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비판-사회적 경제:신자유주의 위기관리의 보충물
경제민주화,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그 뿌리는 어디에서 시작하나
1980~9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워싱턴 컨센스)이 세계를 휩쓸던 시절, 이를 통해 새로운 성장을 도모했던 제3세계 국가들은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국가 실패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고, 경제종속과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에 반발하면서 반세계화운동은 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히 터져나오게 된다.
주류경제학에서 신자유주의적 국제개발원조 방식에 대한 내부반성으로 비주류 경제학자였던스티글리츠를 세계은행 수장으로 앉힌 것이다. 50~60년대에 사라졌던 사회적 이념이 경제적패러다임이 다시 들어오게 된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사회적인 것’(지역, 커뮤니티, 문화, 관습)으로부터 이탈되었던 ‘경제적인 것’(자유시장)에 다시 ‘사회적인 것’들을 얹히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신자유주의가 추구한 순수한 시장경제 이데올로기만으로는 의도한 구조개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번번이 실패했는데, 위로부터의 제국주의적이고 수탈적인 이미지를 지우고 아래로부터의 개혁참여를 북돋우면서 구조개혁의 실행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등장한다. 이전엔 근대화를 위한 발전에 금융화와 탈규제가 단골처럼 등장했지만, 이젠 지역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어 ‘사회적 자본’이 구축되어야만 제대로 발전한다는 논리가 부상한 것이다.
새로운 주체로서 NGO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사회적 신뢰구축이 중요한 정책과제가 된다.(신뢰, 협동, 자조, 시민사회 주도성) 이러한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의 내용들은 개발도상국에게는 빈곤퇴치전락의 핵심으로 포함되고, 선진국에서는 ‘위기관리’ 개념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2007-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신경제론의 핵심인 인적자본 개념은 점차 쇠퇴하고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자본’ 개념이 더욱 일반화 되게 된다. 이는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위기에 처한 자본이 자신의 위기관리 전망에 국가와 NGO를 적극적으로 배치시킨 결과이다.
이제 ‘사회적인 것’은 경제구조 재편과 경제주체의 동일화라는 두 축으로 재등장하게 된다. ‘자본주의 4.0’,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등의 키워드로 상징되는 경제구조 재편의 문제의식은 대동소이하다.여기에 경제주체의 동일화를 끌어내기 위해 ‘공정’, ‘지속가능성’, ‘호혜성’, ‘자발성’ 등등 주체화양식의 키워드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주체화과정에서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조직이 굉장한 탄력을 받는다.요즘 ‘000 마을 만들기’ 운동이 곳곳에서 한창인데, 만약 지역주민들이 자발성과 협동, 상호신뢰가 없으면 사업은 지속불가능해고 일회성 전시행정으로 끝나고 만다.
사회적인 것’들이 들어찬 경제적 토양에 조직형태로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이 최근 우후죽순처럼 확대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이 기존 기업들처럼 임노동 관계에 따른 위계질서를 갖는 경영구조라면, 협동조합은 1인 1표에 근거한 수평적 경영구조를 갖는다. 사회적 기업의 진출분야는 대부분 사회서비스 분야에 치중되어 있다.
현재 사회적 기업은 828개가 운영 중인데, 생존율이 94%에 달한다. 1990년대 후반 붐을 이뤘던 벤처기업의 성공률이 2∼4%였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생존율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한 5년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독자생존을 해야 할 시점에 직면했다. 그러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중에서도 손익분기점을 넘긴 곳은 소수에 불과하다.의존적 관계는 사회적 기업이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공공서비스의 영역을 외주화하면서 탄생했던 사회적 기업의 역사와 무관치 않다. 애초부터 복지정책의 하위파트너 관계에서 출발한 사회적 기업에게 ‘독자생존’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
최근엔 지난해 말 협동조합법 시행을 계기로 협동조합 설립 붐이 일어나고 있다. 7개월 동안 1,461개가 생겼다. 불합리한 ‘갑을관계’가 횡행하는 우리나라에서 소위 “뜻있는 사람끼리 뭉쳐보자”라는 대중적 욕구가 분출한 현상이라고 분석해 볼 수 있다.내부적 경영에 관한 조합원들간의 민주적 소통과 교류는 스스로의 몫일 지라도, 외부적인 판로 개척의 문제는 주관적 의지로만 될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개인 자영업자가 여럿이 모인 자영업체로 바뀌었다고 해서 사업모델이 저절로 혁신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자금조달 문제이다. 정책자금을 받거나 창업투자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여기에 ‘사회적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사회책임 투자펀드’가 큰 역할을 한다. 말 그대로 사회적 책임을 지는 기업에 투자한다는 의미인데, 유엔은 이미 2007년 책임투자개념을 정립시켰다. 이후 ‘마이크로 파이낸싱’이라는 말로 상징되는 여러 자금투자모델들이 개발되었다. 이러한 ‘사회책임투자’라는 개념은 여러 정책적인 자극을 주는데, 대표적으로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의 투자방향은 사회적 책임을 지는 기업을 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일반 대기업들에게도 ‘사회공헌사업부’를 만들어 기업이미지 관리나 사회공헌에 참여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또한 기존의 윤리적 소비 개념을 ‘착한소비자’가 ‘착한기업가’에게 투자한다는 개념으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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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에서 드러나는 논란은 무엇일까? 먼저 많이 지적되는 것이 자본주의적 대안으로 신화화된 현상이다. ‘국가의 실패’와 ‘시장의 실패’라는 두 가지에 대해서 이를 극복할 새로운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를 상정하는 것인데, 서구에서는 이미 ‘제3의길’을 통해 20년 전부터 회자된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IMF 이후 경제불평등의 심화와 최근 2008년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대안으로 선전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그러나 앞에서 정리한 그림에서 보듯, 현재 창업되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은 국가 기능에 하위파트너로 조응하거나 시장영역으로부터 자금조달과 판로개척 문제로 종속되어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현재 회자되는 ‘사회적 경제’ 담론도 자본주의 폐해를 완화시키고 보완시키기 위한 개념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말로 정리된다.
