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과 친척사이 화목교훈 남긴 개령면 서부리 주민생활도 부유 원래는 부억·화목·우량리 등 세 개 마을인데 마을이 커지면서 한마을이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개령현 서면에 속했다가 1914년 통합 서부동이라고 하고 개령면에 예속시켰다. 개령면 소재지 남쪽에 호두산 밑으로 길게 늘어진 마을로 동쪽은 감천 변에 발달한 넓은 들이 펼쳐지고 남북으로 910호선 김천-선산 간 지방도가 지난다. 동쪽은 감천 넘어 아포면 대신동이 바라보이며 서쪽은 호두산이 가로막고 우량동 뒤에는 죽림이 무성하나 북쪽은 동부리로 이어진다. 부억동은 버어골, 버골, 백골, 비골, 부억골등이 불여지고 있는데, 현재 동사무소 서쪽 산 안쪽 왼편 마을을 1250년경 모씨라는 선비가 개척했다 하며 주민들 생활이 넉넉하여 부억동이라 불리어 왔다 한다. 우량동은 화목동 동쪽에 있는 마을로 주민들 수준이 높고 좋은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7가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죽전동 화목동 북편에 있는 마을인데 마을 뒷산에 대나무 밭이 많다. 대나무를 심은 연대는 알수 없고, 죽전동이라 마을 이름은 대나무가 유달리 많아서 붙여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10여가구가 살고 있으며 다소 높은 지대인 마을 중심부분에 우물이 있어 오늘날도 많이 이용한다. 화목,하몰,하묵,하먹,하목골이라는 이름의 마을은 서부동에서 중심되는 마을로 동사무소에서 동쪽으로 뻗쳐 있으며, 이웃과 친척사이에 화목하게 지낸다 하여 화목동이라 불렀다 하는데 30여가구 정도 살고 있다. 이밖에 배다리와 아우동 가마바위 등 숱한 전설을 안고 있는 속칭명이 많은 곳으로 이 가운데 아홉동은 현재 개령중학교 서편 길따라 좌우로 있는 마을이다. 당시 최하 9개 마을이 되어야 현을 형성할 수 있다는 국법 때문에 인위적으로 한 동네를 더 만들었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며 7가구가 살고 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하늘 아래 첫 동네 이름 안은 증산면 황항리 황소유래 구전
조선시대는 성주목 증산면에 속한 황항, 임평으로 1895년에 증산면이 양분되면서 성주군 내증산면에 귀속되고 1906년에 황정리 일부를 편입하여 이름은 그대로 황항리라 하고 지례군 내증산면 관할로 옮겼다가 1914년에 황항과 임평이 결합되어 황항리라 칭하여 김천군 증산면 관하가 되었다 증산면 북산 산간오지에 있어 버스가 다니지 않는 마을로 면소재지와는 6.5km 거리이며, 부항리에서 동북쪽으로 갈려 들어간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남암천의 발원지이며 동은 성주군 금수면, 남은 황정리, 서는 부항리, 북은 지례면과 접경하고 있다. 누루목, 황항은 1700년경 오봉집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마을 일대 땅이 황토 빛을 하고 있기 때문에 누루목, 황항으로 불렀다 한다. 일설에는 마을이 있는 땅의 모양이 황소 목의 형상이라 누루목, 황항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과거 증산면이 성주목에 속해 있을 때는 면사무소가 이 마을에 있었다. 인패이, 임평은 옛날 이 마을에 살던 형제가 물싸움 끝에 죽은 일이 있었는데, 사람(인)을 패 죽인 마을이라 하여 인패이가 동명이 되었다 하고 또 이 마을을 처음 개척한 사람의 성이 임씨라 해서 임평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조리봉은 누루목 동쪽에 있는 산이고 청룡날은 누루목 동쪽에 있는 산줄기로 용이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새청날은 누루목 서쪽에 있는 산줄기를 말하고 있고 갈배미재는 누루목에서 지례면 속수로 넘어가는 고개다. 고수동재는 누루목에서 지례면 신평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근처에 서낭당이 있었다. 사람죽은 골이라 함은 인패이 서북쪽에 있는 고개인데 옛날에 사람이 싸워 죽었다 한다. 이밖에 여시밭골과 분당골 뒷골 지리밧골 부통골 등 깊은 산골 골짜기 명이 많기로 이름난 곳이다. |