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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현재 러시아에 19만 671명, 우즈베키스탄에 20만 917명, 카자흐스탄에 10만 3676명, 키르기스스탄에 2만 394명, 우크라이나에 1만 3111명, 투르크메니스탄에 420명, 타지키스탄에 1783명, 벨라루스에 1327명,몰도바에 258명, 조지아에 20명, 아제르바이잔에 63명, 아르메니아에 30명 등 총 53만 2697명이 거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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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려인 [高麗人 ] | 네이버 백과사전
*1)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몰도바·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조지아(그루지야) 등 독립국가연합 내에 살고 있는 한인 교포들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용어이다
-필자주: 체첸인과 고려인은 특별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의 체첸공격과, 그루지야 공습, 중공의 위구르인 차별, 독립문제, 고려인의 말살 정책은 현재 진행형이다.
*2) 1863년(철종 14)으로, 농민 13세대가 한겨울 밤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서 우수리강(江) 유역에 정착하였다.
- 필자 주: 우수리강은 볼가강의 지류이거나, 도나우 강으로 여겨진다. 그래야 몰도바, 벨라루스 방면으로 갈 수 있다. 1863년 철종 14년의 이주는 조선 중앙정부의 해체의 서막이었다.
3) 스탈린의 이른바 대숙청 당시 연해지방의 한인들은 유대인·체첸인 등 소수민족들과 함께 가혹한 분리·차별정책에 휘말려 1937년 9월 9일부터 10월 말까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 필자주: 유대인과 체첸, 고려인은 본시 중앙아시아에 살다가 각지로 흩어진 것으로 보인다. 터키정부의 쿠르드인 학살과도 같은 맥락으로 여겨진다. 중앙아시아가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조선중앙정부가 완전히 장악됨에 따라 흩어진 고려인 , 즉 농경기술을 가진이 들을 선발해 해당지역을 개발했을 것이다.
참고로 스탈린은 그루지야 고리Gori 출신이다. 1937년 9월21일 ~11월 15일까지 처형당한 한국인 지식인은 2500명에 달한다. 구소련 극동 러시아 연해주가 현재의 블라디보스톡, 하바롭스크 지역인지는 재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다. 이곳은 우크라이나와 캅카스지역 일대로 우선 추정한다.
철종대의 조선인 만주이주는 조선정부와 야인과의 관계로 풀어보면 그 지리적 위치가 추정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