돈벌이 경제가 아닌 살림살이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라는 주장이다. 여기에 약육강식의 돈벌이 경제와 협동 상생의 살림살이 경제라는 말이 대비되면서, 대기업 중심의 불합리한 ‘갑을관계’가 판치는 경제구조를 경제민주화와 협동의 경제로 판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설파된다. 이를 위해 1인 1표의 민주적 운영원리가 깃든 협동조합이 대안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로까지 확장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구성원들의 유입과 세대간 격차로 인해 관료적 위계질서에 편입되거나 자본주의 기업으로 퇴행할 우려가 늘 상존해 있었다. 또한 다른 협동조합들과 시장에서 경쟁하는 관계 속에서 타 조직에 배타적 경향을 띨 수밖에 없고, 이는 조직들 간의 문제로 불거지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현재 다시 활성화 되고 있는 협동조합들은 이미 거대화된 국가(권력)과 시장(돈)이라는 매개물과 관계를 끊을 수 없다. 그들과의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협동조합방식의 경제운영원리에 국가와 자본이 조응하도록 거시적인 변혁을 일으켜야 한다. ‘사회적 경제’ 담론에서 ‘기간산업 국유화’나 ‘노동자자주관리’와 같은 담론이 끼어들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충물이 대체물이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에 영합하는 것 일수도 있다는 자기 경계와, 극복하려고 했던 ‘배제’의 문제를 없애서 이를 해결하기보다 배제의 분할선을 다른 곳으로 재배치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기성찰이 필요하다.(예를 들어 협동조합의 신화로 알려진 ‘몬드라곤’의 성공비결에 대해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바스크 민족주의이다. 지역주의 동일성에 기초한 공동체주의는 타 공동체에 대한 분할선을 가지고 있다. 또한 ‘몬드라곤’이 세계화하면서 브라질 등등에서 현지법인 조합원들과 고용-피고용의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는 앞서 말한 배제의 분할선의 재배치를 강하게 상기시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거시적 부문의 구조변혁으로 논점을 옮기지 않을 수 없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경제를 사회로 끌어당기는 운동이 분출하였고, 이는 고도금융을 제어하고 국가에 의해 재분배정책을 취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80-90년대 신자유주의 등장 이후 경제는 사회에서 다시 떨어져 나갔고, 2008년 세계적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다시 경제를 사회로 끌어당기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회적 경제’의 등장이 바로 그러한 움직임이다.
이런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도 비대칭적인데, 미국처럼 헤게모니 국가로서 기축통화를 통한 위기관리능력을 가진 나라가 있는 반면, 유럽채무위기국가들처럼 경제종속에 의해 위기관리에 아주 무력한 나라가 있다. 또는 중국처럼 독자적인 정치체제로 자본운동과 시민운동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국가도 있다.
사회적 경제’ 담론의 중요한 축으로서 시민사회 주도성은 그 중심을 잡기 어렵게 된다. 국가-시민사회-자본 공조체제에서 힘은 국가로부터, 돈은 자본으로부터 전달받는 시민사회가 독자적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어디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사회적 경제’ 담론과 협동조합의 이념에 보이는 커다란 관심과 열망이 단순한 유행이 될지, 아니면 ‘사회적 경제’ 담론이 사회변혁의 매개물이 될지, 이는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의 보충물에서 시작된 ‘사회적 경제’ 담론의 역사를 성찰하고 자기변모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2013.8.18 9:35 두암동 미라보아파트에서
[사회적 경제비판-사회적 경제:신자유주의 위기관리의 보충물]의 전문이 아닌 내용을 또 다시 검토해서 간단히 요약정리하려고 했으나 상당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야 여기에 있는 내용을 충실히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