자의 논설적 주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표현이 함축적이라 말도 안 되는 소리같이 생각될 뿐이다.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난해하다는 이상의 「오감도 제1호」는 완벽한 논리 구조다. 내용을 요약하면 ‘13인의 아이들은 뚫린 골목이든 막힌 골목이든, 질주하든 안 하든 즉, 어떤 상황이든 무섭다고 한다.’이다. 이 정도의 독해만 해도 주요 정보인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과 공포’는 파악한 것이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좋은 구조의 매력과 반전으로 의외의 효과를 거둔 시다. 국화의 생애는 당연히 ‘봄 - 여름 - 가을’을 거친다. 각 계절의 대표적 시련을 선정하고 3연에 중심 제재인 누님의 사연을 삽입했다. 이렇게 되면 3연에서 전환이 일어나 더욱 세련된 4단 구조가 된다. 시의 탄탄한 구조(기승전결), 리듬(7・5조의 3음보), 사상(불교적 윤회) 등이 잘 어우러졌다. 특히 마지막 행에서 서정적 자아와 결합된 비약적 시상이 새 생명 탄생의 신비로 심화되는 종교적, 철학적 감동까지 얻게 된 것이다.
시조時調의 구조화는 매우 까다롭다. 시조는 초중종장으로 기서결의 3단 구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단시조인 경우는 문제가 없겠으나 연시조의 경우는 전체 구성을 다시 3단 구조로 직조해야 한다. 액자구성을 기반으로 그 속에 옴니버스나 피카레스크식 구성이 혼입되어야 한다.
3수 이상 연시조의 경우 3단 혹은 4단 구성이 용이하다. 2수 연시조구조는 두 연의 상호 역학관계가 병렬, 반복, 강조, 상술, 심화, 예시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불완전한 구조이다.
자유시든 시조든 의미망 연결법에 산문과 달리 비유와 압축이 형성된다. 상징성이 고도화하고 이미지의 파편이 시를 지배하면 독해가 어려워진다. 이런 시일수록 시의 근간에 숨어 있는 의미망의 논리적 구조가 견고해야 한다. 난해성은 독자 수준의 문제 이전에 작가의 미숙 탓이다. 시는 해석과 감상의 언어예술인이지 난수표로 해독하는 암호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4> 수필의 구조
소설은 ‘발단-전개-위기-전환-절정-결말’의 모범적 구성 단계가 있다. 문제는 무형식의 형식미학을 지향하는 수필 구조다. 산문 작가들은 전체 글을 파악할 때는 문단이나 문장 중심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자기 작품인데도 자칫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게 된다.
한편의 이야기는 개별적 단락이 모여 형성된다. 단락의 구성 원리는 ‘통일성, 일관성, 완결성’이다. 통일성은 소주제로 향하는 집중성, 일관성은 전후 문맥의 유기적 연결성, 완결성은 소주제를 보완하는 구체적 진술성이다. 이 복잡한 조직체계를 한눈에 파악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접근 안목이 필요하다. 수필가는 ‘나무 - 숲 - 산’까지 다 볼 줄 알아야 한다. 부분에만 몰두하게 되면 주제 이탈, 양적 균형의 부조화 등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수필 미학의 작문법에 동원되는 주요 자질 5요소는 ‘① 제재 변주 ② 구성적 미감 ③ 언어 조탁 ④ 서정적 감성 ⑤ 지성적 교감’이다.이 다섯 요소를 유기적으로 직조하는 것이 구성이다. 결국 구성plot이란 작가의 의도에 입각한 미학적 조직으로 이것이 최상의 구조構造structure다. 이의 운용법을 상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① 제재 변주 ⑤지성적 교감’은 어떤 제재로 어떤 주제를 쓸 것인가의 문제이므로 가장 먼저 방향이 설정된다. 제재 변주는 작가의 집필 방향을 결정하고 지성적 교감은 지적, 철학적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표현의 미학 구조와는 직결되지 않는다. 집필 방향 결정이란 체험의 전환, 비전환의 선택 문제이다.
둘째, ‘② 구성적 미감’은 효과적 화소 전개의 골격도이므로 화소 배치와 직결되는 항목이다. 곧 독자의 흥미 유도를 위한 밀고 당기는 기술이 필요한 부분으로 산문 구성의 핵심이다.
셋째, ‘③ 언어 조탁’과 ‘④ 서정적 감성’은 퇴고 과정에서 상세히 구현된다. 이는 윤문 및 형상화를 통한 시적 미감의 층위를 형성한다. 문학은 언어의 미학적 기교를 극대화한 예술이며 그 기교의 최상위에 형상화가 자리하고 있다.
표현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도입이다. 제목이 명함이라면 첫 문장은 상견례의 첫인사다. 글쓰기에서는 도입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중에서도 첫 문장의 시작이 어렵다. 따라서 주제를 생각하고 본문과 결미에 연관되는 문장을 구상하고 문체미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도 기획해야 한다. 결미의 마지막 문장도 멋을 부려야 독자의 에프터after를 기대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논술문 4단 구성에서 서론과 결론은 인상 깊은 표현을 통해 독자의 주목을 끌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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